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화
알바 하는 중입니다 (3) “안녕하세요. 제가 커피 직접 만들 어 드립니다.”
이규한을 대신해서 남지유가 대답 했다.
“어머,진짜 남지유야.”
“언니,너무 예뻐요.”
“헐,완전 대박.”
유니폼을 입은 남지유를 발견한 손
님들이 앞다투어 감탄사를 내뱉었 다.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라 시작 이었다.
딸랑. 딸랑.
SNS를 통해서 소문을 접한 손님들 이 계속 몰려들었다.
덕분에 바빠진 이규한도 주문을 받 고 계산하느라 딴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폐점 시간이 가까워 져서야 비로소 손님들의 발길이 끊 겼다.
‘매출액이… 많네.’
남지유가 커피 전문점 블루문에서 일일 알바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손 님들이 쉬지 않고 찾아왔었다.
덕분에 매출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 이다.
‘이 소식을 들으면 규리가 엄청 좋 아하겠네.’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커피 한 잔이 앞으로 내밀어졌 다.
“이제 대충 끝나가는 것 같으니 커 피 한 잔 해요.”
“고마워요.”
남지유가 내린 커피를 들고 이규한 이 탁자에 앉았다.
“힘들었죠?”
“아뇨. 오랜만에 커피 내리니까 재
밌었어요.”
남지유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진짜 찾아온 이유가 뭐예
요?”
그런 그녀에게 이규한이 물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남지유가 대답했다.
“왜 부탁 안 하세요?”
“무슨 부탁이요?”
“축가요.”
“ 구"
“대표님 여동생 분이 곧 결혼하시 잖아요. 그런데 왜 제게 축가를 부 탁 안 하시는지 궁금했어요.” “혹시 이미 다른 가수가 축가를 부 르기로 했나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왜 부탁 안 하신 건데요?”
“그냥이요.”
이규한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유 씨에게 축가를 부탁해 볼 까?’
이런 생각을 안 해 봤던 것은 아 니었다.
그렇지만 결국 이규한은 남지유에 게 축가를 부탁하지 않기로 결정했 다.
그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지유가 직접 찾 아와서 대체 왜 자신에게 축가를 부 탁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따지고 있었다.
‘이게 맞는 건가?’
특이한 케이스라는 생각을 이규한 이 속으로 하고 있을 때였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남지유가 말했다.
“뭐가 처음이란 겁니까?”
“보통은 제게 축가를 부탁하지 못 해서 안달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먼저 찾아와서 축가를 부르고 싶다고 요구하는 상황이잖아요. 이 런 경험은 처음이란 뜻입니다.”
듣고 보니 확실히 일반적인 케이스 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미안 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무척 특이한 분이세요.”
“제가요?”
“네.”
“어떤 면이 특이한가요?”
이규한이 묻자 남지유가 대답했다.
“승부욕을 자극하는 면이 있어요.”
“제가 지유 씨의 승부욕을 자극한 다고요?”
“제가 먼저 술 한잔 사 달라고 부 탁했을 때도 선약이 있다는 핑계로 거절하셨죠. 그리고 이번에도 제게 축가를 부탁하시지 않았고요. 그런 면들이 묘하게 제 승부욕을 자극하 고 있어요.”
“그건……
이규한이 변명을 꺼내려 했다. 그 렇지만 남지유가 한발 더 빨랐다.
“그래서 더 이 대표님한테 관심이 가요.”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
그래서 이규한이 흠칫했을 때,남 지유가 덧붙였다.
“주제넘게 들릴 수도 있지만,제가
충고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떤 충고인가요?”
“대표님과 가까운 사람들을 더 챙 기세요.”
남지유의 충고를 들은 순간 이규한 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가까운 사람들을 못 챙긴 다?’
그녀의 충고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 다.
아버지와 여동생인 이규리와의 불 화 그리고 아내와의 이혼까지.
이규한의 지난 생은 불우했다. 그래서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이번에는 달라지기 위해서 노 력 했다.
