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95화 (195/272)

195화

종신 계약 그렇지만 김대환은 결국 이규한의 조건을 수용했다.

이규한을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공동 제작자로 꼭 합류시키고 싶었 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메이징 히어로즈’라는 작품 한 편을 흥행시키기 위해서 이 규한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 이규한과 함께 작업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흡수하길 바랐던 것이 다.

그런 김대환의 의도는 현재까지는 먹혀들고 있는 것 같았다.

“자존심이 상하느냐?”

잠시 후,김대환이 넌지시 물었다.

“괜찮습니다.”

김기현이 괜찮다는 대답을 꺼냈지 만,그 대답을 꺼내는 아들은 입술 을 꽉 깨물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면 더 이 상한 일이지.’

김대환이 안타까움을 느끼며 다시

입을 뗐다.

“잊지 마라.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승자라는 사실을.” “‘어메이징 히어로즈’는 흥행에 성 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영광은 모 두 네 차지가 될 것이다.” 강남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

이규한이 들어서자 지인경 작가가 벌떡 일어났다.

“대표님,오랜만이에요.” “네,너무 오랜만이네요.”

이규한이 지인경 작가와 반갑게 인 사를 나누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얼굴 좋네.’

예전에 비해 표정이 한층 밝은 그 녀를 확인한 이규한이 커피 두 잔을 주문한 후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전화기만 보면서 지냈답니다.”

“네?”

“이규한 대표님이 언제쯤 저한테 다시 연락하실까? 이런 기대를 가진 채 꾸준히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

지인경 작가가 던진 말을 들은 이 규한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더 일찍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데 면목 없습니다.”

“괜찮아요. 대표님이 어제 전화하 셔서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 으니까요.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하 셨어요?”

“같이 작업을 하나 하고 싶어서

요.”

“작업… 이요?”

지인경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언젠가 이규한 대표님이 다시 전 화를 주실 거야,그리고 내게 같이 작업을 하자고 제안을 할 거야,계 속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일이 막상 현실로 닥치니까 무척 당혹스럽네요.”

지인경 작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이규한도 마주 웃 으며 입을 뗐다.

“그럼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것 아 닌가요?”

“그럴 수가 없어요.”

붙였다.

“이규한 대표님과 같이 작업을 할 수 없게 됐거든요.” ‘첫 스렙부터 꼬인다?’

이규한이 표정을 굳혔다.

김기현을 상대로 지인경 작가에게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각색 작업을 맡기겠다고 설득을 마친 상황이었 다.

그런데 지인경 작가가 각색 작업을 맡지 못하겠다고 먼저 선언했다.

‘일단 이유부터 알아보자.’

이규한이 결심을 굳히고 조심스럽 게 질문했다.

“제가 너무 늦게 연락드렸나요?”

“네.”

“다른 회사와 이미 계약을 맺었나 보군요.”

김기현에게는 지인경 작가가 ‘수상 한 여자’ 이후 드라마 제작사와 계 약을 맺고 드라마 집필을 했다고 말 했지만,그건 거짓말이었다.

지인경 작가가 능력 있는 작가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꺼냈던 거짓 말.

그리고 이규한도 무척 오래간만에 지인경 작가를 만나는 상황이었다.

그사이 그녀가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었는가 여부는 이규한도 알 수 없 었다.

막연히 계약을 맺지 않았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예상했던 데는 이유 가 있었다.

‘진짜 작가가 되려면 최소 몇 년 걸릴 거야.’

지인경 작가가 집필했던 ‘수상한 여자’의 원안이라 할 수 있는 ‘노파 에서 쳐녀가 된 그녀’는 이규한도 읽어 보았었다.

그 작품을 읽고 난 후 이규한이 내렸던 판단이었다.

기발한 소재를 잡는 능력은 있지 만,글을 풀어 가는 구성력이 부족 했기 때문이다.

“어느 제작사와 계약하셨습니까?”

“백윤기요.”

‘백윤기?’

간혹 본인의 이름을 내건 영화 제 작사도 존재했다.

그런 제작사 가운데 한 곳과 계약 을 했다고 판단한 이규한은 우선 걱 정부터 들었다.

백윤기라는 이름을 가진 제작사 이 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 다.

또 지인경 작가가 악덕 제작사와 계약해서 심하게 마음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약 조건은 잘 조율했습니까?”

“음. 최선을 다해서 협상하긴 했는 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대충이라도 제게 말씀해 주시죠.”

“종신이 에요.”

“네……?"

“종신 계약을 맺었다고요.”

이규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영화 일을 오랫동안 해 왔지만 작가가 제작사와 종신 계약 을 맺는 경우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사기?’

그래서 이규한의 머릿속에 사기라 는 단어가 떠올랐을 때,지인경 작 가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저,결혼해요.” ‘백윤기가 제작사 이름이 아니었구 나. 그래서 종신 계약을 맺는다는

거였구나.’

비로소 상황을 파악하는 데 성공한 이규한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마터면 말릴 뻔했습니다.”

“왜요?”

“종신 계약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 작가님이 또 사기 계약을 당했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럴 수도 있어요.”

“네?”

“사기 계약을 당한 걸 수도 있다고 요. 아직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지인경 작가가 웃으며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고개를 흔들었

“분명히 잘 결정하셨을 겁니다.”

