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매력적인 좀비 (2)
“차도남과 마초남이라.”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 던 김태훈이 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태유와 마동수의 이미지가 극명 하게 갈리기는 하네.”
“하정후와 마동수가 ‘부산행 열차’ 의 투 톱으로 출연하는 경우를 떠올 려 보십시오. 하정후의 이미지도 마 초적인데 마동수도 마초적입니다. 즉,엇비슷한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 에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발생할 확 률이 높습니다.”
이건 이미 감정을 통해서 확인한 부분.
티켓 파워 측면에서 훨씬 앞서 있 는 하정후가 주연으로 출연했을 때 보다 티켓 파워가 상대적으로 떨어 지는 공태유가 주연으로 출연했을 때 ‘부산행 열차’의 예상 관객 수가 더 많았다는 것.
주연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를 제외 하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마지막 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공태유를 이 렇게까지 고집하는 이유가 있어?”
“제작자의 직감입니다.”
“직감?”
“공태유가 최상의 캐스팅이라는 직 감이 들었습니다.”
이규한이 꺼낸 대답은 거짓말이었 다.
진짜 이유는 이규한이 ‘부산행 열 차’라는 작품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좀비 재난 블록버스터 를 표방했던 ‘부산행 열차’는 관객
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면서 천만 관 객을 돌파했었다. 그리고 이규한이 기억하는 ‘부산행 열차’의 주연 배 우는 공태유와 마동수였다.
기존의 작품과 싱크로율이 높을수 록 최종 관객 수도 비슷해진다는 사 실.
이규한은 이미 지난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
그래서 공태유와 마동수를 ‘부산행 열차’에 캐스팅하기 위해서 김태훈 을 필사적으로 설득한 것이었다.
다행히 김태훈은 의심을 품지 않았 다.
‘만약 다른 제작자가 내 앞에서 이 대표와 똑같은 대답을 했다면… 아 마 욕을 했을 거야. 그런데 이 대표 한테는 그럴 수가 없네.”
“왜요?”
“이 대표의 직감 덕분에 블루문 엔 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던 작품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 니까.”
‘성공한 게 좋긴 하구나.’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을 때, 김 태훈이 우려 섞인 표정을 완전히 떨 치지 못한 채 입을 뗐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건 사실이 야.”
“어떤 부분이 불안하신 겁니까?” “투 톱 주연인 공태유와 마동수의 티켓 파워가 인지도가 너무 떨어진 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거
드 ”
“저도 그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완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 다.”
“보완할 방법? 뭔데?”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매력적인 좀비를 등장시킬 생각입 니다.”
“좀비가… 매력적일 수도 있어?”
김태훈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 로 물었다.
그동안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 던 괴기스럽고 징그러운 좀비에 너 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한 질문이었 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규한 역시 김태훈과 엇비슷한 생각이었 다.
그 생각이 바뀐 계기는 며칠 전 열렸던 회의 때문이었다.
7,158,864명.
공태유와 마동수를 투 톱 주연으로 캐스팅했을 경우 ‘부산행 열차’의 예상 관객 수였다.
분명히 예상 관객 수가 증가했지만 이규한은 아쉬움을 느꼈다.
‘적다?’
기억 속 ‘부산행 열차’는 천만 관 객을 동원했었다.
그런데 천만 관객에 약 삼백만 명 가까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제작 과정에서 예상 관객 수 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규한은 회의를 열었다.
그 회의 중에 이규한이 주목한 것 은 김미주가 내놓은 의견이었다.
“사랑하고 싶어요.”
그녀가 불쑥 꺼낸 이야기를 듣자마 자 황진호가 핀잔을 건넸다.
“회의 중에 갑자기 웬 사랑 타령이 야?”
“요새 많이 외롭거든요.”
“이제 미주 씨도 결혼할 때가 됐나 보네. 그렇지만 아무리 외로워
“좀비와 사랑에 빠지는 건 좀 그렇 다?”
