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Why not? (2)
“김치훈 대표님이 그날 제게 계약 제의를 했던 걸 어떻게 알았습니 까?”
안유천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 다.
“괜히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으니 까.” 거짓말… 이요?”
“그래. 로맨스에 잼병이나 다름없 는 안 작가에게 거짓말까지 한 이유 야 원하는 게 있어서겠지. 그리고 안 작가에게 원하는 게 계약 말고 뭐가 있겠어?”
“오해입니다.”
안유천이 발끈하며 덧붙였다.
“그날 김치훈 대표님은 진심이었습 니다.”
“진심이었다?”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망했나?”
“네?”
“렉서스 필름 말이야. 얼마 전에
폐업했거든.”
렉서스 필름이 폐업했다는 사실까 지는 몰랐기 때문일까.
안유천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이규한이 덧붙였다.
“작가 보는 눈이 없어서 망한 걸 거야.”
“쩝”
안유천의 말문이 막혔을 때 백진엽 이 끼어들었다.
“역시 제 안목이 정확했네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로맨스 그리고 신파.”
“
“이 두 가지가 ‘부산행 열차’가 흥 행에 성공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들 이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래서 대표님도 윤색 과정에서 핵심 키워 드인 로맨스를 슬쩍 끼워 넣으시려 는 것 아닙니까?”
백진엽이 흡족한 표정으로 질문한 순간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적으로는 백진엽의 말처럼 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백 피디가 했던 조언 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더라고.”
“역시 그렇죠?”
“그런데 좀 바꿨어.” “바꾸다뇨?”
“아까도 말했듯 평범한 로맨스가 아니라 특이한 로맨스를 끼워 넣을 생각이야.”
“특이한 로맨스라면?”
“좀비와 인간의 로맨스거든.”
이규한이 대답하자 백진엽이 두 눈 을 연신 낌벅였다.
“좀비와 인간이… 사랑을 한다고 요?”
“맞아.”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이번에도 백 피디 조언을 따랐 지.” “제 조언이요?”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는데요.”
백진엽이 고개를 흔드는 것을 확인 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뱀파이어,늑대인간과도 사랑에 빠지는 판국인데, 미주 씨가 좀비와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죠.’라고 회의 중에 이렇게 말했던 것 진짜 기억 안 나?”
그제야 백진엽이 그렇게 말했던 기 억을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기억이 나긴 하는데……
“그런데?” “그냥 막 던진 말이었는데요.”
“ ……?"
“설마 대표님이 그 말을 귀담아 들 으셨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백진엽이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리고 당황한 것은 안유천도 마찬 가지였다.
“좀비와 인간의 로맨스라니,그게 말이 됩니까?”
“안 될 건 또 뭐야?”
“진심이세요?”
“작가가 너무 상상력이 빈곤한 것 아냐?”
오히려 이규한이 핀잔을 건네자 안 유천이 답답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 다.
“이건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라 말 도 안 되는……
그렇지만 안유천은 그 말을 끝맺지 못했다.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김단비 작가 가 도중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뜻이야?”
“좀비와 인간의 로맨스,꼭 안 된 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물론 진심이죠.”
김단비 작가의 반응을 확인한 안유 천이 오히려 당황했을 때였다.
“제가 좀비 소재의 작품을 좋아해 요. 그래서 외국 작품을 즐겨 보는 데,그중에 특이한 작품이 있어요.”
“어떤 작품인데?”
“좀비가 탐정이에요.”
“좀비가 탐정이라고?”
“네. 좀비가 된 후에 자신의 부모 를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추적하죠.”
“돌겠네.”
안유천이 혀를 내두른 순간 김단비 작가가 덧붙였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좀비도 있 는데 인간과 사랑을 하면 안 될 이 유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단,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김단비 작가가 힘주어 말했다.
“어떤 조건?”
“좀비가 잘생겨야 해요.”
“잘생긴 좀비여야 한다?”
