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은혜 갚은 제비 (1) “은혜 갚은 제비?”
이규한이 고개를 가웃했다.
백진엽의 평소 취향과는 너무 다르 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반응을 확인한 백진엽이 다시 말했다.
“저도 순수한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치자. 어쨌든 갑자기 은
혜 갚은 제비 이야기는 왜 꺼낸 거 야?”
“제비가 되기로 결심했거든요.”
“내게 은혜를 갚겠다는 거야?”
“네.”
“어떻게?”
백진엽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두고 보시면 압니다. 제가 애사심 을 좀 발휘했거든요.” “불안한데.’
이규한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백진엽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 애사 심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 은 순간 고마운 마음보다 불안한 마 음이 더 컸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규한이 고민하고 있을 때 김태훈 이 다가왔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던 대부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부 산행 열차’도 제작 시사회를 갖지 않았다.
그래서 완성된 작품은 보는 것은 김태훈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계속 칭찬했어.”
“저를요?”
“아니,나를 칭찬했어.”
“ …?"
“이 대표를 끝까지 믿은 내가 그렇 게 대견할 수 없더라고.”
“좋았다는 말씀이시죠?”
“내가 장담한다. 우리 영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먹힌다.”
“잘 부탁드립니다.”
“염려 붙들어 매. ‘부산행 열차’가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도록
NEXT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역량을 동원할 테니까.”
김태훈이 각오를 다진 후 떠나자마 자 다음으로 다가온 것은 최효민 작 가였다.
“최 작가님.”
최효민 작가를 발견한 이규한이 깜 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최효 민 작가가 ‘부산행 열차’의 시사회 장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영화 잘 봤습니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궁금해서 왔습니다.” “상구가 그렸던 ‘부산행 열차’라는 웹툰 작품 저도 아주 재밌게 봤습니 다. 과연 이 대표님이 어떻게 영화 로 제작했을까가 너무 궁금하더군 요. 그래서 돌아이에게 시사회 티켓 을 부탁했습니다.”
“돌아이요?”
“어울리지 않게 애사심이란 걸 가 진 진엽이 말입니다.”
비로소 최효민 작가가 시사회에 참 석한 이유와 방법을 알게 된 이규한 이 픽 하고 실소를 터트리며 물었 다.
“영화로 제작한 ‘부산행 열차’를 보고 나니 어땠습니까?”
“대표님이 괜히 충무로 최고의 제 작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네요.”
“네?”
“최 작가님한테 칭찬을 들으니까 더 기분이 좋다는 뜻입니다.”
이규한이 환하게 웃을 때 최효민 작가가 다시 입을 뗐다.
“제가 시사회에 참석한 데는 한 가 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어떤 이유입니까?”
“혹시 진행된 부분이 있는가가 궁 금합니다.”
“‘신과 같이’를 말씀하시는 겁니 까?”
“맞습니다.”
최효민이 미안한 표정으로 덧붙였 다.
“판권을 팔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 런 질문을 하는 게 염치 없다는 것 은 저도 알지만 너무 궁금해서요.”
이규한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주연배우 캐스팅을 진행 중입니 다.”
“정말 진행을 하고 계셨군요.”
놀란 표정을 짓는 최효민 작가에게 이규한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고집이 센 편입니다. 한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꼭 해야 만 직성이 풀리는 편입니다.”
“이제… 알겠네요.”
“뭘 말입니까?”
“돌아이 백진엽이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에 입사한 것으로 모자라서 애 사심까지 가진 이유를요. 이 대표님 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 력이 있습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때 최효민 작가가 다시 물었다.
“아까 주연배우 캐스팅을 진행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죠? 그럼 혹시 캐 스팅이 성사된 배우도 있습니까?”
“한 명 있습니다.”
“누굽니까?”
“하정후요.”
이규한이 하정후를 캐스팅했다고 대답하자 최효민 작가가 두 눈을 연 신 깜박이며 재차 물었다.
“방금 누구라고 했습니까?”
“하정후를 캐스팅했다고 대답했습 니다.”
“하정후… 요?”
“설마 하정후를 모르시는 겁니가?”
“저도 영화 봅니다. 그리고 하정후 라는 배우를 좋아합니다.”
최효민 작가의 여전히 놀란 표정으 로 입을 뗐다.
“하정후를 캐스팅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라는 소문은 저 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하정후를 캐스팅하신 겁니까?”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이규한이 정중하게 대답하기를 거 부하자 최효민 작가는 더 캐묻는 대 신 화제를 돌렸다.
습니까?”
“네.”
“뭡니까?”
“‘부산행 열차’라는 작품이요.”
“ r?
“‘부산행 열차’의 투자와 배급을 맡은 것은 NEXT 엔터테인먼트입니 다. 그리고 NEXT 엔터테인먼트 김 태훈 투자팀장님에게 년지시 ‘신과 같이’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김태훈 팀장님은 투 자를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그 나마 가능성이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 방법이 대체 뭡니까?”
“‘부산행 열차’의 흥행을 성공시키 는 겁니다.”
“하지만……
“‘부산행 열차’의 흥행 성공과 ‘신 과 같이’의 투자 유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느냐? 작가님께서 이런 의 문을 가지시는 게 당연합니다. 제가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어야 했 는데 설명이 미흡했습니다. 굳이 한 단어로 설명을 하자면 가능성입니 다.”
