15화. 권력
구청장은 빌었다. ATM기 위에서 혼자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
두 손을 모아 빌며 그녀에게 고했다.
“잘못했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그러자 김아람이 고개를 뻣뻣이 들며 그에게 나무랐다.
“아저씨,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그래. 미안하다. 용서해줘서 고마워.”
구청장의 사과와 동시에 그의 몸이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다.
그리고 잠시 후, 땅에 사뿐히 착지하는 구청장.
타인을 공중에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염력.
김아람의 능력에 혀를 차는 김만철이 말했다.
“대박인데? 저런 세세한 컨트롤도 되는 거야?”
“아직 다 보여주지도 않았는데요?”
김아람은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이 있었다.
이미 숙달된 그녀의 움직임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했다.
지상에 착지한 구청장을 향해 김아람이 입을 열었다.
“구청장 아저씨, 경고예요. 한 번만 더 사람 마음대로 다루려고 하면 용서 없어요. 알았어요?”
절대적인 그녀의 힘에 고개를 숙인 구청장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용서를 비는 것 뿐.
“정말 미안하다. 다시는 안 그럴게.”
그의 무릎 꿇은 두 다리가 땅에 붙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강백현과 김만철은 그녀의 달라진 모습에 충격을 먹었다.
성격변화.
자신의 절대적인 힘을 알게 된 그녀에게 놀랄 뿐이었다.
‘아람이 성격이 변했어.’
강백현의 그런 표정을 보며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가자. 이제 내가 다 지켜줄 수 있어.”
“어? 지켜준다고?”
“그래. 그러니까 나가자고.”
은행 자동화기기 건물 바깥.
가로등이 밝혀둔 서울의 도로는 평소와는 달리 한산하고 또 밝았다.
유동인구 제로.
밤의 천국 서울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나방과 같은 벌레나 야행성인 고양이 뿐이다.
재현아파트까지의 길을 대충 확인해 본 백현이 말했다.
“1.2km 정도만 걸으면 도착할 것 같아.”
“미니맵에 거리도 나와?”
“아니, 이 길은 자주 걸어서 알아. 평소에 대형마트에 들렀다가 돌아갈 때 헬스 어플을 켜면서 걸었기 때문에 항상 거리를 재곤 했거든.”
이제 이틀만 걷게 되면 도착하는 거리.
원래는 20분만 걸으면 집까지 갈 수 있는 곳이다.
강백현이 주변을 쳐다보았다.
좌측 건물 1층에는 통신사 대리점이 있고, 우측 건물 1층에는 은행 자동화기기와 은행 본점이 위치해 있다.
그 사이 깔려진 도로 밑으로 분식점, 문구점, 초등학교, 빌딩 주차장, 일식 전문점, 행정사무소, 교습학원 등이 놓여 있다.
조금은 답답했다.
여기저기 불탄 흔적들.
건물에 처박혀 있는 자동차와 건물 내부 화재로 그을음이 가득한 광경.
부러진 가로등이 깜박깜박 거리며 풍기는 흉흉한 분위기.
지금 몇 시 즈음 되었으려나?
통신사 대리점 안쪽을 보니 시계가 놓여 있다.
시간이 보인다.
새벽 4시 32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도로를 걷던 중 아람이가 말을 꺼냈다.
“백현아. 아파트는 괜찮을까?”
“갑자기 왜 그래? 아까는 너만 믿으라며! 다 구해준다며.”
“그러게……. 조금 흥분했었나 봐.”
“칫! 바보. 가던 길 가자.”
“응.”
가라앉은 흥분.
강력한 힘을 가진 아람이의 희열이 가라앉은 이유는 뭘까?
사람은 긴장하거나 흥분하게 되면 몸에서 아드레날린을 생산한다고 한다.
그게 줄어든 탓일까?
그녀의 안정된 목소리를 들은 백현은 안심했다.
이제 상가지역을 지나 주거지역에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원룸, 투룸 등이 즐비한 빌라.
『살기 좋은 서울, 행복한 서초구! 우리 행복해요!』
도로를 비추는 알록달록 빛깔의 조명등 글씨.
