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알바 하는 중입니다 (1)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 비율 을 8 대 2 혹은 9 대 1로 바꾸는 것.
단기적으로는 투자사가 더 많은 수 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장 기적으로 바라보면 투자사에게도 손 해였다.
영화 제작사와 제작자라는 한 축이 무너져 버리면 투자할 수 있는 좋은 영화의 편 수가 점점 줄어들 테니 까.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 다.
김태훈과 권지영 모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어떤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워요. 윗선에 보고하고 나서 논 의를 해 봐야 결론이 나올 것 같아 요.”
“이 대표,나도 마찬가지야. 지금 당장 대답하기는 어려워.”
권지영과 김태훈에게서 돌아온 반 응.
이규한이 이미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래서 이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 덕이며 입을 뗐다.
“오래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부 산행 열차’는 최대한 빨리 제작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결정에 시간 이 오래 걸리면 다른 투자사를 찾을 생각이거든요.”
단순히 두 사람을 압박하기 위해서 꺼낸 말이 아니었다.
이규한이 기억하고 있는 ‘부산행 열차’의 개봉 시기는 내년 여름.
그리고 기억 속 작품과 싱크로율을 높일수록 예상 관객 수가 근접한다 는 사실을 이규한은 경험을 통해 배
웠다.
기억 속 개봉 시기에 얼추 맞추기 위해서는 최대한 제작을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 이다.
잠시 후,이규한이 한마디를 덧붙 였다.
“제가 두 분께 드릴 수 있는 시간 은 일주일입니다.” 지글지글.
오래간만에 회식이 열렸다.
돼지갈비가 불판 위에서 익어 가고 있을 때 황진호가 웃으며 말했다.
“오래 살다 보니까 백 피디가 사는 술을 다 마셔 보네.”
“적당히 드세요.”
“왜? 아까워?”
“배 나와요.”
“내 나이에 이 정도면……
“재혼하시려면 뱃살 관리 하셔야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허리띠 풀 고 실컷 먹어야겠다.”
“ <? “재혼 안 할 거거든. 간신히 빠져 나온 무덤에 다시 제 발로 기어들어 갈 정도로 내가 학습 능력이 떨어지 는 편은 아니다.”
백진엽과 황진호가 농담을 주고받 을 때,하태열이 우려 섞인 표정으 로 입을 뗐다.
“이 대표, 너무 세게 나간 것 아닐 까?”
“왜요? 걱정되세요?”
“좀 걱정이 되네. 양쪽 다 연락이 안 올 수도 있으니까.”
하태열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덧붙 인 말을 들은 이규한이 대수롭지 않
게 대꾸했다.
“안 오면 마는 거죠.”
“응?”
“대한민국에 투자사가 로터스 엔터 테 인먼트와 NEXT 엔터테인먼트만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하태열의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해서 이규한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하태열은 여전히 웃지 않 았다.
“진짜 걱정 안 돼?”
“전혀요.”
“왜?”
“다른 투자사와 협상을 하면 되니 “하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 9”
“분명히 연락이 올 테니까요.”
이규한이 대답하자 하태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배짱은 참 대단하네.”
“배짱을 부리는 게 아닙니다.”
“그럼?”
“확신을 가진 겁니다. 그리고 이렇 게 확신을 가진 데는 이유가 있습니 다. 두 사람이 돈 냄새는 기가 막히 게 맡는 투자팀장들이거든요.”
“아마 지금쯤 두 사람 모두 머릿속 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을 겁니다. 투자를 하면 분명히 수익을 거둘 수는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수익 배분 비율이다. 7 대 3 이 아닌 6 대 4 혹은 5 대 5로 ‘부 산행 열차’의 수익 배분 비율을 정 하는 것이 다른 작품에 7 대 3 혹 은 8 대 2의 수익 배분 비율 조건 으로 투자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까에 대해서 요.”
이규한이 설명하자 하태열이 고개 를 끄덕였다.
“계산 끝에 ‘부산행 열차’에 투자 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천만 영화가 되면 ‘부산행 열차’ 에 투자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결 론을 내릴 테니까요.”
“천만 영화?”
하태열이 놀란 표정을 지은 순간, 김미주가 끼어들었다.
“왜 놀라세요?”
“천만 영화가 쉽게 나오는 게 아니 니까.”
하태열이 대답하자 김미주가 혀를 찼다.
“아직 멀었네요.”
“회사 적응이요. 이 정도에 놀라면 곤란하죠.”
? ……?"
“하 피디님 말씀대로라면 그 나오 기 어렵다는 천만 영화를 블루문 엔 테테인먼트는 밥 먹듯이 제작해 내 고 있거든요.”
비로소 말뜻을 이해한 하태열이 고 개를 끄덕일 때 김미주가 물었다.
“그런데 왜 일주일이나 시간을 줬 어요? 생각할 시간이 없도록 더 바 짝 쪼이는 편이 유리했을 것 같은 데.”
그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답했 다.
“만약 더 빨리 답이 돌아와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거든.”
“왜요?”
“일주일 동안 아르바이트 해야 하 거든.”
“아르바이트요?”
“커피 전문점 블루문의 카운터를 맡아야 해.”
“아,대표님 동생분 결혼식이죠.” 이규한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좀 갖고 지켜보자. 그 녀 석이 밥벌이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만약 그때까지 못 기다 린다면 나도 절대 허락 못 해.”
이규한이 이규리에게 내걸었던 결 혼 조건이었다. 그리고 최호인과 이 규리는 결혼 조건을 충족시켰다. 최호인이 영화감독으로 입봉했으니 까.
단순히 입봉만 한 게 아니었다.
최호인의 입봉작이었던 ‘나를 사랑 한 아저씨’의 최종 관객 수는 516만 1,728명.
