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분열
10분이 지났다.
정신을 차린 강백현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김만철에게 말했다.
“아저씨, 왜 저를 말렸어요?”
“너도 알잖니.”
“뭐가요?”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는 거.”
“하지만!”
백현이 목소리를 내자, 김만철이 타이르듯 말했다.
“칭얼거리지 마. 네 동생 구할 생각만 해. 네가 말했잖아. 네 동생이 죽으면 다 죽는다고. 그러면서 왜 다른 사람 목숨에 신경 써?”
“아저씨는 절 믿는 거죠?”
“그래. 믿어. 믿으니까 네가 말한 방향으로 왔고. 솔직히 네 말이 거짓말이어도 상관없어. 넌 우리 아버지 목숨을 구해줬었으니까. 난 그 도리를 할 거야.”
“잠깐 내려주세요. 확인 좀 해볼게요.”
“뭐?”
“생존자 확인 좀 해보려고요. 할머니랑 윤수, 그리고 정선희 아줌마 살아계신가 궁금해요.”
“그것도 확인 가능해?”
“네. 한번 봤던 사람은 추적도 가능한 것 같아요.”
백현이 미니맵을 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박윤수.’
그러자 그의 위치가 드러났다. 그런데……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표시가 하나둘 사라진다.
그걸 본 백현이 말했다.
“……윤수가…… 아줌마가 위험해요!”
* * *
같은 시각.
박윤수가 칭얼거리며 말했다.
“엄마, 쉬아.”
“어?”
“쉬아 마려워. 저쪽 구석으로 가장.”
어린 아들이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구석을 가리킨다.
“일행들하고 떨어지면 위험해. 근처에서 볼일 보자.”
“싫어! 저쪽으로 갈 거야.”
평소에는 말 잘 듣던 아이가 오늘따라 고집을 부린다. 정선희는 고개를 저으며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해요. 잠깐 아이 볼일 좀 보고 올게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다행히 저희 가는 방향은 인도가 잘 났고, 동물도 거의 없는 편이라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 같네요. 속도 늦춰서 이동할 테니까, 천천히 따라와요.”
“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선희가 아들 박윤수를 데리고 구석으로 데려간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바지를 내리더니, 쉬야를 하는 아들 녀석.
정선희는 생각했다.
아직 만 5살밖에 안 된 윤수에게는 너무나 큰 시련이라고.
그래도 잘 견뎌준 아들이 고맙다고.
아들이 목숨을 잃으면 자신이 살 수 있을까?
윤수를 이 몹쓸 세상에서 구해주고 싶다.
희망이 펼쳐진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
그게 엄마의 새로운 소망.
“쉬야 다 했으면 가자.”
아들의 바지를 올리고, 엄마가 일행이 간 방향으로 갈 길을 재촉한다.
그러나 윤수는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오히려 구석진 방향에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응?”
“이 방향으로 가야 해.”
“뭐?”
“저쪽 방향으로 간 아저씨, 아줌마들 다 죽었어. 그쪽으로 가면 엄마랑 나도 죽어.”
“뭐라고?”
정선희가 일행이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때, 자신의 목을 조르며, 고통스런 신음을 내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
아들의 말 그대로다.
그때, 윤수가 엄마를 향해 똘망똘망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할머니가 보여준 영상에서 엄마랑 나 죽는 거 봤어.”
“……”
“하수구에서 흘러나온 오염 가스 때문이래. 아무리 윤수가 치료해도 엄마랑 난 죽었어. 그러니까 저 방향으로 가면 안 돼.”
윤수의 말에 정선희가 슬픈 얼굴을 지었다.
이미 앞서 간 사람은 모두 메탄가스 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조금만 더 빨리 말해줬으면 다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지나간 일.
윤수한테 탓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이유는 알고 싶었다.
“왜 엄마한테 그 사실 말 안 했어?”
“말하면 아저씨들이 엄마 괴롭히니까.”
“괴롭히다니?”
“윤수가 치료 안 하면, 아저씨들이 엄마 때려. 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 윤수는 능력 말 안 할 거야. 말 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치료하라고 엄마를 괴롭히니까.”