살기 좋은 서울? 행복한 서초구?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지금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구청은? 군대는?
이런 상황은 대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예 계획단계부터 상정조차 하지 않았겠지.
그때 김만철이 물었다.
“백현아, 다리 안 아프냐?”
“조금은 아픈 것 같아요.”
“쉬었다가자. 한두 시간 걸으면 조금씩 쉬어줘야 해. 안 그러면 몸 망가져.”
“네. 알겠어요. 아람아, 조금만 쉬자.”
“응.”
강백현은 엉덩이를 땅에 붙인 채, 다리를 지평선과 나란히 쭉 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종아리에 알이 배길 정도로 퉁퉁 부어올랐다.
그건 김만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편의점에서 쉬면서 빵도 먹고, 자동화기기 건물 안에서 잠도 자며
적정수준의 휴식을 취했지만 이미 몸은 노곤 그 자체.
생각해보니 거의 600m를 걸어왔다.
지금의 크기로 환산하면 약 30km. 불과 14시간 만에 주파한 기록.
온갖 위험한 요소들을 극복한 것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쥐를 만났고, 청소기를 만났고, 고양이를 만났다.
소화전이 터져 홍수가 났으며 자동차는 서로 부딪혀 불타올랐고, 변전시설은 오면 죽는다며 찌릿찌릿 전기를 내뿜고 있었다.
남은 거리 1.2km. 환산하면 60km.
그래도 다행인 점은 서울이라는 것.
근처에 널려있는 편의점.
먹는 것은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재난 재해 영화들을 보면 일단 식수부터 걱정하게 된다. 먹는 것부터 걱정하게 된다.
좀비 영화에서는 먹는 것으로 싸우고 투쟁하며 결국 사람들끼리 죽이기도 한다.
지금 세상은 적어도 그런 일은 없겠지.
작아진 만큼, 먹을 것은 주변에 천지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웃음이 나왔다.
그걸 보며 김아람이 물었다.
“왜 웃어?”
“상상해봤어. 그나마 우리는 다행이다 싶어서.”
“뭐가?”
“서울에 사는 것 말이야. 먹을 것도 많고, 일단은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있고 하니까 우리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듣고 있던 김만철이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백배 나아.’
그런데 김아람의 생각은 달랐다.
“네 생각대로 되지 않을 거야.”
“어?”
“강백현, 네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진 않을 거라고.”
김아람의 말에 보다 못한 김만철이 나섰다.
“아람이는 좀 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 어떤 위기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돌파구가 생길 거야.”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난 이 세상의 결말을 알아요.”
“결말?”
김아람의 말에 김만철의 동공이 커다랗게 커졌다.
결말이라니?
그녀의 말에 강백현 또한 아람이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 소설 이야기인가?’
과연 일본에서 나왔던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이 읽었던 미나의 소설과는 어떤 게 다를까?
솔직히 여동생의 소설을 다 읽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뭐든지 알고 있다면 그것을 알고 대처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초반부밖에 보질 못했다.
나머지는 서로 대화를 통해 간간히 나눠 유추할 수 있었던 것들뿐.
과연 아람이가 아는 것은 뭘까? 그녀는 뭘 알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아람이 입을 열었다.
“내가 본 일본 소설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작아진 후 인구가 50% 미만으로 떨어졌을 때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했어.”
“신기한 현상?”
“응. 히카리노 피라. 한국말로 번역하면 빛의 기둥일까?”
“빛의 기둥?”
“어. 빛의 기둥이 나타나면…….”
강백현은 기억해냈다.
동생과의 대화를. 빛의 기둥에 대한 내용을…….
빛의 기둥, 절망의 전조. 시험의 시작.
그게 나타나면 여동생을 구하기 힘들어진다. 만나기 힘들어진다.
시련이 시작되니까.
그래서 왕자는 고생한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선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고 미나가 그랬으니까.
백현이 혼잣말을 했다.
“세상이 절망으로 변하겠지.”
“어?”
“인구가 50%로 줄게 되면 나타나는 빛의 기둥. 안전한 대피장소, 또 다른 장소로 가는 차원문.”
“알고 있었어?”
