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38화 (238/272)

238화

산 넘어 산 ‘부산행 열차’의 VIP 시사회.

작품 개봉을 앞두고 매번 시사회를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사회를 가질 때마다 긴장이 됐다. 그리고 ‘부산 행 열차’의 경우 특히 긴장이 더 됐 다.

그 이유는 오늘 시사회에 특별한 손님들을 많이 초청했기 때문이었 시사회가 열릴 극장 앞에서 이규한 이 손님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사회를 찾아 준 반가 운 얼굴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권 지영 팀장이었다.

“권 팀장, 와 줘서 고마워.”

“당연히 와야죠.”

“당연히?”

“‘부산행 열차’라는 작품이 궁금해 서 죽을 지경이었거든요. 우리끼리 니까 솔직히 말해도 되죠? 사실 잠 들기 전마다 기도했어요.”

“무슨 기도?” “‘부산행 열차’가 괴작이 되라고

요.”

“왜 그런 기도를 했어?”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요.”

9”

“한발 늦어서 ‘부산행 열차’의 투 자와 배급을 맡을 기회를 놓쳤잖아 요. 그런데 만약 ‘부산행 열차’가 대 박 나면 제가 얼마나 후회하겠어 요?”

권지영이 꺼낸 이야기를 들은 이규 한이 쓰게 웃었다.

‘부산행 열차’의 투자와 배급을 맡 은 것은 NEXT 엔터테인먼트.

그렇지만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도 ‘부산행 열차’의 투자와 배급을 맡 을 기회는 있었다.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에 투자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규한은 김태훈과 권지영 앞에서 공표했고, 먼저 움직였던 쪽은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이었 던 김태훈이었다.

그래서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부산행 열차’의 투자와 배급을 맡 았던 것이고.

그렇지만 정확히 하루 뒤,권지영 도 커피 전문점 블루문으로 직접 찾 아와서 투자 의사를 밝혔었다.

만약 권지영이 결단을 내리고 음직 이는 것이 하루만 더 빨랐다면?

NEXT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로 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부산행 열 차’의 투자와 배급을 맡았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뜻이지?”

“조금 달라요.”

“어떻게 달라?”

치고 후회하는 것에 가깝죠.”

권지영이 똑 부러지게 대답한 순간 이규한이 입을 뗐다.

“그럼 재결합하면 되지.”

“우리가 다시 재결합할 수 있을까

요?”

“인생 모르는 법이지.”

“그건 시사회 끝나고 난 후에 고민 해 볼게요.”

권지영이 시사회장 안으로 들어가 고 난 후 두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오랜만일세.”

“잘 지내셨습니까?”

이규한이 빅박스 투자팀장인 백기

원과 악수했다.

“좀 놀랐네.”

악수를 마치자마자 백기원이 말했 다.

“왜 놀라셨습니까?”

“날 시사회에 초대할 줄은 몰랐거

드 ”

백기원이 덧붙였다.

“그나저나 여름 성수기 시장에 가 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것을 보니 여전히 배짱은 두둑하군.”

‘언중유골(言中有骨).’

그 말을 듣고 난 후 이규한이 떠 올린 사자성어였다.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부산행 열차’.

빅박스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

21세기 폭스 코리아에서 수입과 배급을 맡은 ‘슈퍼파워스,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번 여름 성수기 시장은 삼파전이 될 거라는 예측이 컸다.

그 세 작품 가운데 가장 기대치가 높은 것은 빅박스에서 투자와 배급 을 맡은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였 다.

바로 ‘부산행 열차’였다.

“정면 대결을 펼쳐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이냐?”

방금 백기원이 던진 말에 담긴 숨 은 뜻이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대중의 몫이 라고 생각합니다. 그 평가를 하루라 도 빨리 받아 보고 싶어서 가장 먼 저 개봉했을 뿐입니다.”

얼핏 들으면 모범 답안처럼 느껴졌 그렇지만 이규한이 백기원을 시사 회에 초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직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개봉 일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

작품의 개봉 일자는 여러 요인들에 의해 결정됐다.

그중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경 쟁작의 완성도와 흥행 성적.

만약 ‘부산행 열차’의 완성도가 뛰 어나다는 것을 백기원이 직접 확인 하고 나면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 의 개봉 일자가 뒤로 미뤄질 수도 있었다.

이규한이 노린 것은 바로 이 부분 이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겠네.”

백기원이 비장한 표정으로 시사회 장으로 들어갔다.

“후우.”

불편한 대화를 마친 이규한이 짤막 한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시사회에 초대해 줘서 고맙네.”

‘산 넘어 산이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김대환 대표 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의 한숨이 깊어졌다.

“진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규한이 솔직하게 말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김대환 대표 에게 초대장을 보내긴 했다. 그렇지만 관행적으로 보낸 초대장 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규한과 김대환 대표는 불 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시사회장으로 직접 찾 아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 이다.

“궁금해서 찾아왔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이규한 대표 의 진짜 능력이 궁금했네.”

" <……?"

“‘어메이징 히어로즈’와 달리 ‘부산 행 열차’에는 최선을 다했을 것 아 닌가? 자네가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 어떨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 네.”

‘정말 그 이유가 다일까?’

김대환 대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꺼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이규한은 문득 불안감을 느꼈다.

‘이미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나?’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던 ‘나를 사랑한 아저씨’.

