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예상치 못한 조력자 (1) 선례란 것은 무척 증요했다.
‘신과 같이’의 투자를 받는 것에 급급해서 8 대 2 혹은 9 대 1의 불 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면?
이후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제작사 와 투자 계약을 체결할 때, ‘신과 같이’ 케이스를 선례로 들면서 비숫 한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으려 들 터였다.
이규한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힘들 수도 있 어.”
“저도 압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투 자 유치가 무산될 수도 있겠죠.”
“그걸 알면서도 양보할 수 없다?”
“그렇습니다.”
“내가 이래서 이 대표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니까. 그리고 내가 이 대 표보다 선배이긴 하지만… 존경한 다.”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김태훈이 웃으며 덧붙였다.
“이 대표는 존경받을 자격이 있 어.” 시간은 빠르게 홀러갔다.
하루가 지나면 그 하루만큼 ‘신과 같이’의 제작이 무산될 확률이 높아 지는 상황.
왜 초조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규한은 겉으로 내색하 지 않기 위해 애썼다.
만약 이규한이 초조한 기색을 내비 친다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의 분위기도 어두워질 것임을 잘 알 기 때문이었다.
“오늘 회식 한번 할까요?”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이규한이 회식을 제안했다.
평소에는 회식을 하자는 제안에 쌍 수를 들고 환영하던 김미주였는데.
“다음에 해요.”
오늘은 달랐다.
“삼겹살 말고 소고기 먹자.”
“소고기요?”
“그것도 한우 투 플러스 등급으로 사 줄게.”
회식 메뉴를 소고기라고 알려 주자 김미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의 갈등은 오래가지 않 았다.
“됐어요.”
“왜 그래?”
“체할 것 같아서요.”
? 9”
“회사가 위태위태한 상황인데 소고 기가 목으로 넘어가겠어요?”
“그 정도는 아닌데……
“그 정도 맞거든요.”
김미주가 쏘아붙이는 것을 들은 이 규한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어렵네.’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서 애쓰고 있었지만,한계는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하다 보니 직원들도 눈치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딩동. 딩동.
그래서 이규한이 쓴웃음을 짓고 있 을 때 벨소리가 들렸다.
“이규한 대표님을 만나 뵙기 위해 서 찾아왔습니다.”
“누구시죠?”
“저는 데이비드 윤이라고 합니다.” “데이브 윤요?” “데이브 윤이 아니라 데이비드 윤 입니다. 제 이름을 말씀드리면 이규 한 대표님이 기억하실 겁니다.”
‘데이비드 윤?’
이규한이 기억을 더듬었다.
데이비드 윤이란 이름이 낯이 익은 데 누군지 퍼뜩 떠오르지 않았기 때 문이다.
잠시 후,이규한이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얼굴을 보고 나면 기억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 이다.
그런 이규한의 판단은 옳았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를 찾아온 남 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바로 데이 비드 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 문이다.
“이규한 대표님.”
“데이비드 윤,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러니까요.”
“한 십 년 만인가요?”
“얼추 그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이규한이 데이비드 윤과 반갑게 인 사를 나누었다.
데이비드 윤과 이규한의 인연은 미 국에서 시작됐다.
‘수상한 여자’를 제작할 당시,이규 한은 극중에 삽입할 ‘나성에 가거 든’이란 곡의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서 미국으로 향했었다.
당시 이규한을 돕기 위해서 가이드 역할을 해 주었던 것이 데이비드 윤 이었다.
“한국에는 어쩐 일입니까?”
“사업차 들렀습니다.”
“사업이요? 맞다. 예전에 투자사에 서 일을 한다고 말씀하셨죠?”
“맞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투자 때문에 한국에 찾아왔습니다. 참,제 가 명함을 아직 안 드렸네요.”
데이비드 윤이 명함 지갑에서 본인
의 명함을 꺼내서 건넸다.
‘위너 브라더스 코리아 대표?’
그 명함을 살피던 이규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위너 브라더스는 미국에 소재한 영 화제작 업체였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영화제 작 업체였고,영화계 역사상 연 매 출 20억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기 업이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대표작은 해리포터 시 리즈.
이규한이 직함을 확인하고 놀랐을 때,데이비드 윤이 말했다.
“위너 브라더스에서 이번에 한국 지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 지사 초대 대표로 선임됐습니 다.”
“축하드립니다.”
“아직 축하 인사를 받기는 이롭니 다. 위너 브라더스 한국 지사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작품이 성공을 거둬야 축하를 받을 자격이 생기니 까요. 그래서 이규한 대표님의 도음 이 필요합니다.”
“제… 도움이요?”
이규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데이비드 윤이 덧붙였다.
“저와 작품을 함께하기로 약속하셨 잖습니까?” ‘내가 그런 약속을 했었나?’
이규한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지만 워낙 오래전 일이라 당시 에 나눴던 정확한 대화 내용까지는 기억이 선명하게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데이비드 윤이 물었다.
“설마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발뺌 하시려는 건 아니죠?”
“발뺌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기억이 안 납니다.”
“괜찮습니다.”
“네?”
“제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데이비드 윤이 씨익 웃으며 덧붙였 다.
“그때, 제가 한국에 찾아가면 술을 한잔 사시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 다. 설마 그것도 기억이 안 나시는 건 아니죠?”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마찬가 지였다.
그렇지만 이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이규한이 흔쾌히 대답했 다.
