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59화 (259/272)

259화

함정 (4)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으 로서 검토하는 마지막 작품이 될 수 도 있겠네요.”

이규한이 말하자 김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확률이 높아. 그래서… 의아 했어.”

“왜 의아하단 겁니까?”

“이 대표가 왜 하필 이 작품을 제 작하려는 걸까? 의문이 생겼거든.”

“검토해 보니 책이 별로인가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어.”

9”

“‘불야성’이란 작품,예전에도 투자 심사를 넣었거든.”

조성현 대표는 ‘불야성’이란 작품 을 7년 넘게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메이저 투자 배급사 가운데 하나인 NEXT 엔터테인먼트 에 투자 심사를 넣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김태훈은 ‘불야성’이란 작

품을 검토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것 이고.

“솔직히 말할게. 그때에 비해서 많 이 달라졌길 기대하고 책을 검토했 어. 이 대표가 ‘불야성’이란 작품에 합류했으니까. 그런데 별로 달라진 게 보이지 않았어.”

“현 상태로는 투자가 어렵다는 뜻 이죠?”

“불가능한 건 아냐.”

“네?”

“선물을 줄 수 있거든.”

김태훈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난 투자팀장 직책에서 곧 물러나. 그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하는 작품에 투자를 결정 할 수는 있어. 어차피 투자의 성공 에 대한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 후 임자의 몫이 될 테니까. 그동안 이 대표한테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보 답 차원에서 선물을 줄 수는 있다는 뜻이지.”

김태훈이 설명을 마친 후 다시 물 었다.

“어떻게 할래?”

“수정을 해서 다시……

선물을 주려는 김태훈의 마음은 고 마웠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원하던 것은 아 니었다. 그래서 시나리오 수정 과정 을 거치고 다시 투자 심사를 넣겠다 고 대답하려 했던 이규한이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시간이 없어.’

시나리오를 수정할 작가를 구하고 수정을 하는 데만도 최소 한 달 이 상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도와 달 라고 울부짖던 조성현 대표의 얼굴 이 떠오른 순간 이규한이 마음을 바 꿨다.

“부분 투자라도 부탁드립니다.”

“이상하네.”

“내가 예상했던 이 대표의 대답과 다르거든. 난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거치고 다시 투자 심사를 받을 거란 대답을 예상했거든.”

‘역시 날 잘 알아.’

이규한이 쓰게 웃으며 입을 뗐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감독: 김용택 주태훈과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신 과 같이’의 주요 세팅은 거의 마무 리됐다.

이제 투자를 받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투자는 어디서 받을 생각이십니 까?”

그때,하정후가 물었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규한이 하정후에게 새삼스러운 시선을 던졌 다.

“이렇게 자주 찾아오실 줄은 몰랐 거든요.”

하정후가 ‘신과 같이’에 출연하는 조건 중 하나가 이규한에게 영화제 작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정후는 진짜 제작 노하우 를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해외 촬영 일정이나 지방 촬영 일 정이 잡힌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시 로 이규한을 만나기 위해서 찾아왔 다.

그런 하정후의 부지런함에 이규한

이 놀란 것이다.

그리고 부지런한 하정후의 최대 수 혜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규리였 다.

커피 전문점 블루문에 하정후가 자 주 출몰한다.

커피 전문점 블루문에 가면 하정후 를 볼 수 있다.

이런 입소문이 퍼지면서 커피 전문 점 블루문으로 더 많은 손님이 몰려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손님으로 가득 찬 커피 전 문점 블루문 내부를 이규한이 살피 고 있을 때 하정후가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제가 원래 한번 하기로 마음먹은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 다. 의욕이 과해서 이 대표님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는데, 그건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하정후가 냉녹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덧붙였다.

“저는 오히려 이 대표님에게 놀랐 습니다. ‘신과 같이’라는 작품에 출 연하겠다고 약속을 하긴 했지만,저 는 이 작품이 과연 제작될 수 있을 지 여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판권조차 확보하지 못

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런데 결국 판 권을 확보했고, 캐스팅까지 마치고 투자 심사 단계까지 온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아직 갈 길이 업니다. 가장 어려 운 단계인 투자 유치가 남았으니까 요.”

“후우. 투자 유치가 얼마나 어려운 지 저도 경험해 봐서 잘 알고 있습 니다. 배우로서 투자자를 만날 때와 제작자로서 투자자를 만날 때는 천 지 차이더군요. 냉정한 투자자들이 제가 제작하는 작품에 독설을 날리 는 것을 꾹 참고 듣고 있을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정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질문했다.

“이 대표님은 투자 유치 과정에서 특별한 노하우가 있습니까?”

“노하우라고 부르긴 어렵지만… 배 짱입니다.”

“배짱이요?”

“투자자들에게 끌려다니기 시작하 면 끝이 없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배짱을 부리는 편입니 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 하는 작품에 투자를 하려면 하고, 말라면 말아라. 빨리 투자를 결정하 지 않으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투자사로 가겠다. 이렇게 배짱 을 부리는 거죠.”

“대단하시네요.”

하정후가 감탄한 기색을 드러냈다.

과장된 연기가 아니었다.

하정후 역시 제작자로서 냉정하기 짝이 없는 투자자들을 만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규한이 말한 배 짱을 부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 는 것이다.

“대체 그런 배짱은 어디서 생기는 겁니까?”

“확신이죠. 내가 제작하는 작품은 최고의 세팅을 했다,제작을 마치고 개봉하면 무조건 흥행에 성공할 것 이다,이런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 에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겁니다.”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하정후가 다 시 물었다.

“그럼 이번에 배짱을 부릴 투자사 는 어디입니까?”

이규한이 대답했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사무 실.

