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찬밥 신세 ‘미주 씨답네.’
거침없이 쓰레기라고 표현하는 것 을 들은 이규한이 픽 하고 실소를 터트렸을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의 복수는 범 죄가 아니다’ 시나리오 이야기는 왜 꺼낸 거예요?”
김미주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 답했다.
“비슷하거든.”
“그러니까… 제가 쓴 시나리오와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 시 나리오가 비슷하단 뜻인가요?”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비숫 해.”
“어느 쪽이 나은데요?”
“꼭 알고 싶어?”
“알고 싶어요.”
“미주 씨가 쓴 시나리오보다 최 감 독이 쓴 시나리오가 조금 나아.”
최호인이 쓴 ‘우리의 복수는 범죄 가 아니다’의 예상 관객 수는 10,203 명.
김미주가 쓴 ‘그놈을 찾아 주세요’ 의 예상 관객 수는 2,1이명.
감정 결과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의 예상 관객 수가 ‘그놈을 찾아 주세요’의 예상 관객 수보다 더 많았다.
‘어차피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이규한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김미 주가 충격받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 다.
“종이가 아까운 정도인가요?”
“아니,종이에게 미안할 지경이야.”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우리
이규한이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 냈 다. 그리고 이규한이 이렇게 독설을 쏟아 내는 이유는 김미주가 헛된 꿈 을 빨리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함이 었다.
“미주 씨가 인센티브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내가 더 열심히 할게.”
“알겠어요. 작가의 꿈은 깔끔하게 포기할게요.”
다행히 그런 이규한의 의도는 먹혔 다.
김미주는 깔끔하게 작가의 꿈을 포 기했다.
그녀가 떠나고 대표실에 혼자 남은 이규한이 비로소 ‘부산행 열차’의 윤색고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선 펜을 집어 든 이규한이 ‘부산 행 열차’의 시나리오책 앞에 캐스팅 에 성공한 도경호의 이름을 적어 넣 었다.
잠시 후,이규한이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 9,109,988.
‘늘긴 했다.’
8,111,597에서 9,109,988으로.
예상 관객 수는 약 100만 명 가까 이 증가해 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환하게 웃지 못 했다.
예상 관객 수의 증가폭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만 명을 돌파할 수 있지 않을 까?’
감정을 하기 전에 이규한이 기대했 던 예상 관객 수였다.
그 이유는 지난번 감정과 이번 감 정 사이에 두 가지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윤색.
그리고 도경호의 캐스팅.
이규한이 야심차게 준비한 두 가지 패였다.
그 두 가지 패를 모두 사용했기에 ‘부산행 열차’의 예상 관객 수가 천 만 명을 훌쩍 넘길 것을 내심 기대 하고 있었는데.
감정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이제… 남은 패가 없어.”
이규한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 하고 드러냈다.
예상 관객 수를 더 늘릴 수 있는
방안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가 부족했던 거지?”
이규한이 장고에 잠겼다.
‘개봉 시기? 경쟁작? 배우? 감독 교체?’
홍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 들에 대해서 차례차례 되짚어 보던 이규한이 결국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이 최선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상태로 진행하는 수밖에.”
이규한이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이었 다.
그런 이규한이 내심 바라는 것.
‘나를 사랑한 아저씨’ 케이스였다.
일곱 번째 감정을 했을 당시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예상 관객 수는 250만 명 정도였다.
그렇지만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최종 관객 수는 400만 명을 훌쩍 넘겼다.
즉,감정을 통해서 확인했던 예상 관객 수보다 개봉 후 실제 관객 수 가 150만 명 이상 더 많았다.
당시 그런 결과가 나왔던 데는 SNS 마케팅과 수많은 팔로워를 보 유하고 있던 남지유가 시너지 효과 를 발휘해서였다.
“훙보에서 답을 찾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이규 한은 촬영 강행을 선택했다.
“레디,액션.”
우중완 감독의 디렉션이 떨어진 순 간,촬영이 재개됐다.
“뛰어.”
“빨리 뛰어.”
“저것들은,저것들은 대체 뭐야?” 타다닷.
대학교 야구부원으로 캐스팅된 배 우들이 좀비로 변한 인간들에게 쫓 겨서 역사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대학교 야구부 여성 매 니저가 발을 삐끗했다.
