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내 탓이오 (1)
당시 ‘떠나가다’가 역주행에 성공 하며 음원 순위 1위에 등극했던 것 은 큰 화제가 됐다. 그리고 이규한 도 ‘떠나가다’라는 노래를 좋아했기 에 황재천이 매체와 했던 인터뷰 내 용을 정독했던 적이 있었다.
-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그리고 역 주행을 할 수 있었던 계기를 굳이 꼽자면 SNS입니다. 제 소속사 규모 가 영세한 편이라 홍보에 큰돈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홍 보비가 저렴한 편인 SNS 마케팅에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SNS를 통해 서 ‘떠나가다’라는 노래가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역주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황재천은 SNS 마케팅을 역주행의 요인으로 꼽았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한 가지 요인이 더 있다고 판단했다.
바로 ‘떠나가다’라는 중독성 강한 노래가 가진 힘이었다.
‘입소문이 중요해.’
SNS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서,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더욱 빠 르게 퍼졌다. 그리고 재밌다는 입소 문을 타면,굳이 홍보를 하지 않아 도 관객들이 스스로 찾아왔다.
“대표님은 SNS 안 하시잖아요?”
김미주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웃 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SNS 마케팅 전문가를 고 용하려는 거야.”
잠시 후,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이 규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요새 박 대표님이 안 보이네.” 그 말을 하자마자 김미주가 동조했 다.
“요새 안 와요. 그리고 너무 안 보 이니까 좀 서운하긴 하네요.”
“그래? 왜 안 오지? 그때 너무 구 박했나?”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했을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발신자가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권 지영 팀장임을 확인한 이규한이 서 둘러 전화를 받았다.
“권 팀장,벌써 결론이 났어?”
“아직 안 났습니다.” “그런데 왜 전화했어?”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서 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권지영의 목소리는 뾰족했다.
‘왜 화가 났지?’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이미 결론이 났던데요?”
“응?”
“빅박스에서 ‘은밀하면서도 위대하 게’의 투자와 배급을 맡는 게 확정 됐으니까요.” 이규한이 휴대전화를 고쳐 쥐었다.
빅박스에서 ‘은밀하면서도 위대하 게’의 투자와 배급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확 정이 된 것은 아니었다.
“헛소문이야.”
그래서 이규한이 딱 잘라 말했지 만, 권지영은 여전히 뾰족한 목소리 로 덧붙였다.
“헛소문이 아니던데요?”
“대체 누가 그런 헛소문을……
“빅박스 백기원 팀장과 직접 통화 했어요.” 이규한의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된 거지?’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 았다.
“권 팀장, 일단 끊어 봐.”
권지영과의 통화를 서둘러 마친 이 규한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 고 램프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찾 아갔다.
“이 대표,어쩐 일이야?”
하태열이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이규한을 확인 하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박 대표님 지금 어디 계세요?” “대표님? 오늘 출근 안 하셨는데.”
“그래요?”
이규한이 박태혁과 통화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통화 버 튼을 눌렀지만,고객의 전화기가 꺼 져 있다는 안내 멘트가 수회가 너머 로 들려왔다.
이규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채서일까.
하태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대표,무슨 일, 있어?”
“아직 저도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 어요. 박 대표님을 직접 만나서 이 야기를 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음이 조급해진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지이엉.
휴대전화에 문자가 도착했다.
그 문자를 확인한 이규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 선샤인.
이규한이 천천히 계단을 오른 후, 바의 문을 열었다.
바 테이블 좌석에 혼자 앉아 있는 박태혁의 익숙한 등을 확인한 이규 한이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드르륵.
의자를 빼내고 옆자리에 앉자,박 태혁이 고개를 돌렸다.
“왔냐?”
“왜 여기서 만나자고 한 겁니까?”
- 규한아. 예전 램프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찾아와.
아까 박태혁이 보냈던 문자의 내용 이었다.
얼마 전까지 램프 엔터테인먼트 사 무실이었던 공간은 이제 모던 바로 바뀌어 있었다.
이규한에게도 추억이 깃든 장소. 그래서 모던 바 내부를 둘러보고 있을 때,박태혁이 대답했다.
“그냥 여길 찾아오고 싶었어.”
그 대답을 마친 박태혁이 양주병을 들어 올렸다.
“한 잔 받아.”
이규한이 잔을 들어 올리는 대신, 박태혁이 손에 쥔 양주병을 살폈다.
“발렌타인 21년산이네요.”
“잘 아네. 좋아하는 술이야?”
“그건 아닙니다. 제가 양주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는 것,아시잖아요? 그래도 대충 가격은 알고 있습니 다.”
발렌타인 21년산의 가격은 면세점 에서 구입할 경우 약 15만 원,일반 주류점에서라면 20만 원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런 바에서 주문한다면 가격이 훌쩍 뛰었다.
대략 40만원 대 후반의 가격일 거 라고 이규한이 예상했을 때였다.
“걱정할 것 없어.”
“ 구”
키핑해 뒀던 술이거든.”
키핑을 해 뒀다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바 선샤인을 찾아왔다는 뜻이 었다. 그리고 박태혁에게 비싼 양주
를 사 줄 사람은
“백기원 팀장이 술을 샀습니까?”
이규한이 묻자 박태혁이 고개를 절 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너,무당 해도 먹고살겠다.” “어서 받아.”
박태혁이 재차 술을 권했다. 그렇 지만 이규한은 술잔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지금 박태혁과 웃으며 술잔을 나눌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는 그냥 냉수를 마시겠습니다.”
“왜?”
