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편의점
아람이가 뿌듯해하고 있다. 그 기분을 백현은 잘 알았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타입이니까. 남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그녀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까마귀의 등장에 겁먹은 게 사실.
그럼에도 느껴지는 희열감.
그 속마음이 두 사람에게 전해졌다.
“나 조금 놀랐나 봐. 내가 까마귀의 움직임을 멈췄어.”
솔직히 놀란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강백현도 김만철도 그녀의 센스와 압도적인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능력을 알게 된 지 고작 2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완벽하게 능력을 컨트롤한다.
그녀가 다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한다.
편의점 매대에서 빵 하나를 염력으로 집어든 후, 바닥에 떨어트린다.
김아람이 집어 든 것은 크림빵.
달덩이만한 크림빵이 바닥에 떨어지자, 김만철이 뛰어가서 봉지를 찢으려 한다.
생각보다 질긴 비닐.
김만철의 양손의 힘으로도 찢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양손의 너비가 짧아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
그걸 보며 강백현이 말했다.
“아저씨, 제가 한쪽 붙잡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가 반대방향으로 끌고 가요. 버텨볼게요.”
“그래. 서로 반대방향으로 당기자.”
벡터의 힘이 중앙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작용과 반작용의 힘이 서로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다.
부우우욱!
자재를 덮는 공사용 방수포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비닐 내부의 탐스러운 크림빵 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한다.
솔직히 일주일을 두고 먹어도 남을 만한 엄청난 양이었다.
편의점에서만 살아도 수백 명이 충분히 1년은 버티고도 남았다.
그들이 엄청난 빵을 조금조금 뜯어 먹기 시작했다.
달콤한 맛 조절은 크림을 살짝 묻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넘치고도 남을 정도로 크림의 양이 많았으니까.
지금 상황은 고전소설 헨젤과 그레텔 남매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과자로 된 집에 간 두 남매가 넘치고도 남을 빵과 과자 앞에서 행복해하는 모습.
땀 범벅으로 몸에서 썩은 내가 진동하는 두 사내가 먹는 것 앞에서 자제하지 못하고 우걱우걱 집어먹자, 김아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빵 안의 크림이 두 사람의 옷에 가득 묻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개의치 않고 먹고 또 먹었다.
솔직히 굶주림은 한참 전부터 계속되었다.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작아진 지 고작 5시간 만에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겪었는지 모른다.
그런 그들 앞에 크림빵은 그야말로 천국.
아람이가 자신의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백현아, 괜찮아? 천천히 먹어.”
“아, (우걱우걱), 응.”
“킥킥, 너한테 이런 모습 처음 봤어. 주변 좀 봐.”
빵가루하고 크림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아람이가 먹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헤집어놓은 상황.
그래서 사과했다.
“미안, 허기졌나 봐.”
“으……. 냄새. 아깐 몰랐는데, 완전 지저분한 것 같아.”
“정말 미안.”
백현의 말에 아람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하지 마. 잠깐만!”
아람이의 시선이 돌아간다. 그녀의 시야에 포착된 한 상품.
그건 무려 2L짜리 생수.
생수의 뚜껑이 그녀의 손짓에 의해 열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생수 뚜껑을 연 김아람이 씩 웃으며 백현에게 말했다.
“일단 냄새나니까 좀 씻을래?”
그러자 김만철 아저씨가 자신의 옷을 훌렁훌렁 벗는 동시에 웃으며 말했다.
“아람 씨도 같이 씻으시나요?”
“됐거든요? 아저씨 미쳤어요?”
김아람이 화를 내는 동시에 김만철의 몸이 공중으로 상승했고 곧 쿵! 하고 떨어지는 충격음이 들려왔다.
김만철의 몸은 단단했다.
신체강화능력 Lv1.
웬만한 타격에는 끄떡없다.
아람이는 자신도 모르게 능력을 쓴 게 미안했는지, 연신 사과를 했다.
김만철은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옷을 훌러덩 벗은 두 남자가 속옷만 입은 채로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생수를 이용해 샤워를 시작했다.
같이 목숨을 걸어 온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보며 씩 웃었다.
