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내게 남은 건? (3)
‘주 배우 TV는 뭐지?’
이규한이 의문을 품었을 때,최효 민 작가가 대답했다.
“정후 씨도 ‘주 배우 TV’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게스트로 나와 달라고 태훈이가 하도 부탁해서 어떤 방송인지 일부 러 찾아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 으신 겁니까?”
“복수한 겁니다.”
“복수… 요?
“제가 제작하는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태훈이 가 먼저 거절했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정후와 최효민 작가 사이에 오가 는 대화를 듣고 있던 이규한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주 배우 TV’가 대체 뭡니까?”
“아,대표님은 모르시는군요. 태훈 이가 진행하는 개인 방송입니다.” “개인 방송이요?”
“요즘 1인 크리에이터들이 개인 방 송을 진행하는 것이 유행이지 않습 니까?”
이규한도 1인 크리에이터들의 개인 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기 사로 접한 적이 있었다.
“주태훈 배우도 개인 방송을 하는 겁니까?”
“태훈이는 일찍 개인 방송을 시작 했습니다.”
“개인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예견했나 보군요.” “그건 아닙니다. 태훈이가 ‘주 배 우 TV’라는 개인 방송을 일찍 시작 한 것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 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요?”
“혹시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태훈이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서 한동안 작품과 방송 출연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팬들과 소통하 기 위한 창구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 하다가 ‘주 배우 TV’라는 개인 방 송을 시작한 겁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뭐지?’
하정후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이규 한이 스마트폰으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주태훈의 이름을 검색했다.
- 주태훈 성추행.
잠시 후,연관 검색어로 떠오른 것 을 이규한이 클릭했다.
‘클럽에서 일반인 여성에게서 성추 행으로 피소를 당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자숙하는 의미로 작품 출연을 하지 않았구나.’
아까 하정후가 말했던 주태훈이 연 루된 불미스러운 사건은 성추행이었 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에 발생했 던 사건.
그 사건은 재판까지 이어졌고, 주 태훈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렇지만 재판 결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주태훈이 성추행으로 피소를 당했 다는 데만 대중들은 관심을 가졌었 다.
‘주태훈 입장에서는 많이 억울했겠 네.’
모델 출신인 주태훈은 큰 키와 세 련된 외모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세련된 외모만으 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연예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생기고 예쁘 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연예계였으니까.
주태훈이 주목을 받은 것은 세련된 외모 속에 뒤섞인 장난기와 반항기 때문이었다.
무표정하게 서 있을 때는 무뚝뚝한 신사 같지만,환하게 웃을 때는 장 난기 많은 아이처럼 순수한 주태훈 의 매력에 대중들은 환호했다. 그리 고 주태훈을 주목한 것은 팬들만이 아니었다.
엔터 업계 관계자들도 주태훈에게 관심을 가졌다.
-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가 될 가 능성이 높다.
주태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엔 터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였다.
물론 주태훈은 작품에 출연했을 때 연기력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연기 가 미숙했다.
모델 출신이라 정식 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태훈은 연기에 대한 열정 과 노력으로 그 약점을 서서히 지워 나갔다.
그리고 배우 주태훈으로 서서히 자 리를 잡아 가고 있을 때쯤 마침 성 추행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아까 말씀하셨던 ‘주 배우 TV’는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네,좀 보여 주시죠.”
이규한의 부탁을 들은 박동선 작가 가 스마트폰을 조작하더니 이내 앞 으로 내밀었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개인 방송입 니다.”
