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10화 (210/272)

210화

까다로운 조건 (1)

‘상황 파악이 정확하네.’

이규한이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작가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신과 같이’라는 작품을 총 세 편의 영화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작해야 합니다.”

“동시에 제작해야 한다는 것은 ?”

“영화를 제작할 때,1편부터 3편까 지 한꺼번에 제작해야 한다는 겁니 다. 그래야만 1편만 개봉하고 후속 편이 개봉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 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제작비만 최소 삼백억이다.’

최효민 작가가 원하는 조건을 듣고 서 이규한이 깍지를 꼈다.

세 편의 영화를 제작할 경우 제작 비만 무려 삼백억이었다.

아니, 이것도 최소로 잡은 것이었 다.

CG가 얼마나 사용되느냐에 따라 서 제작비가 300억을 훌쩍 넘어서 400억에 육박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불가능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어떤 투자 배급사가 투자를 하려 고 할까?’ 총 제작비가 30억에도 미치지 못 하는 영화에 투자를 할 때도 갖은 트집을 잡으면서 깐깐하게 심사를 하는 게 투자 배급사였다.

그런데 제작비가 100억이 넘어가 는 영화의 시리즈 세 편을 동시에 제작한다고 하면 과연 투자를 해 줄 까?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영화를 몰라.’

최효민 작가가 이런 조건은 내건 것이 영화제작 환경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증거였다.

그때,최효민 작가가 물었다.

“이규한 대표님은 이 조건을 수용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 조건을 수용한다면 ‘신과 같이’의 판권을 팔겠습니다.”

“당연히… 수용할 수 없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일가.

최효민 작가는 실망한 기색이 아니 었다.

오히려 이규한에게 사과했다.

“저도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제 작품이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 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조 건을 내걸었던 겁니다.”

잠시 후,최효민 작가가 웃으며 말 했다.

“오히려 홀가분해졌습니다.”

“왜 홀가분해지신 겁니까?”

“제 작품을 영화로 제작할 수 없다

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으니까요.” 이규한이 위로하기 위해 말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작 가님이 원하시는 조건을 모두 수용 할 수 있는 제작자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최효민 작가는 고개를 흔 들며 말했다.

“이규한 대표님이 못 하시면 누구 도 할 수 없죠.”

NEXT 엔터테인먼트 인근에 위치

한 조용한 호프집.

벌컥.

창가 쪽 탁자에 혼자 앉은 이규한 이 생맥주를 마시고 내려놓았다.

“포기해야 하나?”

최효민 작가와 헤어진 후,‘신과 같이’라는 작품을 잊자고 결심했다.

어차피 영화로 제작이 불가능한 작 품에 계속 미련을 가져 봐야 괜한 심력만 소비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 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음과 달리 미련이 쉽게 떨쳐지질 않았다.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인 김태훈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 찾아 와 있는 것이 아직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는 중거였다.

“괜히 이야기를 꺼내 봐야 좋은 소 리 못 들을 것 같은데.”

김태훈은 이규한에게 우호적인 편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과 같이’라 는 작품의 제작과 투자에 대해 이야 기를 꺼내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확 률이 높았다.

그만큼 무모한 프로젝트였기 때문 이었다.

“그래. 이거 마시고 깔끔하게 잊어 버리자.” 이규한이 약 3분의 2가량 남은 생 맥주잔을 들어올렸다.

단숨에 잔을 비우고 깔끔하게 미련 을 버리기로 결심한 후 맥주를 들이 켜던 이규한은 결국 맥주잔을 다 비 우지 못하고 멈추었다.

“있다.” “이규한 대표님이 못 하시면 누구 도 할 수 없죠.”

아까 최효민 작가가 씁쓸한 표정으 로 꺼냈던 말이었다.

당시에는 이규한도 반박하지 못했 자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떤 제작자도 그 조건을 수용하며 ‘신과 같이’라는 작품의 제작을 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규한의 생각이 틀렸다.

