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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264화 (264/272)

264화

최후의 방법 (1)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안 그래도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 데 이렇게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 다.”

강주은 기자가 두 눈을 빛내며 질 문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만나고 싶다 고 하신 거죠?” “해명을 좀 하려고 합니다.”

“해명… 이요?”

“제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존 재하거든요.”

이규한이 그녀를 만나려 한 이유를 밝히자 강주은 기자가 난색을 표했 다.

“저에게 이규한 대표님의 해명을 기사로 써 달란 뜻인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해명할 부분이 있나요?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봐서는 이규한 대표님이 영세한 영화제작사 인 블루블랙 필름에서 오랫동안 준

비한 ‘불야성’이란 작품이 탐이 나 서 도움을 주는 척하며 빼앗은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요?”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함정에 빠 졌죠.”

“함정… 이요?”

“제가 함정에 빠졌다는 증거가 있 습니다.”

이규한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자 강주은 기자가 흥미를 드러냈다.

“어떤 증거인데요?”

그리고 흥미를 드러낸 건 권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어요?”

권지영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 답했다.

“권 팀장,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

“없죠.”

“그럼 좀 믿고 살자.”

“저도 믿고 싶은데……

“정황상 내가 나쁜 놈이다?”

“맞아요. 그리고 대체 누가 이 대 표님을 함정에 빠트린 건데요?”

“권 팀장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야.” ‘누구요?”

“김대환 대표.”

이규한이 김대환의 이름을 입 밖으 로 꺼내자 권지영은 물론이고 강주 은 기자도 깜짝 놀라며 확인하기 위 해서 물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김대환 대표 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김대환 대표가 대체 왜?”

“이제부터 그 이유에 대해 말씀드 리겠습니다.”

권지영과 강주은과 시선을 맞추며 이규한이 덧붙였다.

“아마 꽤 긴 이야기가 될 겁니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오늘 들은 이 대표님의 해명을 기사로 내려면 나름대로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거 든요.”

강주은 기자가 꾸벅 인사를 하고 먼저 떠났다.

그녀가 떠나고 난 후 이규한이 물 었다.

“어떤 기자야?”

“전형적인 기자예요. 특종 좋아하 고, 부지런하기도 하고.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용감하단 거예요.”

“용감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외압이나 뒷감당이 두려워서 진실 을 외면하지는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제가 강 기자를 데려온 거예

요.”

이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한 대로 움직여야죠.”

황진호에게 했던 이야기는 빈말이 아니었다.

김흥집 대표는 이규한의 요구 사항 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김대환 대표가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 생겼고.

그리고 김흥집 대표가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규한도 미리 경고한 대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즉,김흥집 대표가 한국영화 제작 자협회장이란 직책을 이용해 브로커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뒷돈을 받아 챙겼다는 사실을 공개하려는 것이었 다.

그렇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 다.

김흥집 대표가 브로커 역할을 하면 서 접촉했던 것은 메이저 투자 배급 사 고위층 인사들.

무척 파장이 클 수 있었다.

그래서 이규한은 권지영 팀장에게 믿을 수 있는 기자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극동 일보 강주은 기자는 적임자로 보였다.

“오늘 나눈 이야기가 기사로 나가 면 파장이 무척 클 텐데,무섭거나 걱정되지 않으세요?”

“내가 왜 무서워해야 하는 거지?”

“이번 일로 인해 미운털이 박히고 나면,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 작하는 작품이 투자를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테니까요.”

권지영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대답

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고개를 흔들었 다.

“이미 미운털이 박힌 상황이지 않 아?”

“네?”

“솔직히 말해 봐. 로터스 엔터테인 먼트에서 ‘신과 같이’에 투자할 의 향이 있어?”

“그건……

이규한의 질문이 갑작스러워서일 까.

권지영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투자할 의향이 없지?”

“현재로써는요.”

“그럼 다시 물을게. ‘신과 같이’에 투자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뭐야?”

“동시에 1편과 2편을 제작해야 하 기 때문에 제작비는 약 삼백억 선. 제작비 규모가 너무 커요. 그래서 투자를 하기에는 부담스러워서

“권 팀장.”

“말씀하세요.”

“우리끼리니까 솔직하게 말하자. ‘신과 같이’에 투자를 하지 않으려 는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잖아. 권

팀장은 확신이 있을 거야. 그런데 윗선에서 절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에서 제작하는 작품에 투자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 아냐?”

“???맞아요.”

권지영이 더 버티지 못하고 실토하 며 덧붙였다.

“미안해요.”

그렇지만 이규한은 고개를 흔들었 다.

“권 팀장이 사과할 일이 아냐. 윗 선에서 내려온 지시를 따르는 게 당 연한 거니까.”

자팀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

메이저 투자 배급사의 투자팀장인 만큼 그녀가 가진 권한은 컸다.

그렇지만 그녀도 결국 일개 직장인 일 뿐이었다.

윗선의 지시를 거스르면서 독단적 으로 투자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녀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 었다.

그리고 권지영만이 아니었다.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하는 김태훈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임원으로 승진한 김태훈이 윗선의 지시를 거스를 순 없었다.

‘나는… 무력한 존재였구나.’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던 작품들이 승승장구하면서 이규한은 대한민국 최고의 제작자로 불리었 다.

