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동상이몽 “결정적인 두 가지 차이가 뭔데?”
“우선 준비하는 시기가 달라.”
이규한이 대답하자 김기현이 의아 한 시선을 던졌다.
“무슨 뜻이야?”
“네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 CG의 완성도 아냐? ‘광안리’의 흥행 참패 로 인해 CG의 완성도가 무척 중요
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맞아.”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온 순간 이규 한이 힘주어 말했다.
“CG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 하고 있어. 그때와 지금은 기술 수 준이 다르다는 뜻이야. 그리고 국내 에도 CG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든 회사도 존재하고. 즉,완성도 있 는 CG를 구현하는 데 걸리는 시간 이 많이 줄었다는 뜻이야.”
“아무리 시간이 줄었다고 해도 “그럼 이 부분은 내가 확인해 볼 게.”
“확인해 본다니?”
“CG 전문 업체를 찾아가서 내 눈 으로 직접 확인해 볼게.”
이규한이 말하고 난 후에야 김기현 이 비로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가 다시 입을 뗐다.
“아까 달라진 게 두 가지라고 했잖 아? 나머지 하나는 뭐야?”
“나.”
‘응?'
“‘광안리’ 때와 달리 ‘어메이징 히 어로즈’에는 내가 참여하고 있어. 분명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거 야.”
의욕을 드러내는 이규한에게 김기 현이 신뢰가 담긴 시선을 던졌다.
‘예전의 나처럼… 순진해.’
그런 김기현을 바라보며 이규한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잠시 후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작품을 제작할 때 네가 가장 중요 하게 생각하는 게 뭐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아무 래도 감독이 아닐까?”
“왜 감독이라고 생각해?”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니까.” 김기현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 하는 것을 들은 이규한이 입을 뗐 다.
“난 생각이 달라.”
“어떻게 생각이 다른데?”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스토리야. 결국 영화는 스토리를 영 상으로 옮기는 것이니까. 좋은 스토 리가 바탕이 돼야 좋은 영화가 나온 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게 내가 성 공했던 요인이라고 판단해.”
김기현은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일단 좋은 각색 작가를 찾아 야겠네.” “맞아. 그게 최우선이야.”
“신진응 작가나 홍기훈 작가가 어 떨까?”
방금 김기현이 입에 올린 두 작가 는 영화 업계에서 톱클래스로 분류 되는 작가들이었다
“그 두 작가에게 맡기는 것은 불가 능해.”
“왜 불가능하다는 거야?”
“신진응 작가는 계약이 밀려 있고, 홍기훈 작가는 지금 드라마 제작사 와 계약을 맺고 드라마 집필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
“그럼… 안유천 작가는 어때?” “방금 누구라고 했어?”
“안유천 작가.”
“유천이?”
이규한이 살짝 당황한 이유.
안유천 작가가 어느새 영화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가로 위상 이 올라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너도 잘 알잖아?”
“잘 알지.”
“그럼 안유천 작가에게 각색을 맡 기는 게 어때?”
김기현이 기대에 찬 시선을 던졌 다.
‘나쁘지 않지.’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안유천은 코미디에 특화된 작가인 만큼 히어로들의 케미스트리가 중요 한 ‘어메이징 히어로즈’ 각색에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속마음과 다른 대답을 꺼냈다.
“유천이도 안 돼.”
“왜 안 된다는 거야?”
“안 작가는 거품이 심해.”
“내가 안작가랑 여러 작품을 해 봤 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아. 실력 에 비해서 과대 포장 된 케이스야.”
‘유천아,미안하다.’
안유천에 대한 혹평을 꺼낸 후 이 규한이 속으로 사과했다.
“왜 실력에 비해 과대 포장 됐다는 거야?”
“묻어가는 스타일이거든.”
기왕 안유천의 혹평을 꺼내기 시작 한 마당이라 이규한이 망설이지 않 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유천 작가 혼자서 참여한 작품은 거 의 없어. 다른 작가들과 협업을 했 지.”
“그럼 다른 작가들에게 묻어갔다는 뜻이야?”
“맞아.”
“그럼 안 되겠네.”
김기현이 한숨을 내쉰 후 입을 뗐 다.
“그럼 누구한테 각색을 맡겨야 하 나?”
“내가 이미 생각해 둔 작가가 있 어.” “누군데?”
“지인경 작가.” “지인경?”
이규한이 대답하자,김기현이 고개 를 갸웃했다.
그녀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부연설 명을 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 던 ‘수상한 여자’에 참여했던 작가 야.”
“그럼 천만 작가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 가 어떤 작품에 참여했느냐였다.
그 작품의 흥행 성적이나 완성도에 따라서 작가의 능력도 함께 평가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인경 작가가 ‘수 상한 여자’의 각본 크레덧에 이름을 올린 것은 큰 도움이 됐다.
지인경 작가가 ‘수상한 여자’라는 작품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김기현이 그녀를 인정한 것이 증거 였다.
“그런데 왜 내가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지?”
잠시 후 김기현이 고개를 갸웃했 다.
지인경 작가가 ‘수상한 여자’ 후에 다른 작품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의 문을 품은 것이다.
“당연해.”
“왜 당연하다는 거야?”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한 탓에 그 동안 영화 쪽 일을 전혀 안 맡았거
드 ”
“아.”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가 드라마계 로 빠져나가는 것.
더 이상 새삼스럽거나 놀랄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졌다.
