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동료
김아람이 비명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작아진 것만으로도 충격인데, 아버지를 잃었으니 그 심정은 오죽할까?
김만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단 시체 수습부터 하자.”
“……네.”
수습이라고 해봐야 특별할 건 없다.
차 안에 있는 휴지를 시체 위에 덮어주는 것뿐.
피 냄새가 지독했지만,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위해 백현과 김만철이 움직였다.
“료스케 아저씨는 굉장히 좋으신 분이셨어요.”
“료스케?”
“네. 아람이는 혼혈이에요. 아버지가 일본인이시죠. 한국으로 귀화한 후, 아람이는 한국 이름으로 바꾸고 엄마 성을 따르고 있다고 들었어요.”
“친했구나?”
“친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는 동안 3번이나 같은 반이었으니까요. 물론 전 중퇴했지만.”
“중퇴?”
“네. 동생 때문에 검정고시를 볼 수밖에 없었어요.”
김만철은 강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아람이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직 충격이 쉽사리 걷히지 않는지 눈물을 쏟았다.
“백현아, 나 무서워.”
“이걸로 눈물 닦아.”
강백현은 차 안에 있던 휴지 한 장을 꺼내 아람이에게 건넸다.
이불보다도 큰 휴지 한 장을 건네받은 그녀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백현에게 말했다.
“백현아. 나 어떻게 해야 돼? 갑자기 몸이 이상해지더니 작아졌어. 그래서 사고 났고. 난 다행히 안전벨트에 걸렸는데, 아빠는…… 우리 아빠는…….”
그녀가 다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난감했다.
“…….”
“살려내! 우리 아빠 살려내라고! 나 아빠 없이 어떻게 살아?”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무슨 말을 해줘야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백현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이 가장 큰 위로가 될 거라고.
그래서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백현의 행동에 김아람이 또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백현에게 꽉 안겼다.
서러웠다. 가족을 잃은 슬픔.
절망적인 상황.
강백현은 친구의 포옹에 멈칫하다가,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말은 하지 않았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저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김아람의 감정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있던 자리가 휴지로 가려져 있다.
그제야 현실이 다가온다. 자신이 한 실수.
강백현에게 모든 것을 쏟아낸 것.
“미안해.”
“아니야. 나라도 그랬을 거야. 이해해.”
“정말 미안해.”
“괜찮다니까. 아저씨한테 인사드리고 집으로 가자.”
“응.”
김아람은 자신의 아버지의 주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빠,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내가 괜히 데리러 오라고 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친구와 밥을 먹은 후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만 하지 않았더라도 아빠는 돌아가시지 않았을지 모른다.
자상하고, 자신을 위해서라면 일도 마다하고 마중 나오는 헌신적인 아빠.
엄마를 위해 고국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한 남자. 그래서 더 멋있고 존경스러웠던 아빠인데…….
아빠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는 걸 어찌 참을 수 있을까?
아람이가 다시 울먹이는 걸 보다 못한 김만철이 말했다.
“거기 어린 친구, 지금은 살아남은 가족 찾아요. 엄마 찾고, 가족 찾아요. 그게 맞아요.”
“네.”
“아저씨, 우리 내려가죠.”
백현이 자신의 보호막을 활성화하여, 발판을 만들어낸다.
김아람은 그걸 보며 깜짝 놀랐다.
강백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아진 대신 능력이 생겼어. 내 능력은 보호막인데, 이렇게 발판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
“능력?”
“응. 너도 보일 거야. 너만의 능력이…….”
땅에 내려온 김아람이 강백현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글씨가 보인다.
“염력 Lv1?”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말하자, 그녀만 보이는 시야에 홀로그램 녀석이 턱 하고 나타났다.
두 손으로 장풍을 쏘는 듯한 모습을 취하는 그녀.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 방향으로 똑같이 따라해 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녀가 양손을 향한 방향으로 나뭇잎이 세차게 날아간다.
그리고……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몸이…… 이상해.”
“그게 능력의 부작용이야. 많이 쓰면 피곤해져.”
백현의 말에 아람이가 말했다.
“무서워. 나 무서워.”