“가능성이라면?” 억에 달하는 대작입니다. 당연히 투 자사 입장에서는 흥행 실패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죠. 실제로 ‘부 산행 열차’의 투자 유치 과정에서 그런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신과 같이’ 시리즈의 경우 는 총 제작비가 400억에 육박합니 다. 어느 누구도 투자하겠다고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죠. 그렇지만 ‘부산행 열차’가 천만 관객을 동원 한다면 제작비를 회수하는 것은 물 론이고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게 다가 ‘부산행 열차’는 국내시장만 노린 작품이 아닙니다. 기획 개발 단계에서부터 해외시장에서 통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만약 ‘부산행
열차’가 해외시장에서도 성공을 거 둔다면 제작비가 100억이 넘는 대 작에 투자하더라도 큰 이득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제작비 가 200억이 넘는 대작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투자사의 부담이나 거부 감도 줄어들 겁니다. ‘부산행 열차’ 처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도 흥행에 성공한다면 투자비를 회 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까요. 혹시 설명이 더 필요한가요?”
이규한이 길었던 설명을 마치고 최 효민 작가를 바라보았다.
같이’의 투자를 받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해 줄 수 있다,이렇게 해석 하면 될까요?”
“정확합니다.”
“후우.”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 최효민 작가 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왜 한숨을 쉬시는 겁니 까?”
“미안해서요.
“뭐가 미안하신 겁니까?”
최효민 작가가 대답했다.
“제가 너무 이기적이었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 작품인 ‘신과 같이’를 시리즈 로 제작하고 싶다,세 편의 영화를 동시에 제작한다고 약속하는 경우에 만 ‘신과 같이’의 판권을 팔겠다고 고집했던 것. 무리한 요구였다는 걸 저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최효민 작가가 꺼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신과 같이’의 판권을 구입하기 위 해서 처음 최효민 작가와 접촉했을 당시,그가 내세웠던 조건은 세 편 의 시리즈물을 동시에 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 조건을 전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제작이 불가능하다 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무리한 조건을 내걸었던 최효민 작가에게 불평을 하거나 지적하지 않았다.
스스로 무리한 요구였음을 깨닫기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규한의 바람대로 상황이 흘 러간 셈이었다.
“혹시… 마음이 바뀌신 겁니까?”
“조금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바뀐 계기가 있으 십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둣이 제가 당시에 내걸었던 조건이 너무 무리한 요구 라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그리고 굳 이 하나의 이유를 더 꼽자면 이규한 대표님에 대한 믿음이 조금 더 생겼 기 때문입니다.”
“저에 대한 믿음이 생긴 이유는 요?”
“봤습니다.”
“뭘 보셨단 말씀이십니까?”
“‘인천행 버스’와 ‘부산행 열차’요.”
최효민 작가가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충격적 이었습니다.”
“어떤 작품이 충격적이었습니까?” “두 작품 모두요.”
최효민 작가가 두 작품 모두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은 이규한이 흥미 를 느꼈다.
“‘인천행 버스’는 왜 충격적이었습 니까?”
“완성도가 너무 떨어졌습니다.”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진엽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던 단 편 영화 ‘인천행 버스’는 소재만 기
발했을 뿐 내용이 없었다.
앙꼬 없는 찐빵과 마찬가지랄까.
“그럼 ‘부산행 열차’가 충격적이었 던 이유는요?”
“아까와 반대입니다. 완성도가 너 무 뛰어나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최효민 작가 역시 콘텐츠 창작자.
게다가 그는 웹툰 작가로서 큰 인 기를 얻고 있었다.
그런 그가 꺼낸 ‘부산행 열차’의 완성도가 뛰어나단 평가를 듣고 이 규한의 표정이 밝아졌을 때였다.
“실은 며칠 전에 돌아이 백진엽과 만났습니다.”
“최 작가님과 백 피디가 만났다고 “모르셨습니까?”
“전혀요.”
백진엽은 이규한에게 최효민 작가 와 만났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금시초문이란 표정을 짓고 있자 최효민 작가가 덧붙였다.
“그 만남을 통해서 돌아이 백진엽 에게 애사심이 생겼다는 말이 사실 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겁 니까?”
시나리오 책을 갖고 왔었거든요.”
" ‘?,’
“무척 부끄러워하면서도 백진엽은 ‘인천행 버스’의 시나리오를 내게 건넸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부산행 열차’의 시나리오도 건넸죠. 제가 두 작품의 시나리오를 모두 읽고 나 자 백진엽이 이게 같은 작품이라는 게 믿기냐고 묻더군요.”
“백 피디가… 그랬습니까?”
이규한이 고개를 가웃했다.
백진엽이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 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였다.
을까요?”
“제비가 어쩌고 저쩌고 했습니다.”
“제비요?”
“그런데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절 찾아온 이 유로 짐작이 가는 건 있습니다. 돌 아이,아니 진엽이는 제가 이규한 대표님을 좀 더 믿어 주길 바란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마치며 좌효민 작가가 초 대장을 꺼냈다.
“진엽이가 만취한 상태임에도 불구 하고 시사회 초대장을 건넨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인천행 버스’라는 졸작 이 ‘부산행 열차’라는 근사한 작품 으로 변신했다,시사회에 찾아와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라고 신신 당부를 하더군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