그렇지만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김 대환 대표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길을 막아 버리자 이규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때, 권지영이 물었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이규한이 대답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힘 없는 영화제작자를 죽이기 위해 드 러낸 영화계의 추악한 민낯.〉 강주은 기사는 약속을 지켰다.

이규한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실 확인을 거친 후 기사 를 작성해서 내보냈다.

이 기사로 인해 생긴 첫 번째 변 화는 한국영화 제작자협회 김홍집

협회장의 사퇴였다. 그리고 두 번째 변화는 영화인들 사이의 여론이 바 뀐 것이었다.

‘힘없는 동료제작자를 배신한 사기 꾼.’

기존 이규한에 대한 평가였다.

‘억울한 피해자.’

그렇지만 기사가 나간 후 사건의 속사정이 밝혀지면서 이규한에 대한 시선과 여론이 이렇게 바뀌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기사가 만들어 낸 변화는 더 이상 없었다.

아니니까.”

이규한이 쓰디쓴 웃음을 머금었다.

대중들은 영화를 좋아했다. 그러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의 속사정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강주은 기자가 작성한 기사 는 큰 이슈를 생산해 내는 데 실패 했다.

“마지막 보루.”

까마득한 건물을 올려다보던 이규 한이 작게 혼잣말을 꺼냈다.

대한민국 4대 메이저 투자 배급사 로 손꼽히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NEXT 엔터

테인먼트 그리고 빅박스.

이 네 곳의 투자 배급사에서 ‘신과 같이’의 투자를 유치할 길이 막혀 버린 후 이규한이 지푸라기라도 잡 는 심정으로 찾아온 곳이 바로 케이 컴퍼니였다.

잠시 후,이규한은 케이 컴퍼니 투 자팀장 유한수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대표님,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죠?”

“잘 못 지냈습니다.”

“네? 왜요?”

“요새 투자한 작품마다 흥행 성적 이 죽을 쑤고 있거든요.” 한숨을 푹 내쉬던 유한수가 덧붙였 다.

“그래서 더 이 대표님에게 서운함 니다.”

“왜 제게 서운하신 겁니까?”

“저희에게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 를 안 주셨잖습니까?”

비로소 말뜻을 이해한 이규한이 미 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규한과 케이 컴퍼니의 첫 인연은 ‘변호사’라는 작품이었다

정치색이 짙다는 선입견으로 인해 ‘변호사’는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에 게 투자 유치를 받는 데 실패했었

그때 이규한이 ‘변호사’의 투자 유 치를 받기 위해서 찾아왔던 곳이 바 로 케이 컴퍼니였다.

당시 이규한은 큰 기대 없이 케이 컴퍼니를 찾아왔었는데.

케이 컴퍼니 측에서는 ‘변호사’에 60억 가까이 투자하기로 결정했었 다.

덕분에 ‘변호사’는 무사히 제작을 마치고 개봉까지 가능했었고.

물론 케이 컴퍼니 입장에서도 손해 를 본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가 보란 듯이 흥행에 성공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후로 이규한은 케이 컴퍼니를 찾아오지 않았다.

‘변호사’의 흥행 성공 덕분에 메이 저 투자 배급사에서 다른 작품들의 투자를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한수는 이 점에 서운함을 토로한 것이었다.

‘어려울 때만 찾아오는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규한이 한 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신과 같이’라는 작품 때문에 찾 아오셨죠?”

유한수가 불쑥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규한 대표님은 케이 컴퍼니가 세워진 후 회사에 가장 큰 수익을 안겨 준 분입니다. 그런데 어찌 관 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제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는 것도 알고 계시겠군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뭣하지만,솔직히 제 입장 에서는 조금 기뻤습니다.”

“왜 기떴습니까?” “잘하면 저희에게도 블루문 엔터테 인먼트에서 제작하는 작품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구나,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유인수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 다.

그 표정을 확인한 이규한은 깨달았 다.

마지막 보루라고 판단했던 케이 컴 퍼니에서도 ‘신과 같이’의 투자를 받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투자가 어렵다는 뜻이죠?”

“그렇습니다. 이유는……

“이유는 알 것 같습니다.”

" <……?"

“케이 컴퍼니의 대표님께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는 작품에 투자를 하지 말라고 지시하신 게 맞 습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유한수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김대환 대표가 허술한 양반이 아 니거든요.”

이규한이 쓴웃음을 지은 채 대답하 자 유한수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 다.

“케이 컴퍼니 투자팀장인 제 입장 에서는 ‘신과 같이’라는 작품에 투 자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규한 대표 님을 신뢰하니까요.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어서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한수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었 다.

그의 아쉬운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묻어났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 합니다.”

유한수와 악수를 나눈 이규한이 케 이 컴퍼니를 빠져나왔다.

마지막 보루라 여겼던 케이 컴퍼니 에서도 아무 소득 없이 나온 순간, 이규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제… 어쩌지?”

빠른 속도로 도로 위를 달리고 있 는 차량들을 이규한이 물끄러미 바 라보고 있을 때였다.

지이엉. 지이잉.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전화가 진동 했다.

‘산 넘어 산이로구나.’

자신에게 전화를 건 것이 하정후라 는 사실을 확인한 이규한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이제 진짜 때가 됐구나.”

잠시 후 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냈 다.

진짜 ‘신과 같이’의 제작을 포기해 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퍼뜩 들 었기 때문이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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