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6화 (6/200)

6화. 회전문

꼬마의 능력은 대단했다.

‘미니맵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잖아.’

상처만 치료하는 게 아니다.

능력 자체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다행히 1층은 안전했다.

문제는 밖으로 나가려는 곳.

자신만의 고유기능, 미니맵을 사용한 백현은 고개를 저으며 일행에게 말했다.

“병목 현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이번엔 뭔데? 뭐가 있는데?”

만철의 말에 강백현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회전문입니다.”

회전문, 바깥에서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만들어놓은 회전문.

보통 대형마트는 회전문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고급화 사업을 추진한 대형마트.

그래서 다른 곳과 달리 회전문이 있다.

그렇다고 회전문이 없는 곳으로 빠져나가려니, 한숨이 나온다.

그러한 출구는 단 한 곳.

3층의 주차장을 통해, 자동차가 이동하는 주차타워로 나가는 길뿐이다.

강백현은 후회했다.

처음부터 주차타워로 나갔어야 했다.

젠장! 젠장! 젠장!

2층에는 쥐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사마귀도 있고, 청소기도 있다.

그 위험한 구간을 다시 극복하라고? 안될 말이다.

더구나 방사능 오염구역은 점차 접근하고 있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탈출해야 할 때.

백현은 일단 일행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저는 일단 회전문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가자!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밖에 없어.”

회전문 앞까지 거리 약 60m.

환산거리는 약 3km.

60분 동안 강행군을 통해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던 장소.

일행 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이도 있었기에 시간은 더 걸렸다.

백현의 말대로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으……으으윽!”

꼬마 녀석이 울었다. 그러자 그녀의 엄마가 아들을 달랜다.

“윤수야. 눈 감아.”

“응.”

회전문 바닥에 붙어 있는 먼지 제거용 솔.

거기에 깔려죽은 수십 명의 사람들.

그들의 시체는 쉬지 않고 360도 회전하는 회전문에 의해 뭉개지고, 쓸려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 한다.

왜?

경고 메시지가 떴기 때문에…….

[방사능 오염까지 앞으로 13시간 11분 남았습니다.]

저게 거짓이 아니란 것을 경험했기에,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것이다.

체력이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10대부터 40대 남성들.

그리고 운동에 일가견이 있는 여성들.

그들은 회전문 경계선에 서서, 4개의 회전문 유리벽이 지나치는 순간을 통해 최대한 빨리 달려나가 바깥으로 탈출한다.

“100m 15초 안에 뛸 수 있는 사람은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용기 내서 탈출 합시다.”

100m, 15초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걸 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탈출할 수 있다.

사람들은 한 명씩 대기하며,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한 남성.

그는 자신의 뒤 순서인 여성에게 입맞춤을 한 뒤, 회전문 유리벽이 지나가자, 뒤따라 뛰기 시작했다.

신체 건장한 남성.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는 온 힘을 다해 질주, 바깥으로의 탈출에 가볍게 성공했다.

탈출한 그가 바깥에서 외쳤다.

그 외침이 들리진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수 있다.

얼른 오라고! 뛰어 오라고!

바깥에서 손짓하는 그 남성.

그 남성의 애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다음 회전 유리문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녀 앞을 지나가는 유리문.

그녀가 할 행동은?

용기를 내어 뛰어가는 것.

그러나 남자와는 달리 운동신경에는 영 꽝인 그녀의 뒤쪽으로, 4갈래로 갈라진 회전문의 다음 유리문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아아-아악!”

그러자 회전문 바깥 남성이 그녀에게 소리 지른다.

“더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으으윽, 무……서워! 무서워!!!!”

“서현아! 서현아! 더 빨리! 더 빨리 뛰어야 해!”

그러나 결과는…….

푸슉!

찌이이익!

회전문 솔에 여자의 다리가 걸리고, 그녀의 몸이 회전문에 쓸려나간다.

여자의 깔린 신체에서 피분수가 흘러나온다.

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죽었어.’

그리고 남자의 절규.

“으아아아아악! 서현아! 서현아! 으아아아아악!”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바라보던 최복자 할머니는 굽어진 허리를 만지며, 남편에게 말했다.