“나도 무서워. 하지만 익숙해져야 해. 이제 이렇게 살아야 하니까.”
백현은 현실적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지켜 줄게. 나만 믿어. 이런 말은 할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실패했으니까. 다른 사람 목숨을 책임진다는 것이 위선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아람 씨, 김만철입니다. 아람 씨라고 부를게요. 아람 씨도 저를 부를 땐…….”
“네. 저도 아저씨라고 부를게요.”
아저씨란 말에 김만철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하지만 이걸로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아람 씨는 어디 방향으로 갈 건가요? 저희는 재현아파트로 갈 예정입니다.”
“저도 백현이랑 같은 재현 아파트 살아요.”
“아……. 그래요?”
“네. 고등학교 중퇴하기 전까지는 료스케 아저씨가 자주 태워주셨어요. 아람아, 너희 어머님 성함이 뭐였지?”
“김정미.”
“아……. 그렇구나. 잠깐만 확인해볼게.”
“응?”
백현이 미니맵을 뒤졌다.
자신의 동생 주변 살아있는 생물의 표시를 확대해서 찾아보던 백현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확인해보니까 살아 계신 것 같아.”
“정말? 어떻게 알아?”
“난 하루에 30분 정도 미니맵도 볼 수 있어.”
“허허, 백현이 얘는 만능이야. 다른 사람은 능력이 하나인데, 이 녀석은 두 개거든.”
미니맵, 이름까지도 나오는 만능 허상지도.
그곳에서 확인한 그녀의 어머니는 다행히 살아 계셨다.
“가자. 빨리 가서 엄마 만나야 해.”
“그래. 그런데 그 전에 편의점 좀 들리자. 물 좀 마시고, 먹을 것 좀 챙기자.”
“응.”
편의점까지 거리는 이제 고작 15m.
그런데 그 앞에 개미떼가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피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백현 일행은 코를 막았다.
“강아지가 죽어 있어.”
편의점 앞 차량에 깔린 듯한 강아지의 사체.
굳은 피가 털과 뭉쳐 사체 특유의 썩은 내가 진동을 한다.
김만철이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참고 간다.”
“네. 알겠습니다. 아람아, 내 손 잡아. 가자.”
“응.”
아람이는 주변 풍경을 보며 작아진 세계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실감했다.
주택만 한 강아지.
고래가 죽으면 저런 모습일까?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크기.
만약 저 강아지가 자신을 공격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
그런데 하늘에서 무언가의 비행소리가 들려왔다.
『부웅, 부웅, 부웅, 부웅』
사체 주변에 항상 모여드는 곤충.
그건 바로 똥파리.
누렇고, 갈색 겹눈을 가진 존재.
오렌지색 얼굴로 시속 20km/s로 날아다니는 그 곤충의 날갯짓 소리만 들어도 공포스럽다.
그래도 다행인 것, 똥파리는 살아있는 생물보다 죽은 사체를 더 좋아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맛있는 먹이가 고맙게도 길바닥에 너부러져 있다.
그런데 똥파리만 몰린 게 아니다.
개미도 몰리기 시작한다.
개미들은 죽은 강아지의 체액을 쪽쪽 빨아먹다가, 강한 턱을 이용하여 살점을 잘라내고 조금조금씩 옮기기 시작했다.
이미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는지 수많은 동족들이 몰려들어 부지런히 살점을 운반한다.
잔인했다. 비정했다.
그러나 이게 바로 약육강식의 세계.
오로지 인간만이 그 법칙에서 제외된 채 수십 세기를 살아왔지만 그 생활도 이제는 끝.
한 마리의 개미가 다가온다.
김만철이 식은땀을 흘리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양 주먹을 쥔 채, 자신의 신체 강화 능력으로 주먹의 힘을 강화시킨다.
그러나 다행히 그 개미는 인간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미 다른 동료가 이곳에 더 맛있는 먹잇감이 있다고 호르몬을 통해 알려준 것이다.
몸짓이 컸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개미들이 뿌리는 체액의 냄새가 느껴진다.
풀냄새와 흙냄새가 섞인 요상한 냄새가 인간 수준의 후각으로도 느껴지는 것이다.
