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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90화 (190/272)

190화

대한민국에서 제일 쓸모없는 것 “투자 유치 문제는 모든 제작자들 이 어려움을 겪는 문제가 아니오? 그래서 내가 최대한 상담을 하면서 도움을 줄 부분이 있으면 돕기 위해 서 말했던 것이오. 너무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소.”

김흥집은 이내 신색을 회복하며 사 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거짓말.’ 이규한이 속으로 말했다.

지금 김홍집은 제 발 저린 도둑처 럼 허둥대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

그러나 이규한은 그에 대해 더 추 궁하지 않았다.

아까도 생각했듯이 이규한이 오늘 여기 찾아온 목적은 김홍집과 싸우 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빨리 말해 보시오. 아까 이 대표가 하려던 부탁이 무엇이 김홍집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공고를 하나 내고 싶습니다.”

“어떤 공고요?”

“제가 보유하고 있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현재 그 건물 내에 비어 있는 사무실이 많습니다. 그 사무실 들을 형편이 어려운 영화 제작자들 에게 제공하고 싶습니다.”

“무상으로 말이오?”

“그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의 임대료만 받을 생각입니다. DMC 파크보다 10만 원 정도 낮게 임대료를 책정할까 생각 중입니다.” 김홍집도 DMC 파크의 사무실 임 대표가 무척 싸다는 것쯤을 알고 있

을 터.

그런데 이규한이 DMC 파크보다 더 싸게 사무실 임대료를 책정할 거 란 이야기를 듣자 놀란 표정을 감추 지 못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사무실 임대료를 싸게 책정한 거요?”

“수익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기 때 문입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영화 제작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사무실 임대료 를 내는 것조차 벅차하는 선후배 제 작자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부담 을 덜어 드리기 위해서 사무실을 제

공하려는 겁니다.”

“그래요?”

김홍집이 이규한을 경계 섞인 눈초 리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김홍집이 웃으 며 말했다.

“형편이 어려운 선후배 제작자들에 게 큰 도움이 되겠군요. 당연히 제 가 도와드려야죠. 공고를 내는 것 말고 제가 더 도울 일은 없나요?”

이규한도 웃으며 대답했다.

“우선은 공고를 내 주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부우욱.

김흥집이 비타민 음료 포장 박스를 뜯어 냈다.

박스 안 내용물을 확인한 김홍집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진짜 음료수잖아.”

자신이 아까 오판했다는 사실을 확 실히 깨달은 김흥집의 얼굴이 벌겋 게 달아올랐다.

똑똑.

그때,노크 소리와 함께 사무처장 인 임태술이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이리 앉아.”

임태술이 맞은편 소파에 앉자마자 김흥집이 비타민 음료를 한 병 꺼내 서 건넸다.

“하나 마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이규한 대표 가 가져온 겁니까?”

“그래. 진짜 비타민 음료를 사 갖 고 왔더라고.”

“당연합니다.”

“당연하다니?”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작품에는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이 서로 투자를 하겠다고 달려드는 상 황입니다. 그런데 이규한 대표가 뭐 가 아쉬워서 협회장님을 찾아와서 청탁을 하겠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군.”

김흥집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을 때였다.

“그런데 이규한 대표는 왜 찾아왔 던 겁니까?”

“이상한 제안을 하더라고.”

“이상한 제안이요?”

“자기가 건물을 하나 갖고 있대. 거기 빈 사무실을 임대하겠다는 공 고를 내 달라고 부탁했어. 거의 공 짜로 제작자들에게 사무실을 임대해 줄 계획을 갖고 있더라고.”

“공짜로요?”

“보증금 없이 월 이십만 원이면 공 짜나 다름없지 않나?”

사무실 임대료가 워낙 싸기 때문일 까.

임태술도 이규한이 찾아와서 했던 제안에 대해 알려 주자 깜짝 놀랐 다.

