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제작자의 한계 (2)
‘이게 나와의 차이점.’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김용택 감독이 베스트 스튜디오라 는 CG 전문 업체를 세운 것은 시 류를 읽어 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 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사업가 스타일은 아 니었다.
수입이 불안정한 영화감독의 삶에 지쳤기에 안정적인 수입원을 마련하 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베스트 스튜디오를 차렸던 것이다.
반면 이규한이 블루문 엔터테인먼 트를 세운 이유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을 천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힘 든 일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힘든 것보다는 즐겁고 좋 았던 기억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규한은 직원이 부족해서 하루하루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지만, 영화를 제작하는 일에 흥 미가 멸어지지는 않았다.
“아까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 하셨죠? 그게 무엇인지 제가 맞혀 봐도 될까요?”
“무엇일 것 같습니까?”
“다시 감독으로 복귀하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역시 예리하시네요.”
김용택은 굳이 자신의 속내를 감추 려 들지 않았다.
그런 그의 반응을 살피던 이규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됐다.
“저와 함께 감독으로 복귀하시죠.” “이규한 대표님과요?”
“싫으신 겁니까?” “제 입장에서는 싫을 이유가 없
죠
김용택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웃 으며 덧붙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많이 걱정했습 니다.”
“왜 걱정을 하신 겁니까?”
“김 감독님이 제가 드리는 제안을 거절하실까 봐요.”
“사업 때문에요?”
“네. 그래서 아까 사업에 흥미가 떨어졌단 이야기를 듣고 기뻤습니 다.”
이규한이 웃으며 말했지만,김용택
은 함께 웃지 않았다.
오히려 이규한에게 의아한 시선을 던지며 입을 뗐다.
“일단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으신 겁니까?” “왜 하필 저입니까?”
“네?”
“일전에도 이미 말씀드렸지만,저 는 흥행 감독과는 거리가 법니다. 그런데 왜 제게 감독을 제안하시는 겁니까?”
“제가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합니 다.” 이규한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할 걸까.
김용택이 슬쩍 눈살을 찌푸리는 것 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 다.
“질문의 순서를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제가 감독님에게 연출을 맡기려는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 까?”
“듣고 보니 궁금하긴 하네요.” 김용택이 호기심을 드러낸 순간 이 규한이 대답했다.
“‘신과 같이’라는 작품입니다.”
“방금… 무슨 작품이라고 했습니
까?”
“‘신과 같이’라는 작품이라고 했습 니다. 혹시 아십니까?”
“물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웹툰 작품에 관심이 무척 많거든요.”
웹툰 작품인 ‘신과 같이’가 대화 주제로 떠오르자 김용택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왜 웹툰 작품에 관심이 많으신 겁 니까?” “제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판단 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전작이 었던 ‘렛츠고 고’의 실패를 반복하 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김용택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희 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최근 들어 웹툰 작품의 판권을 구 입해서 영화로 제작하려는 시도가 가히 붐처럼 늘어나고 있었다.
연재 시에 인기를 얻은 웹툰 작품 의 경우에는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상황.
따라서 웹툰 작품의 판권을 확보한 상황이라면 투자를 받는 데 있어서 유리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웹툰 작품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 들이 제작을 마치고 개봉해서 흥행 스코어가 나쁘지 않은 것도 이런 붐 이 일게 된 원인이었다.
그렇지만 김용택이 웹툰 작품의 판 권을 구입하려는 것에는 다른 이유 가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자신도 없습 니다. ‘렛츠고 고’의 실패를 통해 제 한계를 명확히 깨달았거든요. 스토 리를 치밀하게 또 대중적으로 구성 하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오죽하 면 ‘랫츠고 고’에 초딩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었냐는 댓글이 달렸겠습니
일전의 만남에서 김용택이 밝혔던 자신의 한계이자 약점이었다. 그리 고 김용택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웹툰 작품에 관 심을 가진 것이었다.
‘역시 영리해.’
실패를 통해서 자신의 한계와 약점 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
또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
김용택이 무척 영리하다는 증거였 다.
“그래서 좋은 웹툰 작품의 판권을 잠시 후 이규한이 묻자 김용택이 손사래를 쳤다.
“몇 편의 웹룬 작품에 흥미를 느꼈 습니다. 그 작품들의 판권을 확보하 기 위해서 접촉해 보았지만 헛걸음 만 했습니다.”
“왜 헛걸음만 했습니까?”
“이미 판권이 팔린 후였습니다.”
김용택이 아쉬운 목소리로 대답했 다.
‘웬만한 작품은 이미 판권이 팔린 상태이니까.’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물
“방금 김 감독님이 관심을 갖고 판 권을 확보하려고 했던 웹툰 작품들 의 제목을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종의 테스트를 겸한 질문이기도 했다.
김용택이 판권을 구입하고 싶을 정 도로 관심을 가졌던 웹툰 작품들에 대해 알게 되면 작품을 보는 그의 안목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 다.
“제가 관심을 가졌던 작품은 아까 말씀하셨던 ‘신과 같이’를 포함해서 ‘죽지 않는 자들의 왕’,‘레드 레인’ 그리고……
김용택이 입밖으로 꺼내고 있는 웹 툰 작품의 제목들을 듣고 있던 이규 한의 입가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를 확인한 김용택이 물었 다.
“왜 웃으십니까?”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
“대부분 제가 판권을 보유하고 있 는 작품들이네요.” 이규한이 미소를 지은 이유를 밝히 자 김용택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 다.
“그 작품들의 판권을 보유한 것이 이규한 대표님이라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규한이 대답하자 김용택이 고개 를 흔들었다.
