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대형마트 (1)
백현이 목격한 것은 마트에서만 사용하는 탑승형 청소기였다.
인간이 타고 있어야 할 청소기가 혼자서 이곳저곳을 움직이고 있다.
자율 주행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는 탑승형 청소기.
본래는 인간이 타고 있어야 하지만, 그게 없다는 게 문제.
쓱쓱싹싹.
쓱쓱싹싹.
무빙워크와 에스컬레이터도 청소 가능한 특허상품인 그 기계가 백현 일행 쪽을 향하고 있다.
지금 인간의 크기 기준으로 수백 미터짜리 청소로봇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청소기는 총 3가지 제어동작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폴리스티렌으로 되어 있는 빗이 바닥을 1차로 쓸어내고.
안쪽 증기가 2차로 쪄버리고, 내부 진공관이 3차로 빨아들인다.
그야말로 3중 트랩.
쓸려죽고, 쪄 죽고, 빨려 죽는 기계.
거기에 걸리는 순간 현재의 인간은 즉사.
일행들은 청소기의 접근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청소기에 달린 적외선 센서.
바닥 위, 먼지나 작은 물체를 감지하는 자율기능에 백현의 일행들이 노출된 것이다.
“씨바……. 도망쳐! 다들 도망쳐!”
적외선 빨간 불빛이 정확히 일행을 향하고 있었다.
불꽃 능력자, 김진철은 놀라며 아내를 붙잡고 뛰었다.
김만철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붙잡고 뛰었다.
반면, 혼자였기도 했고, 미니맵으로 상황을 먼저 인지하고 있던 백현은 이미 물품보관함 쪽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판단했다.
지금으로서는 이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는 일이 최우선.
강백현이 소리쳤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세요!”
백현의 외침을 듣고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김진철과 그의 아내였다.
숨을 헐떡이는 두 사람.
얼마나 놀랐는지,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이제 두 명만 도착하면 되는데, 일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만철과 함께 오던 할아버지가 넘어져버린 것.
그러나 김만철은 절망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위험하더라도, 아버지와 함께 살아남기를 원했다.
그래서 청소기계가 코앞까지 다가오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제가 부축할게요.”
김만철은 자신의 아버지를 부축하며 일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
“만철아……. 가. 가. 너라도 가.”
그의 상태는 심각한 상황, 무릎이 크게 부어있다.
설상가상, 청소기에 붙은 적외선 센서가 정확히 자신을 인지하고 있다.
안전한 곳에서 대피하여 지켜보고 있던 김진철, 그 또한 아버지를 외치며 달려나가려 했다.
“아버지! 아버지!”
그러나 그는 나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아내가 붙잡은 것.
“왜 그래! 당신! 놔! 놓으라고!”
“가지마. 당신 죽어. 가지 마.”
“놔! 놓으라고! 놓으라고!”
“안 놔. 죽어도 안 놓을 거야. 절대 안 돼. 절대! 절대!”
아내는 남편의 소매를 기어코 놓지 않았다. 시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남편의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자율주행 청소기계.
그것이 어느덧 코앞에 다가온다.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이 찾아온다.
이제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젠장…… 젠장!
남편이 아내의 몸을 밀쳤다.
아내가 넘어지고, 그 남자가 뛰어갔다.
아내가 절규했다.
남편이 죽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씨발……. 안 돼! 안된다고!
그런데 이미 상황은 늦은 듯했다.
자신이 뛰어가도 도저히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 남자가 보였다.
아직 어린 남성.
키도 크지 않고, 체격도 작은 녀석.
‘저 친구가?’
자신과 같이 있었던 청년이 위험을 무릅쓰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것이다.
백현이 뛰어나간 이유는 별것 없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 대한 보답.
사람이 살면서 당연히 해야 할 행동.
“아저씨, 제가 오른쪽 부축할게요! 서둘러요! 빨리! 빨리!”
“그래!”
강백현이 도와주자, 김만철은 있는 힘을 발휘하며 아버지를 들어올렸다.
왼쪽에는 김만철이, 오른쪽에는 강백현이 축 늘어진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뛰기 시작한다.
청소기와의 거리 10m, 9m, 8m…….
불빛의 적외선 레이저가 한 차례 오가고.
