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생각의 차이
김아람의 말에 구청장이 생각했다.
‘저 여자는 무조건 내 곁에 둬야 해. 사람을 들어 올리고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 언젠가는 나한테 큰 힘이 될 거야. 설득해야 해!’
그래서일까, 염력으로 들어올려진 굴욕도 잊은 채, 언변을 늘어놓았다.
“아가씨! 지금 서울이 어떤 상황인지 똑바로 인지하고 하는 소리야? 지금은 당신들이 집에 가는 것보다 내가 구청까지 가는 게 수백 배는 더 중요해! 구청에는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을 거야. 그 곳에 있는 수백 명의 공무원들이 내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겠지. 서초구민이 몇 명인지 알아? 무려 100만 명이라고! 그런데 그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를 구청까지 데려가야겠다는 생각 안 들어? 가족을 만나러 가겠다고? 지금 제 정신이야?”
그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나이 어린 20살이라도, 이제 막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무지한 것은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그의 웅변에서 허점이 보였다.
대한민국의 공무원은 대리근무 체계가 명확히 정해져 있다.
학교에서도 담임 선생님이 아프면, 부담임이 나와서 대신 출석을 부르고 조회를 한다. 그런데 구청장을 대신할 사람이 없을까?
“이미 대리 근무자 체계에 의해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요? 구조에 관련된 계획이 있다면 구청장님이 없어도 저절로 움직여질 겁니다. 아닌가요?”
백현의 말에 구청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 자식은 뭐야?!’
그러나 강백현은 대답 없는 구청장 대신 조대훈 실장에게 물었다.
“조 실장님! 대답해주세요. 대리자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대훈 실장이 강백현의 말에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으니까.
구청장이 없는 자리는 부구청장이 대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안전통제실장이 하고 있을 테고.
구청장이 도착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이미 구조는 시작되었을 거란 이야기.
“역시 대리자가 있는 거죠?”
다시 한 번 묻는 백현에게 조 실장이 입을 열었다.
“네 말이…….”
그런데 입은 움직이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구청장의 능력은 침묵.
강백현이 조 실장을 불렀다.
“실장님?! 설마…… 구청장님이 능력을 사용한…….”
그러나 강백현의 목소리도 이내 나오지 않고.
김만철이 그 상황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백현에게 물었다.
“또 말하는 거 능력으로 막았냐?”
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스처로 대답했다.
구청장은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막았다.
김아람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된다.
같이 있으면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는 그녀를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거기 아가씨! 구청까지만 같이 가주면 다 해줄게! 가족, 친척 다 구해줄게. 원하는 거 다 들어줄 테니까 이리 와!”
하지만 김만철이 움직인다.
순식간에 달려간다.
신체강화 능력.
그는 이미 초인이었다.
인간의 이동속도 시속 0.4km. 하지만 그의 이동속도는 시속 2km.
남들보다 5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김만철이 생각했다.
‘역시 신체 강화 Lv2는 달라.’
지금도 증폭 능력에 의해 강화된 그의 신체.
다가오는 그를 막기 위해 텔레포트 능력자 조대훈이 막아섰다.
그는 자신의 몸만 텔레포트 시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인간의 신발이 갑자기 공중에 소환되어 낙하한다.
하지만 김만철도 정상은 아니었다.
재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피해낸 김만철이 순식간에 구청장에게 달라붙는다.
조대훈이 구청장과 함께 ATM기 위쪽으로 텔레포트를 시도했다.
숨을 헐떡이는 조대훈.
그런데 구청장이 그에게 지시를 한다.
“여자애, 납치해.”
“…….”
“기절시켜서라도 당장 내 옆으로 데려와.”
“…….”
말이 안 나오는 조대훈. 구청장의 명령에 따른다.
구청장을 안전한 장소로 데려놓은 조 실장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고는 김아람 곁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곁에 접근할 수 없었다.
텔레포트로 이동하려던 장소는 그녀의 바로 앞.
그녀의 복부를 주먹으로 쳐서 기절시키려던 게 조대훈의 목적.
