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61화 (261/272)

261 화

반격 (2)

“무슨 명분?”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 는 작품에 투자를 못 하게 만들기 위한 명분이요.”

“하지만……

“그것 외엔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자 김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김홍집 대표와 오억을 투 자하는 건 무슨 상관이 있어?”

“김홍집 대표는 영세한 제작자들을 투자사와 연결해 주는 대가로 뒷돈 을 챙기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 다.”

“그거 소문 아냐. 사실이야.”

김태훈은 불과 얼마 전까지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을 맡 고 있었다.

그래서 김흥집 대표가 투자를 빌미 로 제작자들에게서 뒷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증거를 잡고 싶습니다.”

“왜?”

“제명을 당하는 것은 피하고 싶거 든요. 그래야 김대환 대표에게 명분 을 주지 않을 수 있고요.”

이규한이 대답하자 김태훈이 고개 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대응이네. 그런데 그 증거를 어떻게 잡을 거야?”

“김훙집 대표가 아무 대가 없이 움 직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씨제스 엔 터테인먼트 김대환 대표에게서 어떤 약속을 받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좀 알아봤더니, 투자 약속을 받았더 “그게 슈가 필름과 관련이 있다?”

“네. 슈가 필름에서 제작하고 있는 ‘파란만장’이란 작품에 오억을 투자 한다는 약속을 했답니다.”

“그래서 오억을 투자하는 척 연기 를 하라고 한 거야?”

“네,

이규한이 대답했지만 김태훈은 고 개를 갸웃했다.

“이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오 억을 투자받았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뒷돈이 아까울 테니까요.

“뒷돈… 이라니?”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오억을 투자받기 위해서 슈가 필름 고철민 대표는 김흥집 대표에게 뒷돈을 건 넸을 겁니다. 정확한 뒷돈의 액수까 지는 알지 못하지만,최소 수천만 원은 건네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 정도 액수는 건네지 않았 을까?”

“그럼 실질적으로 슈가 필름에서 투자를 받는 돈은 오억에 한참 모자 라죠. 슈가 필름 고철민 대표는 한 푼이 아쉬운 상황입니다. 아마 김흥 집 대표에게 건넸던 뒷돈이 아깝게 느껴질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만약 그 돈을 아낄 수 있다면요?”

“응?”

“뒷돈 수천만 원을 빼앗기지 않고 오억을 고스란히 투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슈가 필름 고철민 대표는 어느 쪽을 택할까요?”

“당연히 후자 쪽을 택하겠지. 그런 데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그 방법에 대해서는 아까 말씀드 렸습니다.”

“이미 방법을 말했다고?”

“아까 오억을 투자해 달라고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하지만 연기를 하라고 했잖아?”

“맞습니다.”

“그럼… 고철민 대표를 속이겠다는 뜻이야?”

“네.”

“난 얼굴마담 역할이고?”

“이제 다 이해하신 듯하네요.”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하자 김태훈 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다 이해했어. 괜찮은 방법이 네.”

“현재로써는 이게 최선인 것 같습 니다.”

“좋아. 그런데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뭐가 마음에 걸리십니까?”

“슈가 필름 고철민 대표가 마음에 걸려. 만약 이 대표의 계획이 성공 하면 고철민 대표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거잖아.”

김태훈은 고철민 대표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우려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의 생각은 달랐다.

“만약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오 억 정도 부분 투자를 받는다고 해서 슈가 필름에서 제작하는 ‘파란만장’ 이 무사히 제작을 마치고 개봉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렵지.”

“김홍집 대표에게 뒷돈을 건네면서 까지 투자를 받으려 했다는 게 이미 ‘파란만장’이란 작품이 투자사들에게 외면받았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렇지. 그리고… 형편없어.”

“네?”

“‘파란만장’이란 작품 말이야. 형편 없다고.”

“그걸 선배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NEXT 엔터테인먼트로 투자 심사 를 넣었던 ‘파란만장’이란 작품을 봤었거든. 내가 보기에는 수정을 아

무리 잘해도 투자를 받기도 흥행을 하기도 어려워. 호박에 줄을 그어 봐야 수박이 되지는 않으니까.”

“고철민 대표 입장에서도 ‘파란만 장’에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작품을 개발하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더 낫 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도울 겁니다.”

“이 대표가?”

이규한이 단호한 표정으로 덧붙였 다.

낡은 감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일 식집 앞으로 걸어왔다.

휴대전화를 꺼낸 남자가 통화 버튼 을 눌렀고,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 전화가 진동하는 것을 느낀 이규한 이 전화를 받는 대신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슈가 필름 고철민 대표님이시죠?”

“맞습니다. 혹시 이규한 대표님이 신가요?”

“네,처음 뵙겠습니다. 이규한입니 다.”

“고철민입니다. 그런데 절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초행길이라 혹시 약속 장소를 찾 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형식 대표님에게 들었던 인상착의 랑 흡사하시기도 했고,휴대전화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이규한이 주머니 속에 넣어 둔 휴 대전화를 꺼내며 대답하자 고철민이 비로소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만나자고 하 신 겁니까?”

“일단 들어가시죠. 고 대표님을 기 다리는 손님이 있으니까요.”

“손님… 이요?”

“네.”