덕분에 많은 부분이 변했고,이걸 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남지유의 충고 덕분에 아직 한참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람만 부렸지.’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코앞으로 여동생인 이규리의 결혼 이 다가와 있었다. 그렇지만 이규한 은 집으로 찾아가지도 않았다.
대신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 비율을 다시 예전처럼 7 대 3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에 대해
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엄밀히 말하면 일면식도 없는 다른 선후배 영화 제작자들을 위해서 대 신 고민하고 또 싸웠던 셈이었다.
‘여전히 한심했네.’
이규한이 자책하며 고개를 들어 남 지유를 바라보았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부탁인가요?”
이규한이 입을 뗐다.
“제 여동생의 결혼식 축가를 불러 주세요.”
이규한이 곱창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태훈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 대표,여기야.”
“좀 늦었습니다.”
이규한이 테이블에 앉으며 사과했 다.
“야,왜 이렇게 늦었어?”
김태훈과 대작하고 있던 장준경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찍 마감하려고 했는데 손님이 갑자기 몰렸어.”
“왜 마감 전에 갑자기 손님이 몰 려?”
“커피 잘 내리는 알바생이 늦게 합 류했거든.”
“알바생? 누구?”
“지유 씨.”
이규한이 순순히 알려주자 장준경 의 눈이 커졌다.
“지유 씨면… 남지유?”
“그래.”
“지유 씨가 왔었어? 그런데 왜 난 안 불렀어?”
“널 왜 불러?”
“내가 지유 씨 팬이란 것 알잖아?”
“몰랐어.”
“아,치사한 자식.”
장준경이 안타까움을 드러낼 때 김 태훈이 물었다.
“이 대표,나한테 할 말이 뭐야?”
원래라면 김태훈은 여기까지 찾아 온 김에 ‘베테랑들’의 공동 제작사 인 빅스빅 픽처스에 들러서 저녁만 먹고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꼭 할 말이 있 으니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술을 한 잔하자고 부탁했던 것이다.
“슬슬 ‘베테랑들’ 개봉 시기에 대
해서 논의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현재 ‘베테랑들’은 촬영을 거의 마 친 상태였다.
편집을 비롯한 후반 작업을 거쳐서 개봉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혹시 생각해 둔 것이 있으세요?”
이규한이 묻자 김태훈이 고개를 끄 덕였다.
“내년 겨울 성수기 시즌을 생각하 고 있어.”
그 대답을 들은 장준경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그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은 이규 한이 물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일단 극장 성수기에 개봉하는 것 은 좋은데,내년 겨울에 개봉이면 너무 늦다는 생각이 들어서.”
김태훈의 눈치를 살피며 장준경이 대답했다.
“내년 여름 개봉도 생각해 봤는데, 걸리는 게 하나 있어.”
그 대답을 들은 김태훈이 말했다.
“뭐가 마음에 걸리시는 겁니까?”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 내년 여름 에 대작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 문이 파다해.”
“그래요?” 장준경의 낯빛이 어두워졌을 때 이 규한이 대신 나섰다.
“혹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준 비하고 있는 대작의 제목도 알고 계 십니까?”
“제목까지는 몰라. 이번에는 꽁꽁 숨기고 있는 느낌이야.”
“대충의 내용도 모릅니까?”
“한국형 히어로물이라는 장르만 알 아.”
‘한국형 히어로물?’
이규한이 두 눈을 빛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 중 인 대작이 어떤 작품인지 짐작이 갔
기 때문이었다.
‘어메이징 히어로즈!’
잠시 후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했 다.
‘왜 내년 여름 성수기 시즌에 개봉 한다고 소문이 났을까?’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던 이규한의 입가로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왜 그렇게 단정해? 개봉이 더 빨 라질 수도 있어. 내년 여름 성수기 시즌도 있잖아.” 김기현과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개봉 시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 던 도중 이규한이 꺼냈던 말이었다.
‘날 철석같이 믿는다.’
