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혼자가 아니다 (2)
하정후가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 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최후의 방법에 대해서 정후 씨 에게 알려 주지 않은 게 신의 한 수였네요.”
“혹시 의도적이었습니까?”
“그렇다고 치죠.”
이규한이 멋쩍게 웃음을 터트렸을 때 선술집으로 새로운 손님들이 들 어왔다.
“지유야. 그리고 도빈 씨도… 왔군 요.”
새로운 손님들은 남지유와 강도빈 이었다.
하정후와 주태훈에 이어서 남지유 와 강도빈까지.
‘신과 같이’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이 모두 모인 셈이었다.
“넌 어떻게 알고 왔어?”
이규한이 우선 남지유에게 물었다.
“서운해요.” 그렇지만 남지유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서운함을 토로했다.
‘또 서운하다고 하는구나.,
하정후와 주태훈에 이어서 남지유 도 다짜고짜 서운함부터 드러냈다.
“년 또 왜 서운하다는 거야?”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에요? 그런 데 이런 소식을 오빠한테서 직접 들 은 게 아니라 정후 삼촌에게서 듣도 록 만드는 건 좀 아니죠.”
남지유가 대답을 마치자마자 하정 후와 주태훈이 동시에 나섰다.
“왜 난 삼촌이고 이 대표님은 오빠 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데?”
두 질문 중 남지유는 먼저 하정후 가 던진 질문에 답했다.
“제가 홍길동은 아니잖아요?”
“갑자기 홍길동이 여기서 왜 나 와?”
“제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은 아니잖아요? 삼촌한테 삼 촌이라고 부르는 게 잘못은 아니잖 아요?”
“그렇긴 한데… 내가 서운하고 이 해가 안 가는 건 이 대표님은 왜 오빠고,난 삼촌이냐는 점이야.” “그냥 삼촌처럼 느껴지는데 어쩌겠 어요?”
“끄응.”
때아닌 굴욕을 당한 하정후가 탄식 을 토해 냈을 때 남지유가 다시 입 을 뗐다.
“그리고 사귀는 사람에게 삼촌이라 고 부르면 이상하잖아요.”
“사귀는 사람? 누가 누구와 사귄다 는 거야? 설마……?”
“그 설마가 맞아요.”
남지유가 이규한과 사귀는 사이라 는 것을 밝히고 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깨트린 것은 주태훈이었 다.
“그래서 아까 우리 사이라고 했던 거구나?”
“네. 사귀는 사람이 아니라 삼촌한 테 ‘신과 같이’의 제작이 무산될 위 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서 운하지 않겠어요?”
“자꾸 삼촌이라고 부르지 말라니 까.”
“당연히 서운하겠네. 이건 이 대표 님이 잘못했네.”
하정후와 주태훈이 앞다투어 말했 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이규한이 결국 사과한 순간 하정후 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냥 최고의 영화제작자가 아니었 네요. 다 가진 남자였네요.”
“네?”
“최고의 여가수이자 여배우인 지유 와 사귀고 있지 않습니까? 진심으로 이 대표님이 부럽습니다.”
이규한이 멋쩍게 웃었을 때 주태훈 이 끼어들었다.
“우리 삼촌은 언제 연애하고 결혼 하려나?”
“야,넌 왜 삼촌이라고 불러?”
“삼촌을 삼촌이라고 부르지도 못합 니까?”
“아주 신이 났네,신이 났어.”
하정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이규한이 강도빈을 바라보았다.
“도빈 씨도 저한테 서운한 겁니
까?”
“아닙니다. 전 그냥 정후 삼촌이 불러서 왔습니다.”
“년 또 왜 삼촌이라고 부르는 거 야?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그러려고 했는데 좀 죄송해서요.”
“뭐가 죄송해?”
“저희 아버지랑 나이 차가 몇 살
안 나시는데 형이라고 부르는 게 좀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냥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강도빈의 대답을 들은 하정후의 얼 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 아니다. 됐다. 듣고 나면 더 슬플 것 같다. 그냥 너도 삼촌이라고 불 러라.”
