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경매 입찰 (2) “결혼 안 해 본 건 마찬가지면서.”
권지영이 볼멘소리를 꺼냈지만,이 규한은 무시하고 덧붙였다.
“내가 권 팀장이랑 같이 작업하면 서 속인 적 있어?”
“그야… 없죠.”
“그래서 난 그동안 권 팀장과 꽤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 나 보네. 내가 착각한 거였어.”
“권 팀장,신뢰가 깨져 버린 부부 사이의 결론이 뭔지 알아? 이혼이 야. 그러니까 우리도 이혼하자.”
이규한이 이혼 이야기를 꺼내자 권 지영이 크게 당황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 대표님을 의심한 게 아니라 그 냥 물어본 거였어요. ‘부산행 열차’ 의 제작비 규모가 예상보다 적어서 요.” ‘예전에 비해서 CG 기술이 발전 하면서 단가도 많이 내려간 편이 야.”
“그래요?”
“아까 보여 줬던 영상의 CG 작업 을 맡았던 업체는 베스트 스튜디오 야. 거기 직접 찾아가서 감정을 받 고 난 후에 산출한 제작비야.”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비록 베스트 스튜디오를 찾아갔던 이유는 ‘어메이징 히어로즈’ 때문이 었지만,겸사겸사 ‘부산행 열차’의 CG 작업에 대한 단가 감정도 받았 다.
그 감정을 근거로 이규한이 산출한 ‘부산행 열차’의 ‘제작비가 대략
120억이었다.
‘자,이제 어떤 결론을 내릴까?’
이규한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때, 김태훈이 먼저 나섰다.
“NEXT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할 게.”
내심 바라고 있던 대답이 돌아왔기 에 이규한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때였다.
“너무 과감한 결정 아닌가요?”
권지영이 김태훈에게 의아한 시선 을 던졌다.
‘부산행 열차’는 변수도 많고 검증 도 아직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다.
그런데 투자 결정을 너무 서두른 게 아니냐는 뜻이었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와 NEXT 엔 터테인먼트는 달라.”
“무슨 뜻이에요?”
“작품만 보는 게 아니라 사람도 보 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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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에 대한 신뢰가 이번 결정 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 야.”
“그건……
“그리고 반성 많이 했어.”
“무슨 반성이요?” “‘변호사’ 기억 안 나?”
“갑자기 ‘변호사’ 이야기는 왜?”
“이 작품은 정치색이 너무 짙고 흥 행할 가능성도 낮다,난 이렇게 판 단하고 투자를 하지 않았고,결과적 으로는 땅을 치고 후회했어. 그건 권 팀장도 마찬가지 아냐?”
“당연히… 후회했죠. 보름 동안 끙 끙 앓을 정도였어요.”
‘변호사’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던 것은 NEXT 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니 었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도 ‘변호사’ 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권지영과 김태훈은 모두 ‘변호사’에 투자할 기회를 놓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변호사’가 엄청 난 흥행을 기록하고 나자,땅을 치 며 후회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감사해요.”
잠시 후 권지영이 김태훈에게 인사 했다.
“갑자기 왜 고맙다는 거야?”
“그때 기억을 상기시켜 주셔서요. 그래서 이번에는 똑같은 실수를 반 복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 9”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부산행
열차’에 투자하겠습니다.
“이 대표, 내가 먼저 투자 제안했 다.”
“이 대표님과 제 사이는 부부나 다 름없을 정도로 끈끈하거든요.”
“신뢰가 깨져서 이혼 직전이잖아?”
“부부 싸음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모르세요?”
“칼로 물 베기 아냐.”
“네?”
“부부 싸음 자주 하면 결국 이혼으 로 이어지더라고.”
“우리는 다르거든요.”
“다들 그렇게 착각하지.”
“진짜 다르거든요. 이 대표님,맞
죠?”
김태훈과 설전을 벌이던 권지영이 이규한에게 물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그 질문에 대답 하지 않았다.
딴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전벽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 황이네.’
는 작품인 ‘부산행 열차’.
예전의 이규한은 제발 작품에 투자 해 달라고 사정하기 위해서 투자 배 급사 문턱이 닮도록 찾아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투자 배급사로 찾아 가지 않았다.
오히려 투자 결정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메이저 투자 배급사 투자팀 장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로 찾아와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씩이 나.
그리고 메이저 투자 배급사 투자팀 장들인 권지영과 김태훈이 서로 작 품에 투자를 하겠다고 경쟁까지 하
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오긴 하는구나.’
예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상황이 비 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가슴이 뜨거울 정도로 벅차 올랐고.
그러나 그도 잠시,이규한은 고개 를 흔들었다.
투자사에 투자를 해 달라고 사정하 는 제작사 대표의 모습.
마치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규한은 그런 모습이 당연 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가 돼야 하지 않을 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발견한 투자사에서 먼저 투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서로 경쟁하 는 것.
이게 오히려 맞다는 생각이 들었 다.
“봐. 이 대표가 대답 안 하잖아.”
“침묵의 의미는 긍정이란 것,몰라 요?”
“뭐래?”
그때,권지영과 김태훈의 설전이 다시 이어졌다.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난 이규한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나섰다.
“아직 결정을 못 내렸습니다.”
“응?”
“무슨 뜻이에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는 로터스 엔 터 테 인먼트와 NEXT 엔터테인먼트, 두 투자 배급사와 모두 작업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제작을 하는 과정 에서 특별히 불편한 점이나 어려움 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 산행 열차’를 어느 곳과 함께 작업 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규한이 설명하자 권지영과 김태 훈이 동시에 눈을 빛냈다.
