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63화 (263/272)

263화

반격 (4) ‘그 정도 눈치는 있는 자니까.’

김홍집이 꺼낸 이야기를 들었음에 도 김대환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규한이 영화제작자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것.

눈치가 빠르고 영리하단 증거였다. 본인이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아채 자마자 이규한은 함정을 판 것이 누

구인지를 조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자신을 용의선상 에 올렸으리라.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규한이 그 사실을 알아챘다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증거도 없네. 그러니 잡아 떼면 그만이야.”

김대환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김흥집은 고개를 흔들었다.

“증거가 있습니다.”

“응?”

“이규한 대표는 증거를 갖고 찾아 왔습니다.”

“무슨 증거를 갖고 왔단 건가?”

“저와 슈가 필름 고철민 대표가 나 눈 대화의 녹취 파일입니다.”

“그걸 이규한 대표가 입수했다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에 김대환 이 처음으로 당황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규한이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규한이 녹취 파일을 입수하 는 데 걸린 시간이 김대환을 놀라게 만들었다.

‘예상보다 빨라.’

함정을 파면서도 이규한이 순순히 당하기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 어떤 식으로든 반격을 시도할 거라 예상했다.

그렇지만 반격을 시도하는 시기가 짐작보다 더 빨랐다.

“이규한이 녹취 파일을 들고 찾아 왔으니 자네에게 바라는 게 있었겠 군.”

“그렇습니다.”

“뭘 원하던가?”

“제명을 막아 달라고 했습니다.”

“제명을 막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규한의 요구 사항에 대해 알게

된 김대환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

“확실히 똑똑하군.”

이번에 준비한 함정의 핵심은 명분 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김대환 이 원하는 명분은 이규한을 사기꾼 이자 파렴치한으로 몰아서 한국영화 제작자협회에서 제명을 당하게 만드 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간파했기에 이규한은 김 흥집을 찾아가서 이런 요구를 한 것 이었다.

“거절하게.”

김대환이 지시했다.

히 따르지 않았다.

“상황이 좀 곤란합니다.”

“어떤 점 때문에 곤란하단 말인 가?”

“만약 요구 사항을 수용하지 않으 면 이규한 대표가 녹취 파일을 공개 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약점을 공략했군.’

김홍집의 대답을 들은 김대환이 감 탄했다.

이규한은 김흥집의 약점을 파악하 고 난 후 녹취 파일을 빠르게 입수 해서 약점을 공략한 셈이었다.

‘김훙집이란 인간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했어.’

“자네가 진짜 두려워하는 게 뭔 가?”

“그건……

“한국영화 제작자협회장 직책에서 물러나는 게 두려운 것인가,자네가 저지른 비리가 세상에 드러나는 게 두려운 건가?”

김대환이 선택지를 주자 김흥집이 비로소 대답했다.

“한국영화 제작자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두렵습니다.”

‘예상대로군.’

는 것이 전자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 직책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 우는 것에 어느덧 익숙해졌기 때문 이다.

예상이 적중한 순간 김대환이 말했 다.

“내려놓게.”

“뭘 내려놓으란 말씀이십니까?”

“한국영화 제작자협회장이란 직책 을 내려놓으란 뜻이네.”

“그건 안 됩……

김흥집이 정색하며 언성을 높일 때 김대환이 덧붙였다.

“그 직책을 내려놓아야 다른 직책

을 가질 수 있는 법이네.”

“다른 직책이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이 란 직책 정도면 되겠나?”

구”

“그 정도 직책이면 한국영화 제작 자협회장이란 직책을 내려놓아도 아 깝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닌가?”

비로소 의도를 이해한 김홍집이 두 눈을 빛냈다.

“정말 제게 투자팀장 직책을 맡기 실 겁니까?”

“만약 자네가 내 지시를 따른다면 그럴 생각이네. 자네 생각은 어떤 김흥집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김대환을 알고 있었다.

김홍집은 지금 갈등하는 것이 아니 라 갈등하는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김흥집은 권력의 맛을 알아 버린 후였다.

더 큰 권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할 터.

한국영화 제작자협회장이라는 직책 보다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장이 더 강한 권력을 갖는다는 것을 김흥집이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김흥집이 절대 자신의 제안 을 거절하지 못할 거란 김대환의 예 상은 적중했다.

“대표님의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김흥집이 꺼낸 대답을 들은 김대환 의 입가로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가 사라졌다.

“그럼 해결된 듯하니 돌아가게. 그 리고 보는 눈이 많으니 이번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날 찾아오지 말 게.”

“알겠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데 성공했 기 때문일까.

김흥집은 아까와 달리 밝은 표정으 로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난 후 김대환이 소파 에 등을 묻었다.

“명분은 생긴 셈이로군.”

혼잣말을 꺼내던 김대환이 휴대전 화를 꺼냈다.

잠시 후 그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인 장동국과 통화를 했다.

“장 대표,얼굴 본 지 너무 오래되 지 않았소? 같이 저녁이나 한번 먹 읍시다. 물론 내가 살 테니 장 대표 는 시간만 내시오. 내일 저녁? 알겠 소. 그럼 그때 만납시다. 참. 빅박스

유 대표한테도 연락을 해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의 분 위기는 어두웠다.