“입주 경쟁이 아주 치열하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돈 없는 제작 자들이 너도나도 신청할 테니까. 명 함 받아 뒀으니까 나중에 연락해서

일정 조율하고 공고 올리라고.”

“알겠습니다.”

임태술이 대답한 후 고개를 갸웃했 다.

“그런데 이규한 대표는 왜 갑자기 다른 제작자들에게 빈 사무실을 싼 가격에 임대해 주려는 걸까요?”

“돈지랄하고 싶은가 보지.”

“돈지랄이요?”

“내가 영화 제작해서 돈 엄청 많이 벌었다,다른 영화 제작자들에게 이 렇게 자랑하면서 생색내고 싶어서 사무실을 싼 가격에 임대해 주려는 거 아니겠어?” 김흥집이 대답했지만, 임태술은 고 개를 흔들었다.

“그 이유가 다가 아닐 겁니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야?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자리 욕심이 생긴 게 아닐까요?”

“자리 욕심?”

“그동안 돈은 벌 만큼 벌었다,이 제 형편이 어려운 영화 제작자들을 위해서 도움을 주겠다,이런 의도를 보여 줘서 협회 내에서 한자리를 차 지하려는 것 아닐까요?”

임태술이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 를 들은 김흥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임 처장,오늘 밤잠 설치는 것 아냐?”

“네?”

“이규한 대표한테 자리 벳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김흥집이 농담을 꺼냈다.

그렇지만 임태술은 웃지 않았다.

그 반응을 확인한 김흥집이 다시 말했다.

“너무 정색할 것 없어. 설마 내가 임처장을 내보내겠어? 이규한 대표 에게 어울리는 다른 적당한 자리를 알아볼 테니까…… “그래서 정색한 게 아닙니다.”

“그럼?”

“이규한 대표가 과연 제 자리로 만 족할까요?”

임태술이 꺼낸 말을 들은 김흥집이 표정을 굳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만약 이규한 대표가 자리 욕심을 부린다면 겨우 사무처장 자리로 만 족하겠냐는 뜻입니다. 제 생각엔 아 닐 것 같습니다.”

“그럼 이규한 대표가 어떤 자리를 노린다는 거야?”

임태술이 대답 대신 책상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자신의 명패라는 사 실을 알아챈 김흥집이 미간을 찡그 렸다.

“설마 내 자리를 노린다는 거야?”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김 홍집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감히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단 말이 지?”

과악.

소파 위에 올리고 있던 주먹을 말 아 쥔 김흥집이 임태술에게 지시했 “한번 알아봐. 그 자식이 대체 무 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여기야.”

이규한이 곱창집에 들어서자,미리 도착해 있던 장준경이 손을 번쩍 들 어 올렸다.

“왜 이렇게 늦었어?”

이규한이 맞은편 의자에 앉기 무섭 게 장준경이 말했다.

시계를 확인한 이규한이 억울한 표

정을 지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고 정각에 도 착했기 때문이었다.

“안 늦었어.”

“나도 알아.”

“그런데?”

“내가 목 빼고 기다린다는 것을 알 고 있는데,좀 일찍 도착하면 어디 덧나?”

장준경의 표정이 무척 초조하다는 것을 알아챈 이규한이 물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진짜 음료수 박스 사 들고 김흥집 대표를 찾아갔어?”

“일단 목부터 좀 축이자.”

“알았다. 빨리 받아.”

장준경이 소주병을 들어 이규한이 들어 올린 잔을 채워 주었다. 그리 고 이규한이 소주잔을 반쯤 비우고 탁자 위에 내려놓자마자 다시 대답 을 재촉했다.

“음료수 박스 들고 찾아갔어?”

“그래.”

“김훙집 대표 반응은 어때?”

“예상대로야.”

이규한이 쓴웃음을 지은 채 대답했 다.

김흥집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 한국

영화 제작자협회를 찾아갔을 때, 비 타민 음료 박스를 사 간 데는 이유 가 있었다.

