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72화 (272/272)

272화

영화제작자 이규한 “더 필요한 게 있어?”

“예전에는 몰랐는데,협회 재정 상 황이 열악하더라고.”

“그래서?”

“축하주 사 주라.”

“그거야 어렵지 않지.”

이규한이 흔쾌히 대답했을 때,장 준경이 다시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

“여러분,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저 의 협회장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이규한 대표님 이 축하연을 열어 주신다고 합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축하연에 참석해 주실 거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장준경에게 협 회장 취임식에 참석한 동료 제작자 들이 환호했다.

“와우,좋습니다.”

“이럴 줄 알고 허리띠 풀어 놓고 왔습니다.”

“사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 게 달라지네.”

그 환호를 듣던 장준경이 다시 마 이크에 입을 갖다 댔다.

“여러분,제가 아니라 이규한 대표 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야 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연호했다.

“이규한!”

“이규한 대표님 최고!”

그 연호를 듣던 이규한의 귓가에 포장마차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글로벌 호구가 여기 있었네.” 참지 못하고 실소를 홀린 이규한이 입을 됐다.

“앞으로 잘할 것 같네.” “고생했다.”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마친 안유천 에게 이규한이 수고했단 말을 건네 자,그가 물었다.

“맨입으로요?”

“돈 줬잖아. 그것도 한국 영화 역 사상 최고 각색료를 지급했는데 왜 맨입이라는 거야?”

“그래 봐야 제 수중에는 돈이 안 들어오거든요.”

“응?”

“단비에게 경제권을 렛겼습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대답하던 안유천 이 덧붙였다.

“그러니까 대표님이 맛있는 거라도 사 주시죠.”

“알았다. 고기야 언제든지 사 줄 수 있지.”

“오늘은 다른 것 드시죠.”

“다른 것? 뭐가 먹고 싶은데?”

“깜뽕이 요.”

안유천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고 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웬 짬뽕이야?”

“어제 ‘생생한 정보왕’이란 프로그 램을 보는데 깜뽕 맛집을 소개해 주 더라고요.”

“‘생생한 정보왕’은… 주로 주부들 이 보는 프로그램 아냐?”

‘생생한 정보왕’은 저녁 시간대에 하는 TV 프로그램으로,생활에 유 용한 립이나 맛집 등을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규한이 알기로 주 시청층은 주부 들.

“그래서 봤습니다.”

“무슨 소리야?”

“제가 집에서 주부 역할을 하고 있 거든요.”

“유천아.”

“그렇게 불쌍하게 보지 마세요. 이 대표님도 곧 제 뒤를 따르실 테니까 요.”

“난 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어디 한번 두고 보겠습니다.”

두 눈을 빛내며 대답하던 안유천이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생생한 정보왕’에서 소개 했던 짬뽕 맛집이 마침 이 근처더라 고요. 그래서 온 김에 한번 먹어 보 려고요.”

“그럼 가 보지 뭐.”

깜뽕 한 그릇 사 주는 게 뭐 어려 울까.

그래서 이규한은 흔쾌히 안유천의 제안을 수락했다.

약 삼십 분 뒤,이규한과 안유천은 ‘생생한 정보왕’에 소개됐던 중국집 앞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바로 중국집 안으로 들어 가지는 못했다.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 다시 삼십 분가량을 기다린 후에야 이규한과 안유천은 중국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각색한 시나리오는 어떤 것 같 아?”

“전 만족합니다. 다만 평가는 대표 님이 하시는 거죠. 그러고 보니 이 상하네요.”

“뭐가 이상해?”

“요샌 왜 그거 안 하세요?”

“뭘 말하는 거야?”

“감정이란 거요. 시나리오 책 들면 예상 관객 수를 알 수 있다고 하셨

잖아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 야.’

감정 능력이 사라진 탓에 더 이상 시나리오를 들고 예상 관객 수가 얼 마나 들지 감정을 하는 것이 불가능 했다.

그래서 속으로 대답한 이규한이 입 을 뗐다.

“유천아.”

“네,

“설마 그 말을 믿었냐?”

