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이제는 안 변할 거야 (1) “훙 대표님과 비슷한 생각을 한 사 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네?”
“그래서 ‘부산행 열차’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 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 좀비가 소 재인 작품은 흥행에 무조건 실패한 다,그런데 왜 쉬운 길을 두고 어려 운 길을 가려는 것이냐? 이런 이야
기를 많이 들었죠. 그런데 제가 왜 모두 만류한 ‘부산행 열차’의 제작 을 끝까지 밀어붙였는지 아십니까?”
잠시 고민하던 흥세욱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기 때문이 아닙니까?”
“오기라.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 이유가 대체 뭡니까?”
“지금이 아니면 ‘부산행 열차’를 제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 문입니다.”
" <?,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작 품들의 흥행 성적이 좋았던 덕분에 투자사에서 제게 믿음을 갖고 있었 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아니면 투자 를 받을 수 없겠구나,일단 저지르 고 보자,이렇게 판단했던 겁니다.”
이규한이 진짜 이유를 밝히자,홍 세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을 하신 셈이네요.”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모험을 한 것이 성 공했네요. ‘부산행 열차’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흥행에 크게 성 공했으니까요.”
“맞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겁 니까?”
그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지유도 비슷한 상황이니까요.” “오빠.”
자신의 이름이 갑자기 등장하자 남 지유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응시하며 이규한이 말 을 이었다.
“골든 타임이란 단어를 들어 보셨 습니까?”
“골든 타임은 의학 용어가 아닙니
까?”
“맞습니다. 응급 환자의 생사가 갈 리는 일정한 시간을 뜻하는 용어입 니다. 골든 타임 안에 치료하면 살 수 있고,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면 환자는 사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제가 왜 갑자기 골든 타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지 의아하시죠?” “솔직히 그렇습니다.”
“지유에게도 남아 있는 골든 타임 이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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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하지 못하는 가수는 어떤 의미에서 환자와 마찬가지이니까
요.”
흥세욱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한 순 간, 이규한이 말을 이었다.
“만약 ‘부산행 열차’가 흥행에 실 패했다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는 위 기에 처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부 산행 열차’가 흥행에 실패한다고 하 더라도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재기
불능의 상황에 빠지는 건 아니었습 니다. 그동안 영화제작사로 쌓아 온 성공 덕분에 신뢰가 굳건했으니까 요. 그래서 더 용감하게 ‘부산행 열 차’의 제작에 나설 수 있었던 것 같 습니다. 또 ‘부산행 열차’를 제작하 는 과정에서도 모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진짜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 까?”
“지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수 남 지유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는 굳건 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대중들은 냉 정합니다. 또 가요계는 세대 교체가 무척 빠르다는 이야기를 스타필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님에게 들은 적 이 있습니다. 만약 가수 남지유가 계속 신곡을 발표하지 않는다면,머 잖아 대중들에게 잊혀지게 될 것입 니다. 그리고 가수 남지유의 자리는 다른 가수가 채우게 되겠죠.”
“그건……
“훙 대표님이 진짜 두려워하시는 게 뭡니까?”
이규한이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 는 홍세욱을 응시하며 물었다.
“실패가… 두렵습니다.”
“왜 실패가 두려우신 겁니까?”
입니다. 모험을 했다가… 저희 회사 의 기둥 중 하나를 잃게 될까 봐 두려운 겁니다.”
흥세욱이 조심스럽게 대답을 한 순 간,이규한이 남지유에게 고개를 돌 렸다.
그의 속내를 듣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일까.
남지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결국 서로 의 의중을 모르거나 오해하기 때문 이야.’
이규한이 판단하기에 남지유와 홍 세욱 사이의 갈등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속내나 의중을 모른 채 대 립하다 보니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 이었다.
깊어진 갈등을 해소할 방법은 서로 이해하는 것뿐이다.
“지유야.”
“네,오빠.”
“넌 모험을 했다가 실패하는 게 두 렵지 않아?”
“저라고 해서 왜 무섭지 않겠어 요?”
“그런데 왜 모험을 하려는 거야?”
“틀을 깨고 싶어서요. 제가 갇혀 있는 틀을 깨야만 더 좋은 가수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거든요.”
남지유의 대답을 들은 흥세욱이 천 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 다.
서로의 오해는 어느 정도 풀린 상 황.
이제는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아까 제가 골든 타임 이야기를 했 었죠? 저는 음악에 대해서 잘 모릅 니다. 그래서 지유가 음악적으로 새 로운 시도를 했을 때 성공할지 실패 할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다시 돌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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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 대표님의 말씀처럼 설령 지유 가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 가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커리어가 끝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 유에게는 그동안 가수로서 대중들에 게 쌓아 온 굳건한 신뢰가 있기 때 문입니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늦 어진다면 지유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질 겁니다.”
“흐음.”
흥세욱이 침음성을 홀렸다.
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었다. 그 반 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열 었다.
“지유를 ‘신과 같이’에 캐스팅하려 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남지유의 캐스팅 제안을 들은 흥세 욱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지유를 ‘신과 같이’의 여주인공 배역으로 캐스팅할 예정입니다.”
이미 소나무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 수인 강도빈의 ‘신과 같이’ 캐스팅 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남지유까지 ‘신과 같이’에 캐스팅이 될 확률이 높았다.