그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이규한이
‘주 배우 TV’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보시다시피 주 배우는 오늘도 혼 자 놈니다. 놀다가 지겨워지면 일을 시작하려고 했는데,노는 게 지겨워 지지 않는 걸 보니 천상 백수 스타 일인가 봅니다. 매일 노는데 어떻게 먹고사느냐? 이렇게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 습니다. 참, 혹시 제가 아사할까 봐 걱정돼서 아이디 rmfldbq 님께서 쌀과 장조림 보내 주셨는데,잘 받 았습니다. 덕분에 제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하 핫. 먹는 얘길 하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지네요. 뭐라도 좀 먹어야겠습 니다. 오늘은 우리 길냥이의 생일이 기 때문에 특별히 주문한 미쿡산 소 고기 스테이크를 좀 벳어 먹도록 하 겠습니다. 물론 길냥이가 허락을 해 줘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긴 하지 만……
이규한이 ‘주 배우 TV’를 시청하 고 있을 때 하정후가 물었다.
“재미없죠?”
“솔직히 재밌지는 않네요.”
“이제 태훈이도 슬슬 복귀를 해야 하는데.”
하정후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물었다.
“아까 정후 씨가 주태훈을 카메오 로 캐스팅하려고 했다고 말씀하셨
죠?”
“말이 카메오지,출연 분량은 주연 급 조연 정도입니다. 그런데 거절당 했습니다.”
“왜 주태훈을 캐스팅하려고 했던 겁니까?”
“연기를 잘합니다.”
“주태훈이요?”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하 정후가 덧붙였다.
“배우에 대한 평가는 배우가 내리 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태훈입니다.” “이규한입니다.”
주태훈과 악수를 하면서 이규한이 내심 감탄했다.
이규한의 키도 작은 편이 아닌데, 주태훈은 약 10cm가량 더 컸다.
그리고 더 인상적인 것은 비율이었 다.
다리가 길고 머리가 작은 편이라서 더욱 키가 커 보였다.
“이규한 대표님을 만나게 돼서 영 광입니다.” 주태훈의 인사를 듣고 있던 하정후 가 끼어들었다.
“태훈아,이건 좀 아니지.”
“뭐가요?”
“너무 다르잖아.”
"
“내가 널 캐스팅하기 위해서 만났 을 때와 지금 이 대표님을 만났을 때의 반응이 너무 다르단 말이야.” 하정후가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주태훈은 당연하다는 듯 이 대답했다.
“당연히 다르죠.”
“당연히?”
“형은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던 생 초짜 제작자인 반면,이규한 대표님 은 대한민국 최고의 제작자이니까 요.”
“두고 봐라.”
“뭘 두고 봅니까?”
“언젠가 날 푸대접한 걸 후회하는 날이 찾아올 테니까.”
“과연 그런 날이 찾아오긴 할까 “뭐?”
“그냥 배우만 하시죠.”
성공한다.”
“진짜 성공할 수 있을지 두 눈 크 게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져요.”
“그게 주 배우의 매력 아닙니까?”
“잘났다,잘났어.”
“제가 잘났다는 소릴 좀 듣습니 다.”
주태훈과 하정후 사이에 오가는 대 화를 듣고 있던 이규한이 희미한 미 소를 머금었을 때였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하정후가 불쑥 말했다.
“무슨 실수를 했단 말씀이십니까?”
“저 녀석을 추천했던 것 말입니다. 제가 오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오판이 아닌 것 같은 데요.”
“네?”
“정후 씨의 눈이 정확했단 뜻입니 다.”
“무슨 말씀이신지?”
“정후 씨를 상대로 한 치도 안 밀 리네요.”
이규한이 대답하자 하정후가 말귀 를 알아듣고 실소를 홀렸다.
“요새 들어 많이 뻔뻔해졌습니다.”
“그래서 좋네요.”
“태훈이가 뻔뻔해진 게 좋다는 말 씀인가요?”
“네. 정후 씨를 상대하면서도 기에 서 전혀 늘리지 않거든요.”
아까 하정후와 주태훈이 벌이던 설 전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미소를 머 금었던 이유.
두 사람이 벌이는 설전의 내용이 재밌기도 했지만,다른 이유가 존재 했다.
방금 말한 대로 주태훈은 하정후와 설전을 벌이면서도 전혀 기가 눌리 지 않았다.
느낌이었다.
