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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207화 (207/272)

207화

철면피 (2)

“전투 의욕이 막 치솟네요.”

박태혁이 꺼낸 부탁을 들은 김미주 가 의욕을 불태웠다.

실제로 그녀의 젓가락질 속도가 더 욱 올라갔다.

그 외 다른 직원들은 박태혁에게 경멸 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태혁은 여전히 당당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내가 기회를 주고 싶어서 그래.”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트린 것이었지만, 박태혁은 그 제안에 긍 정적인 반응을 드러낸 것이라고 오 해했다.

그래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박태혁에 게 이규한이 물었다.

“방금 기회라고 했습니까?”

“그래. 좋은 기회야.”

“왜 좋은 기회란 겁니까?”

“좋은 작품에 다시 합류할 수 있으 니까.” 여전히 뻔뻔하기 짝이 없는 박태혁 을 노려보며 이규한이 입을 뗐다.

“제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뭘 잘못 알고 있었단 거야?”

“사람은 쉽게 변하는 동물이 아니 다. 지금까지는 그 속담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틀렸네요.”

‘……?"

“그사이에 더 최악으로 변하셨네

요.”

박태혁이 슬쩍 미간을 찌푸린 순 간, 이규한이 덧붙였다.

“제가 머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김미주의 외침이 탁자 위에 흐르던 침묵을 깼다.

“야,좀 작작 먹어.”

고기값이 신경 쓰인 탓에 박태혁이 언성을 높였다.

“아직 본게임은 시작도 안 했거든 요.”

김미주에게서 돌아온 대답을 들은 박태혁의 표정이 다급하게 변했다.

“진짜 안 할 거야?”

서둘러 본론으로 돌아온 박태혁에 게 이규한이 물었다.

“죽 쒀서 개 줄 판국이죠?”

“응?”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를 간신히 쳐 냈더니, 다른 공동 제작사가 끼어들 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규한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박 태혁이 두 눈을 치켜떴다.

그런 그가 소주를 원샷한 후 이규 한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림이 그려지니까요.” “무슨 그림?”

“8 대 2, 아니 9 대 1일 수도 있 겠네요.”

"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에 새로이 공동 제작으로 참여하려는 제작사와 램프 엔터테인먼트의 수익 배분 비 율,그 정도이지 않습니까?”

이규한이 덧붙인 질문을 들은 박태 혁이 움찔했다.

그런 그는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 었다.

“혹시 스토킹이라도 하는 거야?”

“스토킹… 이요?”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작품 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 때문에 미련이 남아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뜻이 야.”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반박했 다.

“단단히 착각하고 계시네요.”

“무슨 착각?”

“제가 스토킹을 할 정도로 박 대표 님은 매력적이거나 대단한 분이 아 닙니다. 그리고 제가 그 정도로 한 가하지도 않고요.”

“그럼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이규한이 대답하자 박태혁의 표정 이 굳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것을 예측 했다는 뜻이야?”

“그렇습니다.”

“백기원 팀장이 공동 제작 제안을 할 것도,수익 배분 비율을 9 대 1 로 하라고 지시할 것까지도 예측했 다고?”

“네.”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지? 아니, 그걸 알면서도 왜 날 안 말렸어?”

서운한 기색을 드러내는 박태혁에 “말렸습니다. 그것도 여러 번.”

“…말렸다고?”

“그런데 제 말을 안 들으셨죠. 아 니, 아마 당시에는 제 말이 안 들렸 을 겁니다. 그래서 절 배신하셨죠. 그게 패망으로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박건이 말을 마친 순간 박태혁이 항변했다.

“에이,배신이란 표현을 쓰는 건 아니지.”

“그럼 어떻게 표현할까요?”

“서로 의견이 갈렸다 정도로 표현

하는 게 적당하지 않을까?”

박태혁이 대답한 순간 김미주가 참 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게 배신이거든요.”

“배신 아니라니까. 넌 고기나 계속 먹지?”

“그렇게 걱정해 주시 않으셔도 최 선을 다해서 열심히 먹고 있거든요. 이모,여기 등심 오 인분 추가요.”

김미주가 다시 고기를 추가하자 박 태혁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렇지 만 김미주는 그 시선을 피하지도 않 았고 전혀 주눅 들지도 않았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김미주를

“램프 엔터테인먼트에는 제작 역량 이 부족하다,이게 빅박스 백기원 팀장이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공동 제작을 주장한 명분이었을 겁 니다. 그리고 제작 역량이 없다는 건 계속 램프 엔터테인먼트의 약점 이 되었을 겁니다. 백기원 팀장이 9 대 1이란 말도 안 되는 수익 배분 비율을 주장한 것도 램프 엔터테인 먼트의 약점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 일 겁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맞아.”

박태혁이 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박태혁의 표정에서 그간의 마 음고생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가 안쓰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기회는 차고 넘칠 정도로 주 었기 때문이었다.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 비 율이 8 대 2, 그런데 공동 제작사가 수익의 9를 가져가는 조건이라면,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가 흥행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램프 엔터테인 먼트는 수익이 거의 없는 만큼 오히 려 영화가 흥행하면 배가 아픈 상황 인 거죠. 속된 말로 죽 쒀서 개 주 게 되는 상황과 마찬가지가 되고 나 니까 다시 제가 생각났을 겁니다. 저와 공동 제작을 하면 램프 엔터테 인먼트에게 돌아갈 수익 배분 비율 이 훨씬 더 높으니까요. 또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을 하면 제작 역량이 부족하다는 약점도 없 앨 수 있으니까요. 제 생각이 맞습 니까?”

“그래. 맞아.”

이규한의 말이 모두 맞다고 솔직하 게 인정한 박태혁이 덧붙였다.

