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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m헌터-5화 (5/200)

5화. 대형마트 (3)

‘방사능? JB1513? 이게 도대체 뭔데?’

백현은 시스템 메시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방사능 오염, JB1513. 그리고 경고.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어.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미니맵? 미니맵인가?’

그가 양손을 벌리며 미니맵을 축소시켰다.

그러자 광활한 지역이 시야에 포착된다.

양팔을 이용해 또 한 번 축소시켰다.

그러자 정사각형으로 각 구역이 나뉘고, 그 구역마다 횡축, 종축으로 번호가 매겨져있는 게 보인다.

J15, B13. 그 구역이 바로 그가 있는 장소.

그리고 미니맵 오른쪽 하단에 적혀 있는 작은 글씨.

JB1513.

‘JB1513? J15과 B13으로 된 구획을 말하는 거야. 여기가 방사능에 오염된다는 걸 경고 메시지로 보여준 거야.’

그러고 보니, 미니맵 상에 뭉게구름 같은 게 보인다.

백현은 멀리 떨어진 뭉게구름이 있는 미니맵을 선택했다. 그러자 뭉게구름이 있는 장소 하단에 이런 메시지가 쓰여 있다.

[방사능 오염지역]

“…….”

할 말을 잃었다. 사실이었다니…….

기억났다. 동생이 썼던 설정.

방사능 오염지역.

뭉게구름 같이 이동하는 안개.

그는 동생과의 과거 대화를 떠올렸다.

* * *

“미나야. 방사능 오염지역? 이런 걸 왜 소설에 넣었어?”

“이런 거 없으면, 그냥 다 숨으면 되잖아. 그럼 긴장감 없어서 무슨 재미가 있어. 가만히 있으면 죽여야 돼. 안 그러면 그분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분?”

미나는 마치 이중인격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성격이 바뀌는 그런 부류.

“끼아아악! 싫어. 오빠! 저리 가! 가! 가버려!”

익숙했기에 그녀가 소리 질러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미나야……. 왜 그래? 갑자기 왜 그러는데…….”

“오빠가 이상한 거 물었잖아. 묻지 마. 나한테 그런 거 묻지 마!”

“알았어. 미안……. 화 풀어. 오빠가 미안해.”

“흐윽…… 흐윽……. 오빠. 나 괴롭히지 마.”

“그래. 침대에 누워. 미안해. 나가 있을게. 그러니까 화 풀어. 응?”

* * *

재미있다고 했지? 넌 사람이 죽는 이 상황이 재미있니?

미니맵 상의 구름은 이곳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곧 이 장소에서 탈출해야 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방사능에 노출되어서 목숨을 잃을 것이다.

백현은 허망한 표정으로 주저앉아있는 김만철에게 말했다.

“아저씨, 여기 있으면 죽어요.”

“…….”

“아저씨! 아저씨!”

“…….”

“여기 있다간 죽는다니까요?”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뭘 해야 할까?”

“뭘 하긴요. 살아야죠. 살아남아야죠.”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아직 어린 청년의 얼굴엔 비장함이 깔렸다.

그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챙겨주었던 남자를 나무랐다.

“아저씨,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뭐라고 했어요? 살아남으라고 했죠? 여기서 혼자 있으면 죽어요. 쥐한테 죽거나, 사마귀한테 죽거나, 청소기에 빨려죽거나, 그게 아니면 방사능에 노출돼서 죽겠죠. 할아버지가 그걸 원할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모르면 움직이세요. 그리고 고민하세요.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유언, 잊지 마세요. 전 이만 제 갈 길 가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기로 결심한 청년.

하지만 그는 예외.

자신을 구해주고 챙겨주었던 남자.

그런 그가 백현을 향해 말했다.

“기다려!”

“…….”

그의 부름에 백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다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나도 너랑 같이 간다. 아버지 말씀대로 살 거야. 그러니까 같이 가.”

“잘 결정하셨습니다. 그럼 가시죠.”

“그래. 잠깐만…….”

그는 아버지와 형이 죽었던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다음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절을 올렸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아버지……. 그리고 진철이 형.’

그의 마지막 인사.

백현은 김만철 아저씨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 * *

강백현과 김만철, 두 사람은 에스컬레이터 방향으로 향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그곳에는 곤충도, 쥐도 없으니까.

신기한 기능, 미니맵.

그러나 단점도 있다. 그건 제한시간.

스르륵…… 사라지는 허상지도.

[미니맵 사용시간을 초과했습니다. 24:00 이후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일일 사용시간 30분]

‘사용제한 시간이 있었다니……. 이 중요한 능력을……. 내가 너무 안일했어.’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지금 와서 후회해본들 소용없다.

웅성웅성.

너무나 많은 사람들.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질서를 지키며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질서정연하게 사람들을 통제했다.

“자자! 여러분 겁먹지 마시고! 한 번에 극복하셔야 합니다. 눈 딱 감으시고 도움닫기를 해서 뛰시면 되겠습니다.”