‘신과 같이’를 제작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도전장을 내 민다. 한국형 판타지의 시작을 알리 는 ‘신과 같이’의 무모하지만 과감 한 도전.〉

이규한이 예전에 봤던 기사의 제목 이었다.

이 기사가 나왔다는 것이 ‘신과 같 이’가 제작에 돌입했다는 증거였다.

“누구지?”

이규한이 기억하는 것은 기사의 제 목뿐이었다.

어떤 제작자가 ‘신과 같이’를 제작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규한이 답답한 표정을 짓 고 있을 때였다.

“나다.”

" ……?" “그새 내 얼굴도 까먹은 건 아니

김태훈이 씩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 다.

“왜 벌써 시작했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맥주잔을 확 인한 김태훈이 서운한 기색으로 물 었다.

“고민이 좀 있어서요.”

이규한이 대답하자 김태훈이 흥미 를 드러냈다.

“여기 생맥주 한 잔,아니 두 잔 주세요.”

일단 생맥주부터 주문한 김태훈이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무슨 고민인데?”

“한번 제작해 보고 싶은 작품이 있 어요.”

“그럼 하면 되지. 이규한이 제작하 기로 결정했으면 그냥 밀어붙이면 되는 것 아냐?”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요.”

“왜 간단하지 않아?”

“제작비 규모가 크거든요.”

“이 대표가 예상하는 제작비 규모 가 얼마나 되는데? 100억? 150억?”

“좀 더 규모가 커요.”

“그럼 200억?”

“400억 정도요.”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 김태훈이 목이 탄 듯 생맥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대체 어떤 영화를 만들기에 제작 비가 400억이나 들어?”

“장르는 한국형 판타지예요.”

“CG 팍팍 들어가겠구먼.”

“장르가 판타지라서 어쩔 수 없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신 김태훈 이 입을 뗐다.

“이거부터 확실하게 하자. 지금 내 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공식

“아닙니다. 그냥 제작 가능성이 얼 마나 있을까를 상의해 보는 겁니 다.”

“오케이. 그럼 내가 먼저 질문할 게.”

“말씀하시죠.”

“이 대표가 제작비 400억짜리 한 국형 판타지 장르의 영화를 꼭 제작 하고 싶은 이유가 뭐야?”

이규한이 팔짱을 꼈다.

‘굳이 ‘신과 같이’라는 작품을 제작 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

질문을 하는 와중에 ‘굳이’라는 표

현을 붙인 이유.

찾아보면 좀 더 쉽게 제작할 수 있고,흥행이 확실히 보장된 작품도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규한이 ‘신과 같이’라 는 작품에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 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 영화의 전형성에서 탈피하고 싶어서입니다.”

“전형성에서 탈피하고 싶다?”

“쉽게 말해 도전이죠.”

“무슨 도전?”

“한국 영화는 너무 뻔하다. 조폭 얘기,사랑 얘기,싸구려 신파 빼면

영화를 못 만드는 것 아니냐.”

이규한이 말을 마친 순간 김태훈이 흠칫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물었 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꼭 나한테 하는 비난처럼 들려서 좀 당황스럽네.”

“대중이 요즘 한국 영화에 대해 갖 고 있는 생각입니다.”

“나도 알아. 그런데 이상하게 찔리 네.”

부끄러워서일까.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라 있는 김태

훈을 발견한 이규한이 쓴웃음을 머 금었다.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중심에 있 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한국 영 화는 뻔하지 않다는 것을 대중들에 게 보여 주고 싶습니다. 조폭 안 나 오고,사랑 타령 안 하는 영화,해 리 포터 시리즈 못지않은 판타지 영 화도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 고 싶기 때문에 이 작품을 제작하고 싶은 겁니다.”

이규한이 열변을 토해 낸 순간,김 태훈이 맥주를 마저 비우고 입을 뗐 다.

“취지 좋아. 그렇지만 문제는 현실 이지. 이 대표가 제작비 400억짜리 판타지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 한다 고 해서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

“가능성이 희박하죠.”

“잘 아네.”