“그 손님이 누굽니까?”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이규한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고, 고철민이 뒤를 따랐다.

드르륵.

잠시 후 이규한이 예약한 룸의 문 을 열었다.

“들어가시죠.”

훈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혹시…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 팀에서 근무하시는……

“맞습니다.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 김태훈입니다.”

이제 김태훈의 직책은 더 이상 투 자팀장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김태훈은 오늘만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이라고 직책 을 밝히기로 이규한과 입을 맞춘 후 였다.

그 편이 고철민에게 믿음을 심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 김태훈이 건넨 명함에서 시선을 떼 지 못하고 있는 고철민을 살피던 이 규한이 나섰다.

“아직 식사 전이시죠?”

“네? 네.”

“식사하면서 얘기하시죠.”

고철민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종업원이 탁자 위에 음식들의 세팅 을 마쳤지만 고철민은 수저를 들지 않았다.

지갑 속에 김태훈에게서 받은 명함 을 넣은 후 고철민이 입을 뗐다.

“이제 말씀해 주시죠. 왜 저를 만 나자고 청하신 겁니까?” “제가 청한 게 아닙니다. 여기 계 신 김태훈 팀장님께서 고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전 연결해 주는 역할만 한 겁니다.”

“김태훈 팀장님께서 왜?”

“김태훈 팀장님,아니 그냥 평소대 로 편하게 부르겠습니다. 태훈 선배 가 슈가 필름에서 제작하고 계신 ‘파란만장’이란 작품을 흥미롭게 읽 으셨다고 합니다.”

“저희 회사에서 제작을 준비하는 ‘파란만장’을 흥미롭게 읽으셨다고 고철민은 김태훈은 NEXT 엔터테 인먼트의 투자팀장으로 알고 있는 상황.

투자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김태훈이 ‘파란만장’이란 작품을 홍 미롭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고철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

고철민이 고개를 가웃했다.

“‘파란만장’이란 작품을 NEXT 엔 터테인먼트에 넣은 지 1년도 넘었습 니다. 그런데 왜 지금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자리를 마련하신 겁니까?” 여기까지는 이규한도 계산에 넣지 못했던 상황.

그래서 이규한이 당황한 표정을 지 었을 때 김태훈이 대신 나섰다.

“제가 못 봤습니다.”

“네?”

“투자팀 직원들만 ‘파란만장’을 검 토하고 제게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 다. 그러다가 이번에 제가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파란만장’이란 제목 이 무척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런데 제목만 마음에 든 게 아니라 작품의 내용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친분이 있는 이규한 대표에게 부탁해서 고철민 대표님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한 겁니다.”

김태훈의 대처는 노련했다.

덕분에 고철민이 의심을 거둬들였 을 때였다.

“혹시 이 작품이 투자를 받았습니 까?”

“그게……

“편하게 말씀하시죠.”

“실은 부분 투자를 받기로 약속이 돼 있습니다.”

“그래요? 역시 좋은 작품을 누군가 가 먼저 알아봤나 보네요.”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던 김태훈이 질문했다.

“혹시 어디서 투자를 받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그렇군요.”

슬쩍 눈살을 찌푸린 김태훈이 앞에 놓여 있던 술잔을 향해 손을 뻗었 다. 그리고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 져가며 말했다.

“아쉽네요.”

“왜 아쉽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파란만장’이란 작품에 욕심이 났 거든요. 그래서 투자를 하려고 했는 데,이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를 받았다고 하니 힘들 것 같네 요.”

김태훈의 대답을 들은 고철민이 고 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아쉬운 걸까.

앞에 놓인 술잔을 향해 손을 뻗으 며 고철민이 물었다.

“투자 금액은 얼마나 생각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일단 오억 정도 생각하고 있었습 니다.”

“오억… 이요?”

“프리프로덕션 과정을 지켜보면서 결과가 괜찮으면 전액 투자를 할 생 각도 갖고 있었고요.”

고철민이 술잔에 닿아 있던 손을 뗐다.

그런 그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것을 이규한이 놓치지 않 고 바라보았다.

‘갈등하고 있어.’

한국영화 제작자협회장인 김흥집에 게 뒷돈을 건네고 씨제스 엔터테인 먼트로부터 투자를 받는 게 나은가?

아니면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를 받는 게 나은가?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철민이 갈등하는 데 걸린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김태훈 팀장님께서 저희 작품에 투자해 주십시오.”

예상대로 고철민은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후자를 택했다.

그 부탁을 들은 김태훈이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이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에서 ‘파란만장’이란 작품에 투자를 하기로 했다고 아까 말씀하시지 않 았습니까?”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왜……?”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를 받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습 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무엇입니

까?”

“그게……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고 철민에게 김태훈이 대답을 재촉했 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하려 는 금액이 더 크기 때문입니까?”

“그게 맞기도 하고,아니기도 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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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부분 투 자를 받기로 한 금액은 오억입니 다.”

“그럼 같은 금액이군요. 그런데 굳 이 저희 측에서 투자를 받을 이유 가……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입니까?”

“금액이 조금 다릅니다.”

‘연기 잘하네.’

김태훈과 고철민 사이에 오가는 대 화를 듣던 이규한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미 모든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김태훈은 시치미를 뚝 땐 채 아무것 도 모르는 것처럼 연기를 펼치고 있 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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