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대형마트 (2)
약 40m의 거리가 남았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면, 30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
형제는 교대를 했다.
이제 김진철이 자신의 아버지를 업고, 그 옆을 며느리가 따르고 있다.
그리고 김만철은 뒤쪽에서 강백현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걷는 동안 강백현은 김만철 아저씨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아저씨! 능력은 어떻게 쓸 줄 알게 되셨어요?”
“뭐? 너도 능력 사용하잖아.”
“그냥 다 같은지 궁금해서요.”
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설명했다.
“홀로그램이 알려주잖아. 형하고 나는 그렇던데? 속으로 능력명과 레벨을 외치면, 홀로그램이 나와. 그 녀석이 하는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면 돼.”
홀로그램?
백현은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속으로 능력명을 외쳤다.
‘보호막, 레벨 1.’
그러자 백현의 옆에 자신만 볼 수 있는 홀로그램이 나온다.
푸르스름한 형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얼굴.
갑자기 녀석이 기술을 시전한다.
두 손을 장풍처럼 모아, 하늘로 올리고, 그것을 서로 다른 양팔 방향으로 벌리는 동작.
그러자 녀석의 주변에 반투명한 보호막이 녀석의 몸을 감싼다.
‘저게 보호막?’
40m를 걸어가는 동안 김진철과 김만철 형제는 아버지를 번갈아가며 업었다.
다들 목숨을 걸고 살아남기 위해 뭉친 사람들.
다행히 형제간에 우애가 깊어 보인다.
“아버지, 피곤해보이시는데 주무세요.”
“괜찮……아.”
“아니에요. 눈 감으세요. 제가 업고 끝까지 모실게요.”
“…….”
백현은 잠시 미니맵을 돌려 자신의 동생이 있는 곳을 확인해보았다.
여전히 집 안에 있는 여동생.
‘미나야. 기다려. 데리러 갈게.’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잠시의 빈틈 사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생쥐.
지금의 인간에겐 마치 폭주기관차.
녀석의 등장에 김진철이 자신의 입에서 불을 쏘았다.
화염구가 정확히 생쥐를 향해 날아가는데, 녀석은 똑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지 않았다.
“젠장! 젠장!”
김진철……. 그의 어깨가 갑자기 푹 늘어진다.
순식간에 흐르는 땀.
능력 사용의 부작용.
급격한 피로감, 두통, 체력저하.
순식간에 방향을 틀고, 다시 돌진해오는 검은 갈기털의 괴수.
녀석이 아버지를 업고 있는 김만철을 향해 달려왔다.
김만철 또한 당황했다. 지금 노인을 업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랬기에. 순간 당황하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강백현은 직감했다.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을.
능력을 사용할 때라는 것을.
그의 손이 하늘방향으로 모아진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반투명한 장벽을 만들어낸다.
홀로그램으로부터 배운 동작을 그대로 시전하는 백현.
『깡!』
쥐는 돌진하다 말고, 투명한 보호막에 부딪히며,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돌진.
『깡!』
그럼에도 보호막은 부서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데! 쥐는 영리했다.
보호막 내에 들어오지 못한 한 사람이 보인다.
그녀가 울부짖었다.
“꺄악! 살려! 살려줘!”
그녀의 비명에 김만철이 자신의 아버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뛰어나갔다.
“형수님! 형수님!”
그러나…….
찍! 찍!
그녀의 팔을 입으로 덜컥 문 생쥐.
녀석이 그녀를 공중으로 들어, 바닥으로 메다꽂고.
하늘에 떠오르는 신체.
그리고 툭!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녀의 왼팔을 쥐가 재빨리 움직여 이빨로 낚아챘고.
여인의 팔에서는 피분수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김만철은 흥분했다.
그의 휘두른 용기의 펀치가 쥐를 향했다.
하지만 쥐는 더 이상 인간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찍찍! 찍찍!』
팔 하나를 날름 집어 사라지는 녀석.
그때, 주저앉은 여성에겐 그녀의 남편이 숨을 몰아쉬며 다가간다.
“여보! 여보!”
금방이라도 쇼크사로 죽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멀쩡하고.
그녀는 웃음까지 짓는다.
백현은 알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상황 파악을 위해 나섰다.
그때, 떠오르는 메시지.
