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캐스팅의 비결 (3) “축하드립니다.”
“뭘요?”
“이제 내부자가 된 걸요.”
이규한이 웃으며 말한 후 잔을 들 어 올렸다.
“이제 모두 한 배를 타게 된 기념 으로 건배 한번 하시죠.”
이규한이 잔을 앞으로 내밀자 전혜
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잔을 부딪쳤다.
“이 대표님은 확실히 제작자로서 능력이 남다르네요.”
“제가요?”
“술자리에서 정후와 저를 동시에 ‘신과 같이’라는 작품에 캐스팅하는 데 성공한 게 증거죠.”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채앵.
건배한 후 기분 좋게 술잔을 비운 이규한이 하정후를 바라보며 물었 다.
“캐스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무엇입니까?”
“상대의 심리를 읽는 겁니다.”
" <?,
“지금 나와 마주 앉아 있는 상대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일까. 그걸 파 악하면 캐스팅에 성공할 확률이 높 아집니다.”
“상대가 가장 원하는 걸 알아내 라?”
배우 하정후 모드가 아닌 제작자 하정후 모드로 돌입한 하정후가 두 눈을 빛내며 질문했다.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라는
작품을 공동 제작 할 때 혜수 선배 님을 캐스팅하는 데 성공한 것도 원 하는 걸 알아냈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당시에 혜수 씨는 외롭 고 불행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혜수 씨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에 출연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정후 씨도 그 작품에 캐스팅할 수 있었죠.”
“ 우”
“당시 하정후가 원하는 것은 최고 의 여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니 전혜수라는 최고의 여배우가 파트너로 출연한다면 하정후도 ‘해 적의 시대’가 아닌 ‘암살자,보이지 않는 총구’에 합류할 것이다. 이렇 게 계산했던 것이 적중했죠.”
이규한이 당시 캐스팅 비사를 털어 놓았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하정후 가 물었다.
“그럼 제가 현재 가장 원하는 건 무엇이라고 판단하셨던 겁니까?”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 그리고 제 작자 하정후의 성장이라고 판단했습 니다. 제 판단이 맞습니까?”
이규한이 질문하자 하정후가 홈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확합니다.”
“덕분에 하정후라는 최고의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죠.”
이규한이 웃으며 덧붙인 순간 하정 후가 전혜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선배님.”
“옹?”
“이규한 대표님이 약속을 지켰습니 까?”
“무슨 약속?”
“선배님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 는 약속 말입니다.”
그 질문을 받은 전혜수가 빈 잔을 들어 올렸다.
“그때 난 꼭 이 잔 같았어. 이혼 후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지.”
잠시 후 전혜수가 잔을 절반쯤 채 웠다.
“지금은 이 정도로 내 것이 생겼 어. 지킬 것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살고 있고,덕분에 좀 더 행복해졌 지.”
하정후가 고개를 끄덕일 때,전혜 수가 덧붙였다.
“이 대표님은 다시 행복해질 수 있 는 기회의 장을 열어 주었지. 여기 서 더 행복해지는 건 내 몫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게 이 대표님은 은인인 셈이지.”
“은인이란 표현은… 너무 과합니 다.”
이규한이 손사래를 칠 때 하정후가 말했다.
“저와의 약속도 지켜 주십시오.”
“ …?"
“제작자 하정후가 성장할 수 있도 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오늘따라… 술이 달다.”
소주잔을 비운 이규한이 말하자 장
준경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졌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좋은 일? 있지.”
“뭔데?”
“하정후를 잡았거든.”
“방금 누구라고 했어?”
“하정후.”
이규한이 재차 확인해 주자 장준경 이 부러운 시선을 던졌다.
장준경 역시 제작자.
하정후를 작품에 캐스팅하는 게 얼 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 문이다.
“하정후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 서 제작하는 영화 세 편에 출연하기 로 약속했다.”
“뭐? 한 편도 아니고 세 편씩이 나?”
이규한이 덧붙인 이야기를 들은 장 준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선술집 안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려 있었지만,장준경은 그조차도 알아채지 못하고 다시 소리쳤다.
“진짜 하정후가 블루문 엔터테인먼 트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세 편씩이 나 출연하기로 약속했어?”
“그렇다니까.”
“부럽다. 진심 부럽다.”
“아직 놀라기에는 일러.”
“설마 뭐가 더 남았어?”
? ?
“또 뭐가 남았는데?”
“덤으로 전혜수가 카메오 출연을 약속했거든.”
“하정후에 전혜수까지?”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장준경이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 야?”
“무슨 짓?”
“그 어려운 일들을,아니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대체 어떻게 뚝딱뚝 딱 해내는 거야? 꼭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아서 그래.”
목이 탄 듯 소주잔을 단숨에 비운 후 장준경이 다시 입을 뗐다.
“하정후 주연에 전혜수 카메오 출 연 그리고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제 작이면… 투자 유치 확정이네.”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응?”
“이번 작품은 제작비가 워낙 크거 든. 그래서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 장준경은 아직 ‘신과 같이’라는 작 품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영 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물 었다.
“대체 제작비 규모가 얼마나 큰
데?”
“안 알려 줄 거야.”
“왜?”
“마신 술이 아까워서.”
“ …?"
“제작비가 얼마인지 알고 나면 술 이 확 벨 거거든.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더 중요한 게 있
이규한은 화제를 돌렸다.
“이거 봤어?”
“월?”
“‘어메이징 히어로즈’ 홍보 기사.” 이규한이 스마트폰에서 기사를 찾 은 후 장준경에게 건넸다.