“그래.”
“지금이라면 좀비도 사랑할 수 있 을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이규한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좀비와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김미주의 말이 너무 황당해서였 다.
그렇지만 단 한 사람, 백진엽만은 웃지 않았다.
대신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뱀파이어,늑대 인간과도 사랑에 빠지는 판국인데,미주 씨가 좀비와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죠.”
백진엽이 의견을 제시하기 무섭게 황진호가 반박했다.
“뱀파이어와 좀비는 엄연히 다르 지.”
“뭐가 다른데요?”
“뱀파이어는 잘생겼지만 좀비는 징 그립잖아.”
“고정관념입니다.”
“고정관념?”
“잘생긴 좀비도 있을 수 있으니까 “잘생긴 좀비가 세상에 어딨어?”
“잘생긴 남자가 좀비한테 물려서 좀비로 변하면 잘생긴 좀비가 될 것 아닙니까?”
“나처럼?”
“에이, 선배님이 좀비로 변하면 그 냥 못생기고 징그러운 좀비죠.”
“야,나도 미남 소리 많이 듣거든.” “멀리하세요.”
“누굴 멀리하란 거야?”
“자고로 진실을 외면하고 감언이설 을 늘어놓는 자들과는 가까이 하면 안 되거든요.”
“이 자식,지금 모자(母子) 간의 연을 끊으라는 거야?”
황진호와 백진엽이 옥신각신하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덤 앤 더머가 따로 없네.”
김미주가 두 사람에게 냉정한 평가 를 내렸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 평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 팔짱을 낀 채 고민하다가 김 미주에게 물었다.
“진짜 좀비를 사랑할 수 있을까?”
“잘생긴 좀비라면 가능하죠.”
“하지만……
“더 애틋하잖아요. 이루어질 수 없 는 사랑이니까요.”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 애틋하 다?,
이규한이 속으로 그 말을 되뇌고 있을 때, 김미주가 다시 입을 뗐다.
“그리고 좀비와의 사랑,뭔가 신선 하지 않아요?” 며칠 후.
‘어메이징 히어로즈’ 관련 회의를 위해서 김기현이 블루문 엔터테인먼
대표실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표 정이 영 불편한 것을 보고 이규한이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별일 없어. 그런데 그건 왜 물 어?”
“표정이 별로인 것 같아서.”
“내 표정? 그냥 좀 피곤해서 그 래.”
김기현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 하는 것을 들은 이규한이 말했다.
“조금만 더 참아.”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찾아오는 것,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 이야기를 들은 김기현이 두 눈 을 빛냈다.
“이제 종착역에 가까워졌단 뜻이 야?”
‘역시 오기 싫었네.’
김기현은 회의를 하기 위해서 블루 문 엔터테인먼트까지 찾아오는 것이 귀찮아서가 아니라는 변명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어메이징 히어로즈’ 회의를 위해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까지 찾아오는 것에 불만이 쌓였다
는 증거.
‘인내심이 없어,인내심이.’
이규한이 속으로 혀를 찼지만,겉 으로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입 을 뗐다.
“너뿐만 아니라 연출을 맡은 김대 만 감독도 윤색을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내 의견에 동의했 어. 그러니 이제 캐스팅 단계로 넘 어가야지. 그리고 캐스팅만 마치면 바로 촬영에 들어가면 되니까 기획 개발은 끝나는 셈이지.”
더 이상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로 찾 아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기현의 표정은 예상대로 밝아졌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물었다.
“혹시 염두에 두고 있는 배우가 있 어?”
“하정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김기현이 대 답했다.
‘또… 하정후네.’
그 대답을 듣고서 이규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주연으로 누굴 염두에 두고 있습 니까?”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때,작품에 상관없이 무조건 하정후란 대답이 잇따라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메이징 히어로즈’를 최고 로 잘 만들고 싶어. 그러니까 최고 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당연한 것 아냐?”
