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헤어짐
김만철이 할머니를 어깨에 짊어지고 다시 반대쪽으로 향하고, 정선희 역시 살기 위해 아들이 있는 방향으로 있는 힘껏 뛰었다.
백현은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었다.
몸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탈진 상태였다.
혼자 보호막 기둥을 생성해 유리문의 움직임을 막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윤수가 있었다.
윤수의 초록빛 치료 능력이 있었다.
“엉아! 힘내!”
“응. 고마워.”
그 덕분일까? 유리문의 움직임을 3번이나 더 막을 수 있다.
생존자가 보인다.
정선희 아줌마, 그리고 김만철 아저씨가 업고 오는 최복자 할머니.
여기까진 미래 예지와 같다.
백현이 다급하게 말했다.
“아저씨! 빨리! 빨리 한 번 더! 한 번 더요!”
백현은 회상했다.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미래예지에서 실제로 그랬으니까.
자신은 할아버지를 구하고 쓰러졌다. 그게 마지막 본 미래 자신의 모습.
* * *
한편, 박일동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내를 업고 가는 김만철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참 오래 살았어. 인생이 덧없을 정도로 참…… 오래 살았지.’
아내와의 50년간 결혼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는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신 대신 목숨을 희생하는 청년의 모습을 보았으니까.
할멈의 미래예지 능력으로 자신의 미래를 알았으니까.
목숨 연장은 겨우 3시간이었던가?
그 3시간을 더 살기 위해 청년을 죽여야 하는 걸까?
미래에서 강백현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한계 리미트를 넘겨 능력을 사용하고 그만 탈진해서 죽고 말았다.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할멈, 먼저 갈게. 오래 살아야 해.’
박일동 할아버지가 편안하게 웃는다. 유리문이 다가옴에도 그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하다.
그런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김만철이 할아버지의 행동과 표정을 보며 경악한다.
“할아버지! 박일동 할아버지!”
그러나……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할아버지.
푸슝.
할아버지의 신체가 유리문의 솔에 짓눌리고, 순식간에 원형을 잃은 채 목숨을 달리하고 말았다.
같은 시각.
미니맵을 보며 상황을 지켜보던 강백현이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으아아아아악!”
그리고 그런 청년의 모습을 보며 윤수가 말했다.
“엉아, 왜 그래? 아파? 어디 아파?”
“으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첫 실패.
자신의 결정을 믿고 따라온 한 사람의 목숨이 희생된 것.
정신적 충격을 받은 백현과 믿고 따르던 형의 울음에 자신도 따라 우는 윤수.
“엉아! 엉아! 엉아! 으아아앙! 으아아앙!”
그리고 잠시 후.
최복자 할머니가 씁쓸한 얼굴로 홀로 돌아오는 김만철을 보며 물었다.
“간 겨?”
“네. 죄송합니다. 흑흑…….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얼굴은? 평온해 보였나?”
할머니는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선택이 결코 부질없지 않음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란 것을.
그녀의 질문에 김만철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네. 무척이나 행복하신 표정이었습니다.”
김만철의 대답에 최복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됐어. 그럼 된 거여.”
* * *
회전문을 지나자, 넓은 광장이 보였다.
그곳은 방풍실.
바깥 온도와 내부 온도 변화를 최소화하며,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만든 기밀 구조.
회전문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대형마트 바깥으로 나가기 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동료를 찾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동료를 구하는 사람도 있고.
『이수역 방향 쪽으로 같이 이동하실 분 구합니다!』
확성 능력을 통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강변 쪽 가실 분 있으십니까?』
텔레파시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사람도 있다.
『사당 방향 같이 가실 분 구합니다.』
사실 건물 밖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지금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밖으로 나가려는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가족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집으로 가면 반드시 만날 터.
집에서는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비교적 안전이 확보되어 있다.
최소한 동물, 해충들로부터 노출된 바깥보다 덜 위험하다.
아파트, 해충이 살기 힘든 환경.
그러니 다들 집으로 가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다.
좌절한 청년을 향해 한 여성이 다가갔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등에 업은 그녀가 백현을 위로했다.
“백현 씨, 울지 마요. 할아버지 돌아가신 건 백현 씨 탓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 아니에요. 윤수도 구했고, 저도 구했고, 할머니도 구하셨잖아요.”