“벌써 홍보 기사가 떴다고?”
스마트폰을 건네받는 장준경은 긴 장한 기색이었다.
그가 긴장한 이유는 ‘베테랑들’과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개봉 시기가 겹쳤기 때문이었다.
아직 개봉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은
그런데 ‘어메이징 히어로즈’가 벌 써부터 홍보를 시작했다는 것으로 인해 당황한 장준경이 스마트폰을 살폈다.
“작정하고 밀고 있네.”
〈한국형 히어로 영화의 서막을 연 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거대한 도전〉
영화 잡지에 실렸던 ‘어메이징 히 어로즈’와 관련된 특집 기사의 제목 을 확인한 장준경이 눈살을 찌푸렸
대충 기사를 훑어보던 장준경이 이 내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벌써 다 봤어?”
이규한이 스마트론을 건네받으며 묻자 장준경이 고개를 흔들었다.
“반도 안 읽었어.”
“왜 안 읽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응?”
“전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냐?.”
“누구한테?”
“누구긴 누구야? ‘베테랑들’의 투 자와 배급을 맡은 NEXT 엔터테인 먼트 김태훈 팀장님에게 전화해야 지.”
“전화를 걸어서 뭐라고 하게?”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 벌써 ‘어 메이징 히어로즈’ 홍보를 시작했다. 우리도 빨리 뭐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재촉해야지.”
김태훈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야?” “조용히 있는 게 이득이거든.”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장준경이 영 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 었다.
“가만히 있는 게 이득이라고?”
“그래.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 이니까.”
“빈 수레가 아닌 것 같은데?”
“빈 수레가 맞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자꾸 잊나 본데,내가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공동 제작자다.”
이규한이 대답하자 장준경이 무릎 을 탁 쳤다.
“맞다. 네가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공동 제작자였지.”
“명목상으로는 공동 제작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단독 제작이나 마찬가 지야. 그래서 ‘어메이징 히어로즈’가 빈 수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이규한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장 준경이 조금 여유를 되찾았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덧붙였다.
“그리고 빈 수레가 요란하게 굴러 가면 ‘베테랑들’에 반사이익이 생 겨.”
“왜 반사이익이 생긴다는 거야?”
“겁을 먹거든.” “누가 겁을 먹어?”
“경쟁작들.”
장준경이 두 눈을 빛냈다.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실상은 별 것 없지만,워낙 흥보를 세게 하니 까 그 무렵에 개봉을 하려던 다른 작품들이 겁을 먹는다?”
“썩어도 준치거든.”
“누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말이야.”
“준치가 아니라 대어지. 나도 겁을 먹고 있거든.”
잠시 후 장준경이 다시 입을 열었 다.
“한마디로 무주공산에 무혈입성할 수 있다는 뜻이지?”
“제대로 이해했네.”
“그럼?”
“빈 수레가 더 요란하게 굴러갈수 록 ‘베테랑들’에는 호재지.”
“오케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네 말대로 조용히 있어야겠네.”
초조한 기색을 완전히 털어 낸 장 준경이 소주잔을 들었다.
“갑자기 술맛이 확 좋아지네.”
소주잔을 비운 후 장준경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술병을 들어 서 빈 잔을 채우던 장준경이 도중에
멈칫하며 고개를 기못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이 어떤데?”
“좀 슬퍼 보이는데? ‘베테랑들’에 호재이니까 너도 기뻐해야 하는 것 아냐?”
“기쁘지만 슬프기도 해.”
“왜?”
“이 기사가 나왔다는 게 곧 내가 잘릴 거란 걸 의미하거든.”
“무슨 뜻이야?”
이규한이 소주잔을 비운 후 대답했 다.
머잖아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공 동 제작에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베제될 거란 뜻이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한파가 물 러나며 봄기운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봄의 시작을 알리듯 이규한 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한번 만나세.”
‘때가 됐구나.’
김대환 대표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순간,이규한은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어차피 한번은 만 나야했기에 이규한이 씨제스 엔터테 인먼트로 찾아갔다.
“따라오십시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실 문을 노려보던 이규한이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왔군. 앉게.”
김대환 대표가 자리를 권했다.
이규한이 소파에 앉으며 맞은편 소
파에 앉아 있는 김기현을 힐끗 살폈 다.
“왔어?”
김기현은 시선을 피한 채 짤막한 인사를 건넸다.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셨습니까?”
이규한이 김대환 대표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투자 배급 을 맡고 있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로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불렀네.”
“말씀하시죠.”
“제게 실망했다는 겁니까?”
“맞아.”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내 기대에 한참 못 미쳤네.”
‘한 치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네.’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지금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김대환 대표의 목소리는 이전 포장마차에서 대화를 나눌 때와 달랐다.
사무적인 어투에서는 냉정함이 묻 어났다.
“어떤 부분이 기대에 못 미쳤습니
까?”
“각색을 거쳤던 시나리오가… 많이 아쉬웠어.”
“그 시나리오로 촬영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게 시나리오의 완성 도에 만족하셨다는 뜻으로 해석했는 데요?”
“시나리오의 완성도에 만족했기 때 문에 촬영에 돌입한 게 아니네. 개 봉일을 맞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촉 박해서 촬영에 돌입하라고 지시했던 거지.”
김대환 대표가 반박했지만 이규한 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대표님의 주관적인 의견이 아
닙니까?”
“주관적인 의견?”
“시나리오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에 는 결국 주관적인 잣대가 드리워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