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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89화 (189/272)

189화

확실히 이상하네

비로소 말뜻을 이해한 이규한이 한 숨을 내쉬었다.

‘작품이 좋으면 투자를 받아서 영 화를 제작할 수 있다.’

이규한이 가진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규한은 협회나 영화판의 정치 등 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이규한의 생각처 럼 단순한 곳이 아니었다.

이규한이 관심을 두지 않는 곳에서 는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었 다.

그때,장준경이 설명을 더했다.

“그래서 김흥집 대표가 플러스 미 디어를 통해서 작품을 제작하고 있 다는 소문이 돌아.”

“왜 그런 소문이 도는 건데?”

“플러스 미디어 함유철 대표에 대 해 전혀 모르지?”

“이름 몇 번 들어 봤던 게 다야.”

“원래 영화 일을 했던 사람이 아 냐. 장사하던 사람이었어. 수산 시장 에서 일했다고 하더라고.” “수산 시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갑 자기 영화 제작사를 차려서 잇따라 영화를 제작하고,거기다 흥행 성적 도 괜찮다?”

“이상하지?”

“확실히 이상하네.”

연극영화과를 비롯한 영화 관련 학 과를 졸업하고 꾸준히 영화 관련 일 을 하면서 경험과 인맥을 쌓은 후에 영화 제작에 뛰어들어도, 한 작품도 제작하지 못하고 영화판을 떠나는 제작자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영화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던 사람이 불과 몇 년도 되 지 않아 여러 작품을 제작하는 것.

그리고 그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것.

확실히 정상적인 케이스는 아니었 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힘 있는 형님을 뒀으니까.”

“응?”

“함유철 대표,김홍집 대표의 매제 야. 어때? 이제 그림이 그려져?”

“그림이 그려지네.”

김홍집 대표는 안 좋은 소문이 도 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자신이 세운 투웨이 엔터테인먼트에서 작품 제작 을 하지 않았다.

대신 매제인 함유철을 영화계로 끌 어들여 플러스 미디어라는 제작사를 차린 후,작품 제작을 하고 있는 것 이다.

그 과정에서 김홍집은 한국영화 제 작자협회장이라는 권한을 이용한 것 이고.

아마 처음에는 은밀히 이뤄진 터라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 는 법이다.

영화계와 전혀 상관없는 함유철 대 표가 이끄는 플러스 미디어가 꾸준 히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대해 의심 쩍은 시선을 던지는 영화계 사람들 이 늘어나며 그 비밀이 자연스레 드 러난 것이리라.

“그런데 갑자기 왜 김흥집 대표에 대해서 물은 거야?”

장준경이 뒤늦게 이유를 물었다.

“한번 만날 때가 된 것 같아서.” 이규한이 대답하자 장준경이 웃으 며 물었다.

“혹시 명예욕이 생긴 것 아냐?”

“명예욕?”

“그동안 영화 제작해서 돈은 어느 정도 벌었으니까 협회장 자리에 욕 심이 생긴 것 아니냐는 뜻이야?”

비로소 말뜻을 이해한 이규한도 마

주 웃으며 농담을 꺼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도전해 볼까?” 한국영화 제작자협회 건물은 충무 로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 영화의 메카이자 상징성이 있 는 장소이기 때문에 충무로에 한국 영화 제작자협회가 들어선 것이었 다.

협회장실로 이규한이 들어서자 김 흥집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다가왔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의 이규한 대 표님?”

“맞습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 꼭 한번 만나 고 싶었는데 드디어 이렇게 만나게 됐군요.”

그가 내민 두툼한 손을 맞잡으며 이규한이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규한입니다.”

“젊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젊네요. 자,일 단 앉읍시다. 앉아서 얘기합시다.”

김흥집이 희끗한 머리를 쓸어 올리 며 이규한에게 소파에 앉기를 권했 다.

잠시 후,두 잔의 녹차가 도착했을 때 김흥집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초면에 실례되는 질문 하나만 던 져도 될까요?”

“편하게 말씀하시죠.”

“혹시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 이규 한 대표님의 지인이 있습니까?”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로터스 엔 터테인먼트와 꾸준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는 겁니 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작 품들에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가 장 많이 투자를 하긴 했지.’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했다.

“지인은 없습니다.”

“그래요?”

고개를 갸웃하는 김흥집은 여전히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규한의 말을 순순히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저도 하나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편하게 질문해도 됩니다.”

“작금의 영화 제작 현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규한은 빙빙 돌리는 대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는 예상 치 못했기 때문일까.

김흥집이 살짝 당황한 기색을 드러 내며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요?”

“협회장님께서 현재 영화 제작 현 장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 지 궁금해서요.”