더구나 조연이 아니라 여주인공 배 역으로 남지유를 캐스팅할 계획이란 이야기를 들은 홍세욱은 기쁜 기색 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흥세욱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유를 ‘신과 같이’의 여주인공으 로 캐스팅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실력이 있으니까요.”
“실력이… 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 던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여주인
공으로 출연했던 지유의 연기력은 무척 뛰어났습니다. 그 작품을 통해 서 여주인공으로 작품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증명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지유에게는 탄 탄한 팬덤과 스타성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한 아저씨’가 제 기대 이 상으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 는 지유의 역할이 컸다고 저는 판단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유를 ‘신 과 같이’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 려는 겁니다.”
“지유가… 그 정도입니까?”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신뢰가 부 족한 것 같다고. 만의 하나 지유가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배우라는 새로운 영역 이 있습니다. 제가 배우 남지유를 책임지고 성공시키겠습니다. ”
이규한이 장담하자 흥세욱은 남지 유에게 새삼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지유 에게 더 늦기 전에 음악적으로 새로 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 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흥세욱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남지유의 표정이 환해진 것을 확인 한 이규한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 을 때였다.
“이규한 대표님,마지막으로 하나 만 질문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시죠.”
“왜 지유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 시는 겁니까?”
흥세욱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 정으로 질문했다.
“하나뿐인 여동생의 친구이니까요.”
이규한이 대답했지만,흥세욱은 만 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유가 부족한가요?”
“그럼 다시 말씀드리죠.”
잠시 후,이규한이 남지유를 바라 보며 말했다.
“제가 지유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 다.” “커피 한 잔 마실래?”
이규한이 제안하자 남지유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이규한과 남지유는 소나 무 엔터테인먼트 인근에 위치한 조 용한 커피 전문점에 마주앉았다.
“뭘로 마실래?”
“저는… 유자차로 마실게요.”
“알았어.”
이규한이 카운터에서 아이스 아메 리카노와 유자차를 주문하고 돌아오 며 탁자에 앉은 남지유를 살폈다. 그런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이규한이 맞은편에 앉으며 묻자 남 지유가 고개를 들어서 빤히 응시하 며 물었다.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죠?”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내 안색이 별로야?”
“그건 아니지만… 갑자기 걱정이 돼서요.”
“ 9”
“오빠가 너무 갑자기 변해서요.” 남지유가 걱정하는 이유.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갑자기 변 한다는 옛말을 들어 보았기 때문임 을 알아첸 이규한이 웃으며 물었다.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당근 아니죠.”
“그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그건 더 안 되죠.” 남지유가 살짝 언성을 높이며 대답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규한이 픽 하고 실소를 터트렸을 때였다.
“진짜 변한 이유를 물어봐도 돼요?” “안 될 이유가 뭐가 있겠어?”
“그럼 말해 주세요.”
“제아의 충고가 컸지.”
“제아… 요?”
“일전에 ‘부산행 열차’의 캐스팅 문제로 제아를 만나서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어. 그때 제아가 독신주의 자냐고 묻더라고. 너처럼 괜찮은 여 자가 호감을 보이는데 왜 아무 반응 도 보이지 않느냐고 핀잔을 건네기 도 했지. 아니,핀잔 정도가 아니라 역정을 냈었지. 어쨌든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는데,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아가 한 말이 맞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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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물쭈물하다가 널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란 생각이 들었어.”
이규한이 말을 끝맺자 남지유가 뺨 을 붉혔다.
“제가 그 정도로 괜찮은 편은 아닌 데.”
“아니. 내게는 과분할 정도야.”
빈말이 아니었다.
억지로 누군가를 밀어내야 한다는 마음이 사라지자 남지유가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인기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남지유 는 겸손했다.
또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면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가장 끌리는 부분은 그녀 가 용감하다는 점이었다.
일에서도,사랑에서도 용감한 그녀 의 모습이 이규한은 좋았다.
그때,남지유가 여전히 빨을 붉힌 채 물었다.
“그럼 우리가 만난다는 사실을 밝 혀도 돼요?”
“그건 좀 뒤로 미루자.”
“왜요?”
“훙 대표가 싫어할 것 같으니까.”
“하지만……
“간신히 흥 대표를 설득하는 데 성 공한 상황이야. 지금 홍 대표의 심 기를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알겠어요.”
남지유가 아쉬운 기색으로 대답하 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어.”
“아까 홍 대표 앞에서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야. 난 너를 ‘신과 같이’ 의 주연으로 캐스팅할 거야.”
“진심… 이셨어요?”
“능담인 줄 알았어?”
“사장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냥 하신 말씀인 줄 알았어요.”
“진심이었어. 그리고 널 캐스팅하 려는 계획을 세운 게 아니라 널 캐 스팅하기로 이미 결심한 후야.”
남지유가 놀란 표정을 지을 때,이 규한이 덧붙였다.
“그런데 ‘신과 같이’의 제작자인 나와 주연배우인 네가 사귀는 사이 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히 뒷말 이 많이 나올 거야. 또,촬영 현장 에서도 불편해할 사람들이 많을 거 고. 그런 점이 우려가 돼서 뒤로 미 루자고 말했던 거야.”
이규한의 설명을 들은 남지유가 비 로소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운 기색을 못내 감추지 못하는 남지유 를 확인한 이규한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그래도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알려 도 괜찮을 것 같아.”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