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206화 (206/272)

206화

철면피 ⑴ ‘줄었다.’

바뀐 숫자를 확인한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예상대로 김대만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 후 예상 관객 수가 줄어든 것 에 만족한 것이다.

잠시 후,이규한이 쓴웃음을 머금 었다.

“예상 관객 수가 줄어든 것에 기뻐 할 날이 찾아올 줄이야.”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돌 아온 이규한이 김미주의 앞으로 다 가갔다.

“어떻게 돼 가?”

“뭘 물으시는 거예요?”

“사무실 신청자 수가 얼마나 되는 지 궁금해서 말이지.”

한국영화 제작자협회 김흥집 대표 는 이규한의 부탁대로 협회 홈페이 지에 사무실 임대 공지를 올려 주었 다.

그리고 어느덧 입주 신청 마감 기 한이 다가와 있었다.

그사이에 사무실 입주 신청을 한 제작사가 얼마나 되는지 이규한이 물었을 때,김미주가 시큰둥한 표정 으로 대답했다.

“엄청 많아요.”

그녀의 시큰둥한 반응을 확인한 이 규한이 물었다.

“미주 씨,표정이 왜 그래?”

“별로 안 내켜서요.”

“사무실을 임대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네,

“이유가 뭐야?”

“괜한 짓을 하는 것 같아서요.”

“왜 괜한 짓이라고 생각해?”

“좋은 일하고도 욕먹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김미주가 꺼낸 대답을 들은 이규한 이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왜 욕을 먹는다는 거야?”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 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들어 본 적 있으세요?”

“물론 알고 있어.” 다급한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어 도 와줬지만 오히려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뜻의 속담이었다.

그때 김미주가 덧붙였다.

“박태혁 대표 케이스가 될 확률이 높아요.”

“박태혁 대표 케이스라니?”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 어렵다. 그러니까 이 대표가 이번 한 번만 날 좀 도와줘라. 박태혁 대표는 구 조 요청을 했었고,대표님은 그런 그를 돕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죠. 그 결과가 어떻게 됐어요?”

“배신을 당했지.” 이규한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하 자 김미주가 다시 물었다.

“박태혁 대표는 당시에 어떤 생각 을 했을까요?”

“내게 미안했겠지.”

이규한이 꺼낸 대답을 들은 김미주 가 틀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박태혁 대표는 대표님께 미안하다 고 생각 안 할걸요. 오히려 대표님 을 원망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날 원망했다고? 왜?”

이규한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이유를 물었다.

“대표님 때문에 ‘은밀하면서도 위 대하게’의 투자 계약이 미뤄졌다고 판단하고 있을 테니까요.”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에 투자하 고 싶다는 의사를 먼저 밝힌 것은 빅박스 측이였다.

만약 당시 이규한이 그 투자 제안 을 바로 받아들였다면,투자 계약이 더 빨리 체결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바로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 좋은 조건으로 투자 계약을 체 결하기 위해서 다른 투자사와 접촉 하기 위해서였다.

“어디까지나 더 좋은 조건으로 투 자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시간을 끌었던 거야. 그리고 만약 내가 박 태혁 대표가 보냈던 구조 요청을 외 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투자 계약을 체결할 기회가 생겼던 것이 고.”

이규한이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 다.

그렇지만 김미주는 한 번 더 고개 를 흔들었다.

“다 잊었을 거예요.”

“뭘 다 잊었다는 거야?”

“대표님이 호의를 베풀었던 거요.”

‘……?"

“싹 잊어버리고 본인이 잘나서 투 자 계약을 맺을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투자 계약을 맺는데 대표님이 시간을 끌 어서 지체됐다,이것만 기억하고 있 을 걸요.”

“에이,설마 그렇게까지야 생각하 겠어?”

이규한이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 을 때였다.

“내 말이 맞을걸요.”

김미주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덧붙 였다.

“제 말을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 세요.” “어떻게?”

“곧 찾아올 테니까요.”

“누가 찾아올 거란 말이야?”

