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구청장의 계략
김환석 구청장의 말에 조대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구청장님이 변하셨어. 아니, 변한 게 아니라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따뜻하고 인자했던 그 행동들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을 위해서였던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배신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
언제까지나 그를 따를 것이라는 게 조대훈 실장의 생각.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전개가 펼쳐지고 있다.
강백현이 보호막을 그물막처럼 펼쳤다.
그러자 개미들이 보호막에 막힌 채 접근조차 못한다.
그 다음은 염력능력자 김아람의 활약이었다.
그녀는 그물 형태의 보호막에 막힌 개미들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더니, 접근하는 다른 개미한테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김아람의 염력 Lv1.
까마귀는 죽이지 못해도 개미는 달랐다.
처음에는 집어던지기만 하던 김아람도 요령을 알게 되었다.
잘록한 허리만 툭! 툭!
부분에만 염력을 사용해 부러트리는 효율적인 전투.
그러다보니 개미들은 자신들이 왜 죽는지조차 모른 채 운명을 달리하고 만다.
허리를 기점으로 따로 노는 몸통과 머리.
그들의 강력한 턱도 몸통의 아랫부분 없이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상태.
김만철이라고 놀고 있던 건 아니었다.
『하압!』
기합 소리와 함께 내지른 주먹.
개미를 한 방에 30cm는 날려 보내는 강력한 힘.
그는 알았다. 자신이 수백 마리의 개미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졌단 사실을.
신체 강화 능력은 단순히 힘만 세진 것도 아니다.
턱에 물린 팔.
그런데 따끔할 뿐, 쉽게 잘리진 않는다.
‘버틸 만하잖아?’
사실 고양이의 발톱과도 부딪힌 적이 있는 주먹이었다.
그때도 고양이를 몰아낸 적이 있었다.
개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가 개미 한 마리를 처치할 때마다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열다섯! 열일곱! 하하하! 어떠냐? 백현아, 이 형이 너희들 다 지켜줄게!”
싸움이 길어지자, 개미집 입구에서 수많은 개미들이 집을 지키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한다.
어림짐작으로 숫자를 세도 거의 수백.
그럼에도 용기를 잃지 않는 김만철.
“크크크, 오늘 좀 힘들겠는걸? 스물하나! 스물셋!”
그런데 강백현은 김만철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아람이만을 향해 있을 뿐.
“아람아……. 괜찮아?”
“안 괜찮아! 그래도 해야지. 어떻게 해! 아아아아윽!”
“김아람…….”
그녀의 염력으로 보도블록 하나가 공중으로 떠오른다.
엄청난 크기.
거의 비행선 하나를 들어올린 것과 같은 힘.
김아람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양손을 공중으로 올린 채, 보도블록 하나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더니 장풍을 쏘듯 앞으로 던지는 동작을 하는 그녀.
그러자 정사각형의 보도블록이 쾅! 소리와 함께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있는 방향으로 던져졌다.
빌딩이 무너지며 자동차와 도로를 쓸어버리듯, 보도블록 아래 깔린 개미들을 전부 죽여버린 그녀가 축 늘어진 채 말했다.
“몇 마리나 죽였을까?”
“수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 것 같은데……. 세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충격에 할 말을 잃은 김만철.
“서른……하……나…….”
모처럼만에 인정받을 기회였는데…….
그때 강백현이 큰 목소리로 김만철을 불렀다.
“아저씨!”
김만철은 생각했다.
강백현이 자신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그래서 말했다.
“어! 봤냐? 내가 몇 마리 잡았는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람이가 피곤해하는 것 같으니까, 남은 개미 좀 처리하면서 저쪽 건물 쪽으로 와 주세요. 저희는 먼저 전투에서 빠질게요.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건물 방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
김만철은 그 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 무시당한 거야?”
* * *
김만철은 홀로 남아 개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서른넷! 서른다섯! 서른아홉!”
쓸쓸한 기분.
열심히 몸을 움직여가며 꼬마 녀석들을 지켜줬는데 돌아오는 것은 냉대뿐.
그리고 그 옆에 놓여 있는 소형 아파트만 한 보도블록.
‘와, 무슨 여자애가 저런 걸 던져? 그냥 던지라고 해도 못 던지겠다.’
그만큼 아람이의 능력은 압도적.
쓰레기통 위. 김만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두 남자가 있다.
“구청장님……. 보셨습니까?”
“믿기지가 않네. 쟤네들만 있었으면 우리는 한 명도 안 죽을 수 있었잖아.”
“맞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 보도블록을 던진 여자는 정말 물건인 것 같습니다.”
“저 친구들만 있었어도 이런 꼴은 안 당하는 건데……”
김환석 구청장이 자신의 팔에 난 자상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다친 팔을 지금 당장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
그가 쓰레기통 밑에 있는 김만철을 부른다.
“어이!”
“아~ 구청장님, 거기 계셨습니까?”
“기다리게. 같이 갔으면 좋겠네.”