“아앗.”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 매니저를 안 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야구부원들은 선뜻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나서지 못했다.
빠르게 뒤쫓아 오고 있는 좀비들로 인해 공포에 질렸기 때문이다.
그때 도경호가 움직였다.
“기다려.” 도경호가 야구방망이를 힘껏 옴켜 쥔 채 매니저를 향해 달려갔다.
매니저를 에워싸기 시작한 좀비들 을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차례로 쓰 러트린 도경호가 매니저를 번쩍 안 아 들었을 때였다.
“끄아악!”
그 틈을 타서 다가온 좀비가 도경 호를 물기 위해서 입을 쩍 벌렸다.
위기일발의 순간,마동수가 등장했 다.
퍼 억.
솥뚜껑만 한 주먹을 휘둘러 좀비들 을 쓰러트리며 마동수가 소리쳤다.
“빨리 가!”
매니저를 들쳐 안은 도경호가 도망 치고,마동수 역시 좀비들을 상대하 는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컷.”
그 순간 우중완 감독이 디렉션을 내렸다.
잠시 후,우중완 감독이 촬영한 분 량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떠세요?”
우중완 감독의 뒤에 서서 함께 촬 영분을 모니터링하던 이규한이 대답 을 미루고 팔짱을 꼈다.
‘나쁘지 않아.’
모니터링을 마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이규한이 대답을 미뤘던 이유는 찜찜함이 남아서였다.
‘대체 뭐지?’
좀비에게 쫓기는 순간의 긴박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우중완 감독이 선택한 핸드 헬드 촬영 기법은 좋았 다.
덕분에 좀비들에게 쫓기는 상황의 급박함이 살아났으니까.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좀비에게 좆기고 있는 인간의 공포 가 고스란히 표정과 대사에 묻어났 으니까.
‘딱히 흠잡을 곳이 없어.’
이규한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럼에 도 찜찜함이 남는 이유에 대해서 고 민하던 이규한이 우중완 감독에게 되레 질문을 던졌다.
“우 감독 생각은 어때?”
“2% 부족한 느낌입니다.”
“2% 부족하다?”
이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대변하기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이 부족한 걸까?”
이규한이 자신이 찾지 못한 답을 우중완 감독이 대신 찾아 주기를 기 대하며 물었다.
“좀비요.”
“좀비?”
“제 생각보다 별로 안 무섭네요. 그냥… 아닙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그냥 뭐야?” “꼭 바보 같습니다.”
“바보 같다고?”
“본능만 남아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무섭다기보다 는 그냥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드네 요.”
우중완 감독의 지적.
무척 예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규한이 다시 물었다.
“그럼 해결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죠.”
“뭔데?”
이규한이 기대에 찬 시선을 던졌을 때 우중완 감독이 대답했다.
“CG 요.”
“이번 현장이 특히 힘들구나.”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배우가 가장 잘해야 하는 건 연기 가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촬 영 현장에서는 대기 시간이 긴 편이 었다. 그런데 ‘부산행 열차’의 경우 에는 더욱 대기 시간이 길었다.
그 이유는 좀비 분장에 많은 시간 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원래 이규한이 준비했던 계획은 촬 영을 마친 후 회식을 하는 것이었 다. 그렇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한 배우와 스태프들을 확인한 이규한은 회식을 포기했다.
촬영이 종료된 후 집으로 돌아가던 이규한에게 이규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지가 집에 좀 들르래.”
“오늘 무슨 날이야?”
“아니.”
“그런데 왜?”
“오빠랑 술 한잔하시고 싶은가 봐.” “알았어. 지금 갈게.: 이규리와 통화를 마친 이규한이 도 중에 행선지를 바꾸었다.
본가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르고 무심코 문을 열었던 이규한이 두 눈 을 크게 떴다.
“오셨어요?”
현관 앞에 서 있는 남지유를 발견 했기 때문이다.
‘혹시 집을 잘못 찾았나?’
당황한 이규한이 후다닥 뒤로 물러 서며 호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집을 잘못 찾은 것이 아님을 확인한 후 이규한이 물었다
“지유 씨가 여기 왜 있어요?” “친구 집에 놀러 왔어요.”
“친구요?”
이규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 이규리가 남지유의 곁으로 다가왔 다.