“술은 제가 사겠습니다. 혹시 드시 고 싶은 게 있으시면……
“일단 커피부터 한잔하시죠.”
“커피요?”
데이비드 윤이 덧붙였다.
“사업 이야기부터 마무리하고 술은 편하게 드시죠.” 이규한과 데이비드 윤이 커피 전문 점 블루문에서 마주앉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데이비드 윤이 고백했다.
“사실 아까 거짓말을 했습니다.”
“어떤 거짓말을 하셨단 말씀입니 까?”
“저와 작품을 함께하기로 약속하셨 던 적은 없습니다.”
“그랬군요.”
그런 약속을 했던 기억이 전혀 남 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을 때,데이비 드 윤이 다시 말했다.
“대신 지금 약속하시죠.”
“네?”
“저와 작품 하나 하시는 게 어떻습 니까?”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살짝 당황했을 때 데이비드 윤이 덧붙였다.
“‘신과 같이‘라는 작품,제가 투자 하고 싶습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신과 같이’라는 작품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벌써 투자자를 구한 겁니까?”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데이비드 윤 에게 이규한이 질문했다.
“‘신과 같이’라는 작품에 대해 어 떻게 아십니까? 아니,‘신과 같이’라 는 작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 니까?”
“어지간한 정보는 다 갖고 있습니 다. ‘수상한 여자’ 때부터 이규한 대 표님에게 관심이 있었거든요. 특히 이규한 대표님께서 제작하셨던 ‘변 호사’라는 작품을 인상 깊게 봤습니 다. 당시에도 이규한 대표님과 함께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었지만,그때는 협업을 제안할 정 도로 제가 위치에 오르지 못했습니 다. 그리고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이규한 대표님의 작품에 투자를 할 회사들이 넘쳤고요.”
방금 이야기를 통해서 데이비드 윤 이 오래 전부터 자신이 제작한 작품 들을 관심 있게 눈여겨봤다는 사실 을 이규한이 뒤늦게 알게 됐을 때였 다.
“그래서 ‘신과 같이’라는 작품이 처한 상황이 이해가 안 갔습니다.”
“왜 이해가 안 갔다는 겁니까?”
“투자가 안 되는 게 더 이상한 일 이거든요.”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 이규한이 쓴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땐 순간 데이비드 윤이 말했다.
“저도 대충 알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윤도 이유를 알고 있다 고요?”
“네.”
“어떻게……?”
“아까 제가 ‘신과 같이’에 대해 어 지간한 정보는 다 갖고 있다고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분명히 ‘신과 같 이’의 제작비 규모는 한국 투자사에 서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어느 투자사에서도 투자를 하 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 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는 ‘부산행 열차’의 한국 내는 물론이고 해외에 서도 흥행을 성공시키면서 투자금을 회수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미 증 명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름 대로 조사를 해 봤더니 씨제스 엔터 테인먼트 김대환 대표의 입김이 작 용했기 때문이더군요.”
“많이 조사했네요.”
이규한이 칭찬하자 데이비드 윤이 환하게 웃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신과 같이’라 는 작품이 투자에 난항을 겪고 있다
는 소식을 듣고서 기뻤습니다.”
“왜 기뻤습니까?”
“덕분에 제게도 ‘신과 같이’에 투 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까
요.”
데이비드 윤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 이 질문했다.
“그 말씀은 위너 브라더스 코리아 측에서 ‘신과 같이,에 투자를 하려 는 의향이 있다는 뜻입니까?”
“맞습니다. 제가 이규한 대표님을 만나기 위해서 서둘러 귀국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위너 브라더스 코 리아 측에서 ‘신과 같이’에 투자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밝혔다.
“얼마나 투자하실 생각이십니까?”
“전액 투자를 할 겁니다.”
“방금 전액 투자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데이비드 윤은 전액 투자를 할 거 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 말을 순순히 믿기 어려웠다.
“아까 ‘신과 같이’라는 작품에 대 해서 조사를 했다고 말씀하셨지 않
습니까? 그럼 ‘신과 같이’의 제작비 규모도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300억 정도 규모로 알고 있습니 다. 제가 틀렸습니까?”
‘정확히 알고 있다?’
이규한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그런데도 전액 투자를 하시겠단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큰 금액을 전액 투자 하는 것은……
“이 대표님.”
“말씀하시죠.”
데이비드 윤이 입을 뗐다.
“그다지 큰 금액이 아닙니다.” ‘300억이… 큰 금액이 아니라고?’
데이비드 윤의 이야기를 들은 이규 한이 당황했을 때였다.
“위너 브러더스에서 작년에 제작해 서 개봉한 ‘얼티메이텀’이란 작품을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로, 국내에서도 개봉했다.
국내 흥행 성적은 저조한 편이었지 만,이규한도 제목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티메이텀’이란 작품은 왜 언급하신 겁니까?”
“그 작품의 주연배우인 존 텍스가 출연 대가로 받은 개런티가 얼마인 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2,200만 달러입니다.”
“얼마라고 했습니까?”
“2,200만 달러요. 한화로 250억 정 도 되겠군요.” ‘엄청나구나.’
할리우드 배우 존 텍스의 몸값이 무려 250억이란 사실을 데이비드 윤에게 전해들은 이규한이 깜짝 놀 랐다.
국내 톱 배우인 하정후의 개런티도 10억 선이었다.
그런데 존 텍스는 하정후의 개런티 보다 대략 25배가량 더 많은 개런 티를 받는 셈이었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