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제작자의 한계 (1)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 투자를 확 정한 ‘어메이징 히어로즈’는 제작비 가 200억대인 대작 중의 대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메이징 히어 로즈’는 주연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김대환이 직접 만나서 설득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태훈은 ‘어메 이징 히어로즈’ 출연을 최종 고사했 이것이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위 상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증거.
김대환도 그 사실을 이제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영 향력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김덕원이 일부러 힘주어 말했지만, 김대환은 쓴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 를 흔들었다.
“일개 제작자에게도 밀리는 상황이 네.”
“그건……
“‘어메이징 히어로즈’ 출연을 고사 한 주태훈은 ‘신과 같이’에 출연할 테니까.”
“…일개 제작자가 아닙니다.”
“응?”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이규한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제작자이니까요.”
“자네 말이 맞네. 내가 너무 안일 했어.”
김대환은 본인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덕원이 두 눈을 빛냈다.
“그게 패인이었네.”
패인을 분석하고 있는 김대환의 눈
빛은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았다. 다시 매섭게 빛나는 그의 두 눈에 는 의욕이 불타고 있었다.
“아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 었지? 내 대답은 변함이 없네.”
“
“대안이 없다는 뜻이네.”
“무슨 말씀이신지……?”
“난 주태훈을 ‘어메이징 히어로즈’ 에 캐스팅해야겠네.”
김대환의 대답을 들은 김덕원이 일 단 안도했다.
적어도 그가 ‘어메이징 히어로즈’ 라는 작품의 제작을 포기하지 않았 다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김덕원의 표정은 밝아지 지 않았다.
조금 전 김대환이 주태훈과 통화하 는 모습을 김덕원은 지켜보았다. 그 리고 주태훈은 통화 도중 ‘어메이징 히어로즈’ 출연을 고사하겠다는 의 사를 본인의 입으로 직접 밝혔다고 했다.
즉,주태훈은 이미 ‘어메이징 히어 로즈’에서 마음이 떠난 상태였다.
‘그런데 대체 무슨 수로 그를 다시 캐스팅한단 말인가?’
결국 김덕원이 참지 못하고 질문을 꺼냈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실 겁니 까?”
“그건 아닐세.”
“그럼……?”
“‘어메이징 히어로즈’에 출연할 수 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들 생각이 네.”
‘어떻게?’
김대환이 꺼낸 상황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떠올리던 김덕원이 두 눈을 빛냈다.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시킬 계획입니까?”
주태훈은 ‘어메이징 히어로즈’가 아닌 ‘신과 같이’를 복귀작으로 결 정한 상황.
그가 다시 ‘어메이징 히어로즈’를 복귀작으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바로 ‘신과 같이’의 제작을 무산시 키는 것이었다.
“자넨 역시 눈치가 빠르군.”
김대환의 칭찬을 들은 김덕원이 자 신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알 아챘을 때였다.
되지 않은 상황이네. 난 그 부분을 적극 이용 할 생각이네.”
김대환이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투자 유치가 어려울 것 같진 않은데요?”
1편과 2편을 동시에 제작해야 한 다는 것이 ‘신과 같이’의 유일한 불 안 요소였다.
두 편을 동시에 제작한다면 제작비 가 대략 300억가량 들 터.
워낙 거액이라서 투자사 입장에서 도 ‘신과 같이’에 투자를 결정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 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덕원은 ‘신과 같이’의 투자 유치가 불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선 작품 외적으로는 ‘신과 같이’ 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 는 작품이라는 것이 컸다.
지난 십 년간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에서 제작했던 작품들은 대부분 홍 행에 성공했다.
덕분에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는 일 종의 브랜드가 됐다.
그리고 또 하나 결정적인 요인은 ‘부산행 열차’의 대성공이었다.
훌쩍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그 리고 ‘부산행 열차’의 흥행은 여기 서 끝나지 않았다.
해외시장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 작품 중 해외시장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두었고,해외시장에 서 거둬들인 수익액은 국내 흥행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과 비교해 큰 차 이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부산행 열차’의 제작비는 약 150 억.
국내에서 천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 하면서 이미 제작비를 회수했을 뿐 만 아니라 꽤 많은 수익을 거둬 들 였다.
그런데 해외시장에서도 성공을 거 두면서 ‘부산행 열차’의 흥행으로 인한 수익은 크게 늘어났다.
가장 큰 수혜자는 ‘부산행 열차’의 투자를 맡았던 NEXT 엔터테인먼
트.
그리고 NEXT 엔터테인먼트는 ‘부 산행 열차’가 국내와 해외시장에서 동시에 흥행 성공을 거두는 것을 지 켜보면서 이규한 대표에 대한 신뢰 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또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 하는 ‘신과 같이’의 제작비가 크다 는 것이 부담이 되긴 하지만,‘부산 행 열차’처럼 국내와 해외시장에서 동반 흥행하면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을 것이다.
‘NEXT 엔터테인먼트가 투자할 확 률이 높아. 아니,어쩌면 메이저 투 자 배급사들 사이에 경쟁이 붙을 수 도 있어.’
‘부산행 열차’의 성공을 로터스 엔 터테인먼트와 빅박스도 지켜본 상 황.
그들 역시 ‘신과 같이’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뛰어들 가능성은 충 분히 있었다.
이런 작품 외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작품 내적으로도 ‘신과 같이’는 투 자를 유치할 수 있는 구색을 갖춘
상태였다.
하정후와 주태훈 그리고 남지유와 강도빈까지.