이규한이 두 눈을 크게 뜬 채 묻 자 김미주가 대답했다.

“배은망덕한 택배 기사.” 딩동. 딩동.

벨이 울린 순간,이규한이 대표실 을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확인한 김미주가 웃으며 물었다.

“택배가 도착하길 어지간히 기다리 셨나 보네요.”

“응.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힐 지경이었을 정도로.”

이규한과 김미주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던 다른 직원들도 흥미를 드 러 냈다.

“무슨 택배인데 그래?”

“엄청 비싼 거예요? 아님 성인 용 품?”

“좋은 거면 우리도 좀 나눠 줘.”

황진호와 백진엽 그리고 하태열이 앞다투어 꺼낸 말을 들은 이규한이

픽 웃으며 입을 뗐다.

“그럼 같이 보시죠. 마음에 들면 나눠 가져도 되고요.”

그 말을 한 후,이규한이 직접 사 무실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죠.”

문앞에 서 있는 박태혁을 발견한 이규한이 애써 흥분을 누르며 입을 뗐다.

“들어가도… 될까?”

박태혁이 사무실 안으로 선뜻 들어 오지 못하고 물었다.

“내키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시든가

요.”

이규한이 냉랭한 말과 함께 문을 닫으려 하자 박태혁이 서둘러 손을 뻗었다.

“아냐,들어갈게.”

일단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던 박태 혁이 이내 홈칫했다.

차갑기 그지없는 시선들을 마주했 기 때문이다.

“이게 아까 이 대표가 말했던 택배

야?”

“성인 용품보다 더 낯 뜨거운 상품 이네.”

“아까 한 말 취소야.”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있는 박태혁 을 발견하고 택배의 정체를 알게 된 직원들이 한마디씩을 꺼냈다.

“오랜만이네. 다들 잘 지냈지?”

박태혁이 멋쩍게 웃으며 인사한 순 간,김미주가 대표로 입을 뗐다.

“연구 대상이네요.”

“연구 대상?”

“대체 얼마나 낯짝이 두꺼우면 여 길 다시 찾아올 생각을 할 수 있

죠?”

“응?”

“미안하거나 양심에 찔리지도 않으 세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

“하아.”

“내가 부끄러워지려고 그러네.”

“말 섞기도 싫다.”

직원들이 차례로 말을 꺼낸 순간 김미주가 이규한에게 말했다.

“어때요? 내 말이 맞았죠?”

“그런 것 같네.”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을 때,박태혁이 제안했다.

“퇴근 시간 다 됐지? 나가자. 내가 술 한잔 살게.”

박태혁은 배신자.

그런 그와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 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해서 이규한이 단칼에 잘라서 제안 을 거절하려 했지만,김미주가 나서 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진짜 술 사실 거죠?”

“그렇다니까.”

“그럼 마셔야죠.”

‘왜 그래?’

이규한이 의아한 시선으로 이유를 물었다.

“배신자가 사는 술은 더 달콤할 것 같거든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인근 고깃집.

화장실에서 몸빼 바지로 갈아입고 돌아오는 김미주를 발견한 이규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박태혁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옷이 그게 뭐야?”

영문을 모르는 박태혁이 김미주의 전투복(?)을 지적했지만,그녀는 대 꾸하는 대신 백진엽에게 질문했다.

“오늘 컨디션 어때요?”

“최상입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위대함을 보여 줄 준비가 됐다는 뜻이죠?”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죠.”

“하 피디님은요?”

“나?”

“배신자의 등에 복수의 칼날을 꽂 을 준비가 됐나요?”

“무슨 뜻이야?” 하태열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을 지을 때,김미주가 비장한 표정 으로 말했다.

“신고식이라고 생각하세요.”

“신고식?”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직원이 갖춰 야 할 필수 조건 중 하나가 위대함 이거든요. 오늘 하 피디님의 위대함 을 검증해 볼 생각이에요.”

“나는……

“무조건 많이 먹으면 돼요.”

하태열에게 조언한 김미주가 박태 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등심 10인분부터 시작하시

“등심 10인분?”