“이 대표님이 어떻게 아세요?”

“이미 한 번 경험이 있으니까요.”

“대표님.”

“네?”

“저 이번이 초혼입니다.”

지인경 작가가 정색한 채 말하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자신의 실수 를 뒤늦게 깨달았다.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이미 악덕 제작사와 계약하면서 예방 주사를 맞았던 덕분에 분명히 지 작가님이 현명한 선택을 했을 거란 뜻입니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제 작가 생활은 그만두시 는 겁니까?”

“한동안은 그럴 것 같아요.”

지인경 작가가 대답하는 것을 들은 이규한이 말했다.

“청첩장 보내 주실 거죠?”

“그래도 되나요?”

“당연하죠. 축의금 많이 내겠습니 다.”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네요.”

지인경 작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 다.

‘보기 좋네.’

그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이규한이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 다. 그리고 이규한은 그 표정 변화 를 놓치지 않았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별것 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편하게 말씀해 보세 요. 혹시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규한의 이야기를 들은 지인경 작 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실은… 전세금이 조금 모자라서 요. 정부에서 하는 대출을 받으려고 했는데 대출 심사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이자가 높은 2금융권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자금이 얼마나 모자라는데요?”

“오천만 원 정도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던 지인경 작 가가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괜한 얘기를 했네요. 그 냥 마땅히 하소연할 사람도 없고 해 서 저도 모르게 그만……

“어쩌면 제가 해결해 드릴 수도 있 을 것 같습니다.” 지인경 작가의 말을 도중에 자르며 이규한이 끼어들었다.

“대표님이요? 어떻게요?”

“아까 제가 같이 작업을 하자고 말 씀드렸지 않습니까? 그 작업을 맡아 서 하시면 딱 자금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요?”

지인경 작가가 홍미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도 잠시,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너무 많아요.”

“네?"

“오천만 원이나 받을 정도로 작가 로서의 제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요.

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거절하시는 겁니까?”

“욕심은 나지만……

“책임은 제가 집니다.”

“네?”

“작품을 맡길 작가를 선택하는 것, 제 역할입니다. 당연히 결과물에 대 한 책임도 제가 집니다.”

“하지만……

“너무 부담 가질 필요 없습니다.”

망설이는 지인경에게 이규한이 덧 붙였다.

“잘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일단 첫 단추는 쨌다.”

택시 뒷좌석에 앉은 이규한이 희미 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각색 작가 로 지인경 작가를 선택한 데는 나름 의 이유가 있었다.

‘너무 무심했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성공 가도 를 달리게 되는 데 있어서 ‘수상한 여자’라는 작품은 무척 중요한 역할 을 했다.

‘수상한 여자’는 블루문 엔터테인 먼트에서 제작했던 첫 천만 영화였 고,덕분에 자금의 숨통이 트이며 후속 작품 제작도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상한 여자’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표절 시비가 일었었다.

‘만약 그때 지인경 작가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손을 들어 주지 않 았다면?’

블루문 엔터테인먼트는 ‘수상한 여 자’라는 작품을 제작하지 못했을 것 이다.

물론 이규한은 ‘수상한 여자’의 각 본 크레딧에 지인경 작가의 이름을

올려 준 것으로 빚을 갚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지인경 작 가에게 신경이 쓰였었다.

그래서 지인경 작가를 도울 수 있 는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그 기회 가 찾아온 셈이었다.

“너무 부담 가질 필요 없습니다. 잘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규한이 했던 제안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지인경 작 가에게 건넸던 말은 그녀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 꺼냈던 빈말이 아 니었다.

오히려 지인경 작가가 각색을 너무 잘하면 곤란했다.

죽 쒀서 개 주는 셈이나 마찬가지 였기 때문이었다.

“도착했습니다.”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듣고서 이규 한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린 이규한이 맞은편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 베스트 스튜디오 (Best Studio)

이규한이 이곳은 찾은 이유는 베스 트 스튜디오를 방문하기 위해서였 다. 그리고 베스트 스튜디오는 영화 제작사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와 광고 등에서 활용되는 CG 기술 관련 업체였다.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일을 하는 척은 해야지.”

혼잣말을 마친 이규한이 건물 안으 로 들어갔다.

잠시 후 이규한은 베스트 스튜디오 대표인 김용택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연락드렸던 이

규한입니다.”

“베스트 스튜디오 대표 김용택입니 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던 이규한이 김 용택에게 새삼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그의 직업은 두 가지.

CG 기술 관련 업체인 베스트 스 튜디오 대표이자 현직 영화 감독이 었다.

그래서 이규한은 그가 본인을 ‘영 화 감독 김용택’이라고 소개할 거라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빗나간 셈이었다.

“이제 연출은 하지 않으십니까?” 이규한이 질문하자 김용택이 은테 안경을 추켜을리며 대답했다.

“연출은 반강제적으로 쉬고 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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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제 가 마지막으로 연출했던 ‘렛츠고 고’란 작품이 흥행 참패를 기록했거 든요. 그 후로 연출 제안이 뚝 끊겼 습니다.”

김용택이 씁쓸한 표정으로 설명했 다.

‘심하게 망하긴 했지.’

이규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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