“방법은?”
“응?”
“하정후를 어떻게 캐스팅할 거냐고 물은 거야.”
이규한의 질문을 받은 김기현이 의 아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하정후가 ‘어메이징 히어로즈’에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 내 생각엔 하정후 캐스팅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자신감이 넘치네.”
이규한이 픽 웃으며 제안했다.
“그럼 하정후 캐스팅은 네가 맡아 서 진행해 보는 게 어때?”
“내가?”
“난 하정후를 잡아 올 자신이 없거 이규한이 솔직하게 말한 순간 김기 현이 두 눈을 빛냈다.
“오케이. 나한테 맡겨 둬.” 자신 있게 말하는 김기현에게 이규 한이 덧붙였다.
“그런 너만 믿고 있을게.” “식사가 늦었네요. 많이 드세요.”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붓고 숟가 락을 막 들던 이규한이 심각한 표정 을 짓고 있는 하태열을 발견하고 물 었다.
“왜 안 드세요?”
“입맛이 없네.”
“왜 입맛이 없으세요?”
“걱정이 돼서.”
“뭐가요?”
“김기현 대표가 하정후를 캐스팅해 올까 봐.”
하태열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빙 긋 웃었다.
“그거라면 걱정할 일이 아니라 축 하할 일 아닌가요? 대한민국 모든 제작사들이 하정후를 캐스팅하고 싶 어서 혈안이 돼 있는 상황이니까
요.”
“원래라면 축하할 일이지. 그런데 이번 경우는 특수한 상황이잖아. 만 약 김기현 대표가 진짜 하정후를 캐 스팅하는 데 성공하면……
“‘어메이징 히어로즈’가 흥행에 성 공할 수도 있다,이걸 걱정하시는 거죠?”
“맞아.”
하태열에게서 대답이 돌아온 순간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하정후의 티켓 파워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이규한은 하정후를 남자 주 인공으로 캐스팅된 경우를 가정해서 이미 감정을 마친 후였다.
- 4,039,925.
당시 감정의 결과였다.
1,271,519에서 4,039,9253..
무려 삼백만 명 가까이 예상 관객 수가 늘어난 감정 결과가 도출된 것 이 하정후의 티켓 파워가 대단하다 는 증거였다.
속된 말로 망해 가는 영화를 심폐 소생 해서 살려 낸 셈.
그래서 김기현이 하정후를 ‘어메이 징 히어로즈’에 캐스팅할 거란 계획 을 밝힌 순간,이규한 역시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질 수도 있다는 걱정
그렇지만 지금은 그 걱정을 완전히 털어 낸 상태였다. 그래서 이규한이 웃으며 하태열에게 제안했다.
“그것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드세요.”
“왜 걱정하지 말란 거야?”
“하정후 캐스팅은 불발될 확률이 높거든요.”
이규한이 대답하자 하태열이 두 눈 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불발될 확률이 높은 이유는?”
이규한이 대답했다.
“접근 방식이 잘못됐거든요.” “하정후를 만난 김기현이 꺼내들 패가 무엇일까요?”
“돈과 권력이겠지.”
하태열의 대답은 정확했다.
최고 수준의 개런티를 지불할 수 있는 자금력과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김대환 대표라는 막강한 권력자가 아버지라는 것.
김기현이 가진 두 가지 무기였다. 그리고 그는 이 두 가지 무기를 적 극적으로 이용해서 하정후를 캐스팅 “김기현이 들고 찾아간 패는 하정 후에게 먹혀들지 않을 겁니다.”
이규한이 장담했지만,하태열은 불 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이 대표,그렇게 쉽게 말할 문제 가 아냐. 돈과 권력의 유혹에서 자 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무척 드문 편이니까.”
“저도 압니다.”
“그런데 왜……?”
“하정후가 무척 드문 편에 속하는 사람이거든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