“다행이다. 갈 길 가자.”
“네.”
아저씨의 말에 강백현이 대답했다.
그런데 위기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늘의 맹수.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
녀석의 울음소리가 전신주 방향에서 들려왔다.
『까악! 까악! 까악!』
까마귀의 접근에 백현 일행은 긴장했다.
조류. 현재 상황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
시속 60km로 활공하는 그들은 공중에서도, 지상에서도 순식간에 먹이를 낚아챌 수 있다.
그러나 까마귀 입장에서 현재 인간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죽은 강아지의 피가 배어 있는 살점을 두고, 고작 인간 따위에 관심을 둘 녀석들이 아니었다.
까마귀가 접근하자, 강아지에 붙어 있던 똥파리가 순식간에 흩어진다.
살점을 뜯기 위해 발톱으로 강아지의 몸통을 고정하고, 부리를 이용해 살점을 뜯어내는 까마귀들.
이런 생활이 능숙한지, 부리로 살결을 찢는 모습에서는 여유로움이 넘쳐흘렀다.
그런데 개미들은 학습능력이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아는데도 도망치기보다는 먹이를 확보하길 원했다.
조직, 군중을 제어하는 호르몬.
겁 따위는 전혀 없는 기계와 같은 움직임.
그런데 다른 까마귀가 몰려든다.
동료들이었다.
강아지 사체에 모인 5마리의 까마귀들.
그들의 식성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각 개체별로 다르다.
어떤 놈은 질긴 고기를 좋아하고, 어떤 놈은 바삭바삭한 곤충을 좋아하고, 어떤 놈은 지렁이 같은 야들야들한 식감을 좋아한다.
대한민국에서 까마귀의 천적은 거의 없었다.
그들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매와 부엉이.
그러나 도심 지역에서는 매와 부엉이가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까마귀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 개체 중 하나가 백현 일행을 발견했다.
백현이 소리 질렀다.
“옵니다!”
그러면서는 아람이가 놀라지 않게 정확한 방향을 인도했다.
“아람아, 일단 편의점으로 뛰어.”
“응.”
편의점 입구 문턱. 까마귀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위협적인 동작을 취했다.
그들 앞에 놓인 5cm의 턱.
그 낮은 높이가 그들의 진입을 막는다.
그러나 과거의 백현이 아니었다. 이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그였다.
그의 보호막이 계단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밟고 올라가는 3명이 편의점 문 사이로 들어간다.
김아람이 가장 먼저 통과하고, 김만철이 통과하고, 강백현이 통과하려 한다.
편의점 문과 문 사이. 스테인리스 특유의 쇠 냄새가 진동했지만, 까마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으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강백현의 다리를 정확히 노리는 까마귀의 부리.
그런데 까마귀가 갑자기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까마귀는 알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다는 것을.
날갯죽지가 펴지질 않는다.
누군가가 미지의 힘으로 짓누르고 있다.
중력 방향으로 강력한 힘을 받고 있다.
까마귀의 눈빛이 한 여성을 향했다.
김아람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두 손을 모아 바닥방향으로 내려쳤다.
그러자 까마귀의 몸 전체가 아래로 짓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염력의 레벨은 1.
까마귀를 죽일 정도까진 아니었다.
까마귀가 염력의 힘을 이겨내고 몸을 일으켰다.
날갯죽지를 펴고, 펄쩍펄쩍 뛰어올라 바닥을 짚던 발톱으로 성큼성큼 뛰어왔다.
하지만 이미 강백현은 유리문 사이의 틈새를 통과한 상태.
까마귀가 스테인리스 강판을 부리로 쪼아보지만, 녀석의 몸집으로 그 좁은 공간을 통과할 순 없었고, 더 이상 위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람아!”
백현은 축 늘어진 김아람을 불렀다.
“괜찮아. 조금 피곤해졌을 뿐이야. 다치진 않았어?”
그녀 역시 빨리 지치는 타입. 그러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걸려있다.
“응. 네 덕분에…… 정말 괜찮아? 능력 많이 쓰면 안 돼. 몸 망가져.”
“응. 그래도 까마귀로부터 너 구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