김대환 대표는 그 작품을 통해서 이미 이규한의 능력을 확인했던 후 였다.

그래서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공 동 제작을 제안했었던 것이었고.

즉,김대환 대표는 이규한의 능력 을 이미 확인한 만큼 굳이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올 이유가 없 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규한은 불안하게 만든 또 하나는 김대환 대표의 입가에 머물 러 있는 미소였다.

차라리 화를 냈다면 덜 불안했을 텐데.

불과 얼마 전에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았음에도 자신의 앞에서 미소 를 잃지 않고 있는 김대환 대표의 심계가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그 이유가 다입니까?”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정말 그 것 뿐입니까?”

“실은 부탁이 하나 있네.”

‘역시.’

예상대로 다른 용건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이규한이 다시 질문을 던졌

“‘신과 같이’의 제작을 서둘러 주 게.”

김대환 대표에게서 돌아온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아직 ‘신과 같이’의 판권도 확보하 지 못한 상태였다.

기획 개발 단계도 들어가지 못한 상황인 만큼 투자 심사를 넣은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환 대표는 이규한이 ‘신과 같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

다.

‘어떻게 알았지?’

그로 인해 이규한이 당황했을 때였 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신과 같이’라는 작품을 제작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어서 놀랐나 보군.”

김대환 대표가 그 반응을 확인하고 말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교훈을 얻었지.”

? 신……?"

“눈 뜨고 코를 베이지 않으려면 내 가 일일이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는 교훈 말일세.”

김대환 대표가 넌지시 꺼낸 말을 들은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쉽지 않겠구나.’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하며 물었다. “왜 그런 부탁을 하시는 겁니까?”

“빚을 지고는 못 사는 성미라서 그 런 부탁을 했네.”

“무슨 뜻입니까?”

“계급장 떼고 제대로 붙어 보자는 뜻일세.”

어메이징 히어로즈 VS 신과 같이. 두 작품을 동시에 개봉해서 승패를 가리는 게 김대환 대표가 원하는 것 이었다.

이규한의 입장에서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원하던 바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있으신가 보네요.”

“만약 자신이 없었다면 이런 부탁 도 안 했을 걸세.”

“그 부탁을 들어드릴 수 있도록 최 선을 다 하겠습니다.”

“고맙네.”

‘마지막 승부가 다가오고 있다.’

이규한이 김대환 대표를 바라보며 떠올린 생각이었다.

“사살해.”

사령관의 명령을 받은 병사가 총구 를 겨누었다.

소총 방아쇠에 닿아 있던 병사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기 직전,희미 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바다의 파도 소리가 노래로 변 했죠.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는 아 이에게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요. 웃어야 해.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면 행복해지는 거 방아쇠에 닿아 있던 병사의 손가락 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는 공태 유의 딸과 마동석의 약혼녀을 구하 기 위해서 병사들이 달려왔다.

그리고.

불이 붙은 채 부산으로 달려가는 열차의 지붕에 서 있던 좀비로 변해 가던 공태유가 그 노랫소리가 들리 기라도 하는 양 희미한 미소를 지은 순간 영화가 끝이 났다.

“파도가 말했어요. 아빠는 항상 널 지켜보고 있다고. 그러니 용감해져 야 한다고. 또 행복해져야 한다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사이에도 동요는 이어졌다. 그리고 OST에 참 여해서 동요를 부른 것은 남지유였 다.

동요가 끝날 때까지 객석은 조용했 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 깨진 것은 남지유가 부르던 동요가 끝이 났을 때였다.

“미쳤다.”

“영화 끝내준다.”

“이게 진짜 한국 영화냐?”

“좀비 영화도 이렇게 재밌고 감동 적일 수 있구나.” 앞다투어 격찬이 쏟아졌다.

‘됐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던 이규한이 비 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이규한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잇따라 쏟아지는 호평은 모두 고맙 고 기뻤다.

그 호평들 가운데서도 가장 기쁜 것은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누군가의 감상평이 한국 영화는 뻔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부산행 열차’를 제작하 는 과정에서 세운 1차 목표였는데.

그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그때,백진엽이 이규한의 앞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말해.”

“영화를 보고 나서 애사심이 더 생 겼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백진엽이 말했다.

“지금도 충분한데…… 이규한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백진 엽이 다가와 이규한을 안았다.

“백 피디,왜 ?”

“감사합니다.”

“응?”

“이렇게 멋진 영화를 만들어 줘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백진엽을 바로 밀어내려고 했던 이규한이 도중에 마음을 바꾸 었다.

‘인천행 버스’로 시작됐던 ‘부산행 열차’가 제작돼서 개봉하기를 백진 엽이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 피디,괜찮았지?”

“괜찮은 게 아니라 끝내줬습니다.” “난 약속 지켰다.”

백진엽의 등을 이규한이 손으로 가 볍게 두드려 주고 있을 때였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가 뭔지 아십니까?”

간신히 진정한 백진엽이 물었다.

“흐음. 잔혹 동화?”

평소 취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 악했기에 이규한이 잔혹 동화라고 대답하자 백진엽이 실소를 터트렸 다.

“물론 잔혹 동화도 좋아하는 편이 지만 가장 좋아하는 동화는 따로 있 습니다.”

“뭐지?”

“은혜 갚은 제비요.”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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