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매력적인 좀비 (1)
김태훈은 하정후를 ‘부산행 열차’ 의 주연으로 캐스팅하고 싶다는 욕 심을 숨기지 않았다.
현재 충무로에서 최고의 티켓 파워 를 갖춘 배우가 하정후라는 데는 어 느 누구도 이견이 없는 상황.
그를 캐스팅한다면 ‘부산행 열차’ 의 흥행에 당연히 도움이 될 터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의 생각은 달랐다.
하정후가 좋은 배우이긴 했지만 전 가의 보도는 아니었다.
그가 배우로서 진가를 발휘하기 위 해서는 극중에서 어울리는 배역을 맡아야 했다. 그리고 이규한이 판단 하기에 하정후는 ‘부산행 열차’의 주연 배역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아 니었다.
‘너무 이미지가 강해.’
현재 각색을 마친 ‘부산행 열차’의 시나리오상에서 주연 배역의 직업은 펀드 매니저였다.
매사에 계산적인 데다가 워커홀릭 인 주인공은 차가운 도시 남자의 이 미지가 강했고,마초적 이미지가 강 한 하정후와 어울리는 캐릭터는 아 니었다.
단지 감이 아니었다.
이규한은 김태훈을 만나러 찾아오 기 전 이미 감정을 했다.
‘5,723,416명.’
하정후와 마동수를 투 톱 주연으로 캐스팅한 경우를 가정했을 때,‘부 산행 열차’의 예상 관객 수였다.
‘7,158,864명.’
그리고 공태유와 마동수를 투톱 주 연으로 캐스팅한 경우를 가정했을
때의 예상 관객 수였다.
하정후가 아닌 공태유를 주연 배우 로 캐스팅했을 때,대략 150만 명가 량 예상 관객 수가 더 많았다.
“만약 하정후를 캐스팅하는 게 힘 들다면 다른 A급 남자 배우들을 캐 스팅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그 감정 결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김태훈은 여전히 공태유를 주연 배우로 캐스팅하는 것에 부정 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이규한 이 화제를 돌렸다.
“너무 강해.”
“마초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는 겁 니까?”
“아니. 조연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는 뜻이야.”
김태훈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반 박했다.
“최근에는 마동수가 주연으로 여러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대부분 저예산 영화였잖아. 그리고 주연으 로 출연한 작품들이 흥행에 크게 성 공하지도 못했고.” 대부분 손익분기점은 넘겼습니 “워낙 제작비가 적은 작품들이었으 니까. ‘부산행 열차’처럼 대작의 주 연을 맡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게 내 판단이야.”
김태훈은 공태유에 이어서 마동수 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것에도 부 정적이 었다.
그렇지만 이규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마동수란 배우를 높이 평가 하는 이유는 이미지 구축을 잘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미지?” “마초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니까 요.”
“그건……
“그 덕분에 마동수는 마초적인 남 성의 대명사라는 이미지가 생겼습니 다.”
이건 부인하기 어려워서일까.
김태훈이 반박하는 대신 고개를 끄 덕이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재빨 리 덧붙였다.
“그래서 저는 마동수가 ‘부산행 열 차’의 주연으로 적임자라고 판단했 습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배역과 무척 어울리니까요.”
“배역과 마동수의 이미지가 부합한 다?”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 좀비들과 맞서 싸우는 남자. 좀비는 기존의 한국 영화에서는 한 번도 등 장한 적 없는 무척 강한 적입니다. 그렇게 강한 적인 좀비와 맞서 싸우 더라도 왠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관객들에게 이런 믿음과 기대감을 심어 줄 수 있는 배우는 충무로에 많지 않습니다. 아니,마동수를 제외 하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마동수 는 외형에서 풍기는 강한 이미지 덕 분에 상황 코미디도 가능합니다. 재 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숨 쉴 틈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거죠. 이 것이 가능한 배우,아무리 생각해도 마동수밖에 없습니다.”
이규한이 긴 설명을 마친 후 김태 훈을 살폈다.
“생각해 보니 마동수는 나쁠 것 같 지 않네.”
잠시 후, 김태훈이 고개를 끄덕이 면서 꺼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안도했다.
간신히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공태유를 ‘부산행 열차’의 주연으 로 캐스팅하기 위해서 김태훈을 설 득해야 하는 작업이 남아 있었다.
“그럼 마동수를 주연으로 캐스팅하 는 데는 이견이 없으신 거죠?”
이규한이 김태훈에게 물었다.
“오케이. 이의 없어.”
흔쾌히 대답한 김태훈이 말을 이었 다.
“그럼 다시 공태유 이야기로 돌아 가자고. 마동수를 투 톱 주연 중 한 명으로 선택했으니까,공태유는 더 욱 안 돼. 투 톱 중 한 명의 인지도 와 티켓 파워가 약한 편이니까 나머
지 한 명의 인지도와 티켓 파워가 강해야 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 니까.”
김태훈이 재차 공태유를 캐스팅하 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주 장한 순간,이규한이 반론을 꺼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선배님 말씀이 맞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그렇지만 ‘부산행 열차’라는 작품 에는 특수성이 존재합니다.”
“어떤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거지?” “좀비 영화라는 점입니다.”
“‘부산행 열차’가 개봉했을 때 관 객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건 한국 에서 처음 나오는 본격 좀비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점일 겁니다. 따라 서 이 작품의 주인공이 누구냐보다 얼마나 실감 나는 좀비 액션이 등장 할까에 관객들은 포커스를 맞출 겁 니다. 쉽게 말해서 하정후가 좀비와 맞서 싸우는가,공태유가 좀비와 맞 서 싸우는가 이 부분은 크게 중요치 않다는 뜻입니다.”
