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26화 (226/272)

226화

좀비 좋아하세요? (3)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행 열차’의 연출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유는요?”

“제가 작품을 흥행시킬 자신이 있 거든요.”

“하지만……

기작으로 생각하고 계셨지 않습니 까?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거의 다 넘어왔다.’

이런 확신이 든 순간 이규한이 마 지막 당근을 던졌다.

“‘베테랑들’과는 다를 겁니다.”

“어떤 부분이 다를 거란 말씀입니 까?”

“자유를 드리겠습니다.”

“약속하시는 겁니까?”

“약속드리죠.”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했다고 판단

한 우중완 감독이 더 버티지 않고 입을 뗐다.

“제가 연출을 맡겠습니다.”

‘됐다.’

이규한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백 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계약서입니다. 살펴보시죠.”

앞으로 내밀어진 서류 봉투를 바라 보던 우중완 감독이 깜짝 놀란 표정 을 지었다.

“계약서를 미리 준비해 오셨던 겁 니까?”

“네.”

“제가 작품의 연출을 맡을지 여부

도 몰랐던 상황인데……?”

“감독님께 무조건 연출을 맡길 생 각이었습니다. 감독님이 아닌 다른 연출자는 떠오르지 않았으니까요.”

‘때론 립 서비스도 필요한 법이지.’

립 서비스에는 돈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이번 작품의 흥행이 내게는 중요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의 연출을 맡 을 수 있는 감독은 오직 나뿐이다.’

이렇게 각오를 다지는 우중완 감독 의 표정에서는 비장함마저 묻어나고 있었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우중완 감독이 계약서에 서명하고 각오를 밝힌 순간 이규한이 제안했 다.

“많이 늦긴 했지만 준경이와 함께 식사부터 하시죠?”

“대표님은 같이 안 가십니까?”

“저는 오 분만 있다가 가겠습니 다.”

“알겠습니다.”

드르륵.

우중완 감독이 먼저 룸을 빠져나갔 다.

혼자 남은 이규한이 펜을 들었다.

- 감독 : 우중완.

‘부산행 열차’의 시나리오 책에 우 중완 감독의 이름을 기입한 후 이규 한이 시나리오 책을 집어 들었다. 잠시 후 이규한의 눈앞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 8,111,597.

“우중완 감독과 계약했습니다J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이규한이 우 중완 감독과의 계약 소식을 알렸다.

“언제?”

“며칠 전에 계약에 합의했고, 어제 세부 조건까지 합의를 마치면서 계 약을 마무리했습니다.”

“타이밍 기가 막히네.”

‘베테랑들’은 여전히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유지하며 독주하고 있는 상황.

자연히 우중완 감독의 주가가 치솟 고 있었다.

그런데 이규한이 빠르게 움직여서 이미 우중완 감독과 차기작 계약을 마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황진호가 감탄한 것이었다.

“우중완 감독이 시나리오 각색 작 업을 마치고 나면 바로 ‘부산행 열 차’의 촬영에 돌입할 겁니다.”

우중완 감독의 계약 소식에 이어서 ‘부산행 열차’의 촬영 스케줄까지 공지하자 하태열이 우려 섞인 표정 을 지은 채 물었다.

“너무 서두르는 거 아냐?”

이규한이 대답하기 전에 백진엽이 먼저 나섰다.

“벌써가 아니죠. 제가 시나리오 초 고 쓰고 나서 2년 가까이 홀렸으니 엄청 진행이 느린 셈이거든요.” “물론 전체적인 시간은 길었지만, 최근 들어 ‘부산행 열차’가 너무 급 박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서 그래.”

“장고 끝에 악수 난다,쇠뿔도 단 김에 빼라,이런 말도 모르세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도 있 지.”

하태열과 백진엽이 팽팽히 맞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규한이 나섰 다.

“태열 선배가 우려하는 것처럼 진 행이 좀 빠른 게 사실입니다. 그렇 지만 제가 서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 습니다.” “어떤 이유?”

“좀비라는 소재의 특수성 때문에 개봉이 너무 늦춰지면 안 됩니다.”

“좀 쉽게 설명해 봐.”

“‘워킹 데즈’라는 미국 드라마는 아시죠?”

“알아.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하는 걸 몇 번 봤어.”

“그 작품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드입니다. ‘워킹 데즈’ 덕분에 좀비 열풍이 불고 있는 상황 이죠. 이 좀비 열풍이 식기 전에 최 대한 빨리 ‘부산행 열차’를 제작해 서 개봉하는 게 중요합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내 가 알기론 한국에서 좀비 소재의 영 화가 제작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은 못 들은 것 같아. 그러니까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는 거 아냐?”

“선배님 말씀처럼 현재 국내에서 제작되고 있는 좀비 소재의 작품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시아권으로 확장하면 상황이 달라지죠.”

“아시아권?”

“중국,일본,홍콩,인도,베트남 같은 나라에서는 좀비 소재의 작품 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이규한이 국가명까지 언급하면서 설명했지만 하태열은 제대로 이해한

기색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있습니다.”

“왜?”

“요즘 해외시장이 괜찮거든요.”

? ‘……?"

“‘부산행 열차’는 제작 단계부터 해외 마케팅을 시도할 겁니다. 해외 바이어들이 참가하는 필름 마켓에도 참여해서 작품을 소개해 시장을 넓 히면서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계획 입니다.”

“그러니까… 해외에 ‘부산행 열차’ 를 수출한다고?” “맞습니다. 그리고 해외시장을 염 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부산행 열 차’의 제작을 서두르려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워킹 데즈’의 흥행으로 불고 있는 좀비 열풍이 식 기 전에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먼저 개봉하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될 거 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규한이 설명을 마친 후 직원들의 반응을 살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백진엽이었 다.