“이리 좀 와봐.”

“왜, 뭐 때문에?”

“봐야지. 죽나, 안 죽나. 보고 말해. 다른 길 있으면 또 말해주고.”

“알았어.”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할머니 곁으로 걸어갔다.

점, 미래예지.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점을 봐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일순간 굳는다.

“왜 그래? 뭘 봤는데?”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말해.”

“저 청년 따라가면 돼. 당신이 점 본 게 효과가 있었나봐.”

“진짜지? 그게 당신이 본 거 맞지?”

“…….”

그때, 백현이 모두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일단 여성에게 말했다.

“윤수, 울음 좀 멈춰주세요.”

“응.”

그리고 그가 할머니를 바라본다.

“최복자 할머니!”

“응?”

“제가 다 구할 수 있어요.”

최복자는 강백현의 말에 희망을 품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한 적도 없는데, 녀석이 알고 있다.

그건 미래예지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남는 광경을 목격한 게 틀림없었다.

할머니가 강백현을 믿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를 믿었다.

그 청년이 모두에게 말을 건다.

“그런데 모두의 힘이 필요해요.”

대체 무엇을 봤길래? 어떤 걸 봤길래?

백현의 알 수 없는 말. 그의 설명을 듣기 위해 일행들이 뭉친다.

일행들은 백현의 작전 설명을 들었다.

“할머니의 점을 통해, 제가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을 봤어요. 방법은 간단해요. 제가 보호막으로 회전문과 유리벽 사이를 막아 회전문의 움직임을 20초 정도 멈출 수 있어요.”

“20초? 20초면…….”

“네. 모두가 건너고도 충분한 시간이죠. 그리고 윤수야!”

백현의 말에 꼬마 박윤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웅!”

“너, 능력 이제 한 번밖에 사용 못하지?”

“응. 맞아.”

“그래. 너한테 모든 게 달렸어.”

강백현, 그는 자신의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직 스무 살인 청년은 똑똑했다.

위기 상황임에도,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만철은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청년의 모습을 비교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녀석, 뭐지?’

자신의 아버지를 구했던 청년.

그리고 자신에게 훈계하던 녀석.

그런 녀석이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아가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에서, 녀석은 태연한 표정으로 남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

‘강백현, 너는…….’

강백현의 작전 설명이 끝났다.

그는 각자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모두가 실현 가능한 작전이라며, 안도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일행을 쳐다보는 박일동 할아버지.

아내의 능력으로 미래를 본 그는 홀로 씁쓸한 표정을 삼켰다.

* * *

작전설명.

백현은 다시 한 번 일행에게 당부했다.

“말씀드린 대로 먼저 저하고 만철이 아저씨가 건너갈 겁니다. 윤수는 아저씨가 업고 뜁니다. 가능하시죠?”

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체력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근육형 체형, 운동에 소질 있는 파이터.

권투사라는 직업답게 체력이나 스피드 면에서는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 김만철이 듬직하다.

백현은 호리호리한 체형이었지만, 아직 어린 20살답게 자신의 몸만 가눈다면 100m를 15초 안에 뛰는 것은 문제없었다.

회전문이 다가온다.

스르르륵.

너무나 작은 3cm, 죽은 사람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먼지털이용 솔이 바닥을 쓸고 지나간다.

윤수가 말했다.

“엄마! 먼저 간당!”

“그래.”

김만철이 백현에게 말했다.

“지금이야!”

“네!”

둘은 빨랐다. 100m를 12초에 주파할 수 있는 실력.

윤수를 등에 업는다고 그 속도가 그렇게 많이 줄진 않는다.

백현은 알았다.

모두가 산다. 3명 모두가 이 회전문을 극복할 수 있다.

할머니가 보여준 영상 그대로가 재현되었다.

15초라는 시간.

3명에겐 충분한 여유.

타닥타닥!

불타는 발바닥.

거침없는 달리기.

어느덧 출구.

모든 것을 쏟아낸 두 사람.

순식간에 몰아치는 숨.

