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경매 입찰 (1)
“뭐 해?”
이규한이 묻자 백진엽은 놀라거나 당황하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웹툰 보고 있습니다.”
“근무 시간에 웹툰 보고 있다가 내 게 들켰는데 너무 당당하게 대꾸하 는 것 아냐?”
명도 꺼내지 않았다.
여전히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 은 채 대답했다.
“너무 재밌어서요.”
“보고 있는 작품 제목이 뭔데?”
“‘부산행 열차’요.”
“뭐?”
“‘부산행 열차’를 보고 있다고요.”
이규한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백진엽에게 지적했다.
“너무 뻔뻔한 것 아냐?”
“제가 뭘요?”
“지금 자화자찬하고 있는 거잖아.”
‘부산행 열차’의 원작자가 바로 백 진엽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저격 했지만,백진엽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화자찬한 게 아니라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왜 자괴감을 느껴?”
“‘부산행 열차’가 이렇게 재밌는 작품인 줄 몰랐거든요.”
" C?
“이 자식,글 잘 쓰네요.”
방금 백진엽이 지칭한 이 자식이 누군지는 짐작이 갔다.
‘부산행 열차’의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박상구 작가였다.
“이게 과연 내가 알고 있는 ‘부산 행 열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재미 있네요.”
“그 정도로 재미있어?”
“예전의 박 작가가 아니다,대표님 이 하셨던 말씀인데 기억하시죠?”
“박상구 작가에게 ‘부산행 열차’의 웹툰 연재를 의뢰하기 위해서 찾아 갔을 때 내가 했던 말이잖아?”
“솔직히 그때는 인정하지 못했습니 다. 그런데 지금은 인정합니다.”
백진엽이 분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 다.
“분해할 필요 없어.”
“하지만……
“경쟁자가 아니니까.”
? <……?"
“나와 너 그리고 박상구 작가. 모 두 한 배를 탄 상황이야. 그러니까 경쟁심을 느끼거나 분해할 필요 없 어. 오히려 기뻐할 일이지.”
백진엽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이 는 것을 바라보던 이규한이 제안했 다.
“비켜 봐.”
“왜요?”
“나도 좀 읽어 보게.” 백진엽의 자리를 빼앗은 이규한이 ‘부산행 열차’ 웹툰을 읽을 채비를 마쳤을 때였다.
“이래도 됩니까?”
“뭐가?”
“아까 저한테는 근무 시간에 웹툰 보고 있다고 비난했잖습니까?”
“너와 나는 다르지.”
“뭐가 다른데요?”
“년 직원이고 난 대표니까.”
“억울하면 빨리 성공해서 백 피디 도 회사 차리든가.” 씨익 웃으며 덧붙인 이규한이 본격 적으로 ‘부산행 열차’ 웹툰을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최근 연재분까지 모두 독 파한 이규한이 감탄했다.
‘괜히 인기 작가가 아니구나.’
단순히 ‘부산행 열차’의 시나리오 를 웹툰으로 바꿔서 연재한 것이 아 니었다.
박상구 작가는 본인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서 웹툰 연재를 하 고 있었다.
백진엽은 물론이고 이규한도 생각 지 못했던 면을 부각시킨 재해석 덕 분에 원작보다 재미적인 요소에서 훨씬 더 뛰어났다.
“백 피디.”
“왜요?”
“나중에 법인 카드 줄 테니까 박상 구 작가에게 술 한잔 사.”
“그 자식이 뭐가 예쁘다고 술까지 사 줍니까?”
“고마워해. 박상구 작가 덕분에 ‘부산행 열차’가 투자받을 확률이 확 높아졌으니까.”
이규한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박동선 작가와 박상구 작가를 만 나게 해야겠다.’ 현재 ‘부산행 열차’의 각색 작업을 맡고 있는 것은 박상구 작가였다.
박태혁 대표가 ‘은밀하면서도 위대 하게’ 각색 작업을 마무리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박동선 작가는 딱 잘라 거절했다.
