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소나무 엔터테인먼트 (1) 남지유가 불쑥 던진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당황했다.
‘했어.’
정답이 아닌 오답을 이규한이 꺼냈 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어.”
“왜요?”
“결혼 생활이 무서웠거든.”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꽤 많거든. 그 영화들 을 보고 나니까 결혼하는 게 무섭더 라고.”
이규한이 덧붙인 이야기를 들은 남 지유가 픽 웃으며 말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네요.”
“영화제작자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서 계속 결혼을 안 하실 생각 이세요?”
“아니.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 어.”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어요?” “요즘은 그런 영화를 일부러 안 보 고 있거든.”
“하하.”
“농담이고. 진짜 계기는… 규리야. 내가 규리의 결혼을 많이 반대했거
드 ”
“왜 반대하셨어요?”
“호인이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 이야.”
남지유는 최호인이 연출한 ‘나를 사랑한 아저씨’라는 작품에 주연으 로 출연했었다.
그래서 최호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최 감독님 좋은 분 같던데요?”
“호인이란 이름 그대로 사람은 좋 지.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점은 호 인이가 영화 일을 한다는 점이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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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내가 가장 잘 알았거든. 그래서 반 대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두 사람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지레 겁을 먹었구나 하는 생 각이 들었어. 두 사람,내가 생각했 던 것보다 훨씬 잘 살더라고.” 이규한이 대답하자 남지유가 고개 를 끄덕였다.
“저도 불안했어요. 인기는 거품 같 은 거라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 이 바뀌었어요.”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어?”
“미리 겁먹고 두려워하지 말자. 내 인기가 떨어졌을 때쯤에는 지금과는 다른 내가 담담하게 그 상황을 감당 하고 있을 것 같거든요.”
“지금과는 다른 내가 서 있을 거 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그 노력과 시간이 쌓이면 새로운 나를 만들 거라고 생각해요. 풍랑이 심한 바다를 헤치고 지나가다 보면 많이 흔들리겠지만 가라앉지만 않으면 된 다,그럼 다시 언제든지 새로운 항 해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이규한이 남지유에게 새삼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지금껏 몰랐던 어른스러운 면을 보 았기 때문이다.
“흔들리겠지만 가라앉지만 않으면 된다,그럼 다시 언제든지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다?”
잠시 후,이규한이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작게 되뇌었다
노크 소리에 이어 황진호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 대표,퇴근 안 해?”
“슬슬 퇴근해야죠.”
“오늘 퇴근하고 따로 스케줄 있 어?”
“특별히 없습니다.”
“잘됐네. 술 한잔하자.”
“그러시죠.”
황진호의 제안을 이규한이 흔쾌히 수락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를 함께 빠져 나온 후,황진호가 앞장섰다.
자주 찾는 선술집 앞에서 멈춰 서 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는 황진호를 확인한 이규한이 의아한 시선을 던 졌다.
“어디서 드시려고요?”
“내가 미리 예약해 둔 곳이 있어. 고기가 먹고 싶어서.”
잠시 후,황진호가 한 고깃집 앞에 서 걸음을 멈췄다.
“여기야. 들어가자.” 무심코 황진호의 뒤를 따라서 고깃 집 안으로 들어섰던 이규한이 두 눈 을 크게 떴다.
고깃집 안에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왔어?”
“오셨습니까?”
“좀 빨리 오지? 배가 등가죽에 달 라붙을 지경이야.”
청월 빌딩에 입주한 영화제작사 대 표와 직원들.
그들은 이규한에게 앞다투어 인사 를 건넸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이규한이 지금 상황에 대해 묻자 황진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장형식 대표가 자리를 마련해 달 라고 부탁했어.”
장형식 대표는 이규한도 알고 있었 다.
청월 빌딩에 입주해 있는 영화제작 사 블러드 필름의 대표였다.
황진호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서 둘러 내부를 살폈다.
그렇지만 장형식 대표의 모습이 보 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황진 호에게 다시 물었다.
“장 대표님은 안 계신데요?”
“그 친구가 영화로 밥 벌어 먹는 사람답게 스토리의 법칙을 잘 이해 하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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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잖아.”
“주인공… 이요?”
“이 대표,서운해 하지 마. 누가 뭐래도 오늘 주인공은 장형식 대표 니까.”
이규한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으로 서 있을 때,고깃집 안으로 장 형식 대표가 들어왔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들어선 장형식 대표가 이규한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규한 대표님.”
“네.”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장형식 대표는 40대 후반이었다.
이규한보다 나이가 한참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 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그로 인해 이규한이 당황했을 때였 다.
“이 대표님 덕분에 투자 유치를 받 았습니다.”
장형식 대표의 눈시울은 붉게 변해 있었다.
또,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목소리 는 가늘게 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장형식 대표가 격 한 반응을 드러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야.’
장형식 대표가 영화제작사 블러드 필름을 세운 것은 약 10년 전이었 다.
의 영화를 제작해서 개봉했다.
그렇지만 두 작품 모두 흥행 성적 은 신통치 않았다.
- 작품의 완성도는 뛰어난 편이다. 그렇지만 상업성이 떨어진다.
블러드 필름에서 제작했던 작품들 에 대한 평가였다. 그리고 상업 영 화를 제작하는 장형식에게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치명적이었다.
블러드 필름 장형식 대표는 본인이 범했던 실수를 알았고,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렇지만 투자사는 냉정했다.
