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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86화 (186/272)

186화

미안하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이규한이 더욱 당황 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돌발 상황이 벌어진 탓에 축하연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 게 쏠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최호인과 함께 축하연에 참석했던 여동생 이규리가 놀란 표정으로 다 가왔다.

“오빠.” “맞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상상하고 있는 게 맞느냐 고.”

이규한이 두 눈을 연신 깜박였다.

남지유가 갑자기 자신의 품에 안긴 채 흐느끼며 책임지라는 말을 꺼냈 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거 아냐.”

이규한이 재빨리 대답했다. 그렇지만 이규리는 의심쩍은 시선 을 거두지 않았다.

“맞는 것 같은데.”

“그런 게 아니라……

“설마 아니지?”

“또 뭐가?”

“오빠, 이렇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 은 아니지?”

‘돌겠네.’

후우.

이규한이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한다 한들 변명 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터.

그래서 이규한이 난감한 표정을 지 은 채 남지유의 울음이 멈추기를 기 다렸다.

잠시 후,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남지유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드는 것을 느낀 이규한이 물었다.

“뭘 책임지라는 거예요?”

“대표님 덕분에 진짜 연기자가 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연기가 재밌어 졌어요. 그러니까 계속 연기할 수 있도록 대표님이 책임져 주세요.”

‘이제 오해가 풀렸겠지?’

이규한이 이규리에게 고개를 돌렸 다.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미안. 내가 오해했네.” “규리야,서운하다.”

“응?”

“나와 함께 일한 배우들과 스태프 들은 다 날 신뢰하는데,하나뿐인 여동생인 너만 날 신뢰하지 않고 의 심한다는 게 서운해.”

“미안하다니까. 그런데 상황이 좀 그랬잖아?”

이규리가 멋쩍은 표정으로 대꾸한 순간,이규한의 품에 안겨 있던 남 지유가 재빨리 빠져나왔다.

소매로 눈가를 닦은 남지유가 이규 리에게 인사했다.

“대표님 여동생 분이세요?”

“맞아요. 이규리라고 해요. 지난번 에 호텔 일식집에서 만났었죠?”

“네. 그나저나 너무 부러워요.”

“뭐가요?”

“이 대표님처럼 자상하고 든든한 오빠가 있으니까요.”

“지유 씨는 오빠가 없나 보죠?”

“저는 외동딸이에요.”

“그래서 부러운 거예요.”

“네?”

“막상 오빠가 있으면 무척 불편하 거든요. 잔소리도 엄청 심하고.”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이규한이 불

만을 드러냈다.

“내가 잔소리가 심한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엄청 심하거든요. 영화 하는 사람 이랑 결혼하면 안 된다고 나한테 얼 마나 잔소리를 했는지 그새 벌써 잊 었어?”

“그건 노파심 때문에……

“그게 바로 잔소리거든요.”

‘껍

이규한의 말문이 막혔을 때,남지 유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저도 그 잔소리가 듣고 싶어요.”

올걸요.”

“진짜 좋을 것 같은데……

“취향 특이하네요. 왜 잔소리가 듣 고 싶은 건데요?”

“잔소리해 줄 사람이 없거든요.”

“부모님은요?”

“두 분 모두 외국에 계세요.”

“어디요?”

“미국이요.”

“그럼 자주 만나긴 힘들겠네요.”

“그래서 가끔씩 잔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남지유가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규 한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을 때였 다.

“그럼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요.”

“규리 씨 집이요?”

“우리 집 남자들이 잔소리가 심한 편이거든요. 아버지와 오빠와 함께 있다 보면 금방 잔소리가 그리워지 지 않게 될 거예요.”

이규리가 장담한 순간,남지유가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진짜 가도 돼요?”

“그럼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마 진짜 찾아오는 건 아니겠 지?’

이규한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고깃집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오 늘 축하연에 참석할 거라고 전혀 예 상치 못했던 사람이 들어왔다.

‘왜… 여기 온 거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김대환 대표 가 축하연 장소로 들어서는 것을 발 견한 이규한이 당황했다. 그리고 당

황한 것은 이규한만이 아니었다.

축하연에 참석한 배우들과 스태프 들도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제히 본인에게 쏠리는 시선을 알 아챈 김대환이 웃으며 말했다.

“왜들 그러나? 내가 못 올 곳에 왔나?”

김대환 대표가 참석하면 안 되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는 엄연히 ‘나를 사랑한 아저씨’ 의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씨제스 엔 터 테 인 먼트의 대표이사였으니까.

그래서 이규한이 김대환의 앞으로 다가가며 대답했다.

“잘 오셨습니다.”

“반겨 줘서 고맙네. 오늘 계산은 내가 하지.”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나를 사랑한 아저씨’가 4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을 축하하 기 위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김대환에 대한 이규한의 감정은 여 전히 곱지 않았지만, 굳이 이 자리 에서 티를 내며 각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웃으며 대답한 순 간,김대환이 입을 뗐다.

겠나?”

그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최호인을 위해서 ‘나를 사랑한 아 저씨’라는 작품을 흥행시키려고 최 선을 다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사퇴 압박에 시달리면서 궁지에 몰렸던 김대환 대표도 구하게 된 셈이었다.

“자,내가 계산하는 거니까 모두 실컷 먹고 마시게.”

“감사합니다.”

“대표님,최고예요.”

“잘 먹겠습니다.” 스태프들이 환호하며 외치는 것을 들으며 환하게 웃던 김대환이 이규 한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와 술 한잔하세.”

“둘이서요?”