억장이 무너졌다.
아들은 자신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알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택했다. 5살 아이의 선택.
정선희는 그제야 최복자 할머니가 말씀하신 사항이 무슨 이야기인 줄 알았다.
자신이었다면 절대 그런 선택을 못했을 테니까.
그래도 이건…….
‘할머니……. 윤수한테 너무 하신 것 아니세요? 이제 겨우 5살인데, 나중에 자신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 그 죄책감은 어떻게 하라고 그러세요?’
정선희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리고 윤수를 꽉 안으며 말했다.
“잘했어. 우리 아들, 엄마 때문에 그런 거지? 잘했어.”
“응. 그러니까 엄마는 울지 마. 엄마는 맨날 울어. 울면 윤수 슬퍼. 엄마도 윤수 울면 슬퍼. 그래서 윤수는 울지 않을 거야.”
“그래. 미안해. 엄마, 이제부터 안 울게. 윤수도 울기 없기다. 알았지?”
“응. 그럼 이제 아빠 찾으러 가자.”
고작 5살 난 아들의 손을 잡은 정선희가 윤수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 *
강백현은 미니맵을 통해 윤수와 정선희의 생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김만철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물었다.
“뭐야? 이야기 좀 해.”
“살았어요. 두 분 다 살았어요.”
“그래. 살았겠지. 꼬마녀석! 미래를 봤는데 당연히 살아야지.”
“네. 그런데 윤수랑 정선희 아줌마랑 같이 간 일행은 전부 다 죽었어요.”
“뭐? 뭐한테? 뭐로 죽었는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끼리 싸웠는지, 아니면 아, 모르겠어요. 아무튼 동물이나 곤충한테 죽은 건 아니에요. 근처에는 없었어요.”
“사람들끼리의 싸움…….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지금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아니니까.”
“네. 그 점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아요.”
김만철은 윤수와 정선희의 소식을 듣고 나니 최복자 할머니가 궁금해졌다.
“할머니는?”
“살아계셔요. 같이 떠난 일행도 전부 다 살아계신 것 같아요. 주변에 사람이 13명 정도 있어요.”
“그래? 다행이다.”
“네. 다행이에요. 모두 살아서 다시 한 번 만났으면 좋겠네요.”
“그래야지. 일단 가자. 여기선 어디로 가야 되냐?”
“언덕길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거기서 한 바퀴 돌아서 큰 길로 빠지는 곳까지는 안전해요.”
“너 진짜 부럽다. 아예 전체 지도가 보이는 거잖아. 군사위성처럼.”
“군사위성보다는 게임이라고 할까요? 확대 축소되고, 정보 확인 가능하고. 좀 더 좋은 기능이죠.”
두 사람이 걷기 시작한다.
방풍실에서 잠시 쉬어서 그런지 체력은 조금 회복된 상태.
김만철이 금방 지치는 강백현에게 물었다.
“이제 보호막 쓸 수 있냐?”
“네. 한, 두 번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넌 왜 이렇게 빨리 지쳐?”
“네?”
“나는 능력 써도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거든. 그런데 너도 그렇고, 할머니도 그렇고, 그 꼬마도 그렇고.”
“아……. 능력마다 뭔가 다른 게 아닐까요? 저는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는 거고, 아저씨는 지속적으로 꾸준한 힘을 내는 거. 그 차이 아닐까요?”
“그런 차이가 있나?”
“저도 잘 모르겠어요. 차차 알아가야죠.”
언덕길을 오르는 두 사람.
그런데 햇빛은 쨍쨍하고, 경사는 가파르다.
길가 양옆에 서 있는 전신주.
그리고 빼곡하게 서 있는 빌라 건물.
백현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다.
집 안에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
바깥보다는 확실히 안전한 가옥.
그리고 동생 미나도 집 안에 있다.
‘미나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밥은 먹었을까? 배고프다고 해서 마약 떡볶이 사러 갔었는데.’
그러고 보니 자신도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때마침 꼬르르륵.