여전히 창백한 백현의 얼굴.
그런 그를 향해 최복자 할머니가 다가간다.
“괜찮어. 영감탱이 혼자 죽은 건데, 뭘 그렇게 울어.”
“할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인생은 원래 그런 거여. 오래 살았고, 또 죽을 때가 된 거지. 아마 영감은 자기 대신 누군가가 죽는 모습을 봤던 거겠지. 그게 싫었던 거고.”
할머니가 백현을 위로했다.
그러자 백현이 할머니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그걸 보며 김만철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정선희가 자리에 앉은 채, 쓰러져 있는 윤수를 품에 꼭 안았다.
그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 서로를 위로했고, 또 의지했다.
* * *
피곤해서였을까? 지쳐서였을까?
백현은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사실 능력 과다 사용 때문이기도 했다.
비교적 멀쩡한 김만철과 정선희, 그리고 최복자가 자고 있는 강백현과 윤수를 뒤로 하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 이제 어디로 가실 거예요?”
김만철의 질문에 최복자가 말했다.
“자식들은 다 해외 이민 가 있으니, 이제 갈 곳을 슬슬 찾아봐야겠지. 원래는 영감하고 같이 집에서 살까 생각도 했어. 근데 이제 안 되잖아. 다른 방안을 찾아봐야지. 젊은이, 결혼은 했어? 가족은?”
“아니요. 저도 가족은 다 잃었습니다. 아버지도, 형님도, 형수님도 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려고?”
할머니의 질문에 김만철이 백현을 쳐다보았다.
“저 친구가 동생 만나러 간다고 해서, 같이 따라가 줄 생각입니다.”
“백현 총각?”
“네.”
최복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자신의 능력을 김만철에게 사용하기 시작한다.
김만철의 머릿속에 미래의 이미지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최복자 할머니의 미래예지 능력 덕분이었다.
* * *
커다란 건물.
분명히 방 안이었다.
빌딩 크기의 사람이 보인다.
그가 커다란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 작아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그런데 백현이 뛰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미래의 자신은 그걸 만류했다. 하지만…….
백현은 자신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사람이 있는 쪽으로 뛰어간다.
그러고는 빠직!
빌딩 크기의 사람이 백현을 찍어눌렀다.
그리고…… 납작해진 시체.
그 거인이 백현을 죽이고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온다.
쿵쾅쿵쾅.
엄청난 진동이 공포를 불러온다.
『으악!』
* * *
다시 현재.
최복자 할머니가 놀라는 김만철의 몸을 흔들며 물었다.
“봤어?”
“네…….”
“어떤 것을 봤는데?”
“죽는 것을 봤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정선희가 고개를 들고 묻는다.
“진짜요? 누구한테요?”
그러자 김만철이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아닌 백현의 죽음.
그 청년이 옆에서 자고 있다고 해도 들을 수 있기에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 장소는 어디일까? 풀리지 않는 의문.
그때 정선희가 최복자에게 말했다.
“할머니, 제가 증폭 능력 써드릴게요. 한 번 더 봐주세요.”
“증폭?”
“네. 제 능력은 증폭입니다.”
정선희의 기운이 최복자에게 넘어갔다.
그러자 그 순간, 할머니의 미래예지 Lv이 2로 변화했다.
최복자는 알았다.
이제 타인의 미래가 아닌 자신의 미래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정선희한테 능력을 쓰지 않고 먼저 자신에게 능력을 사용했다.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
강백현과 다시 만나는 모습, 김만철과 다시 만나는 자신, 정선희와 박윤수의 성장한 모습까지.
그리고 미래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도
자신에게 일어날 수많은 경우의 수.
그러나 지금 강백현이란 사내를 따라가면 자신은 무조건 죽고 만다. 그랑 떨어져야 살 수 있다.
‘저 청년을 따라가면 죽고 말 거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최복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정선희의 말에 최복자가 말했다.
“괜찮어. 능력을 많이 사용했나 봐. 피곤하네.”
그때, 그녀의 품에 안긴 윤수가 눈을 뜨며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
“그래. 그래. 꼬마야.”