김대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 다.

“자네와 둘이서 한잔하기 위해서 찾아왔네.” “꼼장어랑 달걀말이 그리고 소주부 터 먼저 갖다주게.”

고깃집 근처에 위치한 포장마차에 들어서자마자 김대환이 주문했다.

어묵 국물과 함께 먼저 도착한 소 주병을 향해 이규한이 손을 뻗었다.

“받으시죠.”

“고맙네.”

김대환의 잔을 채워 준 후,이규한 이 자신의 앞에 놓인 잔에도 소주를 채웠다.

‘무슨 용건으로 찾아왔을까?’

소주병을 내려놓으며 이규한이 속 으로 생각했다.

김대환은 우발적으로 행동하는 타 입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규한을 만나기 위해서 축하 연에 참석했다고 이미 말했고,분명 이 어떤 용건이 있어서 움직였으리 라.

그래서 김대환이 일부러 자신을 찾 아온 용건에 대해서 이규한이 짐작 해 보고 있을 때,그가 질문했다

“포장마차는 자주 찾는 편인가?”

“영화 제작 일을 시작하고 난 후 자주 찾아왔습니다.”

“돈이 없어서?”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시켜 놓고 소주 한잔을 마시며 사치를 부렸던 셈이죠.” “하하핫. 예전과 똑같군.”

김대환이 껄껄 웃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함께 웃는 대신 질문을 던 졌다.

“미안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누구에게 미안하냐고 묻는 건가?”

“영화 일을 하는 후배들에게요.”

9”

“대표님도 피디로 영화 일을 시작 했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작품 제작 도 하셨고요. 맞습니까?”

“맞네.”

“그때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힘들었네. 아까 자네 말처럼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옛날 추억을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일까.

김대환이 기꺼운 표정을 지은 채 덧붙였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 몸이 부서 져라 일을 하는데도 돈이 없었지. 영화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생계가 유지되지 않아서 닥치는 대 로 다른 일을 하면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김대환이 추억 에 잠긴 채 꺼내는 그 시절 이야기 를 귀담아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 서 김대환의 말을 도중에 자르며 이 규한이 덧붙였다.

“지금 영화를 하는 선후배들도 똑 같이 힘듭니다. 그래서 아까 대표님 께 후배들에게 미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던 겁니다.”

“무슨 뜻인가?”

“대표님은 이미 경험하셨기 때문에 영화 일을 하는 후배들이 얼마나 힘 든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알고 계 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체 왜 후 배들을 돕기 위해 나서지 않으시는 겁니까? 아니,돕는 것까지는 바라 지 않습니다. 왜 오히려 영화 일을 하는 후배들을 더 힘들게 만드시는 겁니까?”

“내가 후배들을 더 힘들게 했다?”

“얼마 전에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 서 ‘사월의 봄’이라는 작품에 투자 하셨죠?”

“그건 어떻게 알았나?”

“제가 어떻게 알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수익 배분 비 율이죠.”

“수익 배분 비율?”

“투자사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제작사인 시네 박스의 수익 배분 비 율이 9 대 1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게 영화를 제작하는 후배들을 더 궁 지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김대환이 소주잔을 들어 입으로 가 져갔다.

그 잔을 단숨에 비운 후 김대환이 물었다.

“혹시 어윤수 대표와 아는 사인

가?”

“어윤수 대표요?”

스의 어윤수 대표 말일세. 어윤수 대표와 친분이 있어서 이런 질문을 던진 게 아닌가?”

" ……?"

“어윤수 대표가 뭐라고 하던가? 수 익 배분 비율을 8 대 2로 바꿔 달 라고 자네에게 부탁이라도 하던가?”

김대환이 추궁하듯 잇따라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지금 완전히 맥을 잘 못 짚고 있었다.

이규한은 어윤수 대표를 전혀 몰랐 으니까.

“모릅니다. 직접 만난 적은 물론이

고,이름도 방금 처음 들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네.”

“그런데 왜 ‘사월의 봄’이란 작품 을 입에 올렸나?”

“‘사월의 봄’이란 작품을 입에 올 린 이유는 투자 배급사의 갑질로 인 해 영화를 제작하는 후배들이 더 힘 들어졌다는 것을 예로 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규한이 지체 없이 대답하자 김대 환이 소주잔을 매만지며 다시 물었 다.

“어차피 자네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는 영화는 여전히 수익 배분 비율이 7 대 3인 것으로 알고 있는 데.”

“맞습니다.”

“그런데 왜 자네가 굳이 나서서 이 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가?”

이규한이 대답했다.

“누군가는 나서야 하니까요.” “왜 꼭 자네가 나서야 하는 거지?” 김대환은 당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그건……

사명감 때문이라고 대답하려 했던 이규한이 잠시 망설일 때였다.

“혹시 배가 고파야 진정한 예술가 가 된다는 말,들어 본 적 있나?”

“네.”

“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네. 배 고프고 힘든 생활을 겪어 봐야 악을 품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거든.”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다,다른 후배들도 고생을 해야 좋 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방금 김대환이 한 말 속에 숨은 진짜 의미였다.

‘꼰대 마인드.’

이규한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꼰대 마인드로 무장한 김대환에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를 설득하 거나 납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소 주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을 때였다.

“내가 요즘 가장 후회하는 게 뭔지 아나?”

김대환이 질문했다.

잠시 고민하던 이규한이 대답했다. “‘광안리’와 ‘민란’ 그리고 ‘해적의 시대’에 투자를 결정했던 것 아닙니 까?”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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