그 둘은 합심해서 온 힘을 다해 뛰어간다.
“후아…… 하아…… 후아…….”
다행이었다. 노인을 살릴 수 있었다.
안전장소에 대피한 강백현과 김만철이 구석에 누운 채, 숨을 몰아쉬었다.
방향을 트는 청소기계.
불빛이 꺼진 적외선 레이저.
인간이 만든 자율청소기계가 아까 목격한 사마귀 쪽을 향해 움직인다.
사마귀는 영리했다.
청소기계의 소음을 알아차리고, 구석으로 숨었다.
하지만 녀석이 물고 있던 몸만 남은 사체는 3단계 처리과정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쓰르르륵!
청소기 솔에 의해 사체가 훼손되기 시작한다.
지이이잉!
120℃의 증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곧바로 쪄지기 시작.
그 후, 쑤우웅!
진공관에서 흡입하는 고압력에 의해 순식간에 빨려 올라간다.
마치 지옥과도 같은 공간.
방금 전 백현이 나서지 않았다면, 노인과 김만철은 같은 운명이 되었을 터.
다시 장소는 물품보관함 뒤.
체력이 고갈된 두 사람이 바닥에 누워있다.
위기상황에 솟구친 아드레날린이 떨어지며, 미친 듯이 갈증이 몰려온다.
물…… 물…….
하지만 주변에 물을 찾아볼 순 없었다.
지금 당장은 지친 체력을 회복하며 이 상황에 몸이 적응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만철의 형, 김진철은 자신의 아버지를 살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래……. 나는 괜찮다. 괜찮아.”
하지만 심하게 부어오른 무릎.
아까 넘어진 탓에 뼈가 부러졌거나, 인대나 관절에 손상을 입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일어나보세요. 확인해보게요.”
“……으윽…….”
불행히도 예상이 맞았다.
할아버지는 이제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목숨은 건졌다는 것.
며느리가 뒤에서 삐쭉삐쭉 거리다가 아버님의 안위를 물었다.
“아버님, 괜찮으세요?”
“이 망할 년이!”
“네?!”
“아버지……. 지금은 그러지 마세요.”
“진철아, 네 여편네 행동을 보고도 나한테 그런 말이 나오니?”
“그래도 제 아내예요. 우리 가족이고 아버지의 며느리이기도 하고요.”
“쟤가 언제부터 며느리야? 혼수도 안 해오고!”
며느리가 주먹을 꽉 쥐었다.
혼수, 혼수, 혼수.
남편과 남편 동생 내외랑 같이 살며 시부를 모신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노인은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님……. 전 진철 씨와 결혼한 거지. 아버님의 노예가 아니에요.’
그러나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손을 꽉 잡아준 남편의 손길이 있어서였다.
20분이 흘렀다.
김진철은 초보자용 옷이라고 받은 이질적인 재질의 천을 찢었다.
천 옷. 그것으로 붕대를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서러워서였다.
이미 죽은 아내를 떠올린 할아버지.
그걸 보며 둘째 아들 만철이가 말했다.
“아버지, 저한테 업히세요. 집으로 가요. 제가 모실게요.”
“만철아, 아버지는 내가 업을게.”
“아니야. 형, 지금 엄청 힘들잖아.”
“그럼 교대로 업자.”
“응.”
두 형제의 행동과 대화에 아직 어린 20살, 백현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자신에게도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분명 저렇게 해드렸을 텐데…….
이제는 하늘나라로 간 탓에 효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저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이 살아있어서.
그런데, 두 아들과 달리 며느리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싸늘하게 굳은 그녀를 보는 백현의 얼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 * *
일행들이 향한 곳은 비상구로 연결된 계단이었다.
양쪽 에스컬레이터.
오른쪽은 올라가는 방향이고, 왼쪽은 내려가는 방향.
그런데 내려가는 방향에는 곤충들이 길을 막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을 인지할지 못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위험을 굳이 감수할 필요는 없을 터.
“계단 쪽으로 가자.”
“네.”
비상구 문은 다행히 열려 있었다.
이미 내려간 사람들도 일부 보인다.
10계단 이상 극복하며, 서로 협동하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이 생존할 방법은 이것뿐이라며, 조심조심 계단 끝에서, 자신의 몸을 던졌다.