“로맨스를 펼칠 상대가 인간이 아 니라 좀비라는 게 용서가 될 정도 로.”
안유천과 대화를 나누던 김단비 작 가가 이규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겠느
김단비 작가의 시선에 담긴 질문이 었다.
“도경호를 캐스팅할 예정이야.”
이규한이 대답하자 김단비 작가의 두 눈이 커졌다.
“‘엑시즈’의 도경호요?”
평소 김단비 작가는 표정에 본인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 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눈을 크게 뜬 걸로 모자라 기 도하듯 양손을 모으기까지 했다.
꽤 오랫동안 김단비 작가를 봐 왔
던 이규한도 처음 보는 모습.
반면 안유천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도경호가 누군데 그래?”
“도경호도 몰라요?”
“모르니까 묻지.”
“인기 아이돌 그룹인 ‘엑시즈’의 멤버예요. 그리고… 엄청 미남이고 요.”
“미남이라고?”
“네.”
“나보다 더 잘생겼어?”
안유천이 김단비 작가에게 물었다. 그렇지만 김단비 작가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어?”
잠시 후 김단비 작가가 대답했다. “대답할 가치를 못 느껴서요.”
“내가 더 잘생겼다는 거지?”
“ 꾸"
“왜 대답이 없어? 아냐?”
“검색해 보세요.”
“무슨 검색?”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세요.” 김단비 작가의 제안을 들은 안유천 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도경호의 이 름을 검색했다.
잠시 후 도경호의 사진을 확인한 안유천이 말했다.
“내가 나은 것 같은데?”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죠?”
“진심인데.”
김단비 작가가 황당하단 표정을 지 었다.
그런 그녀가 마치 도움을 청하듯이 이규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나서지 않았다. 도경호보다 자신의 외모가 나은 것
같다는 안유천의 말도 안 되는 주장 에 동의해서가 아니었다.
두 작가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귀 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무슨 이야기 가 오갔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규한은 두 작가의 대화에 집중하 는 대신 김단비 작가의 반응에 집중 했다.
‘도경호라면… 통한다.’
그리고 김단비 작가가 보인 격렬한 (?) 반응을 통해서 도경호가 좀비라 면 로맨스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품 었다.
김미주의 반응도 엇비슷했다.
“도경호가 좀비라면 사랑할 수 있 을 것 같아요.”
시니컬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 운 두 여성이 동시에 이런 과격한 (?) 반응을 보인 것이 이규한에게 확신을 심어 준 것이다.
“김 작가.”
“네.”
“감정이입해서 잘 써야 해.”
“맡겨 두세요. 감정이입 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김단비 작가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한 순간 이규한이 안유천에게 고개를 돌렸다.
“넌 상황 코미디를 맡아.”
“상황 코미디요?”
“좀비와 인간이 사랑할 때 유머러 스한 상황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 잖아. 그걸 캐치해서 삽입하라고.”
이규한이 지시했지만 안유천은 자 신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자신 없어?”
“그게……
“아까 네가 도경호보다 외모가 낫 다고 말했지?” “네? 네.”
“그럼 도경호가 아니라 네가 좀비 가 됐다고 생각해. 그리고 여기 있 는 김 작가와 로맨스를 펼친다고 생 각해 봐. 어때? 이제 감정이입이 좀 돼?”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감정이입이 되네요.”
‘후우.’
안유천이 아까와 달리 자신감을 드 러내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한숨 을 내쉬었다.
‘얼마나 늘어날까?’
비장의 패를 꺼내 들 준비를 마친
이규한이 기대에 찬 시선을 던졌다.
정확히 사홀 후,안유천과 김단비 작가는 ‘부산행 열차’의 윤색 작업 을 마쳤다.
“너무 빨리 끝낸 것 아냐?”
고작 사흘 만에 윤색 작업이 끝났 다는 소식을 들은 황진호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규 한이 입을 뗐다.
일주일 걸렸습니다J
“뭐가?”
“두 작가가 ‘변호사’의 각색 작업 을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이요.”