“정후 씨와 대립각을 세우는 호왕 배역을 맡을 배우를 찾는 데 어려움 을 겪었던 가장 큰 이유는 카리스마 였습니다. 정후 씨를 상대로 기 싸 움을 펼쳐도 밀리지 않을 배우를 찾 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최민석과 김운식 그리고 한석호.
그동안 하정후와 함께 투톱으로 출 연했던 남자 배우들의 면면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대한민국을 대표 하는 연기파 배우들이라는 것과 나 이가 40대 중후반 혹은 50대 초반 이라는 점이었다.
‘하정후가 젊은 남자 배우와 투톱
을 이룬 작품은 거의 없었어.’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블랙 레인’과 ‘피스톨’.
동 나이대 남자 배우와 하정후가 투톱을 이뤘던 작품들이었다. 그리 고 두 작품은 모두 홍행에 실패했 다.
티켓 파워를 갖춘 하정후가 출연했 음에도 두 작품이 흥행에 실패했던 이유.
하정후의 상대역이었던 젊은 배우 들의 연기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이지만,그게 극의 긴장감을 떨어 트리는 요인이라는 평가가 정확했 다.
‘결국 하정후와 연기 대결을 펼쳐 도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밀리지 않 는 젊은 배우를 캐스팅해야 해.’
이런 전제 조건이 필요했기에 캐스 팅에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
주태훈은 일단 전제 조건은 충족시 킨 느낌이었다.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편하게 말씀하시죠.”
“간단하게나마 오디션을 볼 수 있 을까요?” “지금… 이요?”
이규한의 제안을 들은 주태훈이 살 짝 당황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찾아왔기 때문 이리라.
“어렵겠습니까?”
“아니요. 하죠.”
“이유는 묻지 않으십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제작자이신 이규한 대표님이 이런 부탁을 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겠죠.”
주태훈이 흔쾌히 수락한 순간,이 규한이 물었다.
“혹시 ‘암살자, 보이지 않는 총구’
라는 작품을 보셨습니까?”
“네,봤습니다. 형이 시사회에 초청 했거든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에 등 장하는 장면으로 오디션을 봤으면 합니다.”
“어떤 장면입니까?”
“정후 씨와 김운식 배우가 서로에 게 총구를 겨눈 채 밀정으로 의심하 는 장면입니다. 기억나십니까?”
“기억은 나는데… 정확한 대사까지 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제가 시나리오
책을 갖고 왔으니까요.”
즉흥적으로 오디션을 제안한 것이 아니었다.
이규한은 처음부터 오디션을 염두 에 두고 있었다.
직은 카페를 두 시간가량 통째로 빌린 것도 오디션 때문이었다.
“정후 씨가 상대역을 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주태훈을 추천한 장본인이기 때문 일까.
하정후는 오디션 상대역을 맡겠다 고 이미 수락한 상태였다.
“이것도 받으시죠.”
이규한이 백팩에서 소품 권총 두 자루를 꺼내서 건넸다.
“이건 또 언제 챙겨 오신 겁니까?”
자신의 앞으로 내밀어진 소품 권총 을 확인한 하정후가 혀를 내둘렀다.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죠.”
“대단하시네요.”
“원래 제작자는 준비성이 철저해야 합니다.”
“또 하나 배웠습니다.”
하정후가 웃으며 대답한 순간,이 규한이 정색했다.
“이제 제작자 하정후가 아니라 배 우 하정후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제대로 하란 뜻이죠?”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하정후와 시선을 교환한 이규한이 주태훈을 바라보았다.
“준비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준비 끝났습니다.”
“벌써요?”
“대사가 몇 줄 되지도 않는데요, 뭘.”
“그럼 디렉션은 제가 내리겠습니 다. 일단 동선부터 체크하죠.”
데를 비우자 하정후와 주태훈이 마 주섰다.
연기를 시작할 준비가 끝났음을 확 인한 이규한이 디렉션을 내렸다.
“레디,액션.”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