타다다닷.

백진엽이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는 소리만이 사무실 안을 잠식한 적막 을 깨고 있었다.

“백 피디,뭐 해?”

황진호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묻 자 백진엽이 대답했다.

“검색하고 있습니다.”

“뭘 검색하고 있는데?”

“완전범죄를 하는 법이요.”

“완전범죄?”

“사람을 죽이려고 하거든요.”

“누구?”

“조성현이랑 김흥집이요.”

백진엽이 대답하는 것을 들은 황진 호가 핀잔을 건넸다.

“지금 농담할 때야?”

“농담 아닌데요.”

“응?”

“진짜로 실행에 옮길 건데요.”

백진엽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단

호했다. 그리고 백진엽이 돌아이라 는 사실을 알고 있는 황진호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진심이야?”

“그렇다니까요.”

“대체 왜?”

“애사심의 발로죠.”

최근 들어 부쩍 애사심이 감해진 백진엽이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 이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었다.

“백 피디.”

“보스,언제든 지시를 내려 주시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백 피디 아니어도 골치 아픈 일 투성이 니까 제발 가만히 있어.”

“네?”

“애사심 좀 넣어 두란 뜻이야.”

백진엽이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규한은 지금 거기까지 신경을 쓸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결국… 제명이 됐습니다.”

이규한이 침통한 표정으로 소식을 알리자 김미주가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어차피 강제성이 있는 조치가 아니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심각

김미주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 로 물었다.

“명분을 만들어 줬거든.” 이규한이 대답하자 김미주가 다시 물었다.

“무슨 명분이요?”

“김대환 대표가 움직일 수 있는 명 부 ”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김대환 대표 가 뭘 할 수 있는데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를 궁지에 몰 아넣을 수 있지.”

“어떻게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 는 작품에 투자를 하지 말라고 투자 사 대표들을 설득할 거야.”

“왜요?”

“영화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나쁜 제작사라는 명분이 있으니까.”

“우리가 언제 영화계 질서를 어지 럽혔어요?”

“조성현 대표가 7년을 매달린 ‘불 야성’이란 작품을 빼앗았으니까.”

“그건 아니죠. 어디까지나 조성현 대표가 먼저 간곡하게 부탁해서

나섰던 거다?”

“그게 사실이잖아요.”

“그래. 사실이지. 그렇지만 정확한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

“하지만……

“그리고 그런 속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 을 거야. 쉽게 말해 내가 함정에 빠 졌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뜻이야.”

“이유는요?”

“김대환 대표의 영향력이 크니까. 그리고 미운털이 박혔으니까.”

이규한이 짤막한 한숨을 내쉬며 대

답한 순간 백진엽이 끼어들었다.

“왜 미운털이 박힌 겁니까? 오히려 보스한테 고마워해야 정상 아닙니 까? 그동안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 서 제작해서 흥행시킨 작품 덕분에 투자사들이 번 돈이 얼만데.”

“백 피디는 몰라.”

“제가 뭘 모른단 말입니까?”

“사람은 잘해 준 것은 금방 잊고 서운한 것만 떠올리는 동물이야. 블 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작품 에 투자해서 많은 수익을 올렸던 것 은 이미 잊었을 거야. 그리고 용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고 마워하지는 않아.”

“자기들이 투자를 잘했기 때문에 많은 수익을 올렸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만……

“오히려 우리가 고마워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자기들이 투자를 해 줬기 때문에 작 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생 각할 테니까.”

백진엽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덧붙였 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인간이란 동물은 좋았던 건 금방 잊어버리지

만,서운했던 건 절대 잊지 않아. 그들은 나 때문에 9 대 1까지 갔던 투자사와 제작사 간의 수익 배분 비 율이 다시 7 대 3으로 회귀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아까 미운털이 박혔다고 말했던 것이고.”

이규한이 길었던 설명을 마쳤을 때 황진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정도로 최악으로 치달을까?”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 서 제작했던 작품들은 대부분 흥행 에 성공했어. 그리고 앞으로 제작할 작품들도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높 아.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 하는 작품에 투자를 하면 수익을 올 릴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인데 과연 모두 김대환 대표의 뜻대로 움직일까?”

“모난 돌은 정을 맞는 법이죠.” “그리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 운다는 속담도 있죠. 대한민국에 영 화제작자들은 많다,이규한이 아니 더라도 좋은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 들을 찾아서 투자하면 된다,이런 공감대가 형성될 겁니다.”

이규한이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최상은 김대환 대표가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이규한도 최대한 빠 르게 움직였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제명을 당하는 것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

“이 대표.”

“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황진호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 답했다.

“약속한 대로 움직여야죠.” 커피 전문점 블루문.

권지영이 한 여자와 함께 들어서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일어섰다.

“권 팀장.”

“잘 지내… 아니다. 잘 지내셨을 리가 없으니까 인사는 건너될게요.”

권지영의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쓴웃음을 머금었을 때였다.

“인사하세요. 말씀드렸던 극동 일 보 강주은 기자님.”

권지영이 함께 온 여자를 소개했 다.

“처음 뵙겠습니다. 블루문 엔터테 인먼트 대표를 맡은 이규한입니다.”

“권 팀장님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 요. 요새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분 이기도 하시고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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