“제가 기획한 ‘부산행 열차’가 할 리우드에 진출한다는 거죠?”

“그래.” “보람이 있네요.”

“무슨 보람?”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거 요. 힘든 직장 생활을 버렸더니 마 침내 보상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 다.”

백진엽의 이야기를 듣던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힘든 직장 생활을 버렸다고?’

이규한은 백진엽에게 규율을 강조 하지 않았다.

최대한 터치하지 않고 자율을 부여 했다.

그 편이 백진엽이 갖고 있는 장점 인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 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근무 시간에 사장인 이규한의 눈치 를 보지 않고 웹툰을 보면서 낄낄거 리던 백진엽의 모습과 힘든 직장 생 활.

전혀 매치가 안 된다는 생각을 하 고 있을 때 백진엽이 각오를 다졌 다.

“애사심이 더 생겼습니다. 앞으로 는 더 열심히 일해야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네?”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아서.” ‘너무 열심히 일하면 오히려 곤란 해.’

이렇게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은 것 을 꾹 참고,이규한이 김미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미주 씨는 어떻게 생각해?”

“반대할 이유가 없죠.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하고,해외에서도 홍행 에 성공하면 인센티브를 두 배로 받 을 수 있으니까요.”

예상대로 김미주는 반대하지 않았 다.

마지막으로 이규한이 황진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는 것은 좋 다고 생각해. 이 대표 말처럼 해외 시장에 진출해서 수익을 거둘 수 있 으면 최상이지만,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해외시장에 도전하는 것만 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응?”

“표정이 어두워서요. 무슨 걱정 있 으세요?”

황진호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놓치 지 않은 이규한이 물었다.

“실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우중완 감독에게 시나리오 각색을 맡긴 것.”

? <……?"

“난 지금 ‘부산행 열차’의 시나리 오가 마음에 들거든. 그런데 우중완 감독이 손을 대면 안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 어. 이 대표가 자주 하던 표현처럼 잘 꾸며진 숲의 경관을 해칠까 봐 걱정되는 거지.”

비로소 황진호가 우려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 된 이규한이 말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우

중완 감독이 위험하다는 것은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자꾸 걱정이 돼. 특히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려. 특약 사항에 기입한 내용 말이야.”

황진호가 계약서의 특약 사항 부분 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부산행 열차’의 제작 과정에서 감독에게 수정 권한을 부여한다.

특약 사항에 기입된 조항의 내용.

우중완 감독이 강하게 요청해서 삽 입된 문구였다. 그리고 황진호는 이 조항이 발목을 잡을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걱정하실 필 요 없습니다.”

“하지만……

“애매한 문구니까요.” “문구가 애매하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쉽게 말해 어느 정도의 수정 권한을 부여할 건지에 대해서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 고 해석이 엇갈리는 경우 제작사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관행입니다.”

“그럼 일부러 애매한 문구를 삽입

했던 거야?”

“네. 우중완 감독을 믿을 수 없으 니까요. 그래서 ‘부산행 열차’의 진 행을 더 서두르는 것이기도 합니 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시간을 많이 주면 우중완 감독의 생각이 많아질 테니까요. 생각할 틈 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작을 서 두르는 편이 낫습니다.”

우중완 감독은 양날의 칼과 비슷했 다.

번뜩이는 천재성은 작품에 도움이 되지만,그 천재성이 잘못된 방향으 로 뻗어 나가면 작품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황진호 역시 알고 있었 기에 수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였다.

잠시 후,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 다.

“그리고 ‘부산행 열차’의 제작을 최대한 서두르는 데는 한 가지 이유 가 더 있습니다.”

“또 뭐지?”

“김대환 대표와의 마지막 승부가 남아 있어서입니다.” “김대환 대표는 지금쯤 속으로 제 게 칼을 갈고 있을 겁니다.”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개봉이 연 기된 것.

그대로 촬영을 마치고 개봉하면 흥 행에 참패할 거라고 김대환 대표가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김대환 대표는 이규한에게 제대로 속았다는 사실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항의나 협박을 하지 않았다.

아니,안 한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공동 제작 사였던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손을 떼도록 먼저 요청한 것이 김대환 대 표였기 때문이다.

또 일개 제작자인 이규한에게 놀아 났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 도 김대환 대표는 원치 않기 때문이 다.

그렇지만 항의나 협박이 없다고 해 서 그가 분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 다.

이 수모를 갚아 줄 기회를 호시탐 탐 엿보고 있을 것이다.

또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서 모종의

음모를 꾸밀 가능성이 높았다.

“요새 밤에 잠이 안 온다.”

“왜요?”

“왜긴 왜야? 이 대표 때문이지. 씨 제스 엔터테인먼트를 적으로 돌렸는 데 두 발 뻗고 잠이 오겠어?”

황진호가 핀잔을 건넨 순간 이규한 이 정정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를 적으로 돌 린 게 아니라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의 수장인 김대환 대표를 적으로 돌 린 겁니다.”

“그게 그거 아냐?”

“엄연히 다릅니다.”

“내 생각엔 거기서 거기 같은데?”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김대환 대 표가 물러나고 새 경영진이 들어서 면 어긋난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으니까요.”

이규한이 대답했지만 황진호는 여 전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물론 김대환 대표가 물러나면 이 대표 말처럼 될 수 있겠지. 그런데 김대환 대표가 물러날 리가 없잖 아?”

“물러나게 만들 겁니다.”

“누가? 이 대표가?”

“네.” “어떻게?”

이규한이 대답했다.

“무리수를 두도록 판을 만들어야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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