[주인공 강백현에 대한 윤진옥의 적개심이 포착되었습니다.]
‘뭐지? 새로운 능력인가? 적개심,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는 뭔데? 적개심? 자기 다친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시스템 메시지로부터 나온 정보.
100% 신뢰하기에는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
그러나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믿는 것은 좋지 못한 선택이니까.
더구나 그녀는 자신이 조심하기로 마음먹은 상대.
얼굴에 창백한 기운이 감도는 그녀가 남편을 향해 말했다.
“데려와.”
“…….”
“나 이대론 죽어. 죽게 둘 거야?”
“알았어.”
“알았으면 지금 당장 내 옆에 데려와. 시간이 얼마 없어.”
“응. 연기 잘 해! 알았지?”
남편과 아내 사이의 말.
아내가 눈을 감고 남편에게 기대자, 소리치는 진철.
“여보! 여보! 눈 떠! 죽으면 안 돼!”
그러자 다가오는 사람들.
김만철은 노인을 업은 채로 걸어가고, 백현 또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러 이동했다.
백현이 다가오자, 아내를 부축하고 있던 김진철이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또 다시 뜨는 상태창.
[주인공 강백현에 대한 김진철의 적개심이 포착되었습니다.]
강백현은 당황했다.
‘이 아저씨도? 잠깐만, 잠깐만!’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백현.
그리고 그것을 보며, 그에게 요청하는 남편.
“청년, 와서 아내 부축 좀 해줘.”
그리고 신음을 토하는 여성.
“읍…… 읍…….”
백현은 그녀의 팔에서는 흥건한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일단 눕혀야 할 것 같은데요. 출혈이 심해요. 지혈부터 하셔야 합니다.”
“괜찮아. 부축부터 해.”
“…….”
“부축부터 하라고! 너 때문에 아내가 다쳤잖아.”
“…….”
그때, 아내의 눈이 핑 돌아갔다.
힘이 빠지는 것이 보인다.
출혈에 의한 쇼크. 그리고 이어지는 건 당연히 죽음.
혈액 공급이라도 해줄 수 있다면……
하다못해 응급조치라도 할 수 있으면 살 수 있을 텐데, 그런 조치가 전혀 없는 상황.
왜? 도대체 왜? 왜 멍하니 있는 건데?
그런데 갑자기 김진철이 아내를 내려놓고 백현에게 다가왔다.
그의 행동은 놀랍게도 백현의 손목을 낚아채, 그녀 곁으로 끌고 가려는 것.
“아저씨, 지금 이게…… 뭐하시는…….”
그때, 백현의 시야에 윤진옥이 보였다.
붉은 기운이 그녀 곁을 맴돌고 있다. 그 기운은 너무나 사악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
백현은 위험을 느꼈다.
그러자 그녀가 외쳤다.
“시간 없어. 빨리! 나한테 당장! 당장!”
무슨 꼼수가 있는 게 분명했다.
백현은 당황하며, 그녀에게 남편을 밀쳤다.
보통이라면, 작은 체구의 청년에게 당하지 않을 남편이었지만, 그는 이미 지쳐있었다.
능력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몸이 지쳐있었던 것.
그녀의 몸이 남편과 닿자, 그녀가 소리 질렀다.
“아…… 안 돼! 안 돼!”
그러나 이미 발동된 능력을 취소할 순 없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죽기에, 그녀는 출혈로 인한 죽음을 막기 위해, 그에게 능력을 사용했다.
남편의 몸이 여성에게 빨려 들어간다.
온몸이 쪼그라든다.
“여보…… 놓아줘.”
“…….”
하지만 절제할 수 없는 피의 갈증.
남편의 몸에서 피를 흡수하자, 그녀의 팔에서 출혈이 멎고, 신기하게도 재생되기 시작한다.
그 후, 새살이 돋기 시작하며, 새살 안에 새로 생긴 혈관 안으로 혈액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
미끈미끈한 팔.
마치 신생아의 팔과 같은 불완전한 팔이 그녀의 한쪽 어깨에 붙어있다.
“으아아아악! 여보……. 그만…… 그만! 으흐읔…….”
비명을 지르며, 말라 가는 남자.
김진철은 아내에게 빨린 채, 자신의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백현은 생각했다.
하마터면, 저런 운명이 될 뻔했다고.