배에서 밥 신호를 보내고.
그 소리를 들은 김만철이 미소를 지었다.
“배고프냐?”
“네.”
“강행군이 될 것 같은데, 편의점부터 털고 보자.”
“편의점이요?”
“응. 저기 앞에 LS25시 보이는데?”
“네. 들르죠.”
“그래.”
거리 50m.
체감 거리는 2.5km. 그래도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그 사이에 주차된 차량이 하나, 둘, 셋, 넷.
총 8대.
6대는 멀쩡한데, 2대가 말썽이다.
주차된 트럭에 충돌한 일본에서 만든 수입차량.
완벽하게 찌그러진 앞좌석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언덕을 올라가던 김만철이 백현에게 말했다.
“안됐네. 안에 운전자 죽었겠다.”
백현은 김만철의 말에 되물었다.
“한 번 확인해볼까요?”
“확인 가능해?”
“네. 가능할 것 같아요.”
강백현은 미니맵을 통해 마지막 차량에 사람이 탑승해있는지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신호가 잡힌다.
그리고 이름이 보인다.
백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저씨!”
“왜? 또 뭔데?”
“빨리 가요. 안에 사람 있어요. 살아 있어요.”
“왜? 또 구하려고?”
“네. 이번에는 꼭 구해야 해요. 다친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생명 반응이 있어요. 빨리 가야 해요.”
“그 이유가 뭔데?”
“제가 아는 이름이거든요.”
* * *
언덕을 30분 동안 올라갔다.
불과 40m 거리일 뿐인데, 쉬지 않고 올라갔는데도 30분이나 걸렸다.
강백현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넥서스 차량 앞.
백현이 김만철에게 말했다.
“아저씨, 저거 문 여실 수 있어요?”
“나보고 30m 높이를 올라가라고?”
“그럼 제가 해볼게요.”
백현이 자신과 김만철의 발바닥에 평면으로 생긴 보호막을 생성한다.
그리고 그 보호막을 위로 쭉 늘린다.
그러자 밟고 있던 보호막의 바닥이 위로 쭉 상승하며 백현의 몸을 위까지 올렸다.
“와! 뭐야? 허공답보?”
김만철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응용 동작 생각해보니까 되더군요. 체력소모가 좀 심한 단점이 있지만요.”
백현이 앞좌석 손잡이까지 몸을 올려 손잡이를 위로 쳐 올렸다. 그런데 자신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와, 이게 안 되네. 아저씨가 좀 열어줘요.”
“헤헤, 이 정도도 안 되냐?”
김만철이 방긋 웃으며, 차량 보조석 문손잡이를 안쪽에서 밀어 올렸다. 그러자 문이 딸깍 하고 열린다.
열린 문이 반투명한 보호막과 부딪혔다. 그러자 두 사람이 아래로 떨어진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백현은 둥근 보호막을 다시 생성해, 바닥에 떨어지는 두 사람의 몸을 안전하게 받아냈다.
“대박이네. 공중에서 사람을 받아내기까지 하고.”
“이제 다시 올라가죠. 한 번 정도는 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보호막을 다시 늘려 차 안에 들어가는 두 사람.
힘을 많이 쓴 백현의 몸이 다시 한 번 축 늘어진다.
그래도 백현은 웃었다.
그리고 미니맵 상 표시된 여성의 생존을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충격 때문인지 차량 조수석 발판의 카펫에서 잠을 자고 있는 여성을 백현이 부른다.
“아람아! 김아람!”
“응?”
“나야. 강백현!”
“뭐야. 아직도 꿈이야? 네가 여기 왜 있어?”
“아람아. 일단 내 말 듣자. 충격 받지 말고. 지금 상황이 어떠냐면……”
“아빠…… 우리 아빠는? 아빠는?”
그녀가 운전석을 바라본다.
백현 또한 그녀의 시선대로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운전석 계기판에 붙어있는 납작한 주검.
파리채에 걸린 파리처럼 투명한 아크릴 유리판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인간의 사체.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딸, 아람의 비명이 차 안에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