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텔레포트 능력자
텔레포트 능력자라는 말에 김만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생존에 도움이 될 능력.
자신의 신체능력 강화와는 차원이 다른 능력.
그래서 호감이 간다.
김만철이 대답했다.
“저희는 일단 이수 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혹시 같은 방향이십니까?”
“아! 그런가요? 잘됐네요. 저희 일행도 그쪽 방향으로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때, 탈진 후 잠에 취한 백현이 정신을 차렸다.
“아…… 아저씨?”
“괜찮아?”
“네. 저도 모르게 잠들었나 봐요. 죄송해요.”
“잠든 게 아니라 쓰러진 거야. 기억 안 나?”
“네. 좀 무리했나 봐요. 그런데 다들 어디 가셨어요?”
“다들 흩어졌어. 일단 너희 집부터 가자. 난 너 따라간다.”
김만철의 말에 텔레포트 능력자가 방긋 웃었다.
“저희 10분 뒤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럼 저 방향으로 와주세요.”
그가 손가락으로 방풍실 입구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번쩍!
순식간에 해당 방향으로 텔레포트 하는 남자.
거리는 대략 1m. 그가 텔레포트로 자신의 일행에 합류, 일행들에게 김만철과 강백현의 합류를 알리고 있다.
강백현의 몸은 아직 정상이 아니었다.
비틀비틀, 혼자 회전문을 막기 위해 한계를 훨씬 초월한 능력을 쓴 것.
그의 몸은 이미 구석구석 망가져 버렸다는 걸 백현은 실감하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탓일까?
김만철이 백현에게 등을 내 주었다.
“아저씨, 지금 뭐하세요?”
“업힐래?”
“네?”
“여기서 오래 있다가는 방사능 뭐시기에 뒈질 거고, 그렇다고 혼자 움직이긴 곤란하고. 네가 선택권이 있냐?”
“아…….”
깊은 한숨, 하지만 그의 말대로 백현에겐 선택권이 없다.
“신세 좀 지겠습니다.”
“그래. 가자.”
“네.”
체구가 작은 백현에 비해, 김만철의 덩치는 곰과 같았다.
그에게 업혀 가는 청년이 아저씨에게 물었다.
“최복자 할머니는 저 용서해주셨을까요?”
그러자 김만철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용서? 오히려 너한테 고마워하실걸? 아무도 너한테 책임지라고 하지 않아. 나 또한 그렇고.”
백현은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웃음이 잘도 나온다고.
그러고 보면 아저씨는 형도 잃었고, 형수님도 잃었고 아버지도 잃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
그 아저씨가 말했다.
“백현아.”
“네?”
“그리고 아저씨 소리 그만할래? 나 아직 36이거든. 아저씨 소리 들을 나이 아니다.”
그의 진지한 말투에 백현이 실소가 터져나왔다.
온몸이 멍이 든 것 같은 통증. 웃음이 나오자, 온몸이 아파온다.
“아, 웃기지 말아요. 아파 죽겠어요.”
“큭큭! 그래. 그래도 네가 웃으니까 내가 기분이 좋다.”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백현은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가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마음을 알아버렸으니까.
그걸로 된 거다.
이수역 방향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일행은 총 13명.
그들을 리드 하는 사람은 40대 남성.
“서초구청장 김환석입니다.”
구청장이라 해도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그래도 일부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는 눈치다.
그는 연설을 계속했다.
“모두 이제 아실 겁니다. 지금 세상은 혼자 살아남기는 힘들다는 것을요. 그래서 각자 팀을 꾸리기 시작했어요. 사당역으로 가는 팀이 떠났고, 반포, 고속터미널 쪽으로 향하는 팀이 떠났습니다. 저희는 이수역을 거쳐 내방역 쪽으로 이동할 겁니다. 저희랑 함께 이수역 방향까지만 가시는 분도 있으실 테고, 내방역까지 가시는 분들도 있으실 텐데, 이것 하나만은 제가 자신합니다. 목적지까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겁니다. 쥐나 고양이 같은 포식자가 나타나도 저희는 함께 맞서 싸우고, 또 저항할 겁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테니까요.”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희망을 품어본다.
선거로 뽑힌 인물.
김만철도 그를 알아보며 백현에게 말했다.
“살았다. 저 사람이면…….”
“아저씨, 저 사람 알아요?”
“무소속으로 당선된 분인데, 청렴하지. 깨끗하지. 일 열심히 하지. 얼마나 좋은 분인데. 득표율도 37%인가 그랬을걸?”
“그렇군요.”
하지만 백현은 뭔가 불안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니 무언가 사고가 터질 것만 같았다.
‘뭘까? 이 이질감은…….’
그럼에도 일행이 출발한다.
방풍실 바닥, 유리문과 유리문 하단 사이의 작은 틈.
겨우 2cm밖에 안 되는 공간이지만, 평균 3.6cm의 사람들이 몸을 웅크리면 간단하게 그곳을 지나갈 수 있었다.
바깥.
장황한 풍경이 펼쳐진다.
일단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도심 도로는 아수라장 그 자체.
신호등은 차량과 부딪혀 구부러진 채, 90도로 꺾여 있고, 커다란 빌딩만 한 자동차의 경적 소음은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다.
일정 거리마다 설치된 소화전 중 일부는 차량과 부딪혀 터져버렸는지 거리에 홍수를 일으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변전소 설비들은 금방이라도 지져버릴 듯 요란한 스파크를 내며, 다가오면 죽는다는 경고음을 내뿜었다.
무시하고 싶지만 어마어마한 소음 때문에 저절로 시선이 돌아가는 재난재해들.