최근 투자 유치에 있어서 가장 중 요한 요인이 배우라는 점을 감안하 면 ‘신과 같이’는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김덕원이 ‘신과 같이’의 투 자 유치가 가능할 거라는 의견을 조 심스럽게 개진하자 김대환이 말했 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네. 나도 투자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정도이니 까.” ‘그런데 어떻게 제작을 무산시키실
겁니까?”
“제작자의 한계를 깨닫게 해 줄 생 각이네.”
무슨 뜻일까.
김덕원이 말뜻을 파악하기 위해 애 쓰고 있을 때 김대환이 덧붙였다.
“한국 영화계는 무척 좁다네.” 주태훈이 장고 끝에 합류를 결정하 면서 ‘신과 같이’의 주연배우 캐스 팅은 끝이 났다.
하정후,주태훈,남지유,강도빈까
지.
캐스팅을 마친 주연배우들의 라인 업.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완 벽했다. 이규한이 내심 바랐던 캐스 팅 1순위 후보들로 꽉 채워진 셈이 었다.
“김대환 대표의 고심이 깊겠군.”
김대환 대표는 이규한이 ‘신과 같 이’에 캐스팅하려고 했던 주태훈을 도중에 가로채는 시도를 했다.
그렇지만 그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 다. 그리고 그 시도가 무위로 돌아 간 것은 김대환 대표 입장에서는 최 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
었다.
액터스 길드의 조진석 대표가 섣불 리 보도 자료를 배포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보도 자료와 달리 주태훈이 ‘어메 이징 히어로즈’ 출연을 최종 고사하 자 자연스레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캐스팅 과정에 대해 사람들이 호기 심을 품었다. 그리고 영화계는 아주 좁은 동네였다.
하정후부터 이정진까지.
주태훈 이전에 ‘어메이징 히어로 즈’의 캐스팅 제안을 고사했던 배우 들의 면면이 머잖아 드러났다.
거기에 주태훈까지 ‘어메이징 히어
로즈’ 출연을 고사한 상황.
자존심이 강한 배우들은 ‘어메이징 히어로즈’에서 캐스팅 제안이 오더 라도 출연을 고사할 터였다.
즉,‘어메이징 히어로즈’의 주연배 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더 큰 난관에 봉착했다는 뜻이었다.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잠시 고민하던 이규한이 이내 고개 를 흔들었다.
김대환 대표가 위기 상황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가 중요한 것이 아 니었다.
즈’가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신과 같이’의 제작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남은 건 감독.’
제작 단계에서 남아 있는 마지막 퍼즐은 ‘신과 같이’를 연출할 감독 을 섭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규 한은 이미 ‘신과 같이’의 연출을 맡 을 감독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 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커피 전문점에서 만난 베스트 스튜 디오 김용택 대표에게 손을 내밀며 이규한이 인사했을 때였다.
“오늘 커피는 이 대표님이 사시는 거죠? ‘부산행 열차’가 크게 성공했 으니까요.”
김용택이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저는 김 감독님에게 얻어먹으려고 했는데요.”
“네? 왜요?”
“베스트 스튜디오가 상장했단 걸 기사를 통해서 봤거든요.”
이규한이 지적하자 김용택이 껄껄 웃으며 입을 뗐다.
“알겠습니다. 제가 사죠.” 약속대로 커피를 산 후 김용택이 물었다.
“조용히 상장했습니다. 그래서 기 사도 거의 안 났는데 어떻게 아셨습 니까?”
“관심이 있으니까요.”
“주식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아니요.”
“그럼?”
“김용택 감독님에게 관심이 있습니 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어서일까. 김용택이 놀란 표정을 지었을 때, 이규한이 덧붙였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그런가요?”
“네. 지난번에는 무척 피곤해 보이 셨는데,이번에는 아니네요.”
“역시 관찰력이 보통이 아니시네 요” 김용택이 감탄한 표정으로 덧붙였 다.
“요새 좀 한가합니다. 그래서 좀 쉬었더니 얼굴이 좋아진 것 같습니 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최근 들어 CG가 필요한 작품들의 제작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김 용택이 이끌고 있는 베스트 스튜디 오는 국내 CG 제작 업체들 가운데 선두 주자였다.
가장 빨리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기술력과 가성비 측면에서도 국내에 서는 경쟁 업체가 없다시피 했다.
더구나 베스트 스튜디오의 기술력 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외국에 서도 CG 제작 관련해서 의뢰가 늘 어난 상황.
그래서 김용택이 더 바빠졌을 거란 이규한의 예측이 빗나간 셈이었다.
“베스트 스튜디오에 일거리가 몰리 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김 감독님은 한가 하신 겁니까?”
“저는 이 대표님과 다른 선택을 했 습니다.”
“ ‘……?"
“인력을 많이 충원했거든요.”
김용택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쓰 게 웃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직원은 이 규한까지 포함해서 총 다섯 명.
회사에서 제작하고 있는 작품의 수 를 감안하면 직원의 수가 무척 적은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규한이 모든 프로젝 트에 관여할 수밖에 없었고,자연히 바쁠 수밖에 없는 구조.
그 부분을 김용택이 지적한 것이었 다.
“대단하시네요.”
이규한이 감탄한 표정으로 덧붙였 다.
“저는 인력 충원이 가장 어렵거든 요.”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원들을 구하 는 게 쉽지 않으신 거죠?” “그렇습니다.”
이규한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김용 택이 웃으며 입을 뗐다.
“저 역시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원 들을 충원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습 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직원들을 충원하는 것을 서둘렀습니다.”
“직원 충원을 서두른 이유가 있습 니까?”
“회사 운영에 흥미가 떨어졌기 때 문입니다.”
“왜 흥미가 떨어졌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돈 을 충분히 벌었고,적성에 안 맞기 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하 고 싶어졌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