“나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 까?” “내가 현재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한국 영화가 점점 경쟁력을 상실하 고 있다는 점이오. 할리우드를 비롯 한 외국 영화들이 자본과 기술,새 로운 스토리로 무장한 채 한국 영화 시장을 침공해서 계속 영역을 넓히 고 있지 않소? 그런데 한국 영화는 외국 영화들의 공세에 맞설 경쟁력 을 갖추고 있지 못해요. 한국 영화 는 너무 뻔하다,관객들이 이런 불 평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이 그 증거 라고 할 수 있소. 그리고 또 하나 우려하는 부분은 한국 영화의 인력 풀이 너무 좁다는 점이오. 같은 배 우,같은 감독이 계속 연출을 맡고 작품에 출연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인재가 등장하고 있지 않죠. 그래서 늘 어디서 본 듯한 스토리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결과적으로는 한 국 영화의 경쟁력이 줄어들고 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죠.”

김흥집이 열변을 토해 냈다.

‘옳은 이야기.’

조용히 듣고 있던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방금 김홍집은 한국 영화 산업이 직면해 있는 문제점들을 정확히 짚 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이 내심 원했던 대 답은 아니었다.

이규한은 영화 산업의 문제에 대해 질문한 것이 아니라,제작 환경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규한이 다시 입을 뗐다.

“왜 이런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생 각하십니까?”

“모두가 흥행에만 목을 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이 좌 지우지하고 있는 영화계 시스템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는군요.”

국내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의 최우 선 목표.

작품을 흥행시켜서 수익을 창출하

는 것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은 흥행 공식을 답습 한다.

‘기존에 흥행했던 영화의 공식을 따라가자.’

이게 작품을 흥행시키는 데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영화가 제작되 기 어렵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영 화가 천편일률적으로 변해 버린 원 인이었다.

“한국 영화는 너무 뻔하다」 관객들이 이런 불만을 표출하는 이 유이기도 했고.

“비슷하다고 할 수 있소.”

김홍집이 수긍한 순간,이규한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 다.

“그럼 해결책이 뭐라고 생각하십니 까?”

“해결책은 하나라고 생각하오. 관 객들이 뻔하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 로 좋은 작품을 많이 제작하는 것이 오.” 김홍집이 꺼낸 해결책은 정답이었 다.

이규한도 한국 영화 산업의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방법은 좋은 작품 을 많이 제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 다.

“좋은 작품은 누가 제작할까요?”

“그거야 당연히 재능과 실력이 있 는 제작자들 아니겠소?”

“그렇지만 재능과 실력이 있는 제 작자들은 영화계를 다 떠났거나 떠 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뻔하다고 느껴지 지 않는 좋은 영화를 만들려 하면 메이저 투자 배급사에서 흥행 공식 에 맞지 않다고 딴지를 겁니다. 그 래서 투자 유치의 벽을 넘지 못해서 제작이 무산됩니다. 운 좋게,아니 이 표현은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기 적적으로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의 투자 유치 벽을 넘는다고 해도 투사 자와 제작사의 수익 배분 비율이 8 대 2, 심한 경우에는 9 대 1입니다. 갖은 고생을 해 가면서 영화를 제작 하고 흥행에 성공을 거둔다고 하더 라도 제작자에게 남는 수익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 도 다반사죠. 상황이 이러한데 어느 누가 좋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나 서겠습니까?”

이규한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영화 계 제작 환경의 문제점들을 조목조 목 지적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일까.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김홍집 이 물었다.

“이 대표가 진짜 원하는 게 뭐요?”

“딱히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뭘 확인하고 싶었다는 거요?”

“한국영화 제작자협회의 수장이신 김 대표님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제 작 환경과 여건에 대해 알고 계신지 를 말입니다.”

“대충은… 알고 있소.”

잠시 후 김홍집에게서 대답이 돌아 왔다.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수수방관하 고 있는 겁니까?’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언성을 높이 면서 따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목구멍까지 치 밀어 올랐던 말을 다시 삼켰다.

김흥집과 싸우기 위해서 여기 찾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네요.”

“뭐가 다행이란 거요?”

“김 대표님이 어려운 영화 제작 환 경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이 다행 입니다.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 해결 책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

“나도… 선후배 제작자들을 위해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중이오.”

“기대하겠습니다.”

이규한이 앞에 놓인 미지근하게 식 어 버린 녹차를 들어 한 모금 마신 후,이곳을 찾아온 진짜 용건을 꺼 냈다.

“부탁이 하나 있어서 찾아왔습니 다.”

“내게 부탁이 있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어떤 부탁이오?”

김흥집이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반응을 살피던 이규한이 미리 사 갖고 온 비타민 음료 박스를 탁 자 위에 올려놓고 뜸을 들였다.

이규한이 탁자 위에 올려놓은 비타 민 음료 박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

던 김흥집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어려워할 것 없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충 알고 있으니 까. 투자 유치가 잘 안 됩니까?”

“네?”

“너무 어려워할 필요 없다니까.”

김흥집이 친절하게 말한 순간, 이 규한이 정색한 채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 다.”

…?"

“제가 부탁하려는 건 투자와 관련 된 게 아닙니다.”

비로소 본인이 단단히 오판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김흥집의 표 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데 아까 왜 투자 관련 이야기 를 꺼내신 겁니까? 김 대표님과 투 자 관련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

김흥집의 직책은 한국영화 제작자 협회장.

그가 투자 유치와 관련해서 어떤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했다.

그 부분을 이규한이 지적하자 김흥 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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