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낮과 밤의 차이
서울의 밤하늘은 유난히 밝았다.
가로등 사이로 드러나는 거리의 모습.
골목이라고 해서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다만 야맹증을 앓고 있는 아람에게는 달랐다.
전신주, 가로등으로 밝혀지지 않은 곳은 그녀에게 칠흑과도 같다.
“백현아, 천천히 가. 나 아무것도 안 보여.”
“뭐? 이게 안 보인다고?”
“나 야맹증이야. 무섭단 말이야…….”
그녀가 갑자기 백현의 손을 잡으며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편의점에서 김만철 아저씨한테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
강백현은 아람이의 180도 다른 면모를 보며 생각했다.
가끔은 귀여운 구석도 있다고.
그동안 못 봤던 모습.
하긴 지금 자신의 모습도 평소와는 다르다.
목숨이 달려서일까?
아람이에게 들은 정보로는 아직 세상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백현에게도 짐작 가는 바는 있다.
만약 『작은 세상의 공주님이 살아남는 방법』이란 소설대로 이루어진다면?
『동생의 소설 속 내용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사람들이 서로 죽여야 한다면?』
『과연 내가 같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아람이와 자신은 그런 성격이 안 된다.
자신이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고?
만약 그걸로 내가 죽는다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면?
아, 신경 쓰지 말자.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까.
덜덜 떠는 아람이의 손을 꼭 잡은 백현이 그녀를 달랬다.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응. 알았어. 그런데 강백현!”
“어?”
“미나는 요즘 괜찮아? 너 그것 때문에 학교 그만 뒀잖아.”
백현은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다. 방금 전 이미 결정은 했다.
이 비밀 끝까지 지킬 거라고.
이 내용은 절대 동생이 쓴 소설 속 내용이 아니라고.
나만 입 다물면 다른 사람은 알 리가 없을 테니까.
“응. 많이 좋아졌어.”
“다행이다. 지금은 집에 있는 거지?”
“응. 그럴 거야.”
덜덜 떠는 아람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 솔직히 엄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빠 돌아가신 거 말하면 믿어줄까? 어떻게 반응하실까? 난 어떻게 해야 돼?”
그녀의 질문에 강백현이 자신의 생각을 빗대 그녀에게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너희 어머니 만나는 것만 생각해. 그럼 돼.”
자신 또한 여동생을 만나면 그럴 것이다. 그냥 옆에 있어줄 것이다.
그거 하나면 된다. 그녀를 탓하거나, 원망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래야겠지. 근데 강백현!”
“응?”
“너 변했어. 사람이 진지해졌어. 다른 사람 같아.”
김아람의 말에 강백현이 생각했다.
‘맞아. 난 소설 속 주인공이니까. 주인공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니까!’
“일단은 집에 가는 것만 생각하자.”
그녀의 말에 뭐든지 진지하게 반응하는 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씩 웃었다.
아직 20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애들이 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언제라도 위험할 수 있는 순간이 지금이다.
저 앞에 가로등이 보였다.
환하게 비추는 주황빛 촉광.
그 아래는 수천 마리의 벌레들이 따가운 불빛을 향해 스스로를 산화하고 있다.
이름 모를 나방, 곤충 등이 요란하게 비행한다.
그런데 반대쪽 가로등에는 의외로 곤충이 없다.
그 불빛은 주황빛과 다르게 밝은 흰색.
“저기엔 벌레가 없어. 왜지?”
백현의 질문에 아람이가 웃으며 말했다.
“저쪽은 LED 조명이잖아.”
“LED?”
“응. LED조명은 백열이나 형광등 불빛과 달리 발열량이 적어. 그것뿐만이 아니야. 자외선 방출도 거의 없어. 그래서 벌레들이 덜 모여. 백열등이나 형광등이 전기의 5~50%만 빛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열로 소비하는 반면에, LED는 전기의 90%를 빛으로 바꿔주기 때문에 열을 거의 발산하지 않거든.”
아람이의 말에 강백현이 씩 웃었다.
역시 전기공학과. 아직 1학년임에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럼 LED 조명 쪽으로만 이동하는 편이 안전하겠다. 벌레가 적을 테니까.”
“야간에는 그렇겠지?”
서로 상의하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사각사각.
벌레들의 울음소리는 제각각.
밤이 되니, 이상한 벌레들이 많이 보였다.
도심지인데도 불구하고 진짜 많았다.
주황불빛 밑에는 하루살이, 빨간집모기, 청동풍뎅이, 저녁나방, 나무결나방 등 수많은 벌레들이 따뜻한 열기와 빛에 반응하며 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것은 역시 하루살이.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다음으로 많은 모기. 그것도 빨간집모기.