“그렇게 빨리 끝냈었나?”
“네. 그때 결과물이 어땠습니까?”
“좋았지.”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가 각색을 거 친 ‘변호사’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촬영을 거쳐 개봉한 ‘변호사’는 천 만 영화가 됐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황진호 가 좋았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진호가 여전 히 불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는 것 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 다.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와 작업해 본 결과,작업 시간이 짧을수록 결 과물이 좋았습니다.”
“그래?”
“그리고 두 작가는 괜히 업계 톱클 래스 작가가 아닙니다. 그러니 걱정 하실 필요 없습니다.”
황진호를 안심시키는 데 성공했을 때 김미주가 다가왔다.
그런 그녀가 이규한의 책상 위에 두 권의 책을 내려놓았다.
“왜 두 권이야?” 이규한이 지시한 것은 안유천과 김 단비 작가가 이메일로 보낸 ‘부산행 열차’의 윤색고를 출력해 오라는 것 이었다.
그러니 책이 한 권이어야 하는데 김미주가 두 권의 책을 갖고 왔기에 이규한이 의문을 품은 것이다.
“제목을 보세요.”
“제목?”
김미주가 시키는 대로 이규한이 제 목을 확인했다.
- 부산행 열차.
- 그놈을 찾아 주세요.
하나는 익숙한 제목이었고,나머지 하나는 생소한 제목이었다.
“이 책은 뭐야? 혹시 두 작가의 신작인가?”
“아니요.”
“그럼?”
“제가 쓴 시나리오예요.”
“미주 씨가 쓴… 시나리오라고?”
당황한 이규한이 두 눈을 낌벅였 다.
“왜 갑자기 시나리오를 썼어?”
“작가로 데뷔하려고요.”
“누가? 미주 씨가?”
“네.”
“대체 왜 작가로 데뷔하려는 건 데?”
이규한이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 하고 질문을 쏟아 내자 김미주가 대 답했다.
“저도 사흘만 일하고 오천만 원 벌 고 싶어졌어요.”
“응?”
“안유천과 김단비 작가처럼요.”
김미주가 욕망이 이글거리는 두 눈 을 빛내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 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두 작가가 사흘 동안 작업을 한 대가로 수령하는 윤색료가 오천만 원이라는 사실을 경리 역할을 맡고 있는 김미주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갑자기 작가로 데뷔 하겠다는 의욕을 불태우는 것이었 다.
“빨리 봐 주세요.”
그때 김미주가 재촉했다.
“미주 씨가 쓴 시나리오를 읽어 보 라고?”
“네.”
“지금?”
“지금 당장이요.” ‘어려울 것은 없지.’
작가로 데뷔해서 큰돈을 벌고 싶다 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김미주를 확인한 이규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 쉬며 시나리오를 들어 올렸다.
잠시 후,이규한의 눈앞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 2,101.
2,1이 명.
김미주가 쓴 ‘그놈을 찾아 주세요’ 라는 작품의 예상 관객 수였다.
만약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였다 면?
이규한은 아무 고민 없이 던져 버 렸으리라.
그렇지만 김미주가 쓴 시나리오였 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마치 감시라도 하듯 옆에 서 있는 김미주의 강렬한 시선을 확인한 이 규한이 어쩔 수 없이 시나리오책의 책장을 넘겼다.
그로부터 약 반시간 후.
이규한이 시나리오책의 마지막 장 을 넘기기 무섭게 김미주가 질문했 다.
“어때요?”
“작가의 꿈은 포기하자.”
“그 정도로 형편없어요?”
‘어떻게 설명하면 될까?’
잠시 고민하던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최 감독이 썼던 ‘우리의 복수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시나리오 미주 씨도 읽어 봤었지?”
“당근 읽어 봤죠.”
“어땠어?”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김미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규한과 최호인의 관계를 알고 있 기 때문이리라.
“솔직하게 말해도 돼.”
“쓰레기.”
“응?”
“종이가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