이미 두 차례나 실수를 범했던 장 형식 대표에게 실수를 만회할 기회 를 좀처럼 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장형식 대표는 곤경에 처했었는데.
블러드 필름에서 제작하는 작품이 투자 유치를 받으며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얻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규 한의 표정이 밝아졌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덕분이 아닙니다. 장 대표님께서 그동안 열심히 준비를
하셨기 때문에 투자 유치를 받으신 걸 겁니다.”
청월 빌딩에 입주해 있는 블러드 필름의 사무실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기로 유명했다.
장형식 대표가 재기하기 위해서 엄 청난 노력을 했다는 증거.
그래서 이규한이 말했지만,장형식 대표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도 안 되는 구나,영화제작자 장형식은 끝났구 나,이런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점점 빚은 쌓여 가고 사무실을 유지할 엄 두도 나지 않아서 이제 진짜 영화 일을 그만두자고 결심했을 때,이 대표님이 사무실을 임대해 준다는 공고를 낸 것을 봤습니다. 덕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 보자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장형식 대표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고깃집 내부는 조용했다.
이곳에 모인 다른 영화제작자들의 처지도 엇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그들 은 장형식 대표의 이야기에 공감하 면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대표님이 따로 신경을 써 주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요?” “제가 이번에 투자를 받은 곳이 로 터스 엔터테인먼트입니다. 투자 유 치가 결정되고 나서 투자팀 권지영 팀장과 식사를 했는데,그때 권지영 팀장이 말하더군요. 이 대표님이 제 작품이 좋다고 추천해 줬다고.”
“뭔가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이규한이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얼마 전 권지영 팀장을 만난 것은 사실이었다.
“좋은 작품 있으면 추천 좀 해 주 세요.” 그 자리에서 권지영이 먼저 부탁했 고,이규한은 블러드 필름에서 제작 중인 ‘초보경찰’이란 작품을 언급했 었다.
장형식 대표의 말처럼 결과적으로 는 이규한이 ‘초보경찰’이란 작품을 추천한 셈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손사래를 친 이 유는 장형식 대표가 부담을 느끼는 것을 원치 않아서였다.
“저도 눈치가 빤한 사람입니다. 이 대표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대표님 덕분에 로터스 엔터테인 먼트에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블 러드 필름에서 제작하는 ‘초보경찰’ 이란 작품을 검토했고 투자 유치를 결정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습 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 은 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 다.”
장형식 대표가 이규한의 손을 덥썩 움켜잡았다.
다시 깊숙이 고개를 숙이려는 장형 식 대표를 발견한 이규한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축하주 하러 가시죠.”
“물론 그래야죠. 혹시나 해서 드리 는 말씀인데,오늘은 제가 삽니다. 절대 이 대표님이 계산하시면 안 됩 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히 얻어먹겠습니 다.”
이규한이 황진호와 함께 빈 탁자에 앉았다.
“이 대표,한 잔 받아.”
“알겠습니다.”
이규한이 잔을 들자,황진호가 소 주를 따라 주며 말했다.
“고맙다.”
“형은 왜……?”
“맛있는 술 얻어먹을 수 있게 도와 줘서.”
소주병을 내려놓은 황진호가 대신 잔을 들었다.
“그리고 이 대표가 자랑스럽다.”
“제가 뭘 했다고요?”
“혼자 잘 먹고 잘 살지 않고,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게 만들고 싶다 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켜 줘 서.”
“이제 시작입니다.”
“시작이 반인 법이지.”
황진호가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내가 네 형이란 게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소나무 엔터테인먼트.
가수 남지유의 소속사였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규한 입니다. 대표님과 약속이 돼 있습니 다.”
“네,확인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 면 됩니다.”
비서의 안내를 받은 이규한이 잠시 후 소나무 엔터테인먼트 대표실로 들어갔다.
“반갑습니다. 흥세욱이라고 합니 다.”
“이규한입니다.” “자,앉으시죠.”
흥세욱이 반가운 표정으로 이규한 에게 자리를 권했다.
“무슨 일로 저를 만나자고 하셨습 니까?”
그가 권한 자리에 앉자마자 이규한 이 질문했지만,홍세욱은 대답을 미 뤘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다른 손 님이 금방 도착할 테니까요. 그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시죠.”
‘손님?’
동석할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미 리 듣지 못했기에 이규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아,마침 왔네요. 지유야,그렇게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
대표실로 들어왔던 남지유가 이규 한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빠가 여기 웬일이세요?”
“홍 대표님이 만나자고 연락을 하 셔서.”
“오빠?”
남지유가 이규한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들은 흥세욱 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 어?” “꽤 됐어요. 오빠 여동생과 제가 친구거든요.”
“그래?”
남지유의 대답을 들은 홍세욱이 두 눈을 빛냈다.
“자,지유도 도착했으니까 아까 하 신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 제가 이 규한 대표님께 만나 뵙자고 청한 이 유는 감사 인사를 드릴 겸 부탁도 있어서입니다.”
“제게 감사 인사를 할 이유가 있나 이규한이 연유를 파악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우리 지유가 ‘부산행 열차’의 ?ST 에 참여한 것 말입니다.”
흥세욱이 부연을 더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이규한이 연유를 파악했다.
“반대하셨잖습니까?”
“네?”
“‘부산행 열차’의 OST에 참여하지 마라,어차피 돈도 안 되는데 왜 시 간 낭비를 하느냐? 지유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반대하시지 않았습니 까?”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