“이 대표도 ‘은밀하면서도 위대하 게’라는 작품의 흥행을 확신했었잖 아? 그러니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입 장에서도 손해 볼 건 없잖아?” “이미 버스 떠났습니다.”

“뭐?”

“그러게 있을 때 잘하셨어야죠. 후 회되시겠네요.”

이규한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덧붙였다.

“그때 혼자 잘 먹고살겠다고 배신 하지 않았다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와 공동 제작을 하는 상황이니 제작 역량이 없다는 약점은 잡히지 않았 을 테니까요. 아니다. 그냥 하 피디 님과 미주 씨만 아직까지 함께하고 있었다면 램프 엔터테인먼트가 제작 역량이 없다는 약점은 잡히지 않았 을 겁니다.” 이규한의 말이 모두 팩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박태혁이 소주잔을 들어 단숨 에 비웠다.

“내가… 이 박태혁이가 잘못했다. 사과할게. 그러니까 다시 한번만 기 회를 주라.”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두 번도 배 신할 수 있죠.”

“이 대표.”

“그리고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 은 법이죠.”

이규한이 그 말을 끝으로 반쯤 남

은 소주잔을 비운 후 일어났다.

“얼추 다 먹은 것 같은데 그만 일 어납시다.”

그 말을 들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그 모습을 바 라보던 박태혁 대표가 서둘러 손을 뻗었다.

꽈악.

그런 그의 손이 이규한의 바짓가랑 이를 붙잡았다.

“이 대표,진짜 이럴 거야?”

“제가 뭘요?”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줘.”

“저도 그러고 싶지만… 서로 생각 이 다르네요.”

?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가 배신을 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서로 생각이 다른 겁니다.”

아까 본인이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박태혁이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규한이 덧붙였다.

“오늘 잘 먹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이규한이 출근하자 김미주가 평소 보다 반갑게 인사했다.

“나오셨어요?”

“미주 씨,오늘 유난히 기분이 좋 아 보이네?”

“어제 인생 소고기를 먹었거든요.”

“인생 소고기?”

“박태혁 대표한테 얻어먹으니까 너 무 맛있더라고요.”

때,김미주가 물었다.

“대표님은 어떠셨어요?”

“난 몰라. 체할 것 같아서 한 점도 안 먹었거든.”

“술은 드셨잖아요.”

“술?”

“제 말처럼 배신자가 사 주는 술은 더 달콤하지 않던가요?”

“평소보다 좀 더 달콤하긴 하더 라.”

“겨우 조금요?”

“인생 소주였어.”

이규한이 장단을 맞춰 주자 김미주 가 그제야 만족한 기색으로 두툼한 서류철을 건넸다.

“사무실 입주 신청한 제작사들 리 스트예요.”

김미주가 내민 서류철을 받아 든 이규한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 다.

“이렇게 많아?”

“그만큼 요새 영화제작사들 형편이 어렵다는 뜻이죠. 그리고 놓치기 아 까운 기회인 건 사실이잖아요.”

“수고했어. 십 분 뒤에 회의하자.”

이규한이 십 분 뒤에 회의를 할 거라고 예고한 후 커피 전문점 블루 문으로 내려갔다.

“형님,오셨습니까?”

진짜 가족이 된 최호인이 이규한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매제가 왜 여기 있어?”

“아르바이트 중입니다.”

“아르바이트?”

“이게 다 형님 때문입니다.”

최호인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형님 때문에 규리가 영화인의 삶 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시나리오와 연출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영화감독이 백수나 다름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더군요. 그래서 규리가 집에서 놀지 말고 가게 나와

서 아르바이트 하라고 해서요.”

최호인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목 소리를 낮춘 채 충고했다.

“조심해. 이 가게 사장이 악덕 사 업주거든.”

“악덕 사업주요?”

“아르바이트 전임자로서 하는 충고 야. 내 덕분에 매출이 엄청 올랐는 데도 최저임금도 안 주려고 하더라 고.”

이규한이 악덕 사업주의 행태에 대 해 최호인에게 알려 줄 때였다.

“다 들리거든요. 욕을 하려면 좀 작게 하든가.”

이규리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았 다.

“내가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니잖 아?”

“불만이 있으면 뒤에서 몰래 욕하 지 말고 노동청에 고발하세요.”

당당하게 대꾸하는 이규리를 확인 한 이규한이 작게 말했다.

“악덕 사업주 맞지?”

“맞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도 저러지?”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결혼하고 난 후 완전히 딴사람이 됐습니다.”

“딴사람?”

이규한이 묻자 최호인이 움찔했다.

“혹시 기분 상하셨습니까?

“전혀 아닌데. 내가 물은 이유는 표현이 너무 순화된 것 같아서야.”

“네?”

“보통 동물로 비유하더라고.”

이규한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덧붙이자 최호인도 웃었다.

“양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호랑이 로 변했습니다.”

“무서운 호랑이와 같이 산다는 거 지?”

“아니요.”

“아니라고?”

“그래도 아직은 예쁜 호랑이입니 다.”

“아직 멀었네.”

“뭐가 멀었다는 겁니까?”

“아직 콩깍지가 덜 벗겨졌단 뜻이 야.”

결혼 선배(?)로서 충고를 마친 이 규한이 카운터 앞으로 다가가 커피 다섯 잔을 주문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오빠가 직접 커피를 사러 내려왔어? 평소에는 미 주 씨가 커피 사러 왔잖아?”

“우리 회사 직원들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거든.”

“갑자기 왜?”

“그럴 일이 좀 있었어.”

가볍게 대꾸한 이규한이 테이크아 웃 한 커피를 들고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로 돌아갔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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