“네. 내려오시지요.”
김만철의 말에 텔레포트 능력자 조대훈이 양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낸 후,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능력을 사용했다.
건물 안.
다른 곳은 어두운데 이곳만은 환하다.
그 이유는 은행 자동화기기 지점이기 때문에.
수동으로 전원을 켜는 다른 상가와는 다르게, 이곳은 무인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오후 6시만 되면 저절로 전원이 켜진다. 그래서 환하다.
김아람은 창피함을 뒤로하고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강백현 또한 김아람의 옆에서 같은 자세로 벽에 기댔다.
“피곤하지?”
“어. 갈증 나서 죽을 것 같아.”
“크크, 나도 마찬가지야. 가다가 편의점 있으면 한 번 더 털자.”
“킥킥, 응.”
“근데 아람아.”
“응?”
“너 힘 진짜 세더라! 보도블록 그거 성인 남자 혼자 들기도 무거운 건데…… 엄청 쉽게 던지던데?”
“쉬워보였다고? 나 그거 공중으로 들어올리다가 놓치는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우리 머리 위에 그거 떨어졌어봐. 우리 다 죽었어.”
“들어 올릴지 못 들어 올릴지도 모르고 그냥 시도해 본 거야?”
“어. 개미들이 우리 앞길 막는 거, 짜증나잖아.”
“너도 참 대단하다.”
“후훗, 그걸 이제 알았니?”
아람이가 웃었다.
강백현은 그녀의 웃음에 같이 웃어주었다.
아버지를 잃은 아람이는 고통스런 기억을 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기를 원했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의 힘을 정확히 깨닫게 되었다.
염력, 모든 것을 초월하는 최강의 힘.
그 어떤 능력도 그녀를 이길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지금으로서는 최강.
약점이라면…… 지속력.
새근새근 들려오는 숨소리.
순식간에 고갈되는 체력.
능력의 강함은 체력의 소모와 비례하는 걸까?
치료 능력도 그랬고, 미래 예지 능력도 그랬다. 보호막 능력도 그랬고, 텔레포트 능력도 그랬고, 염력도 그랬다.
반면 신체강화, 침묵, 증폭 등은 그렇지 않았다.
왜? 정말? 강함과 체력 소모는 연관이 있는 건가?
그때, 세 남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김만철이 피식 웃으며 강백현에게 말했다.
“둘이 꼭 달라붙어서 뭐하냐? 연애하냐?”
“에이, 무슨 연애에요? 아람이가 피곤해서 잠들었어요. 저도 피곤해서 벽에 기대고 있고요.”
“나는?”
“아저씨야 원래 능력 오래 써도 괜찮으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말 하긴 했지만, 너희 둘은 너무 편해 보이는 거 아니야? 벽에 딱 기대가지고 잠자고 있고, 여기 어르신들은…….”
그때, 구청장이 말했다.
“그만하시죠. 저 여성분은 개미 무리를 혼자 무찔렀어요. 충분히 쉬어도 됩니다. 안 그래, 조 실장?”
“네. 맞습니다. 구청장님.”
2시간의 휴식을 가지기로 했다. 고갈된 체력을 회복하는 시간.
인간이 체력을 회복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2가지가 있다.
첫 번째, 먹고 휴식을 취하거나 자거나.
그리고 남들이 모르는 두 번째 방법.
윤수처럼 치료 능력자를 만나거나.
그러나 그런 게 없으니 지금은 자는 게 최선이다.
김만철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 당장 여기에서 위험할 건 없겠지만,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망을 보는 건 어떨까요?”
김만철의 말에 방긋 웃는 조대훈 실장.
“군대 불침번 느낌으로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겠죠? 이런 거 보면 생존 관련해서는 군대가 참 효율적이긴 해요.”
“그러라고 만든 조직이니까요.”
위험한 바깥 공간에 비해 안쪽은 괜찮았다.
쌀쌀한 외부 공기가 건물에 의해 차단되기도 했고, 매일매일 청소하는 깨끗한 바닥 덕분에 먼지도 거의 없었다.
바닥에 어질러져 있는 것은 인간이 입던 드레스, 팬티, 구두, 양말.
분명 ATM기를 사용하던 사람이 입었던 옷.
그러나 그 사람은 이미 이곳을 빠져나간 것 같다.
지금은 괜찮지만 이곳의 환경은 곧 바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쌓이고, 분진이 가라앉고 전기가 끊김과 동시에 언젠가는 폐허처럼 변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일, 미래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재 살아있다는 게 중요했다.
김만철은 잠을 자는 백현과 아람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어린 친구들의 활약.
자신은 어느새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왜일까?
언제부터였을까?
만난 건 오늘인데 마치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지낸 동생들 같이 느껴진다.
조금만 고민해보니까 알았다.
같이 싸운 동료.
군대의 전우와 같은 느낌.
2년 2개월의 복무를 마친 36세 김만철.
자신의 인생에서 1/10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기억만은 절대적.