“우리 친구 먹기로 했어.”
“언제부터?”
“내 결혼식에서 지유가 축가 불러 준 게 너무 고마워서 밥 한번 샀거 든. 그때부터 친구 먹기로 했어.”
“…그래?”
“왜 그렇게 놀라? 친구를 집에 초 대하는 게 이상해?”
“이상한 일은… 아니지.”
“빨리 들어와. 아까부터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아버지가?”
“아니. 지유가.”
이규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지유 씨가 나를 기다렸다고?”
“그렇다니까.”
“왜……?”
이규한이 재차 질문하던 도중에 입 을 다물었다.
“지유 언니처럼 매력적인 여자가
관심을 보이는데도 꿈쩍도 안 하니 까요.”
일전에 제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표님,이제부터 말씀 편하게 하 세요.”
그때 남지유가 제안했다.
“갑자기 왜……?”
“저와 규리가 친구 사이인데,규리 오빠인 대표님이 제게 존대를 하면 이상하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이규한이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 지 못하고 망설일 때 이규리가 나섰 다.
“지유 말처럼 호칭 정리부터 해야 겠네. 오빠는 앞으로 지유에게 말 편하게 하고,지유는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
“오… 빠?”
남지유가 살짝 얼굴을 붉혔을 때 이규리가 덧붙였다.
“삼촌은 아니잖아.” ‘그렇긴 하네.’ 이규리의 이야기를 들은 남지유가 참지 못하고 픽 하고 실소를 터트렸 다.
“오빠,빨리 손 씻고 오세요.”
“그래요.” “그래.”
이규한이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 정정한 후 욕실에서 손을 씻고 거실 로 향했다.
“저 왔습니다.”
남지유와 함께 건배를 하시는 아버 지께 이규한이 인사했다.
“왔냐?” 아버지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기꺼운 표정 으로 남지유와의 대화를 이어 나가 시기 바빴다.
“주량은 얼마나 돼?”
“많이 못 마셔요.”
“어른 앞에서 거짓말하면 안 돼.”
“네?”
“지금까지 나랑 마신 것만 해도 소 주 한 병은 넘은 것 같은데?”
아버지의 추궁을 받은 남지유가 손 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이건 비밀인 데… 제가 장판을 좀 깔았거든요.” “장판?”
“아버님 한 잔 드실 때 저는 3분 의 1쯤 남겼습니다.”
남지유가 대작하는 도중에 장판을 깔았다고 고백했지만 아버지는 전혀 불쾌한 기색이 아니었다.
“아버님?”
오히려 더욱 기꺼운 표정을 지으셨 다.
“아버님이란 호칭이… 불편하세 “아냐. 아주 마음에 들어. 그런 의 미에서 한 잔 더 할까?” “아니다. 적당히 마셔. 아직 젊은 아가씨가 술 너무 마시면 못 쓰는 법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버님도 술 좀 줄이세요.”
“나?”
“네.”
“그래. 앞으로 술을 좀 줄이도록 하마.”
남지유의 충고를 들은 아버지는 바 로 술을 줄이겠다고 대답하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규리가 두 뺨을 부풀렸다.
“아빠,이건 좀 아니지.” “뭐가 아니란 거야? 그럼 애비가 계속 지금처럼 술을 마시다가 일찍 죽어야 한단 뜻이냐?”
“그게 아니라… 내가 아빠한테 술 좀 적게 드시라고 했을 때는 들은 척도 안 했었잖아. 그런데 지유가 술 좀 적게 드시라고 말하자마자 냉 큼 술을 줄이겠다고 선언하면 내가 많이 서운하지.”
이규리가 불만을 드러냈지만 아버 지는 미안하거나 당황한 기색을 내 비치지 않았다.
“너 지금 나이가 몇이냐?”
“아빠는 하나뿐인 딸 나이도 몰 라?” “서른을 넘겨 놓고 고작 이깟 일로 질투를 해?”
“질투가 아니라……
“질투 맞구먼.”
아버지와 이규리가 설전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규한이 곁에 앉 아 있던 최호인에게 물었다.
“너도 찬밥 신세야?”
“네. 시선조차 한번 안 주십니다.”
“다행이다.”
“뭐가 다행입니까?”
“나 혼자 찬밥 신세는 아니라서.”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