하정후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대 답하자 주태훈이 술잔을 들었다.
“축하의 의미로 건배 한번 하시
죠 ‘무슨 축하?” “국민 삼촌으로 등극하셨잖아요.”
“그래. 좋다. 좋아 죽겠다.”
여전히 앙숙 케미를 보여 주고 있 는 하정후와 주태훈으로 인해 이규 한이 픽 하고 실소를 터트렸을 때였 다.
“보자. 지유는 당연히 ‘신과 같이’ 에 출연할 거고,도빈이는?”
“출연합니다.”
“허락받았어?”
“네. 다른 영화 열 편 출연하는 것 보다 이규한 대표님이 제작하는 영 화 한 편에 출연하는 것이 더 낫다 고 소속사 대표님이 말씀하셨습니
다. 좀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는 영 화가 들어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하 셨습니다.”
“진짜 축하받아야 할 것은 이 대표 님이신데요?”
“네?”
“인생 잘 사셨잖습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은 물론이고,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도빈이의 소속사 대 표님도 이규한 대표님에게 무한 신 뢰를 보내고 있으니까요. 자,그런 의미로 건배 한번 하시죠.”
하정후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
“알았다,알았어.”
채앵.
술잔이 부딪혔다.
건배를 마친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 을 때였다.
“안주 나왔어요.”
주인아주머니가 푸짐한 안주를 준 비해 오셨다.
“감사합니다.”
이규한이 인사하자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가게에 붙여 둘 사인 좀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하정후가 흔쾌히 대답했다.
“더 취하기 전에 지금 주시죠.”
“감사합니다.”
“참,제일 중요한 건 여기 있는 도 빈입니다.”
“네?”
“우리 사인이야 붙여놔 봐야 별로 소용이 없지만, 도빈이는 다릅니다. 한류 스타 중의 한류 스타거든요. 도빈이가 사인하고 난 후에 맛있다 고 SNS에 홍보 한번 해 주면 매출 이 팍팍 오를 겁니다.”
“제 딸도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제가 꼭 SNS에 올리 겠습니다.”
강도빈에게서 약속을 받아 낸 순 간,주인아주머니가 이규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제 말이 맞죠?”
“네?”
“장사를 계속 하다 보면 좋은 날도 찾아온다니까요. 비록 오늘은 손님 이 없지만,대신 도빈 씨가 가게 홍 보를 해 준다고 해 주셨잖아요.”
“그러네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규한이 주인아주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난 인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규한은 ‘신과 같이’의 제작이 무산될 가능 성이 높다는 생각에 우울했었다.
그렇지만 다시 희망을 얻었다.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그 희망 덕분에 다시 시작할 용기 를 얻은 셈이었다.
“국민 삼촌이 되면 기분이 어때 요?”
“태훈아.”
“네.” “넌 안 늙을 것 같냐?” “전 동안이잖습니까?”
“난 노안이고?”
“동안은 아니죠.”
“고맙다,내가 노안이라는 사실을 알려 줘서.”
하정후와 주태훈 그리고 남지유와 강도빈이 환하게 웃으며 떠드는 모 습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속으로 각 오를 다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들의 믿음 을 실망시키지 않겠다.’ “좀 늦었습니다.”
커피 전문점에 도착한 이규한이 사 과했다.
“괜찮아. 어차피 요샌 할 일도 별 로 없거든.”
가볍게 대답하는 김태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쓰게 웃으 며 입을 됐다.
“벌써 내외하시는 겁니까?”
“응?”
“승진하시고 나니까 일개 제작자와 는 만나고 싶지 않으신 것 아닙니 까?”
이규한이 농담을 건네자 김태훈이 손사래를 쳤다.
“그런 것 아냐.”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표정이 어떤데?”