대신 ‘부산행 열차’ 각색 작업을 맡은 것이다.
‘각색을 한 번 더 거치는 셈이야.’
박동선 작가와 박상구 작가가 만나 ‘부산행 열차’라는 작품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나면 분명히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 란 확신이 들었다.
지이잉. 지이잉.
그때,이규한의 휴대전화가 진동했 다.
‘권 팀장이네.’
발신자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 자팀장인 권지영이란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전화를 받았다.
“권 팀장,무슨 일로 전화했어?” 권지영이 대답했다.
“보고 싶어서요.”
벨 소리가 들린 순간 이규한이 직 접 문을 열었다.
“권 팀장,왔어?”
“네,빨리 왔죠?”
권지영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것 을 확인한 이규한이 의아한 표정으 로 물었다.
“왜 이렇게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어?”
“빨리 보고 싶어서요.”
권지영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한 숨을 내쉬었다.
“진심인데요.”
" ‘?”
“확신이 섰거든요.”
“무슨 확신이 섰는데?”
“우리가 다시 잉꼬부부가 될 수 있 다는 확신이요.”
이규한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을 때 였다.
“이 대표,좀 늦었지?”
또 다른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왔 다. 그리고 이번에 찾아온 것은 NEXT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 김태 훈이 었다.
“안 늦었습니다. 딱 맞춰 오셨습니 다.”
이규한이 대답할 때,권지영이 김 태훈에게 경계 섞인 눈초리를 던졌 다.
“김태훈 팀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 세요?”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권 팀장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저야 이 대표님과 약속이 있어서 찾아왔죠.”
“나도 마찬가지야. 이 대표와 만나 기로 약속하고 찾아왔어.”
한이 끼어들었다.
“두 분 말씀 모두 맞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일부러 두 분을 같이 모셨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나누시죠.”
이규한이 두 사람을 회의실로 안내 했다.
“미주 씨,커피 세 잔만 부탁해.”
이규한이 부탁을 듣고 자리에서 일 어나던 김미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 다.
“확실히 대표님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무슨 뜻이야?”
“이거 엄청 희귀한 장면이잖아요.”
“희귀한 장면?”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와 NEXT 엔 터테인먼트. 4대 메이저 투자 배급 사 가운데 두 곳의 투자팀장들이 일 개 제작사로 찾아온 상황이니까요.”
“그냥 밥이나 같이 먹자고 부른 거 야.”
이규한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김미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보통은 반대죠. 제작사 대표가 투 자사로 찾아가서 밥을 사겠다고 사 정해도 같이 밥을 먹어 줄까 말까 하는 상황이잖아요.”
“밥 자주 먹거든.”
“아니요. 이건 진짜 희귀한 장면이 에요. 꼭 사진을 찍어서 남겨 둬야 겠어요.”
“뭘 사진씩이나.”
이규한이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지 만,김미주는 진짜 사진을 찍을 기 세로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그때, 황진호도 거들었다.
“사진 찍을 정도로 희귀한 장면이 긴 해. 내가 영화 일을 오랫동안 했 지만, 메이저 투자 배급사 투자팀장 들이 두 명씩이나 동시에 제작사로 찾아온 것은 처음 보거든.”
“저도 처음 봅니다.”
황진호에 이어서 하태열까지 동참 했다.
잠시 후, 황진호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규한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같이 부른 거야?”
“경쟁을 붙이려고요.”
“경쟁?”
이규한이 덧붙였다.
“경매를 해 보려고 합니다.”
경매를 하기 위해서는 상품이 필요 하다.
이규한이 준비한 상품은 ‘부산행 열차’.
그동안 이규한이 준비한 상품은 큰 인기가 없었다.
‘부산행 열차’는 투자 심사에서 번 번이 물을 먹었으니까.
‘지금은 가치가 올라갔어.’
그렇지만 이규한은 상황이 달라졌 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상품의 가치 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 권지영과
김태훈의 앞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영상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무슨 영상을 준비했다는 거야?”