자신이 군대에 있었던 2002년 월드컵 기간, 서해대전이 발발했을 땐,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줄 알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그때의 긴박함보다는 현재가 더 지옥이지만, 당시 막내 이등병이었을 때의 감정을 생각해보고 예비역을 넘어 민방위 신분으로 전환된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면, 저 둘은 자신이 지켜줘야 할 사람.
스르륵.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졸음이 밀려온다.
“대훈 씨, 먼저 좀 자도 될까요?”
“네. 그러시죠.”
조금 마음은 놓아도 될 것 같다. 지금은 안전하니까.
* * *
그냥 눈만 감았다 떴을 뿐인데 한 여성이 반갑게 그를 맞이하고 있다.
“아저씨, 일어났어요?”
“어? 언제부터 일어났어?”
어느새 불침번은 김아람이 대신 서고 있다.
“조금 전이요. 그런데 시간을 모르니까 진짜 불편하네요. 새벽 2시 즈음 되었으려나요?”
김만철이 김아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시간을 모르지?’
어림짐작으로 때려 맞출 수밖에 없는 시간.
그게 아니면 전광판을 봐야 하는데, 그건 또 밖에 나가야 하는 거니…….
그런데 5명이어야 될 일행인데 한 명이 없다.
“조대훈 씨는?”
“망보러 가신다고 나가셨어요. 구청까지 가는 길에 위험한 거 없나 보러 가신다고……. 아마 건물 옥상에 계시지 않을까요? 텔레포트 능력자시니까요.”
그녀의 말에 김만철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백현이한테 물어보기만 하면 되는데…….
고집불통들.
아무튼 어차피 저들과는 이제 가는 길이 다르다. 그들 인생은 그들 인생.
지금은 재현아파트 가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그때, 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던 백현이가 눈을 떴다.
“어? 일어나 계셨어요?”
“방금 일어났다.”
“아…….”
“가자. 여기 있어봐야 시간만 끌 뿐이야.”
“네. 잠시만요.”
백현이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이곳저곳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만철은 방긋 웃었다.
그가 뭘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다행이에요! 병현 초등학교 앞쪽 인도길로 가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
“네.”
“바로 출발할까?”
“구청장님은요?”
“일단 말씀은 드려야지. 우리 떠난다고.”
“네.”
김만철이 구청장을 흔들어 깨웠다.
김환석이 김만철의 행동에 눈을 뜨며 말했다.
“뭐하는 거죠? 제 차례인가요?”
“아……. 구청장님, 저희 갑니다.”
“어디로요?”
“재현 아파트로 갈 생각입니다. 지금부터는 목적지가 다르니까 이만 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자다 일어난 김환석은 김만철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네?”
“여기서 인생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도 나고, 따르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도 나야. 자네는 나하고 일해 보진 않았지만, 알고 있을 거야. 나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의지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내가 구청으로 돌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지. 조 실장 돌아오면 같이 구청으로 가도록 해. 구청까지만 가면 자네들이 대현 아파튼가 재현 아파튼가 가는 거 말리지 않을 테니.”
황당했다.
당황스러웠다.
물론 그가 구청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알겠다.
일하던 공무원이 아직도 있을 터이고, 그들은 분명 구청장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은 일반 시민이다.
구청장이 자신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는 것이다.
그때 돌아오는 조대훈 실장.
“구청으로 가는 길 확보했습니다. 시민들 운동하는 둘레길 통해서 가시면, 매연이나 소화전 위험 없이 이동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잘했어. 다들 뭐해? 출발하지!”
언제부턴가 반말로 지휘하는 구청장.
그의 의도는 뻔했다.
이용가치가 있는 세 사람.
그들을 이끌고 방패막이 삼아 구청까지 안전하게 이동한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으아아아악! 이거 안 놔?”
공중으로 떠오르는 구청장의 신체.
김아람의 분노.
“아저씨가 뭔데 우리보고 따라오라 마라 그래요?”
평소라면 말렸을 강백현.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동생의 목숨이 달려있다. 아람이의 어머니도 살아계시다. 한시라도 빨리 가서 합류하는 게 중요했다.
아람이는 구청장의 몸을 옥죄였다.
이 정도는 아람이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절대적인 능력.
지금 그녀는 가히 무적.
“켁켁! 놓고 이야기해!”
그때 아람이를 막기 위해 강제로 접근하는 텔레포트 능력자 조대훈.
그러나 그것도 아람이는 간단하게 대처했다.
한 손으로는 목을 쥐는 동작을 하며 구청장을 붙잡고, 한손으로는 텔레포트 능력자를 쳐내는 동작을 하자,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조대훈의 몸이 수 미터나 날아간다.
조대훈은 공중으로 날아간 몸을 제어하기 위해 텔레포트를 하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압도적인 힘에 충격을 받았는지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김아람이 두 사람을 풀어주며 말했다.
“구청장 아저씨! 내가 왜 아저씨 말을 들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