강백현은 탄탄한 김만철을 보며 ‘와, 부럽다.’라는 생각을 했고, 김만철은 바짝 마른 강백현의 몸을 보며 ‘왜 이렇게 비실비실 거리냐.’라며 고개를 저었다.
째깍째깍. 시간은 흐르고.
기다리다 지친 아람이가 뒤돌아보며 강백현에게 말했다.
“씻는 거 안 끝났어?”
“어? 아직. 왜? 무슨 문제 있어?”
그런데 김만철 아저씨가 요상한 동작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박박 긁고 있다.
“문제는 아니고……. 아~ 빨리 끝내!”
아람이가 짜증을 내면서 눈을 확 돌렸다.
부담스러운 몸매.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닦는 남자의 행동.
남들 앞에서 실례의 말을 내뱉은 아저씨 김만철의 발언 때문에, 그의 행동 하나 하나가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어낸다.
“아…… 아저씨, 거기는 좀 뒤돌아서 닦으시면 안 돼요?”
“왜? 내 몸매 부럽냐?”
“아니, 아람이가 부담스러워하잖아요!”
“뭐? 여기를 보고 있었어? 나를 왜 쳐다보는데?”
“잠깐 눈길이 갔나 보죠. 그리고 아저씨, 레이디 앞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어떻게 해요?”
“내 몸 좋은데…….”
“아저씨, 요즘 여자 분들은 그런 부담스러운 몸 안 좋아해요!”
단순히 큰 근육.
조각 같은 미남형보다는 단순히 실생활로 인해 단련된 큰 근육.
부담스럽기만 하다.
“…….”
그의 무응답에 강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현재는 서로 싸울 시간이 없다. 불필요한 오해는 털어내고, 각자의 갈 길을 가야 할 뿐.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강백현은 김만철의 향후가 궁금했다.
“아저씨는 집에 안 가요?”
“나? 가봐야 뭐해. 가족도 없는데.”
“애인이나, 친구 이런 것도 없어요?”
“친구도 있고 제자들도 있지만, 각자 잘 살겠지. 딱히 내가 신경 쓸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김만철은 자신의 제자들을 떠올렸다.
씨름과 유도를 배우며 인연을 맺은 동료, 제자들.
그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니까.
자신보다 머리도 빨리빨리 돌아가는 젊은 녀석들이었기에,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 강백현의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만철에게 전해졌다.
더 이상 아저씨한테 도움 받을 생각은 없었기에.
이 말을 내뱉었는지 모른다.
“아저씨, 이제 저 혼자 가도 돼요. 아저씨도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의 말에 김만철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미래를 보았다.
강백현이 죽는 모습을.
그래서 그 미래를 바꿔보고 싶었다.
그가 본 미래는 최복자 할머니의 능력. 미래예지 레벨1.
따라서 한 가지 루트만 보인다. 그건 자신의 죽음.
거인에 의해 강백현이 밟혀죽고 자신이 죽는다.
그를 따라가면 자신도 목숨이 위험하다.
그렇다고 해서, 따라가지 않는다고 위험하지 않다는 보장도 없다.
또 다른 미래는 보지 못했으니까.
적어도 그를 따라다닌다면 거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말이 되기도 하다.
그게 언제일까? 어느 순간일까?
지금 백현이와 헤어지는 방법도 있다.
그럼 미래는 변하겠지.
그가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죽을까?
벌레한테? 새한테? 쥐한테? 고양이한테?
모든 게 확실치 않다.
그렇다면 확실히 아는 미래로 정면돌파한다.
그게 만철의 생각.
“아니, 난 너 따라간다.”
“왜요?”
“그냥, 널 죽게 내버려둘 수 없으니까.”
“됐거든요?”
“크크크.”
혀를 차던 강백현이 컵에서 나와 휴지에 몸을 돌돌 말았다.
두루마기 휴지로 몸의 물기를 닦아내는 두 사람.
그 후, 샤샤샥! 재빠른 동작으로 옷을 입는다.
각자 다른 복장.
강백현은 그제야 떠올렸다.
지금 입은 옷이 자신이 가장 편하게 생각했던 복장이라는 것을.