“완전히 믿은 건 아니지만…… “깜뽕 나왔습니다.” 마침 주문한 짤뽕 두 그릇이 도착 했다.

산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는 해산물 을 확인한 안유천이 환호했다.

“방송이랑 비주얼이 똑같네요. 벌 써 침 고이네.”

“많이 먹어라.”

“최선을 다해서 먹겠습니다.”

후르릅.

안유천이 짤뽕 국물부터 한 모금 마셨다.

“기대에 부응하는 맛이야?”

두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던 안유 천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이것은 짤뽕인가,요리인가!”

“그 정도야?”

“진짜 끝내줍니다.”

안유천의 극찬을 듣고 나자,이규 한도 짤뽕 맛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막 젓가락을 들었을 때였다.

“다시 고칠게요.”

안유천이 불쑥 말했다.

“뭘 다시 고친다는 거야?”

“시나리오요.”

“왜 갑자기……?”

“방금 기가 막힌 대사가 떠올랐습 니다.” “어떤 대사?”

“아까 대표님도 들으셨잖습니까?”

“응?”

“지금까지 이런 깜뽕은 없었다. 이 것은 짤뽕인가,요리인가! 중국집에 위장 취업 한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치면 기가 막힐 것 같아서요.”

안유천이 의욕을 불태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규한이 물었다.

“그러다 잘되면?”

“네?”

“만약에 형사인 주인공이 위장 취 업 한 중국집이 이 집처럼 짬뽕 맛 집으로 소문나면서 갑자기 장사가

잘되면 어떡하지?”

“갑자기 장사가 잘될 리가 없… 이 거 재밌겠네요.”

“응?”

“연쇄살인범을 감시하기 위해서 형 사가 중국집에 위장 취업을 했다가 중국집 사장 딸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사장 딸이 진짜 연쇄살인범이다. 이게 이 번 작품의 주요 스토리잖아요.”

“그런데?”

“확 바꾸죠.”

“어떻게 바꾸자는 거야?”

“로맨스를 과감하게 빼 버리죠.” “이유는?”

“제가 쓰면서도 별로 재미가 없더 라고요.”

“로맨스를 제외하고 난 후의 분량 은 어떻게 채울 거지?”

“짤뽕집을 운영하면 됩니다.”

“무슨 뜻이야?”

“주인공이 만든 짬뽕 맛이 기가 막 힌 겁니다. 그래서 원래 망해 가던 중국집이 갑자기 대박이 나는 겁니 다. 일손이 모자라서 형사들까지 범 인은 안 잡고 서빙하고 배달에 매달 리는 거죠. 정체성에 혼란이 느껴질 정도로 장사가 잘되면……

“재밌네.”

“네?”

“듣기만 해도 재밌다는 뜻이야.”

이규한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재 밌었기 때문이다.

“유천아, 이거 느낌이 천만각이다.” “대표님이 천만각이라면 진짜 천만 영화 되겠네요. 문제는 그래 봐야 저한테 떨어지는 게 아무것도……

신세 한탄을 하던 안유천이 도중에 말을 멈추었다.

“이 대표님,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

“인센티브,현금으로 주시면 안 됩 니까?”

“왜 현금으로 달라는 거야?”

“통장으로 꽂히면 제가 쓸 수가 없 거든요. 비자금이 좀 필요해서요.”

“비자금이 대체 왜 필요한데?”

“그건 밝힐 수 없습니다.”

안유천은 비자금의 사용처는 밝히 지 않았다. 그리고 이규한도 더 캐 묻지 않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만 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비자금의 사용처가 아 니라 안유천이 지금 비자금이 필요 하다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자.”

“어떻게요?”

“시나리오 기가 막히게 수정해 와. 그러면 내가 김 작가한테는 비밀로 하고 인센티브를 현금으로 줄게.”

“약속하신 겁니다.”

“그래.”

비자금이 필요한 안유천이 강한 의 욕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인생작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회의실 내에 는 비장한 분위기가 흘렀다.

“김 이사님.”

잠시 후,권지영이 회의실 내에 흐 르던 침묵을 깼다.