“할아버지는? 수염 난 할아버지는?”
윤수의 말에 정선희가 윤수의 입을 막았다. 그러자 최복자 할머니가 방긋 웃으며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아버지는 먼저 천국 가셨어. 할아버지가 하늘나라 가기 전에 우리 꼬마한테 선물 주라고 할머니한테 말했어. 그래서 할머니가 지금 선물을 줄 거야.”
“응?”
최복자가 마지막 기운을 짜내며, 미래예지 능력을 윤수에게 사용했다.
그러자 윤수의 눈이 빙글빙글 돌더니, 미래의 영상을 보기 시작한다.
미래예지 Lv2.
수많은 분기점을 볼 수 있는 능력.
능력을 쓴 할머니가 피곤해졌는지 정신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는 것을 김만철이 받아냈다.
“할머니…….”
아이를 깨우는 엄마.
“윤수야! 윤수야! 정신 차려! 윤수야!”
미래의 영상을 보고 온 윤수의 눈동자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엄마한테 안겨 울기 시작한다.
“엄마…… 나 무서운 꿈 꿨어.”
“응?”
“나 때문에 엉아 죽어. 계속 죽어. 나랑 백현 엉아랑 같이 있으면 나 구하려다가 엉아가 계속 죽어.”
그게 무슨 말인지 아는 정선희.
미래의 영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신비한 능력.
정선희가 아들을 품에 안은 채, 아들을 위로하며 말했다.
“안 죽어. 여기 형아, 살아 있으니까 울지 마. 알겠지?”
“응.”
그때,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래마을 방향으로 가실 분! 5분 뒤에 출발할 겁니다. 합류하실 분,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사당역 부근으로 같이 가실 분! 얼른 오세요! 5분 뒤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런 목소리에 최복자 할머니가 김만철의 부축을 받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꼬마야.”
“응.”
“가야지? 엄마랑 어디로 가야 하는지 영상 봤지?”
“응. 사당역 방향으로 갈 거야. 그래야 해.”
“그래. 할미는 서래마을 쪽으로 갈 거야. 나중에 보자.”
“응. 할머니! 나중에 봐.”
“그래. 그래그래.”
최복자 할머니의 말에 김만철이 90도로 고개숙여 인사했다.
“영상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최복자가 강백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청년 따라가는 거지?”
“네. 제 목숨 걸기로 약속했습니다. 일단은 백현이가 말한 게 걸려서요.”
“그래. 나중에 보자고.”
“네. 조심히 가십시오. 그리고 꼭 살아남으세요.”
“총각도 살아남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윤수가 정선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 인사! 할머니한테 작별인사.”
“감사했습니다.”
“그래. 서운해하지 말고. 자네한테는 일부러 안 보여준 거야. 결정 장애가 있는 자네가 미래예지영상을 봤을 때,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테니까. 아들 말을 믿어. 그리고 윤수 말대로 행동해. 그럼 나중에 또 나를 볼 수 있을 테니.”
“네. 알겠습니다. 할머니, 조심히 가세요.”
“그래. 나중에 또 보자고.”
할머니가 손을 들며 서래마을 쪽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윤수가 엄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 우리도 지금 가야 해! 지금 안 가면 형아 죽어. 지금 가야 아빠 만날 수 있어.”
“응. 그래.”
정선희가 고개를 돌려 30대 남성을 쳐다보았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남성.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다.
“만철 씨, 감사했어요.”
“아닙니다. 덕분에 저도 살아남았는걸요. 조심히 가십시오.”
“네. 나중에 꼭 다시 봬요.”
“네. 그래야죠.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정선희가 박윤수의 손을 잡고 사당역 방면으로 가는 일행에 합류한다.
정신을 잃고 곤히 자고 있는 백현.
그를 옆에서 지키는 김만철.
이제는 그들 일행은 뿔뿔이 흩어지고 둘만 남았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김만철에게 말했다.
“혹시 일행 있으십니까? 없으시면 저희랑 합류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네?”
“아까 보니까 그쪽 분은 엄청나게 빠르신 것 같고, 다른 분은 기둥 같은 것을 만들던데, 같은 방향이면 합류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능력이 어떻게 되시죠?”
“저는 텔레포트 능력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