김기현은 자신과 나누었던 대화를 아버지인 김대환 대표에게 전했을 것이다. 그리고 씨제스 엔터테인먼 트에서는 그 후 내년 여름 성수기 시즌에 대작을 개봉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슬쩍 흘렸다.
다른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을 견제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이런 정보를 홀렸다는 것이 이규한 을 믿고 있다는 증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이규한
이 입을 뗐다.
“내년 겨울 성수기 시즌은 곤란함 니다.”
“왜 곤란하다는 거야?”
“빅박스에서 준비하고 있는 경쟁작 이 만만치 않거든요.”
“어떤 작품인데?”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요.”
이규한이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기 때문에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원작이 가진 힘을 알고 있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먹을 것이 있다.’라는 속담처럼 웹툰 원작이 워낙 재밌기 때문에 좋은 흥행 성적
을 거둘 가능성이 높았다.
김태훈도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 라는 작품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만만치 않네.”
김태훈의 낯빛이 어두워졌을 때, 이규한이 제안했다.
“차라리 내년 여름 성수기 시즌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년 여름? 아까 내가 말했잖아. 내년 여름 성수기 시즌에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준비한 대작이 개 봉할 예정이라고.”
“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헛소문입니다.”
이규한이 힘주어 대답했다.
“헛소문이라고?”
“네.”
“그걸 이 대표가 어떻게 알아?”
“제가 그 작품에 참여하고 있거든 요.”
김태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을 지었다.
반면 장준경은 두 눈을 빛내며 대 화에 끼어들었다.
“혹시 지난번에 네가 새로 제작한 다는 작품을 말하는 거야?”
“맞아. ‘어메이징 히어로즈’라는 작 품이야.”
“‘어메이징 히어로즈’? 딱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느낌이네.”
김태훈이 평가를 꺼냈을 때 이규한 이 물었다.
“혹시 ‘어메이징 히어로즈’라는 작 품 제목을 듣고 떠오르는 작품이 없 으세요?”
“하나 있어. ‘슈퍼파워스’,맞아?”
“맞습니다.”
“진짜 맞아?”
“한마디로 ‘슈퍼파워스’ 짝퉁입니
짝퉁이란 표현.
김대환 대표나 김기현이 들었다면 불쾌함을 드러냈으리라.
그렇지만 이규한은 짝퉁이란 표현 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장 적당한 수식어였기 때문이었 다.
“이 대표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무 섭네.”
잠시 후,김태훈이 눈살을 찌푸리 며 말했다.
“왜 무서운 겁니까?”
“흥행 공식을 완벽하게 답습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게 씨제스 엔터테 인먼트가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부끄럽지만 이게 현실이었기 때문 이었다.
“좀 다를 겁니다.”
“왜 다르다는 거야?”
“제가 제작에 참여했으니까요.”
이규한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 했음에도 김태훈과 장준경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섭다. 이 대표와 씨제 스 엔터테인먼트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 천만 영화 이상이 될 확률이 높으니까.”
김태훈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하 는 것을 들은 이규한이 고개를 흔들 었다.
“반대입니다. 시너지 효과는 나오 지 않을 겁니다.”
“왜지?”
“제가 칼을 갈고 있거든요.”
“무슨 뜻이야?”
“일단은 그렇게만 아시면 됩니다.”
이규한이 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 자 김태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쨌든 ‘베테랑들’이 내년 여름에 개봉하면 ‘어메이징 히어로즈’라는 작품과 맞붙는 것은 사실이잖아?”
“그럴 가능성이 높죠.”
“그럼 이 대표가 곤란한 것 아냐?” “왜요?”
“두 작품에 모두 참여했으니까.” 김태훈의 말대로였다.
‘베테랑들’과 ‘어메이징 히어로즈’. 이규한은 두 작품에 모두 공동 제 작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것 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김태훈은 지적한 것이었다.
“제가 곤란할 일은 없습니다.” “왜 곤란할 일이 없다는 거야?”
“‘어메이징 히어로즈’가 개봉할 때 쯤에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에서 배제될 확률이 높으니까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