제작비 규모가 무척 적었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은 물론이고 중박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수익을 거뒀다.
“결혼식 마치고 신혼여행 다녀올 동안 카운터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 어.”
이규한이 설명을 더하자 김미주가 말했다.
“커피 전문점 카운터를 맡기에는 너무 고급 인력이다. 시급은 얼마나 받기로 했어요?”
“최저임금대로 준다더라.”
“헐,너무하네. 차라리 다른 사람
시켜요. 아까도 말했지만 커피 전문 점 카운터 맡기에는 대표님이 너무 고급 인력이라니까요. 누가 좋을 까?”
주변을 둘러보던 김미주의 시선이 백진엽에게서 멈췄다.
“백 피디한테 맡기면 어때요? 사무 실에서 웹툰 보는 거나 카운터 보면 서 웹툰 보는 거나 별 차이 없잖아 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안 돼.”
“왜요?”
“가족 외에는 못 믿는대.”
을 열고,가족 외에는 아무도 못 믿 어서 카운터를 맡기지 못한다? 대표 님 동생분 잘 살겠네요.”
“그래도 미주 씨는 못 따라가지. 벌써 자가 보유자가 됐잖아.”
“그게 다 대표님 잘 선택한 덕분이
죠
월급과 인센티브를 차곡차곡 모으 고,주식 투자까지 성공한 김미주는 얼마 전 마침내 꿈꾸던 대로 자가 보유자가 됐다.
새로 산 집을 떠올리자 기분이 좋 은 걸까.
김미주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참,대표님은 결혼 선물로 뭘 해 주기로 했어요?”
“신혼여행 비용을 내가 부담하기로 했어.”
“또요?”
“더 해 줘야 해?”
김미주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 다.
“대표님 엄청 부자잖아요.” 커피 전문점 블루문.
“아메리카노 두 잔 그리고 당근 케 이크 하나. 전부 만 육천 원입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손님이 앞으로 내민 신용카드를 건 네받아 계산을 마친 이규한이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장사 잘되네.”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가게 내부는 손님이 꽉 들어차 있었다.
“이 정도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
이규한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평일 낮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가 게 내에 손님이 많은 것이,장사가 잘된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이 정도 로 가게가 자리를 잡도록 만들기 위 해서 이규리는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이규리는 커피 전문점 블루 문을 오픈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 도 영업을 쉰 적이 없었다.
신혼여행 일정도 3박 4일로 짧게 잡고,그사이에도 이규한에게 카운 터를 맡겨 영업을 쉬지 않을 생각을 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할까.
이 정도 생활력이면 설령 최호인이 감독으로서 앞으로 잘 풀리지 않더 라도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될 거란 생각이 들어서 안심한 것이다.
“달라졌다.” 잠시 후,이규한의 입가에 떠올라 있던 미소가 짙어졌다.
감정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얻은 채 과거로 돌아온 후 이규한의 인생은 변했다.
실패한 영화 제작자에서 성공한 영 화 제작자로 변신했으니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변했다.
의절하다시피 했던 하나뿐인 여동 생 이규리와의 관계는 회복되어 있 었다.
그 과정에서 물론 힘든 일도 있었 다.
매제가 될 최호인을 입봉시키기 위 해서 ‘나를 사랑한 아저씨’라는 작 품을 직접 제작해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이규한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수고라고 판단했다.
그 수고 덕분에 이규리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하나뿐인 여동생은 물론이고 가족 들과 연을 끊다시피 하며 살아가는 삶은 불행했다. 그래서 이규한은 이 전과 다른 지금에 무척 만족하고 있 었다.
그때 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찾아온 순간,이규한이 상 념에서 깨어났다.
“어서 오세요.”
주문을 받기 위해서 고개를 든 이 규한이 눈을 크게 떴다.
“어,선배님?”
김태훈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 리고 당황한 것은 김태훈도 마찬가 지였다.
“이 대표가 왜 여기 있어?”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이규한에게 김태훈이 물었다.
이규한이 픽 웃으며 대답했다. “알바 중입니다.” “영화 제작,그만두려는 건 아니 지?”
김태훈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 답했다.
“고민 중입니다.”
“응?”
“장사도 재밌네요.”
“그럼 안 돼.”
“이 대표가 떠나면 대한민국 영화 계의 손실이 너무 크니까.”
설령 빈말이라 해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빙그레 웃을 때, 김태훈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진짜 아르바이트 하는 거 야?”
“규리가 급한 일 때문에 가게를 비 우게 됐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제가 가게를 맡기로 했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굳이 이 대표가 아 니더라도……
“제가 아니면 안 된답니다. 가족 외에는 계산대를 믿고 맡길 수가 없 다고 하네요.”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한 후 김태훈 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배님은 여기 어쩐 일로 찾아왔습니까?”
“이 대표가 불렀잖아.”
“제가요?”
“결정을 내리면 찾아오라고 했잖 아.”
‘벌써 결론이 나왔다?’
이규한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 다.
이규한이 주었던 시간은 일주일. 그러나 고작 사홀 만에 김태훈이 결론을 내리고 다시 찾아온 것이다.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이규한이 살짝 긴장했을 때 김태훈 이 말했다.
“이 대표가 부럽네.”
“갑자기 왜 제가 부러우신 겁니 까?”
“믿어 주는 사람이 많아서.”
" ……?"
“이 대표 여동생도 이 대표를 믿기 때문에 계산대를 맡겼잖아. 나도 마 찬가지야.”
“이 대표를 믿기로 했다는 뜻이 야.”
“그 말씀은……?”
“직접 봐.”
김태훈이 서류 봉투를 앞으로 내밀 었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