“그래서 고민인 겁니다.”

한국 영화 산업의 일원으로서 미안 한 마음이 크기 때문일까.

김태훈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무슨 방법이 없나 찾아보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

“제가 제작하고 싶은 작품의 제목 은 ‘신과 같이’입니다. 웹툰 원작이 고,현재 웹툰이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죠.”

“인기 있어?”

“판권 구매 의사를 밝힌 게 제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누가 판권을 사려고 했었는 데?”

“윤길수 대표 아시죠?”

“풀하우스 미디어의 윤길수 대표?” “네.”

“그 깐깐한 양반이 판권을 구매해 서 영화로 제작하려고 했으면 확실 히 재미는 있나 보네.”

“윤길수 대표만이 아니었습니다. 제작사인 필그램 엔터테인먼트와 투 자 배급사인 로터스 엔터테인먼트도 판권 구입 의사를 밝혔다고 하더군 요.”

이규한이 설명을 더하자 김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흥행 가능성은 높다는 게 입증된 셈이네. 문제는 제작비로군. 대체 어 떤 스토리의 작품이기에 한 편 제작 하는데 제작비가 400억이나 되는 거야?”

“한 편 제작하는 데 400억이 드는 게 아닙니다.”

“응?”

“‘신과 같이’의 원작자인 최효민 작가는 작품을 총 3부작으로 구성했 습니다. 그리고 영화로 제작할 때도 3부작으로 제작하길 원하고 있습니 다.”

이규한이 상황을 설명하자 김태훈 이 두 눈을 빛냈다.

“그럼 편당 제작비는 100억 조금 넘는 수준이네?”

“맞습니다.”

“그 정도면 해 볼만 한데.”

김태훈이 의욕을 드러낸 순간 이규 한이 쓴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뗐 다.

“최효민 작가가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습니다.” “까다로운 조건? 뭔데?”

“세 편의 영화를 동시에 제작하는 겁니다.” “동시에 제작해야 한다고? 왜?”

“그래야 1편만 개봉하고 후속 편이 개봉하지 못하는 경우를 피할 수 있 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똑똑한 친구네.”

최효민 작가를 칭찬하던 김태훈이 이내 정색했다.

“어렵겠네.”

“방법이 없을까요?”

“분명히 어렵지만 방법이 아주 없 는 건 아냐. 퍼뜩 떠오르는 건 두

가지야.”

“어떤 방법입니까?”

“첫 번째 방법은 최효민 작가를 설 득하는 거지. 나 이규한이다. 대한민 국 최고의 영화제작자이자 흥행 작 품 제조기라고 불리는 이규한. 내가 제작해서 흥행하지 못한 작품은 없 다. 그러니 날 믿어라. 무조건 1편 제작해서 흥행 성공시키고 후속 편 들도 제작하고 개봉할 테니,날 믿 고 1편만 먼저 제작하자. 이렇게 말 이야.”

김태훈이 제시한 첫 번째 방법.

현재로서 가장 제작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었다.

최효민 작가를 설득할 수만 있다 면?

‘신과 같이’ 제작은 일사천리로 진 행될 가능성이 높았다.

‘신과 같이’라는 작품이 제작비 100억이 넘는 대작이란 것은 큰 부 담이 되지 않았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는 그동안 제 작했던 영화들을 꾸준히 성공시켰 고,그 영화들 중에는 제작비 100억 이 넘어가는 대작도 여럿 있었다.

그런 성과가 있었으니 블루문 엔터 테인먼트에서 제작한다고 하면 투자 유치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최효민 작가였다.

‘설득이 가능할까?’

잠시 후 이규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만 효민 형의 마음을 얻는 건 더 어려울 겁니다. 고집이 장난 아니거든요.”

박상구 작가의 말대로였다.

직접 만났던 최효민 작가는 고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설득이 힘들 거야.’

해서 이규한이 이렇게 판단한 순 간, 김태훈이 입을 뗐다.

“두 번째 방법은 ‘부산행 열차’를 대박 내는 거야.”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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