에스컬레이터 발판은 15도 경사를 이루며 하강하며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에스컬레이터가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래서 발판에 올라타기만 하면 수십 미터는 되는 거리를 금방 극복할 수 있고, 1층으로 손쉽게 내려갈 수 있다.

문제는? 복도와 에스컬레이터 발판과의 간격이 무려 5cm.

그 사이 공간은? 안타깝게도 낭떠러지다.

원래 인간 크기로 환산하면 2.5m를 멀리 뛰기 해서 에스컬레이터 발판에 올라타야 한다.

그런데 2.5m라는 게 쉬운 거리가 아니다.

성인 남성에게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지만, 노인이나 아이들 그리고 운동이 부족한 성인 여성들에게는 크나큰 위험이 따른다.

백현 또한 남들과 나란히 서서 자신이 뛸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 그의 곁에는 김만철이 있다.

“아저씨, 뛸 수 있겠어요?”

“그래. 난 가능할 것 같다.”

“저도 저 정도는 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앞에서 문제가 터졌다.

“으아아아아악!”

한 남성이 도움닫기를 하다가 미끄러져 복도와 에스컬레이터 발판 밑으로 떨어진 것.

그 결과는? 당연히 사망.

그리고 옆에서 용기를 내어 뛴 여성도 발판을 잡지 못하고 놓치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아아악!”

10초도 안 되어 연달아 사망한 남자와 여자.

그러다보니, 신체적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도 겁에 질려 용기를 내지 못한다.

갈팡질팡.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우는 사람들도 있고, 삶을 포기하고 구석에 앉아 허망하게 주변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는 한편, 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에스컬레이터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현과 김만철도 그런 부류였다.

“아저씨, 제가 먼저 뛸게요.”

“그래. 곧 따라가마.”

도움닫기를 통해 에스컬레이터 발판으로 뛰기 위해 뒤쪽으로 움직인 백현.

그러나 운이 나빴다.

“쥐! 쥐들이 나타났다!”

사람 인기척이 없어진 것을 보고 옥상 배관 등을 통해 내려오는 쥐들.

눈에 포착된 것만 해도 4마리.

그것들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입에 물기 시작한다.

“뛰어! 뛰어! 모두 뛰어!”

사람들이 동시에 에스컬레이터로 뛰기 시작하고, 백현도 그들에 맞춰 뛰려는 순간, 김만철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아저씨?”

“지금 저쪽이랑 뭉쳐 다니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야. 일단 상황을 보자.”

그의 말이 맞았다.

준비되지 않은 긴박한 위기에서의 도약.

사람과 사람들이 부딪히고, 충돌하는 그 상황.

불과 30초 만에 50여 명 중 15명이 에스컬레이터와 복도 사이의 공간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쥐들이 이상했다.

갑자기 자신들이 먹던 사람들을 버리고,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때, 울리는 방울소리.

『딸랑딸랑…… 딸랑딸랑.』

그 녀석이 울었다.

“니야아아아옹!”

백현은 겁에 질려 있었다.

쥐와 고양이.

그 크기 차이 약 10배.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크기 차.

김만철 또한 범접할 수 없는 녀석을 보며 뒤로 살살 물러났다.

“도망……쳐야 해.”

하지만 백현은 그러지 못했다.

뒤에서 울고 있는 아이와 엄마.

남들이 뛰고 있을 때, 몸이 약해 넘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들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자신은 가지고 있었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자 결심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남을 짓밟고 살아남는 게 좋은 일일까?

그게 백현의 마음.

고양이가 자신 쪽으로 다가왔다.

백현은 그걸 보며 곧바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 양팔을 벌리며 보호막을 형성했다.

『땅! 땅!』

고양이의 발톱에도 뚫리지 않는 보호막.

다행이었다.

보호막의 강도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있다.

‘내가 크기와 강도를 조종할 수 있어?’

팔을 벌리고, 좁힘으로서 보호막의 크기가 늘어나고 좁아진다.

보호범위가 늘어나면 강도가 낮아지고, 보호범위가 좁아지면 강도가 높아진다.

백현은 자신의 보호막을 알맞은 범위로 넓혔다.

그러자 아직 에스컬레이터를 건너지 못한 사람들까지 고양이로부터 잠시 동안 안전을 확보했다.

백현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 여성은 아이를 업은 채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살았어.”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건 강백현의 체력.

보호막 유지를 하면 할수록 체력 소모가 심해진다.

그걸 보며 아이가 백현에게 다가갔다.

“엉아…… 치료. 내가 치료할 수 있엉.”

“어?”

아이의 손에서 녹색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백현의 지친 몸이 순식간에 회복된다.

그걸 본 김만철이 놀란 눈으로 아이의 엄마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능력이…….”

“네. 윤수의 능력은 치료예요.”

“혹시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윤수는 김만철의 말에 자신의 능력을 말했다.

“윤수는 죽은 건 못해. 살아있는 것만 치료할 수 있엉.”