아람이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만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소설 이야기요.”
“소설?”
“네. 일본에서 유명했던 『3cm가 된 사람들』이란 소설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3cm가 된 사람들』이란 말에 김만철이 호기심을 가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기도 약 3cm의 크기로 작아졌으니까.
“소설 속 내용에서 인구가 50% 이하로 줄면 빛의 기둥이 세상 곳곳에 생기게 돼요. 그곳으로 가면 탈출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빛의 기둥?”
“네. 그곳에는 먹을 것도 많고 입을 옷도 충분히 있다고 알고 있죠.”
백현의 말에 김아람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어? 그런 내용도 있었어? 소설에는 그런 내용 없었는데?”
“그래? 나는 커뮤니티 글에서 내용을 본 것 같아.”
적당히 얼버무렸다.
백현은 이제 알았다.
이게 대한민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각 국가 단위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빛의 기둥이라는 단어는 백현의 정신을 환기시켰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대략 5200만, 과연 지금 살아남은 인구는 몇 명일까? 3000만? 4000만?
생각해보니 방사능 오염구역이 돌아다니고 있다.
거기에 노출되는 순간 사람들은 죽는다.
집에서 버틴다고 평생 안전할 거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백현이 방사능 오염구역을 미니맵을 통해 확인했다.
“……젠장.”
대형마트 내 살아있는 사람은 제로.
모두가 운명을 달리했다.
허무했다.
위험하다고 더 많이 알렸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이 도망갔을까? 대형마트에선 다 빠져나갔겠지?
죽은 사람은 미니맵에 표시되지 않는다. 그러니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거 하난 확실.
대형마트에 살아남은 사람은 없다.
“아저씨, 마트에 있던 사람들 다 죽었어요.”
“뭐?”
“방사능 오염구역……. 시간이 지났잖아요.”
“아…….”
오염지역이 될 거라는 경고 메시지를 받았던 김만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진짜였구나…….’
그리고 생각했다.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다고.
“이제 조심하자. 지금부터 아무거나 먹을 수는 없어.”
“네?”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일 수 있으니까, 일단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먹을 것부터 확보하자. 군장을 싸듯 이제 먹는 것도 가지고 다녀야 할 거야.”
“네.”
어른으로서 리더 역할을 자청하는 김만철.
강백현은 안심했다.
그의 생존 지식. 별거 아닌 말이지만 도움이 된다.
세 사람은 다시 일어나서 초등학교 담벼락 옆 인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변에 사람이 코빼기도 보이질 않네. 도로에는 사람이 없니?”
“네. 미니맵 상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아요. ……어?”
“왜?”
“뭔가 이쪽으로 빠른 속도로 다가와요.”
“뭐? 뭔데!”
“잠시만요. 하나, 둘…… 총 여섯 개. 그게 뭐냐면요!”
그때 갑자기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왈왈! 왈왈!”
개 울음소리.
커다란 세퍼드, 비글부터 작은 시츄까지 목줄이 있는 개들이 집단으로 이동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다.
그걸 보며 김만철이 강백현과 김아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틈으로 숨어! 개 주둥아리가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빨리!”
그가 데려간 곳은 초등학교 입구 경비실.
경비실 아래 좁은 틈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장 들어가! 다들 들어가!”
김만철이 문 밑 좁은 틈을 기어서 들어가고, 강백현이 포복자세로 그 밑을 통과한다.
그런데 김아람은 여유만만이다.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개들을 쳐다보고 있다.
“아람아! 뭐해!”
김아람은 오히려 개들의 방문을 반겼다.
그리고 웃었다.
개들은 사람 냄새를 잘 맡았다. 그리고 알았다.
다른 생물에 비해 털이 적고 부드러우며 지방이 많아 맛있다고.
이제 인간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개들의 세상.
개들의 우두머리 세퍼드가 울음소리로 지시했다.
저 작은 생물체를 먹자고.
우두머리의 말에 개들이 흥분한 채,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개과 동물의 특징.
우두머리에 대한 복종.
개들이 김아람의 냄새에 반응, 컹컹거리며 경비실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고, 김아람도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양손을 위로 치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