계단의 평균 높이 16cm.
인간의 평균키 3.5cm.
환산하면 약 8m의 높이.
이건 아파트 3층 높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단의 좌측 가장자리 모서리.
다른 곳보다 올록볼록 튀어올라 있다.
그래서일까?
실제 체감 높이는 6m로 낮아진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여럿이 협동해서 극복해낼 수 있었다.
순서는 간단했다.
첫째. 계단 가장자리로 이동하여, 모서리 끝 부분을 양팔로 붙잡고, 최대한 아랫부분까지 발을 내린다.
둘째. 그곳에서 붙잡고 있던 팔을 놓는다.
셋째. 착지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받아준다.
그렇게 하면 4m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직접 받아주기에 쿠션 역할을 할 수 있어, 수십 개의 계단도 내려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백현의 일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크읍…….”
“아버지! 괜찮아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그래서일까? 좀처럼 진행이 되질 않는다.
그때, 진철의 아내가 나섰다.
“여보! 따로 이야기 좀 해.”
한쪽 구석으로 가는 두 남녀.
여성의 불만스런 표정이 가득하다.
“여보, 이대론 못 가.”
“못 가다니! 못 가다니!”
“현실을 봐. 아버님 모시고 어떻게 계단을 내려가?”
“그럼? 뭐? 버리고 가자고? 당신! 지금 그 말을 하려는 거야?”
“누가 그렇게까지 말했어? 다만, 거추장스러운 것은 사실이잖아!”
“야! 윤진옥! 너 그게 할 말이야?”
“아버님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재산이 있어? 뭐가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나한테 혼수 못 해왔다고 말하는 게 당신은 이해가 돼?”
“이러지 마. 이러지 말자. 응?”
“여보, 나도 한계야. 좀 더 안전한 방법이 있을 거야. 계단은 아니잖아. 아버님 모시고 여길 어떻게 내려가? 솔직히 나도 무서워. 다른 방법 찾자!”
그녀의 격앙된 목소리.
“그래. 다른 방법 찾아보자.”
“고마워.”
“진옥아. 난 항상 네가 1번이야. 그러니까 함께 이겨나가자.”
“응.”
상의를 마치고 둘이 돌아오자, 노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철아, 며늘아기 데리고 너희끼리 내려가라.”
“아버지!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며늘아기 말이 맞아. 난 거추장스럽잖니?”
노인의 말에 며느리 윤진옥이 대답했다.
“아버님!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뭐가 아니니? 너는 원래부터 글러먹었잖니? 시집 올 때부터.”
“아버님! 아버님!”
노인의 말에 김진철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당신, 그만해. 아버지도 그만하세요. 저희는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타고 가겠습니다.”
“그래. 형. 그게 좋겠다.”
“응. 만철이 너는 아버지 모시고 가. 나는 아내랑 대화 좀 하면서 갈게.”
“알았어. 아버지, 너무 그러지 마세요. 지금은 구조되는 것만 생각해요. 아시겠죠?”
“…….”
진철 일행은 결국 계단으로 가기를 포기했다.
대체 수단은 엘리베이터.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내려가는 버튼을 누를 사람이 없다.
엘리베이터의 버튼 높이 무려 1m.
지금의 인간의 크기를 고려할 때, 무려 30m.
아파트 약 8층 높이.
제 아무리 벽을 기어오른다고 해도, 8층 높이까지 올라가는 것은 자살 행위.
물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기에 방법을 바꿔야만 했다.
“만철아! 에스컬레이터로 가자. 이제 교대해. 내가 아버지 업을게.”
“응. 알았어. 거기 백현아?”
“네?”
“미니맵인가 뭔가 잘 보고 있어. 알았지?”
“네. 알겠어요.”
윤진옥도 남편과의 대화 이후 다시 시아버지에게 다가왔다.
“아버님, 제가 아까는 너무 흥분했네요. 죄송해요.”
“…….”
“아버지, 며느리가 사과하잖아요. 받아주세요. 네?”
“흠흠……. 그래. 이번만은 용서하마.”
다행이었다. 둘의 사과로 인해 긴장감은 어느 정도 누그러들었다.
백현은 둘을 보며 생각했다.
다행이라고.
지금 상태에서 서로 싸우면 좋을 것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