흰색 면티, 검은색 면바지에 운동화.
옷을 다 입은 강백현이 아람이에게 말했다.
“아람아, 이제 뒤돌아봐도 돼.”
“다 씻었어?”
“어. 옷도 다 입었어.”
복장에 눈이 가니, 친구의 옷에도 저절로 시선이 간다.
김아람의 옷은 팔랑팔랑 거리는 중학생 교복.
한국보다는 일본 스타일에 가까운 세라복.
조금조금씩 의문이 풀려가는 세상.
작아졌을 때 처음 지급된 옷.
그건 받는 사람이 편하게 생각하는 복장이었을까?
차차 알아 가면 된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당장은 자신들의 가족을 찾는 게 우선.
강백현이 친구에게 말했다.
“출발할까?”
“응.”
김만철도 한참 어린 청년의 말에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출발하자.”
세 사람이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지금부터는 우측으로 돌아서 아파트 방향으로 직진하면 된다.
큰 길 없음. 차량도 거의 없음. 거기에 조류도 거의 없다.
그때 미니맵이 반짝이더니 소멸하기 시작했다.
윤수가 기껏 회복해준 30분의 제한시간이 다시 소멸한 것.
아껴쓴다 아껴쓴다 했지만 30분은 짧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경로는 봐두었으니까.
이대로 가면 큰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덕길을 내려가는 세 사람.
아람이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백현아.”
“응?”
“나 사실 좀 찜찜해.”
“뭐가?”
“일본에서도 이런 상황에 놓인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어.”
“뭐?”
“『3cm가 된 사람들』이라는 소설인데, 6년 전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어. 출간만 하면 완전 베스트셀러는 따놓았을 거거든.”
아람이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
자신의 동생이 쓴 소설을 일본에서 본 적이 있다고?
“어떤 내용인데?”
“아내가 쓴 소설 속 세계가 그대로 구현되는 거야. 인간들 모두가 1/50로 작아져. 그리고 작아진 남편은 아내가 쓴 소설을 보고, 아내가 이 모든 것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알아내.”
“원흉? 소설 내용이 그래?”
“응. 자신의 아내가 인간들에게 저주를 걸었다는 내용이었어. 굉장히 고어하면서도 충격적인 내용이었지. 소설 속 내용에서도 그 소설이 베스트셀러라서, 사람들이 아내가 쓴 것을 알고 있어.”
“뭐?”
“그래서 사람들이 아내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남편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었지. 설마 일본에서도 지금 그런 상황인 것은 아니겠지?”
백현은 자신이 여동생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났다.
여동생의 생각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이던 내용들.
사람들이 잡아먹히는 그 내용을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자신은 직접 경험해서 알고 있다.
우려스러워하겠지. 작가가 미친 건 아닌 건지 생각하겠지.
충격과 공포.
그 두 단어 말고는 동생의 작품을 논하기 어려웠으니까.
그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과연 동생을 가만둘까?
대한민국 사람들은 동생 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아람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출간이 안 된 거야? 잔인해서?”
“넷 상에서 연재하다가 작가가 바로 글을 내린 터라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인도에서 이미 발표되었던 작품을 표절했다는 게 그 이유로 알려졌어.”
“표절?”
“응. 근데 인도뿐만이 아니야. 포르투갈, 이탈리아, 브라질 등 이런 흐름을 똑같이 따라한 소설이 나왔었나 봐. 비슷한 내용의 소설이 각 국가에서도 나온 적이 있었던 거야.”
백현의 얼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여동생이 혼자 생각해서 쓴 게 아니었다고?
그러고 보니 미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고.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니? 그 분은 도대체 누구고.
이런 상황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일본, 포르투갈, 이탈리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물론 믿기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의 크기가 1/50으로 줄어들었다.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방사능 오염지대도 있다.
이거야말로 신의 심판이 아니고 어떤 걸로 설명이 되겠는가?
그때, 시야가 한순간 좁아지고. 어둑어둑해진 골목길.
그리고 팟! 팟! 팟! 팟! 팟!
DDC제어를 마친 전신주가 켜지고, 낮과 밤이 바뀐 것을 빛과 소리로 알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