“이 대표 말도 아주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김태훈이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반쯤 넘어왔다.’ 그를 설득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 했다고 판단한 이규한이 덧붙였다.
“제가 공태유를 ‘부산행 열차’에 꼭 캐스팅하려는 데는 두 가지 이유 가 더 존재합니다.”
“두 가지 이유? 뭐지?”
“우선 쌉니다.”
“싸다니?”
“아까 선배님이 말씀하셨잖습니까? 공태유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들 중 에 크게 성공을 거둔 작품이 없다 고. 그래서 공태유는 개런티가 비싼 편이 아닙니다.”
A급 남자 배우들의 경우 개런티가
3억에서 5억 원 선이었다.
게다가 배우 파워가 강해지면서 S 급 배우들의 경우 러닝 개런티 비중 도 늘어나고 있었다.
따라서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경우 S급 남자 주연 배우가 가져가는 개 런티는 10억을 훌쩍 넘어갔다.
총 제작비가 1??억 선이라고 가정 하면 주연 배우 한 명이 무려 10억 이상을 가져가는 구조였다.
김태훈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 다.
“공태유의 몸값이 싼 편이긴 하 지.” “선배님 말씀처럼 티켓 파워가 약 하긴 하지만 인지도는 있죠. 드라마 에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 각했으니까요.”
이게 이규한이 생각하는 배우 공태 유만의 특수성이자 최대 장점이었 다.
“최소 2억,최대 3억 선에서 공태 유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러 닝 개런티 조건 없이요.”
아까도 설명했듯 S급 남자 배우의 몸값은 10억을 넘어가는 상황.
5분의 1 수준의 개런티만 지불하 면서 공태유를 잡을 수 있는 셈이었 다.
“당연히 주연 배우에게 지불하는 개런티를 아낄 수 있게 되고,그 돈 으로 CG와 좀비 역할을 맡을 조연 및 액스트라들에게 투자한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게 제가 공태유를 ‘부산행 열차’의 주연으로 캐스팅하려는 첫 번째 이 유입니다.”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걸까.
김태훈이 의자에서 등을 떼며 흥미 를 드러냈다.
“나머지 하나의 이유는 뭐야?”
이규한이 대답했다.
“비교가 극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공태유가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 했을 때는 작품의 시청률이나 화제 성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주 연으로 출연했을 때는 흥행에 성공 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었습니다. 선배님은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규한의 질문을 받은 김태훈이 바 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했다.
“글쎄.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어.” “왜 모르시는 겁니까?”
“공태유란 배우에 대해서 그동안 별로 관심이 없었어. 그래서 그 이 유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 지.”
김태훈이 솔직하게 꺼낸 대답.
이규한의 예상과 거의 빗나가지 않 았다.
공태유가 출연했던 영화 작품 가운 데 NEXT 엔테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작품은 없었다.
아마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장인 김태훈이 공태유를 탐탁지 않 게 여겼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공태유에 대한 관심이 없으 니 공태유가 드라마에서의 성공과 달리 영화에 출연했을 때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한 적도 없으리 라.
“이 대표는 그 이유를 알아?”
“어울리지 않는 배역을 맡아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드라마 작품에 서 공태유가 맡았던 배역은 주로 수 동적인 캐릭터였습니다. 그런데 영 화 작품에 출연했을 때는 능동적인 캐릭터를 맡았죠.”
“그랬었나?”
김태훈이 기억을 더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네. 왜 영화와 드
라마에서 전혀 다른 배역을 맡았을
까?”
“그건 드라마와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드라마는 호흡이 긴 편입니다. 그 래서 주인공의 극초반 매력이 떨어 지더라도 시청자들이 참고 기다립니 다. 주인공이 좀 더 매력적인 캐릭 터로 성장할 때까지 시청자들이 인 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는 겁니다. 그렇지만 영화는 다릅니다. 러닝타 임이 두 시간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 에 주인공이 성장할 때까지 관객들 이 기다려 주지 못합니다. 그런 만 큼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미 완성된 캐릭터들인 경우가 많죠. 그래서 공 태유가 영화 작품에 출연했을 때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하긴, 공태유와 능동적이고 완성 된 캐릭터가 어울리는 편은 아니 지.”
공태유는 외모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맡았던 배역까지 전체적으로 차도남, 즉 차가운 도시 남자 이미 지가 강했다.
그런데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에 서는 국정원 특수 요원이나 형사처 럼 능동적인 배역을 맡았었다.
“본인과 어울리는 배역을 맡지 못 했던 것이 공태유가 출연했던 영화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했던 이유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부산행 열차’ 는 다릅니다. 주인공 배역에 공태유 가 딱 어울릴 겁니다.”
“배역이 계산적인 데다가 워커홀릭 인 펀드 매니저이기 때문에?”
“네.”
“그렇긴 하지만……
김태훈이 말끝을 흐렸다.
그가 여전히 공태유를 주연으로 캐 스팅하는 것을 망설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규한이 서둘러 덧붙였다.
“마동수와 함께 투 톱으로 출연하 게 되면 분명히 시너지 효과가 발생 할 겁니다.”
“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는 거 지?”
“아까 말씀드렸듯이 비교가 극명해 지니까요. 차도남과 마초남,전혀 다 른 이미지의 두 주인공이 의기투합 해서 좀비들과 맞서 싸우며 자신들 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흥미와 매력을 느끼게 될 겁니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