실망, 자책.

윤수를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

하지만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

그래도 윤수가 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백현아.”

“예.”

“내가 처리하마.”

“네? 고양이를요?”

“그래. 보호막 좀 풀어.”

“죽을 수도 있어요.”

“괜찮아. 난 잃을 게 없는 놈이야. 지금 이대로는 시간 끌기밖에 안 돼. 내 말대로 해.”

“……알겠습니다.”

백현과 김만철의 의견이 일치했다.

김만철은 자신의 주먹에 기운을 담았다.

그리고 앞서 나갔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만철을 향해 고양이가 발톱을 휘두른다.

30대 중반의 그는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했다.

자신의 양팔을 믿고, 진심으로 펀치를 날렸다.

- 팡!

고양이의 발톱과 김만철의 강화된 팔이 부딪혔다.

치이익!

찢어지는 인간의 근육.

그와 동시에 발톱이 바스라지는 고양이.

“니야아아앗!”

고양이는 놀랐다. 조그마한 존재에서 나오는 강력한 힘.

자신과 맞붙을 수 있는 힘.

이 조그마한 생명체가 엄청난 괴력을 발휘한다.

물론 김만철의 힘은 온전히 혼자만의 능력은 아니었다.

윤수의 엄마가 뒤에서 김만철에게 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번에는 백현이 놀라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줌마?”

“내 능력은 증폭, 타인의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어.”

그때 고양이가 김만철의 왼쪽을 노린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격이 어떤 벽에 의해 가로막힌다.

“아저씨! 제가 왼쪽은 방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싸우세요!”

보호막.

그건 반드시 원형으로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손으로 찰흙을 빚듯, 백현의 손바닥에 의해 보호막의 형태가 일종의 벽도 되었다가, 공도 되었다가 타원도 된다.

그것 또한 윤수 엄마의 능력 때문.

증폭으로 강화된 보호막이 고양이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고양이는 똑똑했다.

이길 수 없겠다고…….

한 명 한 명은 약하지만, 그 녀석들이 뭉치면 까다롭다고.

그래서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겁에 질려 도망부터 친 사람들은 대부분 추락해서 목숨을 잃었지만,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은 백현과 만철, 윤수와 윤수 엄마의 활약으로 목숨을 건졌다.

“청년 덕분에 살았어.”

“아닙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다치신 데는 없으시죠?”

“그래. 없어. 우리는 괜찮아.”

할아버지는 괜찮다며, 백현의 손을 양손으로 잡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상대방의 직업은 현재 능력으로 간파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은 김만철.

“고마워……. 정말 고마워.”

“아닙니다.”

[상대방의 직업은 권투사입니다.]

상대방의 직업을 알 수 있는 할아버지.

그는 고민에 빠졌다.

‘간파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아내를 불렀다.

“할멈…….”

“응?”

“저 친구 점 좀 봐줘.”

그가 강백현을 가리키자, 할머니가 백현에게 다가온다.

“……저기…… 학생…….”

“네. 할머니.”

“잠깐만…… 이리 와봐. 점 좀 봐 줄 테니까.”

“네? 점이요?”

할머니의 직업은 점술사.

그녀의 능력이 발휘되자, 강백현의 얼굴에는 착잡한 얼굴이 떠올랐다.

“봤어? 나는 몰라. 나한테는 안 보이니까.”

강백현은 곧바로 표정을 지우고, 할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네. 할머니, 감사해요. 저한테 그 능력을 써주셔서요.”

“무슨 이미지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됐어. 목숨 살려준 값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네. 할머니, 정말 감사해요.”

강백현은 할머니의 능력을 보며, 윤수에게 말했다.

“윤수야.”

“엉.”

“형, 한번만 더 치료해줄 수 있지?”

“응! 할 수 있어.”

“그래. 형이 다리 만들어 줄 테니까, 치료 한 번만 부탁해.”

“응!”

“아줌마도 제 능력 증폭 좀 부탁드릴게요.”

할머니의 능력을 통해 에스컬레이터 건너는 방법을 알아낸 백현.

그의 손에서 얇은 보호막이 펼쳐진다.

그 보호막은 다리가 되었다. 복도와 에스컬레이터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그것을 보며 백현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다른 분들! 모두 지금 빨리 건너세요.”

백현의 환한 얼굴.

그것을 보며 잠시나마 미소를 띠운 사람들.

그리고 백현의 상태창에 뜨는 메시지.

그는 그 메시지를 통해, 그들의 이름이 방금 전 함께했던 사람들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박윤수의 호감도가 30 상승했습니다.]

[정선희의 호감도가 45 상승했습니다.]

[박일동의 호감도가 44 상승했습니다.]

[최복자의 호감도가 47 상승했습니다.]

[김만철의 호감도가 56 상승했습니다.]

백현이 씩 웃었다.

모두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한 그들.

에스컬레이터 구간은 그렇게 그들의 협동에 의해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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