“영 내키지 않아 하는 표정이신데 요.”
이규한이 대답하자 김태훈이 썩소 를 지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좀 복잡 해.”
“왜요?”
“내 마음 같아서는 이 대표를 위해 서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어. 그런
데 내 위치에서 이 대표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어.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커서 이 대표 얼굴을 보는 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야.”
김태훈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고 개를 흔들었다.
“선배님이 해 주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이 대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네.”
“뭔데?”
“해외투자자 쪽을 알아봐 주십시
‘부산행 열차’의 해외시장 진출을 주도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태훈이었 다.
그 과정에서 김태훈은 자연스레 해 외투자자들과 인맥이 쌓였다.
이규한이 활용하려는 것은 김태훈 이 쌓은 인맥이었다.
“국내에서 투자를 받기 어려운 것 이 현실이니까 차라리 해외에서 투 자를 유치해 보겠다,맞아?”
“이게 제가 찾아낸 마지막 방법입 니다.”
“나쁘지 않네.”
를 드러냈다.
“‘부산행 열차’가 해외시장에서도 흥행에 성공하고 난 후에 이 대표에 게 흥미를 드러낸 해외투자자들이 있었어.”
“저한테요?”
“그래. 그쪽도 나름 알아봤겠지. 그 리고 이 대표가 제작한 작품들이 대 부분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 고 난 후 흥미를 드러낸 걸 거야. 그런데 내가 그 사실을 이 대표에게 알려 주지 않았던 이유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기 때문이야.”
“이런 일이요?”
“난 이 대표가 투자를 못 받아서 전전긍긍할 일이 발생할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거든.”
김태훈의 말대로였다.
이규한이 이끄는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에서 제작했던 작품들 가운데 흥행에 실패한 작품은 없었다.
손익분기점만 넘겨도 성공이란 이 야기가 나오는데,블루문 엔터테인 먼트에서 제작한 작품들 중에는 천 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는 ‘신과 같이’가 투자를 받 지 못하는 것부터가 정상적인 상황
은 아니었다.
그래서 김태훈은 이런 상황을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고.
“어쨌든 그래서 까닿게 잊고 있었 는데, 이 대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쁜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아.”
김태훈이 의욕을 드러냈지만 이규 한은 서두르지 않았다.
“몇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 니다.”
“말해 봐.”
“우선 해외투자자들에게 ‘신과 같 이’라는 작품에 대한 투자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선배님 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는가 하는 점 입니다.”
김태훈은 NEXT 엔터테인먼트의 임직원.
그가 자신을 돕기 위해 나서는 것 이 불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규 한이 원치 않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운을 떼자 김태훈 이 웃으며 말했다.
“이 대표도 참 대단하다.”
“왜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 까?”
“지금 이 대표 코가 석 자인 상황 이잖아. 그런데 내 걱정까지 해 줄 여유가 있다는 게 대단하단 뜻이 야.”
“제 상황이 급하긴 하지만, 선배님 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도움을 청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래서 이규한이 성공한 거지.”
“네?”
“아무 걱정 할 것 없단 뜻이야. 문 제의 소지가 될 염려는 없으니까.”
딱 잘라 말한 김태훈이 물었다.
“다른 조건은 뭐야?”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 비 율이 6 대 4라야 합니다.” 16 대 4?”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
김태훈이 난색을 표했다.
“해외투자자들도 바보가 아냐. 투 자를 결정하기 전에 충분히 조사를 할 테고,그럼 ‘신과 같이’가 국내에 서 투자를 받지 못해서 해외로 눈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즉, 칼자루를 쥔 쪽이 자신들이란 것을 알 텐데,6 대 4라는 수익 배분 비 율에 과연 동의할까?”
“저도 이 조건을 관철시키는 게 쉽 지 않을 거란 걸 압니다.”
“만약 ‘신과 같이’라는 작품이 해 외투자자와 투자 계약을 맺게 되면 선례로 남게 될 테니까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