“중국 영화의 일부분입니다.”
“중국 영화? 갑자기 그건 왜 보여 주려는 거야?”
김태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을 지었다. 그리고 권지영의 반응도 엇비슷했다.
“왜 중국 영화를 보자는……
그래서 권지영이 질문을 시작했지 만,이규한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권 팀장,질문을 일단 보고 나서 하는 걸로 하자.” “알겠어요.”
권지영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대답 한 순간,이규한이 미리 준비한 영 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이규한이 준 비한 영상은 베스트 스튜디오에서 보았던 영상이었다.
약 오 분 후,영상이 끝나자 김태 훈이 감상평을 꺼냈다.
“잘 만들었네. 중국 CG 기술이 언 제 이렇게 발전한 거야?”
김태훈이 감탄하고 있을 때 이규한 이 정정했다.
“중국 CG 기술이 아닙니다.”
“ ? <?” “우리나라에서 CG 작업을 맡았으 니까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업체가 중국 측의 의뢰를 받아서 CG 작업을 진 행한 결과물이란 뜻이야?”
“맞습니다.”
김태훈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 고 있을 때,권지영이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대체 왜 보여 주신 거예요?”
“확인시켜 주고 싶었어.”
“뭘요?”
“대한민국 CG 기술이 이 정도로
발전했다는 걸.”
이규한이 대답했지만,권지영은 제 대로 이해한 기색이 아니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이제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CG 가 필요한 판타지나 SF 장르의 국 내 영화 제작에도 무리가 없어졌다 는 것 알려 주고 싶었어.”
“결론은 하나네요.”
“ …?"
“부산행 열차.”
‘역시 예리해.’
시선을 던지며 상품의 가치를 올리 기 위해서 준비한 다음 자료를 공개 했다.
“현재 연재하고 있는 ‘부산행 열 차’ 웹툰이 인기 순위 2위에 올랐습 니다. 이게 최근 대중들이 좀비가 등장하는 SF 장르물에 대한 거부감 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되는 지표라고 할 수 있죠.”
“이 대표님.”
“말해.”
“진짜 하고 싶은 말씀이 뭐예요?”
권지영이 두 눈을 빛내며 질문한 순간,이규한이 대답했다.
“직감.”
“ 9”
" ……?"
“제 직감이 말하고 있습니다. ‘부 산행 열차’는 천만 영화가 될 거라 고.”
이규한이 준비한 패를 모두 던진 후 권지영과 김태훈을 살폈다.
두 메이저 투자 배급사 투자팀장들 은 서로를 경계하듯 바라보며 고민 에 잠긴 기색이었다.
“‘부산행 열차’의 제작비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고 있어?”
며 질문했다.
“120억 수준을 예상하고 있습니 다.”
이규한이 대답하자 김태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상보다 적은데?”
그리고 김태훈이 놀란 표정을 지은 이유는 이규한이 대답한 ‘부산행 열 차’의 제작비인 120억이 너무 많아 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막연하게 짐작했던 것보다 적었기 때문에 놀란 것이었다. 그리 고 권지영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 었다.
“일부러 좀 줄인 것 아니에요? 일 단 투자 유치를 받기 위해서 제작비 규모를 축소한 것 아닌가요?”
권지영이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 며 물었다.
“왜 그렇게 의심하는데?”
“‘부산행 열차’라는 작품에는 CG 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당연히 제작비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잖아요?”
의심을 거두지 않는 권지영과 시선 을 피하지 않은 채 이규한이 입을 뗐다.
“권 팀장,서운하다.”
“갑자기 왜 서운하다는 거예요?”
“부부 간에 가장 중요한 게 뭐야?” “음,사랑이 아닐까요?”
권지영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 한 순간,이규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권 팀장은 아직 결혼 안 해 봐서 모르네. 사랑은 오래 안 가. 진짜 중요한 건 신뢰야.”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