체격이 컸을 때 가장 귀찮았던 모기가 다행히 자신들에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몸이 작아져서일까?
아니면 호흡량이 적어서일까?
그때 김만철이 웃으며 말했다.
“모기는 포유류가 호흡하며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추적할 수 있대.”
“불행 중 다행이네요.”
“뭐가?”
“저희 체격이 작은 거요. 작으니까 이산화탄소를 적게 내뿜는 거잖아요.”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니?”
애당초 작아지지 않았으면 무서워할 필요도 없었던 곤충들.
그러나 지금은 뭐든 무섭다.
터벅터벅.
시멘트 길을 걷던 세 사람.
그들이 가는 길 사이사이에는 자신의 몸 크기만 한 바위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피해 가면 되니까.
그런데 저 앞 시멘트 길이 끝나고 나서가 문제다.
“도로를 지나가야 할 것 같은데?”
“네. 이 길만 지나면 아까 일행이 지나간 길일 거예요. 합류하면 안전해지겠죠.”
“그게 문제가 아니고, 아스팔트가 문제야.”
“아스팔트가 왜요?”
시멘트 길이 끝난 뒤, 문제의 아스팔트 도로가 드러난다.
아스팔트는 시멘트로 깔린 평평한 길과는 거리가 멀었다.
숭숭 뚫린 구멍은 마치 해안가 방파제의 테트라포트를 걷는 것과 같았다.
작아지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작아져보니 알겠다.
아스팔트 깔린 도로가 작은 동물이나 곤충들에게는 얼마나 위험천만한 구역이었는지…….
아스팔트는 뜨거운 기름의 찌꺼기와 자갈, 모래를 섞어 만든 것.
그래서 태생부터 틈이 아주 많다.
발을 디딜 때마다 모난 모서리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휘발성 기름의 냄새가 진동해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세 사람에겐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백현은 고민했다.
도로를 통과해야 한다.
루트는 2개.
육교를 이용하든가,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그대로 횡단하든가. 둘 중 하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육교를 통하면 또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
아스팔트는 냄새가 심할지언정 목숨이 위험한 건 아니다.
아까 비둘기 서식지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건너가죠.”
“그래.”
“응.”
세 명이 합심해서 건너기 시작했다.
거리는 약 40m.
체감 거리는 2km.
그래도 건너야 한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으므로 건너고 또 건넌다.
신호등이 요란하게 울렸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함에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바뀌는 신호등이 차량의 운행에 관계없이 반짝거린다.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어떤 거요?”
“아직 전기가 들어와 있다는 거.”
“……그렇네요.”
“누군가는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겠지. 작아진 몸으로라도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아직도 신호등이 제 역할을 하는 거잖아.”
“하긴, 구청장님도 상황실로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구청이나 시청, 주민센터에는 공무원들이 비상상황실을 운영하며 사고를 처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라면, 작아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러면 정말 좋겠네요.”
김만철과 강백현이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작아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만철은 떠올렸다. 미래예지를 통해 본 거인을.
실루엣만 보였던 그 거인. 분명 너무 커서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사람의 형태였다.
그런데 앞에서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였다.
“으아아아악!”
“구청장님! 참으셔야 합니다.”
“아아아아아악!”
백현은 그 둘을 알아보았다.
김만철도 알아차렸다.
“구청장님?”
김만철의 말에 구청장 옆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김만철과 백현, 김아람 옆에 나타난다.
텔레포트 능력자.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부상당한 구청장을 가리켰다.
“혹시 치료나 회복 가능한 능력자 있습니까?”
* * *
서초구청장 김환석, 그는 차세대 대권주자를 꿈꾸고 있었다.
아직 젊은 나이 43. 구청장 다음은 화성시장, 그 다음은 경기도지사나 서울 시장을 거쳐 50대에 대통령의 자리를 꿈꾸는 남자.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인 외모, 목소리, 뛰어난 두뇌에다 남의 감정을 파악하는 눈치까지 갖춘 팔방미남이었다.
그래서 늘 사람이 따르는 편.
자신의 판단은 언제나 옳았고, 설사 그 길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길이었노라고 주변 사람에게 정당화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차례의 위기 속에서도 뛰어난 언변으로 자신은 올바르게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 바로 자신.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구청장님…… 괜찮으십니까?”
“응.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니야.”
팔에 보이는 자상.
비둘기의 발톱에 의해 난 상처.
단단히 동여맨 와이셔츠 때문일까?
다행히 지혈은 되고 있다.
생각해 보니 큰 상처는 아니었다.
그건 다 옆에 있는 조대훈 덕분.
텔레포트 능력자 조대훈이 없었다면 분명 자신도 운명을 달리했겠지.
어쨌든 자신은 살아남았다.