그런데 그가 생각했던 자리에서 30cm나 떨어진 장소에 자신의 몸이 공간이동된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다시 한 번 텔레포트를 시도. 하지만 접근할 수 없다.
쾅! 쾅!
강백현은 웃었다.
텔레포트 능력, 분명 뛰어난 능력이지만 보호막의 안으로는 들어올 순 없다.
‘미나야. 그래서 보호막이었니?’
강백현이 자신의 동생과 대화했던 내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 *
정신과에서 정기 치료를 받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미나에게 강백현이 물었다.
“미나야! 왕자는 왜 공격능력이 없어?”
그러자 강미나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킥킥, 오빠는 백성을 지키는 왕이 될 거야.”
“왕?”
“응. 오빠는 백성을 지켜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능력?”
“응. 사람들은 다 능력을 가질 수 있어. 변신 능력도 있고, 조종 능력도 있고, 투명화 능력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도 있어.”
“그럼 왕자는 어떤 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백성을 지킬 수 있는 능력, 사람을 죽이는 나쁜 사람들로부터 백성을 지킬 수 있는 보호막 같은 능력.”
“보호막?”
“응. 보호막은 최강이야. 곤충으로부터도 백성을 지킬 수 있고, 동물로부터도 사람을 보호할 수 있고, 텔레파시, 인간 조종 능력, 화염, 물, 얼음, 번개 능력으로부터도 친구와 동료들을 구할 수 있어.”
“공주는? 공주는 무슨 능력이 있는 건데?”
“킥킥, 그건 소설 속에 안 넣을 거야. 오빠한테 벌써부터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뭐야?! 오빠는 네 스토리 봐주고 있는데, 알려주면 안 돼?”
“킥킥, 안 돼. 오빠한테 말하면 나 혼나. 그래서 비밀!”
그때 김미연 간호사가 보호자인 강백현을 불렀다.
“강미나 보호자 분, 진료결과 나왔습니다. 잠시 들어오실래요?”
* * *
다시 현재.
강백현이 생각했다.
‘미나야. 네 말이 맞았어. 보호막은 최강이야. 남들을 지킬 수 있는 최강의 능력이야.’
보호막 레벨 2.
아직 증폭 효과가 풀리지 않았다.
보호막의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거리도 늘어났다.
윤수 엄마의 능력으로 올라간 레벨 2를 이제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강백현.이번에는 조대훈에게 다가가며 말한다.
다행히 목소리가 나왔다. 침묵 능력이 풀린 것이다.
“아저씨, 다 끝났습니다.”
“뭐?”
“아저씨는 이미 저한테 붙잡혀 계세요.”
조대훈은 그때서야 눈치챘다.
자신의 주변에 강백현의 보호막이 펼쳐져 있단 사실을.
텔레포트로 보호막 바깥으로 빠져나가려 하지만, 미지의 힘이 가로막는다.
“보호막 안에서는 텔레포트를 하실 수 없으세요. 바깥에서 안쪽으로도 마찬가지고요. 이제 아저씨가 하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힘의 차이. 텔레포트 능력을 막는 보호막.
그런데 김아람이 고개를 찡그린다. 조대훈의 목덜미를 잡으려던 그녀의 능력도 보호막 안에 갇힌 상태에서는 무효화되는 것이다.
‘뭐야? 내 능력도 막히는 거야?’
김아람의 염력을 무효화 시킨 강백현.
염력을 이기는 보호막.
텔레포트를 이기는 보호막.
그걸 보며 김만철 또한 생각했다.
‘백현아, 너는 항상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내가 나서지 않아도 혼자 처리할 수 있었던 거니?’
백현의 손동작에 의해 보호막의 범위가 서서히 줄어든다.
조대훈의 이동을 막던 반투명막이 그의 활동 범위까지 줄이기 시작한다.
『쾅! 쾅!』
조대훈이 보호막 내부에서 탈출하기 위해 보호막 내벽을 두드렸다.