“김홍집 대표가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제작자들에게서 뒷돈을 받고 투자사에 연결을 해 준다.” 장준경이 들었다고 말했던 소문이 었다.

그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규한은 일부러 비타민 음 료 박스를 준비해 갔던 것이다.

그리고 비타민 음료가 들어 있는 상 자에서 시선을 못 떼더라.”

“그리고?”

“투자 얘기를 넌지시 꺼내더라고.” 김홍집을 만나 대화를 나눈 덕분에 이규한은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 을 확인할 수 있었던 셈이다.

두 눈을 빛낸 채 귀를 기울이던 장준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문이 진짜인 셈이네.”

"……?"

“대체 어디까지 썩은 거야? 역시 그 말이 맞네.”

“무슨 말?”

“대한민국에서 제일 쓸모없는 게 협회라는 이야기 말이야. 영화 제작 자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서 세운 협 회인데, 정작 협회장이란 인간은 영 화 제작자들의 권리 신장에는 관심 도 없고 사리사욕을 채울 생각만 하 고 있잖아.”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장준경이 소 주잔을 비운 후 말했다.

“그나저나 그 양반도 참 눈치 없 네.”

“김홍집 대표?”

“그래. 요새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의 이규한 대표가 투자 유치에 어려

움을 겪어서 자길 찾아왔다고 생각 하는 걸 보니 말이야.”

“습관 때문이겠지.”

“습관?”

“그동안 꾸준히 이런 일이 반복됐 으니까 당연히 이번에도 마찬가지 경우일 거라고 판단했을 거야.”

장준경이 수긍한 표정으로 덧붙였 다.

“어쨌든 아쉬워 죽겠네.”

“뭐가 아쉽다는 거야?”

“너와 동행하지 않은 것 말이야.”

" ‘……?" 비타민 음료 박스에 진짜 비타민

음료만 가득 들어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 그 양반 표정이 어떨지가 궁금 해 죽겠거든.”

“아쉽게도 나도 못 봤어.”

“그 전에 일어나길 잘했다.”

“왜 잘했다는 거야?”

“눈치 없이 계속 거기 버티고 있었 다가는 너한테 비타민 음료가 날아 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껄껄 웃던 장준경이 다시 물었다.

“이제 어쩔 거야?”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거야.”

“사무실 공짜로 빌려주는 것?” “그래.”

“부족하지 않을까?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너무 부족할 것 같은데?”

영세한 영화 제작자들은 많은 반 면,청우 빌딩의 비어 있는 사무실 수는 적다.

방금 장준경이 한 말에 담긴 의미 였다.

“그래서 공급을 더 늘릴 생각이 야.”

“어떻게?”

“우선 인테리어 공사를 할 거야. 사무실을 쪼개는 방식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해서 사무실의 개수를 최대한 늘릴 거야. 영화 제작사 사 무실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란 것,너도 알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도 부족하지 않 을까?”

“건물도 하나 더 매입할 거야.”

이규한이 건물 매입 계획을 밝히자 장준경이 깜짝 놀랐다.

“건물을 하나 더 구입하겠다고?”

“그래.”

“돈이 어디서 나서?”

“변호사님이 해결해 주셨다.”

“변호사님?”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 던 영화 ‘변호사’ 말이야.”

“아.”

비로소 말뜻을 알아들은 장준경이 이내 흥미를 드러냈다.

“정산금이 대체 얼마나 들어온 거 야?”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왔 어.”

“왜?”

“이번 영화는 제작만 한 게 아니라 직접 작품에 투자도 했었으니까.”

‘변호사’를 제작하던 도중 투자 유 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 다. 그래서 이규한은 직접 투자를

했었다.

당시에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했던 투자였는데.

‘변호사’가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고 나자, 당시에 이규한이 울며 겨자 먹는 심 정으로 했던 투자가 빛을 발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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