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이제는 안 변할 거야 (2) “가까운 사람들이요?”
“예를 들면 경국지색 모임 멤버 들?”
“알겠어요.”
“나중에 경국지색 모임에 한번 초 대해 줘.”
“오빠를요? 왜요?”
“경국지색 멤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 덕분에 지유도 만날 수 있었고. 그래서 맛있는 밥이라도 한 번 사려고.”
“좋아요.”
남지유가 아이처럼 될 듯이 기뻐했 다.
그 모습을 이규한이 흐뭇하게 바라 보고 있을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탁자 위에 올려 둔 휴대전화가 진 동했다.
발신자가 박동선 작가임을 확인한 이규한이 전화를 받았다.
“박 작가님,무슨 일로 전화하셨습 니까?”
“시나리오 작업이 끝나서 연락드렸 습니다.”
“벌써요?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 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예상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저야 좋죠.”
“2편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기 전 에 몇 가지 상의드릴 것도 있고 해 서 오늘 한번 만났으면 하는데,괜 찮으세요?”
“물론 만나야죠.”
“제가 사무실로 찾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박동선 작가와의 통화를 마친 이규 한에게 남지유가 물었다.
“이제 들어가 보셔야겠네요?”
“그래.”
“그럼 다음에……
“같이 가자.”
“네?”
“같이 가서 만나자고.”
“그래도… 돼요?”
“당연히 되지.”
“하지만……
“나도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거든.” 이규한의 이야기를 들은 남지유가
또 한 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짜 많이 변하긴 했네요. 적응이 안 될 정도로”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는 안 변할 거야.” 커피 전문점 블루문.
남지유가 들어서자 카페 안 공기가 술렁였다.
손님들의 이목이 일제히 쏠렸지만, 남지유는 익숙한 듯 신경 쓰지 않고 카운터 앞으로 다가갔다.
“규리야.”
“지유구나. 연락도 없이 갑자기 웬 일이야?”
“네가 보고 싶어서 왔지.”
“잘 왔어. 내가 맛있는 생과일 주 스 만들어 줄게.”
남지유를 유난히 반기는 이규리를 의심쩍게 바라보던 이규한이 끼어들 었다.
“공짜로?”
“당연히 공짜지.”
“아닌 것 같은데? 손에 왜 앞치마 를 들고 있어?”
이규리의 손에 앞치마가 들려 있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물었다.
그렇지만 이규리는 그 질문에 답하 는 대신 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 시간만 알바해 주면 안 돼? 그때, 지유 네가 알바하고 난 다음 에 가게 매출이 엄청 늘어났거든.”
이규리의 부탁을 듣고 남지유가 난 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대신 대답했다.
“안 돼.”
“왜 오빠가 안 된다고 대답해?”
“오늘 지유는 우리 회사 손님으로
여기 온 거거든.”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손님?”
“그래.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는 작품에 지유가 출연할 거 야.”
이규한이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생과일 주스 두 잔. 특별히 맛있 게 만들어 줘.”
주문을 마친 이규한이 남지유와 함 께 비어 있던 창가 쪽 탁자로 다가 갔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예약석 펫말 을 이규한이 아래로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지유가 물었다.
“오빠가 예약했어요?”
“아니. 지정석이야.”
“지정석이요?”
“여기 주인에게 임대료를 안 받는 대신 지정석을 하나 달라고 부탁했 거든.”
“그럼… 이 건물이 오빠 건물이에 요?”
“맞아.”
“대박.”
남지유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지켜 보던 이규한이 웃으며 물었다.
“나에 대한 호감도가 더 올라갔 어?” “오빠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네 요.”
그녀가 웃으며 농담을 받을 때,이 규리가 생과일 주스 두 잔을 쟁반에 담아서 다가왔다.
“좋아할 필요 없어. 빛 좋은 개살 구니까.”
“빛 좋은 개살구라니?”
“말 그대로야. 오빠가 건물주이긴 한데,임대료 수익이 거의 안 나거
드 ”
“왜 임대료 수익이 안 나?”
“가난한 영화제작자들에게 거의 공 짜로 사무실을 빌려주는 자선사업을
하고 계시거든.”
이규리의 설명을 들은 남지유가 이 규한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너무 멋있어서요.”
“내가 좀 멋있긴 하지?”
“역시 오빠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규한과 남지유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이규리가 끼어들었다.
“왜 이래?”
“뭐가?”
“갑자기 변한 것 같아.”
“내가 변했다?”
“응. 딴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떻게 변했는데?”
“많이 밝아진 것 같은데.”
이규한이 남지유와 의미심장한 눈 빛을 교환하면서 미소를 머금었을 때였다.
“그나저나 지유야,지금 이게 좋아 할 일이 아냐.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전혀 못 챙기는 가난한 영화 제작자랑 사는 게 쉬울 것 같아?”
“가난하지는 않거든.”
이규한이 정정했다.
비록 임대료 수익은 나지 않지만 청월 빌딩은 이규한의 소유였다.
그리고 청월 빌딩만이 아니었다. 이규한은 빌딩 하나를 더 매입한 상태였다.
보유한 건물만 두 개.
게다가 은행에서 VIP로 분류될 정 도로 통장 잔고도 많은 편이었다.
가난한 영화제작자와는 거리가 멀 었다.
“곳간 비는 것 한순간이거든. 계속 그렇게 자선사업 하다가는 금세 가 난해질걸.”
“상관없어.”
“응?”
“내가 먹여 살리면 되니까.”
“나도 잘 벌거든.”
남지유가 상관없다고 대답하는 것 을 들은 이규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생연분이네,천생연분.”
비아냥거리는 이규리에게 이규한이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실속 있는 건 물주로 변신할까?”