이규한이 들어서자 권지영 팀장이 냉랭한 시선을 던졌다.

“오셨어요?”

눈빛만 차가운 게 아니었다. 말투에도 쌀쌀함이 묻어났다.

“내가 무슨 잘못했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규 한이 묻자 권지영이 대답했다.

“당연히 잘못했죠. 요샌 조강지처 눈치도 안 보고 노골적으로 바람을 피우시던데요?”

“응?”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받 으셨더라고요.”

“그 소문이 벌써 났어?” 이규한이 멋쩍게 웃었지만 권지영 은 냉랭한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말 했다.

“일단 회의실로 들어가서 얘기하시

“그러지.”

이규한이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 자 권지영이 아이스커피 두 잔을 들 고 돌아왔다.

“드세요.”

“고마워.”

이규한이 아이스커피를 받으며 입 을 뗐다.

“이번에는 처음이야.” “뭐가 처음이란 거죠?”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 가장 먼저 찾아왔단 뜻이야.”

이규한이 농담을 건넸음에도 권지 영은 웃지 않았다.

“왜 그랬어요?”

권지영이 불쑥 던진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당황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제가 툴툴거리긴 해도 이 대표님 을 많이 좋아했어요. 영화제작자로 서 능력도 뛰어나지만,좋은 사람이 었기 때문이에요.”

9”

“그런데 이번에는 진심으로 실망했 어요.”

권지영의 이야기를 듣던 이규한이 표정을 굳혔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게 설명해 봐.”

“지금 모른 척하는 거예요?”

“뭘 모른 척한단 거야?”

이규한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으로 묻자 권지영이 대답했다.

“블루블랙 필름 조성현 대표의 등 에 칼을 꽂았잖아요.”

‘뭔가… 잘못됐다.’

권지영이 힐난하는 투로 던진 말을 들은 이규한이 당황했다.

블루블랙 필름 조성현 대표를 돕기 위해서 나섰다.

그런데 호의로 시작한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난 조성현 대표의 등에 칼을 꽂은 적이 없어.”

“하지만 조성현 대표가 그렇게 주 장하고 있어요.”

“뭐라고?”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아니면 진 짜 모르는 거예요?”

“전혀 몰라.”

“블루블랙 필름에서 7년 넘는 시간

동안 회사의 사활을 걸고 준비한 ‘불야성’이란 작품이 있다,그런데 투자 유치가 잘되지 않아서 너무 힘 들었다,그래서 블루문 엔터테인먼 트 이규한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 다,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던 이규한 대표는 ‘불야성’의 흥행 가능성을 알고 난 후 태도가 돌변했다,공동 제작자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 한 후 ‘불야성’이란 작품을 빼앗아 갔다,이게 조성현 대표가 주장하는 내용이에요.”

권지영의 설명을 들은 후 이규한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거짓 주장이야.” “조성현 대표가 거짓말을 한단 뜻 인가요?”

“맞아.”

이규한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렇지만 권지영은 이규한의 말을 순순히 믿지 않았다.

“‘불야성’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 신 것은 맞잖아요?”

“그래. 조성현 대표의 요청이 있었 으니까.”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부분 투 자를 유치한 것도 사실이잖아요?”

“맞아.”

“수익 배분 비율이 어떻게 되요?”

“수익 배분 비율은… 9 대 1이야.”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9, 블루블 랙 필름이 1 맞아요?”

“그래.”

“그런데 왜 조성현 대표가 거짓말 을 했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그건……

“이런 수익 배분 비율이 이 대표님 이 블루블랙 필름에서 7년 넘게 준 비했던 ‘불야성’이란 작품을 빼앗은 게 맞다는 증거잖아요.”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불야성’의 수익 배분 비율이 9 대 1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원했던 것은 아 니었다.

“수익 배분 비율에서 블루문 엔터 테인먼트가 9, 블루블랙 필름이 1을 갖는 게 맞다는 뜻입니다.” 공동 제작 시 수익 배분 비율을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9, 블루블랙 필름이 1로 하자는 것은 조성현 대 표가 강하게 주장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조성현 대표는 뒤늦게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마음이… 바뀐 걸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르는 법.

이규한의 주도로 ‘불야성’이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부분 투자 를 받는 데 성공하고 나자 조성현 대표의 마음이 바뀌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내가 원한 게 아냐.”

“무슨 뜻이에요?”

“수익 배분 비율을 그렇게 하자고 주장한 건 조성현 대표였다는 뜻이 야.”

“왜요?”

으-‘……?"

“조성현 대표가 그렇게 주장할 이 유가 없잖아요?”

“그건……

이규한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 다.

“작품이 제작돼서 개봉하느냐 여부 를 가르는 것은 그 작품에 들인 노 력과 시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들인 7년의 시간보다 이규한 대표님께서 투자하 시는 한 달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까 이 대표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불야성’이란 작품은 제게 자식보다 더 소중한 작 품입니다. 그런데 능력 없는 부모를 만나서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죠.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는 떠나보내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 다. 그리고 이규한 대표님이라면 믿 고 제 자식을 보낼 수 있습니다. 저 는 제 작품이,아니 이 작품이 세상 에 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 족합니다. 그리고 수익 배분 비율을 이렇게 해야 제가 이 작품에서 정을 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조성현 대표는 이런 이유를 밝히며 수익 배분 비율에 대한 자신 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말을 순순히 믿어 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장 눈앞에 마주 앉아 있는 권지 영 팀장도 이규한의 주장을 믿지 않 았다.

이규한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으면 서 신뢰를 쌓았던 권지영 팀장이 이 러한데,다른 사람은 더 말할 필요 도 없었다.

‘함정.’

답답한 한숨을 내쉬던 이규한의 머 릿속에 두 글자가 떠올랐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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