“김 이사님.” “김태훈 이사님,지금 제 말 씹으 시는 거예요?”

“아,날 부른 거였어? 미안. 아직 이사라는 호칭이 영 익숙지 않아 서.” 권지영이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김

태훈이 반응했다.

“그런데 왜 불렀어?”

“이건 반칙 아닌가요?”

“무슨 반칙?”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이 아니라 김태훈 이사님이 직접 찾아 온 것 말이에요. 반칙이잖아요.”

“에이,나도 안 오려고 그랬어. 그 런데 대표님이 날 콕 집어서 가라고 하는데 어쩌겠어? 위에서 까라면 까 야지. 내가 무슨 힘이 있나?”

“이규한 대표님과의 인맥을 활용하 시겠다?”

“성의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은데.”

“성의… 요?”

“NEXT 엔터테인먼트는 블루문 엔 터테인먼트에서 이번에 제작하는 영 화의 투자와 배급을 꼭 맡고 싶다, 이런 의지를 피력하기 위해서 투자 팀장이 아니라 임원을 직접 보내는 성의를 표시한 셈이지.”

‘한 방 맞았네.’

권지영이 초조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데이비드 윤을 바라보며 권지영이 물었다.

“윤 대표님은 왜 오셨어요?” “선배,윤 대표님이란 호칭은 많이 부담스러운데요.”

“아무리 후배라고 해도 대표님인 건 사실이니까요.”

“저도 같은 이유로 찾아왔습니다.”

“불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 는 작품의 투자와 배급을 맡고 싶어 서 찾아왔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요.”

데이비드 윤에게서 대답이 돌아온 순간, 권지영이 김태훈에게 고개를 돌렸다.

“좀 약하네요.” “뭐가 약하다는 거야?”

“성의 표시오.”

“응?”

“위너 브라더스에서는 한국 지사 대표가 직접 찾아왔잖아요. 그런데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사를 보냈으니 성의 표시가 좀 부족하다 는 느낌이 들어서요.”

비로소 말뜻을 이해한 김태훈이 쏘 아붙였다.

“그럼 로터스 엔터테인먼트는? 지 금 권 팀장이 그런 지적을 할 입장 은 아닌 것 같은데?”

“전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죠.” “비장의 카드? 뭔데?”

“비밀입니다. 명색이 비장의 카드 인데 벌써 공개하면 안 되죠.”

생긋 웃으며 대답한 권지영이 마지 막으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장인 안종열을 바라보았다.

“안 팀장은 여기 왜 왔어?”

새롭게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투자 팀장으로 선임된 안종열은 권지영의 대학 후배였기에 안면이 있었다.

“저야 대표님 지시 때문에 왔죠.”

“김대… 아,김대환 대표님은 물러 났지. 그럼 김덕원 대표님 지시로 온 거야?”

“맞습니다.”

“내가 보기엔 괜한 헛걸음을 한 것 같은데.”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블루문 엔 터테인먼트.

한동안 악연으로 얽혀 있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권지영 이 지적하자,안종열이 대답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죠.”

“관계 개선을 위해서 찾아왔다?”

“이건 대표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제 입장은 다르죠.” 어떻게 다른데?”

“굳이 비유를 하자면… 로또 당첨 을 바라고 찾아온 거죠.”

안종열의 대답을 듣고 권지영이 실 소를 흘렸을 때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규한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서며 덧붙였다.

“미리 말씀드렸듯이 이번 작품은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는 곳과 투자 계약을 맺겠습니다. 자,갖고 오신 패들을 꺼내 보시죠.”

“건배사 한번 하시죠.”

누군가의 제안을 받은 내가 건배사 를 외친다.

“현실이 시궁창일수록.”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한목 소리로 외친다.

“아름다운 영화가 태어난다.”

언제나 그렇듯 소주는 쓰다.

영화를 제작하는 일에는 인고의 시 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듯이. 그러나 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꿈과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

나는 앞으로도 이들과 함께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

언젠가 1억 관객을 동원한 최초의 제작자가 될 때까지 열심히 영화를 만들며 웃고 울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제작 자 이규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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