“무슨… 뜻이야?”
“이 가게부터 임대료 제대로 받아 볼까?”
이규한이 손님이 꽉 들어차 있는
커피 전문점 블루문 내부를 둘러보 며 운을 떼자,이규리가 서둘러 말 했다.
“얘기들 나누세요. 전 바빠서 이 만.”
서둘러 사라지는 이규리를 보며 이 규한이 웃음을 머금었을 때였다.
딸랑.
커피 전문점 블루문 안으로 박동선 작가가 들어섰다.
이규한을 발견하고 서둘러 다가오 던 박동선 작가가 남지유를 발견하 고 얼어붙었다.
“대표님… 아니죠?”
“맞습니다.”
“진짜 남지유 씨인가요?”
“네,
“헐,대박.”
박동선 작가가 본능적으로 뒷걸음 질을 쳤다.
‘하정후를 만났을 때와 반응이 똑 같네.’
이규한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뗐다.
“박 작가님,도망치지 마세요. 해치 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이번 시나리오 작 업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그러니 까 제가 어느 부분에 집중했느냐 면……
박동선 작가는 평소와 달랐다.
달변가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유 난히 말을 많이 더듬었다. 그리고 결국 말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했다.
“그냥 직접 읽어 보시죠.”
박동선 작가가 ‘신과 같이’ 1편의 시나리오 책을 내밀었다.
이규한이 그 시나리오 책을 건네받
을 때,박동선 작가가 물었다.
“그런데 지유 씨는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줄곧 남지유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박동선 작가에게 이규 한이 대답했다.
“불편하세요? 그냥 가라고 할까 요?”
“아니요.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 라… 실감이 안 나서요. 제가 지유 씨의 광팬이거든요.”
“감사합니다.”
“아뇨. 제가 감사할 일이죠. 이렇게 보잘것없는 저와 마주 앉아서 대화
도 해 주시고,또……
“지유가 ‘신과 같이’에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이규한이 알려 주자 박동선 작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좋은 작품에 출연하기 로… 대표님,방금 뭐라고 하셨습니
까?”
“지유가 ‘신과 같이’에 출연할 거 라고 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언제 거짓말한 적이 있습니 까?”
“?"없죠.”
박동선 작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어떤 배역입니까?”
“어떤 배역일 것 같습니까?”
“혹시… 하선 배역인가요?”
“맞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시나리오를 쓰면 서 내심 지유 씨가 하선 배역을 맡 아서 연기하면 잘 어울릴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럼 최상의 캐스팅을 한 셈이네 요.”
이규한이 웃으며 말한 순간,박동 선 작가의 표정이 비장하게 바뀌었 “다시 주시죠.”
“뭘 다시 달란 말입니까?”
“아까 제가 드렸던 시나리오 책 말 입니다. 그리고 시간도 조금 더 주 시죠.”
“왜 그러십니까?”
“지유 씨가 출연하기로 했으니까 하선 배역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손을 조금 더 보고 싶습니다.”
박동선 작가가 수정에 대한 의욕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럼 한번 고쳐 주시죠.”
이규한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순순히 수락하 자 박동선 작가가 벌떡 일어났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왜 벌써 일어나십니까?”
“시나리오 수정을 서둘러야 하니까 요.”
“하지만……
“아까 드린 시나리오 책은 지유 씨 에게 한번 보여 주십시오. 제가 최 선을 다해서 수정한 시나리오와 차 이를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이규한에게 인사를 한 박동선 작가 가 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에 다시… 아니,앞으로 못 볼 수도 있겠네요. 만나서 영광이었 습니다.”
“아니요.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 다.”
“ 9”
“시나리오 수정 마치시면 제가 맛 있는 식사 한번 대접할게요.”
“식사… 요?”
“싫으세요?”
“싫을 리가요. 좋습니다. 아주 좋습 니다.”
박동선 작가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 했다.
갑자기 고성을 지르는 그에게 가게 안 손님들의 이목이 일제히 쏠렸다.
그렇지만 박동선 작가는 그 시선들 도 전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흥분 상태였다.
“지유 씨에게 밥을 얻어먹을 자격 이 생길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수정 하겠습니다.”
박동선 작가가 마지막까지 강한 의 지를 불태운 후 떠났다.
‘시나리오 잘 나오겠네.’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하며 창밖으 로 고개를 돌렸다.
특히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규한은 좋아하는 일을 원 없이 하고 있었다.
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고 있었다.
게다가 이규한의 곁에는 남지유가 함께였다.
‘더할 나위 없이 모든 게 좋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희미한 웃 음을 머금었던 이규한의 입꼬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피처럼 붉은 달 이 보였기 때문이다.
‘불길해.’ 레드문을 확인한 순간,문득 불안 감이 깃들었다.
“오빠,괜찮아요?”
남지유가 부르고 나서야 이규한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응,괜찮아.”
‘괜찮을 거야.’
단지 기분 탓일 거라 여기며 이규 한이 박동선 작가가 건넨 시나리오 책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나오려나?’
시나리오 감정을 앞두고 이규한이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시선을 던졌 다.
잠시 후,이규한이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감정을 하기 위해서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든 이규 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왜 안 떠오르지?’
눈앞에 예상 관객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드르륵.
대표실로 들어간 이규한이 서랍을 열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 투고된 시 나리오 책들 중 황진호가 쓸 만하다 고 평가해 출력해 두었던 작품들을 꺼낸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몬스터.’
가장 위에 놓여 있는 시나리오 책 의 제목이었다.
그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던 이 규한의 표정이 굳었다.
‘안 떠올라.’
이번에도 눈앞에 예상 관객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