드라마 업계가 영화 업계보다 작가 처우가 훨씬 좋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기현은 의심하는 대신 아 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럼 지인경 작가에게 각색 작업 을 맡기는 것도 불가능한 것 아냐?” “다행히 드라마 제작사와의 계약이 마침 끝났더라고.”
“그래?”
“내가 부탁하면 이번 작품의 각색 작업을 맡아 줄 공산이 커.”
“다행이네.”
김기현의 표정이 밝아졌을 때,이 규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덧붙였
“단,좋은 조건으로 작가 계약을 맺을 거야. 이번 한 작품만 하고 지 인경 작가와 인연을 끊을 생각이 아 니거든.”
“작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맞아. 너도 잊지 마. 최근 신선한 스토리로 무장한 한국 영화가 등장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좋은 작가들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 이야. 시나리오 작가를 해 봐야 결 국 고생만 하고 작가 처우는 좋지 않다,이런 인식이 박혀 있어서 좋 은 작가들이 영화가 아닌 드라마 쪽 으로 빠진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지금부터라도 좋은 작품을 쓰 는 시나리오 작가는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인식을 바꿔 나가야 해.” 김기현이 수긍한 표정을 짓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할게.”
“왜 벌써 일어나?”
“서둘러야 개봉 시기를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지.”
이규한이 대표실을 막 빠져나가려 는 순간,김기현이 재빨리 말했다.
“규한아.”
“왜? 아직도 궁금한 게 있어?”
“이번 작품,흥행에 성공할 수 있 겠지?”
이규한이 빙글 몸을 돌리며 대답했 다.
“6 대 4.”
?
“이번 작품에 공동 제작자로 참여 하는 조건으로 내가 김대환 대표님 께 제안했던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 익 배분 비율이야. 내가 왜 이런 조 건을 내걸었는지 알아? 작품을 흥행 시켜서 돈을 많이 벌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야.” “흥행에 성공한다는 뜻이지?”
“무조건 천만 영화 될 거야.”
이규한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꺼낸 대답을 들은 김기현이 비로소 환하 게 웃었다.
‘능력은 없으면서 욕심은 많다? 넌 글렀어.’
이규한이 대표실을 빠져나오며 속 으로 생각했다.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다?” 김대환이 작게 그 말을 되뇌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배우 그리고 흥행 공식.
요즘 영화 제작자들이 가장 중요하 게 여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 제작자들이 이런 요인들을 중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투자 유치 때문이었다.
투자 유치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요 즘 영화 제작자들은 일단 투자 유치 를 받는 것에 혈안이 돼 있었다.
그래서 투자 유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감독과 배우 그리고 흥행 공식이 답습된 시나리오에만 집중했 그렇지만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이 규한 대표는 달랐다.
최우선 순위를 스토리에 두고 있었 다. 그리고 흥행 공식을 답습하지도 않았다.
신선한 스토리를 원했다.
‘이게 이규한 대표가 성공할 수 있 었던 요인일 수도 있겠군.’
속으로 생각하며 김대환이 소파에 앉아 있는 김기현에게 시선을 던졌 다.
“그래서 누구에게 각색을 맡긴다
고?”
“지인경 작가에게 맡긴다고 했습니 다.”
“지인경 작가?”
“네. ‘수상한 여자’에 참여했던 작 가입니다. 제가 확인해 보니 ‘수상 한 여자’의 각본 크레딧에 지인경 작가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이전에 지인경이라는 작가의 이름 들어 본 적 있느냐?”
“들어 본 적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이규 한 대표가 꽁꽁 숨겨 두었던 것 같 구나.”
“왜 숨겨 두었을까요?”
“원래 비장의 패는 숨겨 두는 법이 다.”
김대환이 조사했던 이규한의 제작 방식.
다른 제작자들과는 다른 부분이 분 명히 존재했다.
스토리를 중시한다는 점이 가장 달 랐고,그래서 기존의 홍행 공식을 답습하지 않는 신선한 스토리를 선 호하는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안유천,김단비,지인경,박한정 등 등.
하지 않고,신인 작가들과 작업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신인 작가들과 한 번 작업하고 나서 인연 을 끊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편이었다.
지인경 작가 역시 마찬가지 경우일 확률이 높았다.
“작가를 선택하고 처우하는 이규한 대표의 방식을 잘 보고 배워야 한 다.”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친구인 이규한 대표를 보고 배우라 는 김대환의 지시.
김기현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김기
현은 군말 없이 지시를 따르고 있었 다.
그 반응을 확인하고 흡족한 표정을 지은 김대환이 다시 물었다.
“또 배운 게 있느냐?”
“네. 흥행 시기를 결정하기 전에 경쟁 작품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래? 이규한 대표는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개봉 시기를 언제로 생 각하고 있더냐?”
“내년 여름 성수기 시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내년 여름?” 김대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무 이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런 자신의 표정 변화를 살피던 김기현이 재빨리 이규한이 내년 여 름 성수기 시즌에 ‘어메이징 히어로 즈’를 개봉하려는 이유에 대해 설명 했다.
그 설명을 들은 후 김대환이 납득 한 표정을 지었다.
“일리가 있구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기현아.”
“네,대표님.” “이규한 대표에게서 최대한 많이 배워라. 이런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고분고분 대답하는 김기현을 바라 보던 김대환이 더욱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 비 율을 6 대 4로 해 주십시오.”
‘어메이징 히어로즈’의 공동 제작 자로 참여하는 대가로 이규한이 내 걸었던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조건 을 수용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김 대환도 쉽지 않았다.
투자사에게 불리한 계약의 선례를 남기는 것.
김대환의 입장에서도 무척 부담스 러웠기 때문이었다.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