“우연일 리가 없죠. 이 대표님이 좋은 작품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보 고 판권을 구입하신 것이니까요. 블 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는 작 품이 괜히 흥행에 성공하는 게 아니 었군요.” “과찬이십니다. 그저 제가 다른 사 람들보다 한발 더 빨리 움직였을 뿐 입니다.”
“그게 중요한 겁니다.”
“네?” “그 한발에 사업의 성패가 갈리거 든요.”
열변을 토하던 김용택이 잠시 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신과 같이’의 판권도 구 입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 작품의 판권을 구입하 셨습니까?” “저도 최효민 작가를 만났습니다. ‘신과 같이’라는 작품이 정말 탐이 났기 때문에 판권료는 부르는 대로 주겠다는 각오를 한 채 최효민 작가 를 만났는데,결국 판권 구입에는 실패했죠. 조건이 워낙 까다로웠거 든요.”
“시리즈로 제작한 영화 세 편을 동 시에 제작하는 게 최효민 작가가 내 건 조건이었죠?”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신과 같이’의 판권을 블루문 엔터 테인먼트에서 확보했다고 말입니 “참 그렇죠. 아니,지금 그렇죠라고 말할 게 아니네요. 그럼 그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겁니까?”
“그게 좀 복잡합니다.”
“복잡하다니요?”
이규한이 대답했다.
“절충점을 찾았다고 보면 됩니다.”
최효민 작가에게서 ‘신과 같이’의 판권을 구입하는 과정.
긴 시간이 걸렸고,무척 지난한 작 업이 었다.
그래서 김용택에게 그 과정을 모두 설명하기 곤란했던 이규한이 간략하
게 핵심만 밝혔다.
“최효민 작가에게 저에 대한 믿음 을 심어 주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최효민 작가에게서 믿음을 얻는 데 성공한 덕분에 까다롭던 조 건이 조금 바뀌었죠.”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세 편 동시 제작이 아니라 두 편 만 먼저 제작하는 조건으로 바뀌었 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제가 감독님께 거짓말을 할 이유 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다만… 이 대표님이
방금 하신 말씀을 쉽게 믿기가 어려 워서요. 제가 만났던 최효민 작가의 태도는 무척 완고했거든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김용택 감 독을 확인한 이규한이 덧붙였다.
“그래서 힘들었습니다.”
“ <7"
“아까 최효민 작가의 믿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말씀드렸죠? 이렇게 말로 하니 간단해 보이지만,그 믿 음을 얻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 습니다. 공도 많이 들였고요.”
그간 이규한이 했던 노력이 짐작이 가는 걸까.
김용택 감독이 납득한 표정으로 고 개를 끄덕일 때,이규한이 다시 입 을 뗐다.
“중요한 건 제가 어떻게 최효민 작 가를 설득해서 ‘신과 같이’의 판권 을 구입했느냐가 아닙니다. 제가 ‘신과 같이’의 판권을 구입해서 보 유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그리 고 감독님께서 ‘신과 같이’라는 작 품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점 도 중요한 부분이죠. 그러니 ‘신과 같이’의 연출을 맡아 주시죠.”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잘하실 겁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는 겁니까?” “제작자의 직감이라고 말씀드리 면… 안 믿으시겠죠?”
“네.”
김용택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그는 감독이자 성공한 사업가.
사업가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 덕목 중 하나는 의심이 많아야 한다는 점 이었다.
예상대로 김용택이 믿지 못하겠다 고 대답한 순간 이규한이 덧붙였다.
“감독님의 약점과 한계는 제가 해 결해 드릴 겁니다. 탄탄한 스토리라 인을 갖춘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최 고의 작가들이 시나리오 작업에 참 여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초딩 타깃 이냐는 비아냥은 듣지 않을 겁니 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계셨습니 까?”
김용택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감독 님은 연출력을 발휘해 주시면 됩니 다. 특히 ‘신과 같이’의 경우에는 CG의 비중이 무척 높을 수밖에 없 습니다. 베스트 스튜디오가 그간 축 적해 온 기술을 총동원해 주시면 더 바랄 게 없죠.”
이게 김용택이 ‘신과 같이’의 연출 을 맡을 적임자라고 이규한이 판단
한 이유.
김용택도 비로소 납득이 가는 표정 을 짓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그리고 감독님은 제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인지도가 있으시더군요.”
“제가요?”
금시초문이란 표정으로 김용택이 반문한 순간 이규한이 설명했다.
“중국에서 말입니다. ‘렛츠고 고’의 반향이 꽤 컸던 것 같습니다.”
‘부산행 열차’는 제작 단계부터 해 외시장을 염두에 두었던 작품.
급을 맡았던 NEXT 엔터테인먼트 김태훈 팀장은 개봉 전 해외시장을 면밀히 분석했다.
당시 이규한은 김태훈 팀장에게 부 탁해서 김용택 감독의 중국 내 인지 도를 조사했다. 그리고 조사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도 몰랐는데,‘렛츠고 고’의 중 국 내 인기가 대단했어. 지금도 ‘렛 츠고 고’ 감독의 후속작을 기다리는 중국인이 많아.” 김태훈 팀장의 이야기를 통해 이규 한은 그의 중국 내 인지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신과 같이’ 역시 해외시장,특히 작품의 세계관상 중국을 비롯한 아 시아권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입장.
김용택 감독의 중국 내 인지도는 ‘신과 같이’의 아시아권 시장에서 흥행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저와 함께 감독으로 복귀하시겠습 니까?”
이규한의 질문을 받은 김용택 감독 이 대답했다.
대표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