그녀의 능력은 흡혈이었다.
상대방의 피를 빨아, 자신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것.
조금 떨어진 장소.
‘어떻게 된 거야? 형수님 능력이 흡혈? 형이 죽은 거야?’
김만철은 형의 죽음을 목격하곤, 허망한 듯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소리 질렀다.
“형수님! 형수님이 형을 죽인 겁니까?”
노인 또한 자신의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 맏아들을 보며,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진철아……. 진철아…….”
김진철의 모습은 흡사 미라와 같았다.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 가죽만 남은 사내가 바닥에 너부러져 있다.
그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후, 자신을 벌레 보듯 쳐다보는 두 부자를 보며 소리 질렀다.
“닥쳐! 닥치라고!”
곧바로 백현을 향하는 시선.
그리고 덜렁덜렁, 간신히 붙어 있는 불완전한 팔이 보인다.
‘이렇게는 못 살아. 회복해야 해. 회복……. 저 녀석을 흡수해서, 팔을 온전하게 회복해야 해.’
그녀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강백현을 향해 달렸다.
백현이 당황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막을 시전한다.
손을 하늘로 향하고, 다시 주변으로 벌리며, 주변에 반투명의 막을 깔았다.
- 탕! 탕! 탕!
몇 번이나 부딪혀보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뚫을 수 없는 보호막.
그녀는 머리를 도리도리 좌우로 돌리며 소리쳤다.
“죽어! 죽어! 죽어!”
지금,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는 중년 여성.
그러나 그녀의 능력으로는 보호막을 뚫을 수 없다.
할아버지가 죽어버린 아들 곁으로 기어갔다.
무릎 때문에 걸을 수 없는 탓에 그는 기어가며, 아들의 생존을 살폈다.
“진철아……. 우리 아들, 진철아…….”
반면, 윤진옥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죽은 남편보다는 자신의 팔이 먼저.
‘남편이 죽은 건 어쩔 수 없어. 내 의지가 아니었어. 어차피 남편은 더 이상 내 곁에 없어. 그러니까! 이제 저 사람도 내 가족이 아니야.’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자신을 단 한 번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미련이 없었다.
노인을 흡수하고 불완전한 팔을 완벽하게 재생하기 위해 흡혈 능력을 사용하는 여성
그러나 그녀가 모르는 게 있었다.
그건 노인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며늘아……. 네가 선택한 게 그 길이니?”
“아버님, 저승에서 뵐게요. 곱게 죽으세요.”
노인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후, 과거 자신이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남편의 재산을 보고 결혼한 며느리.
제 남편을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는 며느리의 모습. 그는 지금 자신의 죽음을 결심했다.
윤진옥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사람 취급 안 하는 못된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신을 마치 노예, 파출부처럼 대했다.
자신의 개인 인격조차 무시하고 생각 없이 내뱉는 그 발언을 참는 것만 무려 5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로 유산까지 한 것을 과연 알고 있었을까?
이제 돌이킬 순 없다.
더 이상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아버님이 아니니까.
망할 할아범일 뿐이니까.
시아버지를 흡수하며, 팔을 회복하는 진옥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게 팔을 회복할 수 있어.’
잘려진 팔이 원형을 찾아간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 신음도 내뱉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자신의 왼손으로 가슴을 세 번 찌른다.
쿵- 쾅, 쿵- 쾅, 쿵- 쾅.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노인.
쿵쾅쿵쾅쿵쾅쿵쾅!
심장박동 수가 200을 넘어가자, 노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걸렸다.
쪼그라드는 그의 얼굴에서 아들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만철아!”
“아버지! 아버지!”
“살아남아라.”
“아버지……. 흑…… 아버지!”
『콰과과광!』
굉장한 폭발음.
그리고 흙먼지.
노인과 함께 파편이 되어 사라지는 윤진옥.
백현의 얇은 보호막에 그들의 피가 튀기고.
그에게만 보이는 미니맵 상에 두 사람의 표시가 사라진다.
백현은 드디어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직감했다.
‘이곳은 지옥이야. 착하기만 해서는 살 수 없어. 아무도 믿으면 안 돼. 믿을 수 없어.’
강백현.
그의 앞에서 좌절하는 한 사람.
순식간에 가족을 셋이나 잃은 김만철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백현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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