“내가 약속할게. 확실하게 지원사 격 할 거야.”
“이 대표님에게 제작 과정에서 전 권을 줄게요.”
두 사람이 앞다투어 이규한의 환심 을 사기 위해서 어필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내심 원했던 바 는 아니었다.
“두 분께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 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회의실을 빠져나온 이규한이 대표 실로 들어가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투자 계약서를 꺼내서 복사기 앞으로 다 가갔다.
기잉. 기잉.
이규한이 투자 계약서 두 부를 복 사하고 있을 때,백진엽을 비롯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이 다가 왔다.
“대표님,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 까?”
‘부산행 열차’의 원작자인 백진엽 이 대표로 질문했다.
“투자는 받았어.”
이규한이 대답하자 백진엽의 표정
이 밝아졌다.
“어디서요?”
“그건 아직 모르겠어.”
“네?”
“NEXT 엔터테인먼트와 로터스 엔 터테인먼트, 두 곳 모두 ‘부산행 열 차’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거든.”
백진엽이 놀란 표정을 지을 때 김 미주가 끼어들었다.
“양손에 떡 두 개를 쥔 상황이네 요.”
“역시 미주 씨는 비유가 좋아.”
“어느 떡이 더 마음에 드세요?”
“비슷해.”
“어느 쪽도 상관없다?”
“그런 셈이지.”
“그래도 결론은 내려야죠?”
“그래야지.”
이규한이 수긍한 순간 김미주가 다 시 말했다.
“더 어려워졌네요.”
“왜 어려워졌다는 거야?”
“한쪽은 감정이 상하게 될 테니까
요.”
김미주의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와 NEXT 엔
터 테 인먼트.
두 곳의 메이저 투자 배급사가 엇 비슷한 조건을 제시한 상황에서 이 규한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준다 면?
선택받지 못한 쪽에서는 감정이 상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지.”
“어떻게요?”
“경매.”
" ?”
“입찰가가 높은 쪽을 선택할 거 야.” “보시죠.”
이규한이 복사해 온 투자 계약서를 권지영과 김태훈에게 각각 한 부씩 건넸다.
‘어메이징 히어로즈’라는 작품명과 공동 제작사인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의 이름을 가린 투자 계약서를 살피 던 권지영이 먼저 서류에서 시선을 뗐다.
“이거… 뭔가요?”
“보다시피 투자 계약서야.”
“그건 저도 알죠. 제가 궁금한 건
다른 거예요.”
“뭐가 궁금한데?”
“위조한 것 아니죠?”
“왜 위조라고 생각해?”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 비 율이 6 대 4니까요. 씨제스 엔터테 인먼트 측에서 이런 조건으로 계약 을 맺었을 가능성이 없거든요.”
권지영은 불신 가득한 시선을 던졌 다. 그리고 꼼꼼하게 투자 계약서를 살피던 김태훈의 반응도 엇비슷했 다.
“김대환 대표가 왜 이랬을까?” 본인의 눈으로 직접 투자 계약서를
보고 있으면서도 쉬이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작품이 좋아서입니다.”
잠시 후 이규한이 대답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김대환 대표가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 비율을 6 대 4로 정한 투자 계약서를 승인한 이유.
이규한을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시키기 위해서였 으니까.
그렇지만 이규한은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작품이 좋아서다?” “다른 투자사에서 투자를 받을까 봐 두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조건을 수용했다?”
“네.”
이규한이 대답하자 김태훈이 다시 물었다.
“이 투자 계약서를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유가 있지?”
“물론 있습니다.”
“뭐야?”
이규한이 대답했다.
“두 분 모두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어느 쪽과 함께 작 업할지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 니다. 그래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 하는 쪽과 함께 작업하기로 했습니 다.”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 비 율을 조정하라는 거야?”
“맞습니다.”
김태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 다.
이규한과 김태훈.
사사롭게는 친한 선후배 관계였다. 그렇지만 공적으로는 투자사 직원과 제작사 대표의 관계였다.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 비율 을 조정하는 것.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인 김태훈의 입장에서는 함부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표정 이 굳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권지영의 입장도 마찬가지 였다.
잠시 후,권지영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욕심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 ?"
“오히려 반대가 아닐까?”
“무슨 뜻이에요?” “그동안 욕심이 과했던 것은 투자 사가 아니었을까? 제작사가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던 셈이니까. 아니,숟가락만 얹은 게 아니네. 밥 상을 차린 제작사보다 투자사가 더 많이 먹었지.”
이규한이 작심 발언을 쏟아 내자 권지영이 반론을 꺼냈다.
“투자사는 엄연히 실패에 대한 위 험 부담을 안고 있어요. 그래서 저 는 욕심을 부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 고 있어요.”
“실패에 대한 위험 부담은 제작사 도 안고 있어. 투자사는 여러 프로 젝트 중 하나의 실패이지만,보통의 제작사는 그 작품의 성패에 회사의 명운이 걸려 있거든. 오히려 실패에 대한 부담은 제작사가 더 크지 않을 까?”
권지영의 말문이 막힌 순간,이규 한이 힘주어 덧붙였다.
“내가 바라는 건… 상생이야.”
아까 이규한이 했던 무척 길었던 이야기는 결국 상생에 관한 것이었 다.
영화 제작사와 제작자도 한국 영화 산업을 이끌어가는 한 축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면 한국 영화 산업의 한 축인 영화 제작사들이 더 버티지 못한다. 그리고 한 축이 무
너지면 한국 영화 산업도 침체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게 이규한이 우려하는 부분이었 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