인간이 만든 시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찬란한 문명을 야기했던 첨단집약적 산업혁명의 산물들은 스스로를 옥죄는 무기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다수가 모이니, 방법이 보인다.
김환석 구청장이 자신의 측근에게 말했다.
“고 실장.”
“네. 청장님.”
“어디로 가야 할지 주변 좀 봐 줄 수 있겠나?”
“네.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김환석의 말에 고성현 실장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그의 능력은 비행 Lv1.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
그가 공중에서 상황을 지켜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골목 쪽으로 이동하면 되겠다. 저쪽은 화재도 없고, 소화전도 멀쩡하고, 변전설비도 상대적으로 양호해.’
그래서일까?
그 방향을 가리키며 일행에게 소리친다.
“북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골목길로 들어가면 물난리도 없고, 변전설비 위험도 없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 같습니다.”
“그래. 고맙네. 여러분들 다들 들으셨죠? 저쪽으로 가면 안전하다고 합니다.”
구청장의 말에 환하게 웃는 사람들. 그런데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고성현 실장의 비명이 들려온다.
『으아아아아악!』
거대한 존재.
서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비둘기가 한입에 꿀꺽, 고성현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눈 깜짝할 새 잡아먹힌 남자를 보며 경악하는 사람들.
같은 시각, 백현은 미니맵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김만철 아저씨에게 말했다.
“저 방향은 비둘기 서식지인 것 같아요. 저 방향으로 가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 거예요.”
“비둘기 서식지라고?”
김만철의 질문에 백현이 대답했다.
“네. 보통 골목길 전신주에 비둘기, 까치, 까마귀들 많이 살잖아요. 저 동네가 딱 그래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아니에요. 제 미니맵에 보여요.”
백현은 어디에 누가 있고, 누가 나타날지 아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저번에 사마귀도 맞췄고, 청소기가 다가오는 것도 맞췄다. 지금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백현이 말하면 그게 정답이다.
미니맵이란 애초부터 그런 능력.
그러나 구청장 김환석은 자신의 밑에서 수년간 수행하던 고 실장의 죽음에 쓴웃음을 지었다.
예상은 했다지만, 사람 목숨이 이렇게 허무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괜찮았다.
‘걱정할 것 없어.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날 지지해 줄 사람이 수백 명이 넘어.’
서초구청.
그곳에 남겨진 직원들은 자신이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왕.
지금은 아마 안전통제실장이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부구청장이 지휘하고 있겠지.
그곳까지만 도착하면, 위험 따윈 없다.
공무원들은 자신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기에 그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고성현 실장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맙시다. 망설이지 마시고, 그가 알려준 골목 방향으로 갑시다.”
그의 말에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고요해진다.
사람들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정면 방향에서는 차에서 화염이 치솟고, 좌측에는 소화전에서 홍수가, 우측에는 변전설비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의 소리를 내고 있다.
어디를 가나 위험한 상태.
하지만 백현에게는 보였다.
후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게 확실하게 보인다.
그래서 말했다.
“구청장님! 그쪽은 위험해요!”
백현의 말에 시선이 돌아가는 사람들.
청년의 말에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지자, 구청장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그의 다음 행동은 당연할 터.
분란을 조장하는 녀석을 압박하는 것.
“거기 학생, 왜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그쪽은 비둘기 서식지예요. 돌아가셔야 해요. 강변 방향 쪽으로 한 바퀴 돌아가시면 안전할 것 같아요.”
“거긴 반대방향이잖아! 돌아가면 최소 3시간은 더 걸려!”
“저도 알아요. 알지만…… 읍…… 읍…….”
갑자기 백현의 입이 열리질 않았다.
정확히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구청장은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여러분! 저런 새파란 애들 말에 혼란스러워하지 마시고, 저를 믿으십시오. 목숨을 걸고 저희에게 정보를 알려준 조 실장의 말을 믿으세요. 애들 말 믿어봐야 다 개죽음 당할 뿐입니다. 출발합시다.”
“괜찮을까요?”
“그럼요. 망 봤잖아요. 이쪽 방향이 좋다고. 저 청년 말 듣고 반대방향으로 돌아가시겠어요?”
“그건 아닌데요. 뭔가 불안해서요.”
“후후, 저 청년 보세요. 그냥 느낌대로 말한 거잖아요. 그래서 자기도 자신 없으니까 아무 말 못하고 있잖아요.”
구청장의 말에 시민이 백현을 쳐다보았다.
그의 말대로 청년은 아등바등 거리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해합니다. 저 청년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겠죠.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었어요. 오히려 저게 정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빨리 안전한 집으로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발하겠습니다.”
백현은 자신이 말을 못하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구청장의 능력은 침묵 Lv1.
다른 사람의 말을 못하게 하는 능력.
백현이 구청장을 향해 뛰어갔다.
그 행동을 보며 김만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턱.
자신의 손 날로 백현의 목을 내리치며, 간단히 기절시킨다.
구청장이 있는 방향으로 입을 여는 김만철.
“혼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따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기절한 강백현을 등에 짊어지고 반대방향으로 향한다. 그 두 사람만 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
구청장은 말리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분탕종자들이었다.
저런 사람이 분위기를 흐릴 때마다 자신이 간신히 만들어놓은 조직의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만다.
많이 겪었다.
한두 사람의 선동에 모두가 흔들린다는 것을.
그래서 잡지 않았다.
“저 둘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저들의 개인행동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단축시킬 뿐입니다. 동요하지 마시고 우리는 제 갈 길 갑시다.”
“네! 구청장님!”
“알겠습니다. 구청장님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