‘괜찮아, 죽은 놈들 생각하지 마. 지들이 멍청하고 능력 없어서 죽은 거잖아.’
김만철이 근처에 다가오며 구청장의 안위를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구청장이 큰 상처가 아닌 것을 알게 된 김만철이 텔레포트 능력자에게 물었다.
“그쪽 분은 괜찮으신가요?”
“헉헉헉. 조금만 쉬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능력과다 사용의 부작용.
심한 과호흡, 그리고 무기력한 증상.
“일단 여기는 휘발성 기름 냄새도 심하고, 먼지도 많아서 이동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도로를 건너면 건물들이 많으니 일단 그쪽으로 들어가서 쉬는 게 어떨까요. 걸으실 수 있으십니까?”
“네. 알겠습니다.”
아스팔트를 걷는 사람들.
구청장을 따르던 사람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백현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먼저 나서기가 그렇다.
침묵 능력에 당한 것도 있으니까 꺼림칙한 것이다.
그때 김아람이 백현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구청장님?”
“응. 서초구청장님이시래.”
“다행이다.”
“뭐가?”
“우리를 지켜주실 분이시잖아.”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럴까?’
미니맵만 볼 수 있다면 생사를 확인할 수 있을 텐데, 30분이란 제한 시간 때문에 뭐든지 걸린다.
걸어가는 길, 숨을 몰아쉬던 텔레포트 능력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기운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그런 그를 보며 김만철이 질문을 했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비둘기가 나타났어요.”
“……그랬군요. 생존자는…….”
“없습니다. 저랑 구청장님만 살아남으셨습니다.”
충격.
십여 명의 사람 중에 살아남은 것은 단둘이라니.
그것도 텔레포트 능력자인 조대훈이 아니었다면 구청장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백현은 구청장을 노려보았다.
‘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런 백현의 표정을 알아챘는지 구청장이 시선을 외면하며 조대훈에게 기대며 말했다.
“텔레포트로 인도까지만 가지.”
“죄송합니다. 더 이상 쓰는 건 무리인 것 같습니다.”
“왜?”
“몸이 이상합니다.”
김만철이 조대훈의 대답에 보충설명을 했다.
“능력에는 여러 가지 리스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신체 강화 능력으로 오랜 시간 능력을 지속해도 리스크가 거의 없습니다. 30분 이상을 유지해도 끄떡없죠. 반면 보호막 능력을 가진 백현이는 조금만 능력을 사용해도 금방 지치게 됩니다. 아마 텔레포트 능력을 가진 조대훈 씨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니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걸어서 가실 수 있는 곳까지는 같이 걸으시죠. 정 힘드시면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그의 정중한 말에 구청장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스팔트 끝 인도.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쫄랑쫄랑 따라오는 그림자.
흙냄새와 섞인 풀냄새.
백현은 후각만으로도 그게 무슨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개미?!”
인간은 밤눈이 어둡다.
특히 가로등의 밝은 불빛에 노출되었다가 어두운 구간에 들어섰을 때 그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약 30분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동공에 있는 간상세포의 역할.
하지만 인간에겐 오감이 있다.
소리와 냄새로 위험을 감지하는 백현.
그리고 그 다음은 김만철, 김아람이 차례대로 개미의 접근을 감지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개미가 한 마리가 아닌 것이다.
“젠장……. 개미 서식 구역에 침범했나 봐!”
일개미들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몸집.
병정개미.
다른 놈들은 몰라도 그놈들은 작아진 인간들과 맞먹는 크기.
딱 봐도 위험해보이는 녀석이 갈라진 턱을 가위처럼 맞물리며 위협하고 있다.
순식간에 접근하는 개미의 이동속도.
무섭기 짝이 없었다. 그걸 보며 가장 먼저 김환석 구청장이 외쳤다.
“조 실장! 조 실장!”
“네! 구청장님, 제 손을 잡으십시오!”
손을 잡더니 바로 사라지는 두 사람.
사라진 두 사람이 나타난 곳은 쓰레기통 위.
인도에 있을 때보다는 안전한 장소.
조대훈이 숨을 헐떡거리며 구청장에게 물었다.
“헉헉, 저 사람들 괜찮을까요?”
“괜찮겠냐? 바로 뒈지겠지. 내가 세상을 너무 얕봤어. 이제 곁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야. 자네처럼 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해.”
“구청장님……. 다 구청장님 지지자였습니다. 뒈진다니요.”
“내가 못할 말 했나? 자네도 겪어봐서 알지 않나? 쓸모없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았나! 능력 없는 놈들도 있었고, 있어봐야 연산 능력, 멀리 뛰기 능력, 시력 증가 능력……. 그런 게 무슨 필요가 있냐고! 지금은 능력 시대야. 나한테는 자네 같은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