메뉴판을 살피고 있던 박태혁이 당 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야,사람은 여섯인데 왜 10인분이 나 시켜?”

“자꾸 주문하기 위해서 부르면 종 업원 분들이 귀찮아하실 테니까요.”

“그럼 6인분 시켜서 딱 6인분만 먹으면 되잖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 세요?”

“안 될 건 뭐야? 공깃밥이랑 냉면 은 폼으로 메뉴판에 있는 줄 알아?”

“겨우 6인분 먹을 거였으면 전투복 으로 갈아입지도 않았어요.”

“전투복?”

“그런 게 있어요.”

김미주와 박태혁 사이에 오가는 대 화를 듣던 이규한이 조용히 소주잔 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이 사 실이네.’

속으로 생각하며 소주잔을 비운 이 규한이 잔을 막 내려놓을 때였다.

“이 대표,왜 혼자 마셔?”

박태혁이 물었다.

“혼자 마시는 게 편해서요.” “박 대표님 덕분에 깨달았습니다. 뭐든 혼자 하는 게 편하고 좋다는 것을요.”

이규한이 슬쩍 돌려 비난했지만, 박태혁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 기색 이었다.

“그러지 말고 내 잔 한잔 받아.”

“됐습니다. 각자 따라서 마시죠.”

이규한이 소주병을 들어 빈 잔을 채우고 내려놓았다.

“그럼 그러든가.”

소주병을 들어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채운 후 박태혁이 불쑥 물었

다.

“봤지?”

“갑자기 뭘 봤냐는 겁니까?”

“내가 결혼식에 보낸 축하 화환 말 이야.”

비로소 말뜻을 이해한 이규한이 쓰 게 웃으며 입을 뗐다.

“박 대표님은 참 한결 같으시네 요.”

“한결 같다? 칭찬이지?”

“아니요.”

“칭찬이 아니면 욕이야?”

“보통 사람은 내가 결혼식에 보낸 화환을 봤느냐고 묻기 전에 축하한 다고 말하는 게 우선입니다.”

“어? 듣고 보니 내가 실수했네. 축 하해.”

박태혁이 뒤늦게 축하 인사를 건넨 순간, 이규한이 말했다.

“화환 봤습니다.”

“그거 제일 비싼 화환이야. 내가 큰 맘 먹고 제일 비싼 화환으로 보 냈어. 고맙지?”

어김없이 생색을 내고 있는 박태혁 을 빤히 바라보며 이규한이 대답했 다.

“박 대표님이 보낸 축하 화환을 확 인한 순간,고맙다는 생각보다 이상

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비싼 화환을 보낼 사람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대표. 날 그동안 잘못……

“잘못 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박 대표님을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인 데요. 그리고 오늘도 이상한 건 마 찬가지 입니다.”

“뭐가 또 이상한데?”

“비싼 술을 살 분이 아니니까요.”

“그건……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 니다. 제게 부탁할 게 있기 때문에

이러는 것,맞으시죠?”

정곡을 찔려 버렸기 때문일까.

박태혁이 더 변명하는 대신 멋쩍게 웃었다.

“이 대표는 역시 못 속이겠네.”

그런 그가 이실직고하자마자 김미 주가 끼어들었다.

“철면피.”

“방금 뭐라 그랬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던 양심까지 그사이 전부 다 팔아 치웠네. 어떻 게 대표님한테 부탁할 생각으로 여 길 찾아올……

김미주가 언성을 높일 때,이규한 이 만류했다.

“미주 씨,일단 들어나 보자고.”

그 이야기를 들은 김미주가 새삼스 러운 시선을 던졌다.

“왜 그렇게 봐?”

“빛이 나요.”

“갑자기 무슨 빛이 난다는 거야?”

“책에 등장하는 성인군자한테서만 나는 후광이요.”

그 대답을 듣고 픽 웃은 이규한이 박태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게 하려는 부탁이 뭡니까?” 박태혁이 대답했다.

“다시 공동 제작자로 참여해 줬으 면 좋겠어.”

1억 관객 제작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