“헉헉…… 헉헉.”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넘어가는 유리문.

그래도 가장 위험한 구간은 넘었다.

“우와! 아저씨! 우리 살앙덩! 살았당!”

“헉……헉. 그래!”

번지는 미소. 김만철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백현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네. 수고하셨어요.”

그들을 환호하는 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그들 또한 회전문을 통과한 사람들.

『와! 생존자다!』

『살았다.』

『고생 많으셨어요.』

여기저기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절망적인 상황. 주변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정신이 무너져버렸을 테니까.

그래서 그들을 밝은 면만 보려고 노력했다.

살아나갈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생존자들을 격려하는 것이 그들에겐 최선이었을 테니까.

숨이 진정되자 백현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든 삶을 체념한 듯한 그 표정.

“아저씨.”

“어?”

“재현아파트 103동 102호.”

“그게 뭔데?”

“저희 집 주소요.”

김만철은 그의 표정에서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그걸 왜 말하는데?”

“여기 제 동생이 살아요.”

“동생?”

“네. 하나뿐인 가족, 미나요. 혹시 저 죽으면 아저씨가 미나 찾아줘요.”

“그걸 지금 왜 말해? 너 살 거야. 살 수 있어.”

백현이 멋쩍은 듯 웃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제 동생이 죽으면 여기 사람들 다 죽거든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지켜줘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상황에 농담이 나와?”

백현은 그의 대답에 정색하며 말했다.

이제 약속한 시간이었다.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백현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간 됐네요.”

“그래.”

백현이 반대편에 손을 흔들었다. 약속의 신호.

이제 다음 유리문이 지나가면 저들은 목숨을 걸고 뛰어올 것이다.

4분면으로 된 회전유리문 가장 끝자리에서 대기하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기 위해, 가장자리에서 유리문이 지나가면 바로 뒤따라 뛰어가기 위해서.

스르르륵!

유리문이 지나간다.

유리문 밑 먼지 제거용 솔에서 사체의 썩은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상관없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뛰었다.

윤수 엄마 정선희와 박일동 할아버지, 그리고 최복자 할머니가 움직인다.

그런 3명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반대편 유리문.

두 남자와 꼬마아이.

백현이 보호막을 만들어낸다.

그 이유는 밀려오는 회전문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단순히 만들어내는 수준이었으면 회전문을 막진 못했을 것이다.

현재 보호막 Lv2.

정선희의 능력에 의해 보호막의 Lv이 1단계 증폭된 상태.

그래서 자유롭게 보호막의 크기를 변형시킬 수 있다.

기둥이 세워진다.

10cm 높이는 되어 보이는 보호막 기둥.

원래라면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물이 텅! 소리와 함께 유리문을 막는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

버틸 수 있는 것은 1초에 불과했다.

보호막에 균열이 생겨난다.

박일동 할아버지와 최복자 할머니는 알았다. 반대편에서 사활을 걸고 자신을 살리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최선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신체능력이 문제였다.

할아버지 나이 73세, 할머니 나이 72세.

마음먹은 대로 신체가 움직여지지 않는 나이.

할아버지가 최선을 다해 움직이면서도 자신의 50년 인생을 함께 한 반려자를 구박했다.

“할멈! 빨리 뛰어. 그러다 세상 하직할라.”

“이놈의 영감탱이가! 늙더니 노망이 들었나!”

남들이 보기엔 티격태격. 그리고 뒤뚱뒤뚱.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두 사람.

그때 윤수 엄마 정선희가 말했다.

“거의 다 왔어요. 힘내세요.”

반 이상 극복한 상황.

유리문이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 갑자기 뛰어서일까? 최복자 할머니가 넘어지고 말았다.

“할머니!”

정선희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지만, 최복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 얼른 가! 이러다 다 죽어. 아들 생각혀!”

“할머니…….”

갈팡질팡, 유리문은 반대편 기둥에 막혀, 텅텅! 소리와 함께 움직였다 섰다를 반복하며 접근하는 중.

그때 구세주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김만철.

“제가 할머니 업고 뛰겠습니다. 빨리 뛰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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