“술 마시면 사고 칠 것 같아서요.”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박태혁이 표 정을 굳혔다.
그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규한 이 물었다.
“왜… 그랬습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박태혁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일단 시치미를 뗐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규한이 살짝 언성을 높였다.
“다 알고 찾아왔습니다. 왜 백기원 팀장과 투자 계약서를 체결한 겁니 까?”
더 버티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걸 까.
박태혁이 잔을 들어 단숨에 비운 후 대답했다.
“내 상황이 좀 급했다.”
“제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언제까지 기다려? 기약이 없잖
아?”
쪼르륵.
박태혁이 빈 잔에 양주를 채우며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면 제 발로 찾아온 기 회를 놓치게 될까 봐 무서웠다.”
“그래도 이건 아니죠. 저도 ‘은밀 하면서도 위대하게’의 공동 제작자 입니다. 저와 상의도 없이 투자 계 약을 체결하는 게 어딨습니까?”
“만약 얘기했으면? 그랬으면 네가 동의했을까? 안 했을 거잖아?”
“그래도 저와 먼저 상의부터 한 다 음에…… “이미 끝났어.”
박태혁이 딱 잘라 말했다.
“네게 남은 선택지는 셋이야. 계속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든가 고소를 하던가. 그도 아니면 손해배상을 받 고 작품에서 빠지든가.”
세 가지 선택지를 들은 이규한이 바 테이블 아래로 늘어트리고 있던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한 대 치고 싶다.’
뻔뻔하게 선택지를 입에 올리고 있 는 박태혁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이규한이 물었다.
“백기원 팀장이 알려 주던가요? 이
런 식으로 대처하라고?”
“그게……
“고소를 해 봐야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그 사이에 영화를 제작해서 개봉하면 된다, 그 사실을 이규한도 알 테니 절대 고소는 못 할 거다, 그러니 적 당한 선에서 손해배상을 해 주고 끝 내라, 물론 손해배상 비용은 빅박스 측에서 지급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 다.”
이규한의 예측이 정확하기 때문일 까.
박태혁이 홈칫 놀라는 것을 확인한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여기서 만나자고 했군요.”
“응?”
“저와 다시는 안 볼 결심을 굳힌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만나서 확실히 연 을 끊으려는 것 아닙니까?”
“규한아.”
“말씀하시죠.”
“미안… 하다.”
박태혁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 다.
그런 그가 미웠다.
호의를 베풀었으나 악의로 되갚은 셈.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상황인 데 어찌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있을 까.
드르륵.
이규한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벌써 일어나?”
그 모습을 확인한 박태혁이 당혹스 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안 일어나면 진짜 한 대 칠 것 같아서요.”
? ‘……?"
“그러니까 막지 마세요.”
이규한이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 린 순간,박태혁이 서둘러 물었다.
“대답은? 대답은 하고 가야지?”
“곧 알려 드리죠.”
“언제?”
이규한이 대답하지 않고 바를 빠져 나갔다.
‘쓰다.’
소주잔을 단숨에 비운 이규한이 미 간을 찌푸렸다.
기분이 더러워서일가.
오늘따라 유난히 술이 쓰게 느껴졌 빈 잔을 채우기 위해서 이규한이 탁자 위에 놓아 둔 소주병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하태열이 조금 더 빨랐다.
“내가 따라 줄게.”
조르륵.
하태열이 소주병을 기울여 이규한 의 앞에 놓인 잔을 채우며 덧붙였 다.
“미안하다.”
그제야 이규한이 고개를 들어 하태 열을 바라보았다.
미안한 마음이 커서일까.
자신과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애 꿎은 소주잔만 매만지고 있는 하태 열을 발견한 이규한이 입을 뗐다.
“선배가 저한테 미안할 게 뭐가 있 어요? 선배도 아무것도 몰랐잖아 요.”
“그래도… 나도 램프 엔터테인먼트 직원이니까.”
“그러지 마세요. 선배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이규한이 소주잔을 들어 입으로 가 져갈 때, 하태열이 물었다.
“나도 일조했지?”
“박태혁 대표에게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판권을 넘기고 그를 도 와주기 위해서 나선 것,나 때문인 것도 있었잖아?”
이규한이 쓰게 웃었다.
하태열을 박태혁 대표에게 추천해 서 램프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도록 만든 장본인이 이규한이었다.
그게 램프 엔터테인먼트에 호의를 베풀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는 것까 지는 부인하기 힘들었다.
“박태혁 대표 립지?”
그때,하태열이 다시 물었다.
려갈기고 싶을 정도로.”
“그냥 한 대 치지 그랬어?”
“불쌍해서 참았어요.”
“응?”
“저 인간도 오죽 답답하고 급했으 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까 오히려 안돼 보이더라고요.”
이규한이 소주를 마신 후 대답하 자,하태열이 새삼스러운 시선을 던 졌다.
그 시선을 확인한 이규한이 물었 다.
“왜 그렇게 보세요?”
“책에서만 보던 성인군자가 여기 있었네.”
그 대답을 듣고 픽 웃은 이규한이 물었다.
“이런 경우에 성인군자들은 어떻게 대처하던가요?”
“보통 ‘내 탓이오.’ 하고 넘기지.” “내 탓이라.”
그 말을 작게 되뇌던 이규한이 천 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명청했어요.”
“자책할 필요 없어. 이번 일은 이 대표가 아니라 박태혁 대표가 무조 건 잘못한……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으니까요.”
“덕분에 배운 게 있어요.”
“뭘 배웠는데?”
이규한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공동 제작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는 것이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