하지만 발버둥 쳐도 보호막은 부술 수 없다.
범위가 좁아지면 강도는 더 강해지니까.
“조 실장님, 말씀하시죠. 이제 더 이상 구청장님에게 조력하지 않겠다고요!”
“…….”
“구청장님이 구청에 가신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수백 명의 공무원들에게 혼란을 가져올 겁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강백현의 말에 조대훈의 신념이 무너져간다.
이미 구청장의 무모한 판단 때문에 비둘기 서식지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내린 납치 명령.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지시가 아니었는데……. 이제야 옳고 그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좋습니다. 그럼 구청장으로부터 떠나십시오. 구청장님한테 얽매여 있지 말고 자신의 살길을 찾으세요. 지금이라도 자신의 가족을 찾으세요!”
강백현의 말에 조대훈이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다.
생사가 불분명한 가족. 살아는 있을까?
그때 김만철이 조대훈에게 말했다.
“아내하고 딸이 있었다고 했나?”
“네.”
“이름하고 주소 알려줘 봐요.”
“네?”
“우리 백현이는 생존 여부를 알 수 있으니까, 알아봐 줄 거야.”
생존 여부를 알려준다는 청년의 능력.
“최수연 그리고 조하나, 서래마을 인근 아이파크빌 103동 1305호입니다.”
그의 말에 강백현이 미니맵을 뒤지기 시작한다.
아이파크빌 103동이 보인다.
그곳을 확대하니 수많은 생존자들이 보인다.
손을 돌려 미니맵을 평면도에서 입체도로 바꿨다.
그러자 13층이 보인다.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리고 알아냈다.
“최수연, 조하나 둘 다 생존해 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도 같이 있는 것 같아요.”
강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신기한 듯 물었다.
“강아지?”
“네. 종까지는 나오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모양이 강아지예요. 이름은 뽀띠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반려견인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조대훈 실장이 눈물을 흘렸다.
뽀띠, 자신의 집에서 키우던 반려견의 이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최수연과 조하나, 자신의 아내와 딸의 이름이 맞다.
“집에 둘 다 있는 건가?”
“네. 단 반려견하고는 다른 방에 있는 것 같네요. 빨리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무리한 요구만 하는 구청장과 자신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강백현과 김만철 일행.
그가 이제 누구 편을 들지는 자명한 터.
“고맙다.”
“아닙니다. 이제 저희는 가족을 찾으러 갈 겁니다. 아저씨도 구청장님 따라서 구청으로 가는 것보다는, 가족을 찾으러 가시는 게 좋으실 것 같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하마.”
“감사합니다. 그럼 구청장님과는 저희가 대화로 해결하겠습니다.”
“그래. 난 여기서 이만 빠지도록 할게.”
“네. 알겠습니다.”
강백현이 조대훈 주변의 보호막을 풀었다.
그러자 그가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자신이 모시던 구청장을 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구청장님, 더 이상 구청장님을 따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뭐야?! 야! 조 실장! 조 실장!”
“죄송합니다. 전 아내와 딸을 만나러 갑니다. 그럼 다음에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야! 야! 조 실장! 야! 이 새끼야!”
아무리 외쳐봐도 이제 조대훈의 마음은 돌릴 수 없다.
그가 텔레포트를 하더니 강백현의 곁에 접근한 후 감사의 인사를 돌린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미안하단 말 하지 마시고, 빨리 가족 만나러 가보세요.”
“그래. 아가씨한테도 미안하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래. 가보지. 김만철 씨!”
“응?”
“나중에 은혜 꼭 갚겠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알았어. 나중엔 형, 동생으로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대훈이 텔레포트로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아마 건물 밖으로 나갔을 터.
강백현이 떠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저 아저씨는 왠지 또 만날 것 같아. 그런 기분이 들어.’
그리고 김만철 또한 떠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을까?’
한편 김아람은 조대훈이 떠나자, 구청장을 노려보며 큰 소리를 질렀다.
“구청장 아저씨! 혼 좀 나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