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김대환은 호의가 담긴 시선을 던지 고 있었다.
한국 영화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자 중 한 사람인 김대환의 마음을 얻은 셈 이었지만,이규한은 전혀 기쁘지 않 았다.
‘결국 날 이용하려 할 테니까.’ 김대환의 속셈이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규한은 순순히 그의 바람대로 움직여 줄 생각이 없 었다.
‘나도 이용할 건 이용하자.’
이규한이 결심을 굳히고 입을 뗐 다.
“‘나를 사랑한 아저씨’가 무척 마 음에 든다고 하셨으니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홍보가 필요합니다.”
“홍보? 그거야 저기 있는 김덕원 팀장과 논의를 해서……
“쓰리 트랙의 홍보가 필요합니다.”
김대환의 말을 도중에 자르며 이규 한이 말했다.
“무슨 뜻인가?”
“우선 북소리를 요란하게 내 주십 시오.”
“북소리?”
의아한 시선을 던지는 김대환에게 이규한이 덧붙였다.
“상대가 지레 겁을 집어먹게 만들 어야 하거든요.”
〈‘나를 사랑한 아저씨’,올 가을 극 장가 최고의 기대작으로 떠오르다.〉
포털 사이트에 떠올라 있는 기사의 제목을 확인한 이규한이 그것을 클 릭했다. 그리고 기사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이규한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제작 시 사회에는 기존의 관례를 깨고 이번 작품의 투자와 배급을 맡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김대환 대표이사가 직 접 방문했다. 후문으로는 김대환 대 표이사가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제작 시사회를 방문한 후 작품에 크 게 만족했고, 특히 완성도 측면에서 무척 감탄했다고 한다. 이에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측은 사활을 걸고 ‘나 를 사랑한 아저씨’ 흥보에 전력투구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일단… 북소리는 울렸다.”
잠시 후, 이규한이 혼잣말을 꺼냈 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김대환 대 표이사가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제작 시사회에 직접 참석한 것.
또,그가 제작 시사회에서 작품을 보고 난 후 크게 만족감을 드러냈다
는 것.
‘나를 사랑한 아저씨’와 엇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려는 다른 작품들에게 는 분명히 경각심을 심어 줄 수 있 는 기사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었다.
〈연기자 남지유의 재발견이 될 ‘나 를 사랑한 아저씨’.〉
〈작품 보는 안목이 탁월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확신,‘나 를 사랑한 아저씨’를 기대케 하는 요인.〉 겠다는 각오를 밝힌 이성균,과연 ‘나를 사랑한 아저씨’로 오랜 한을 풀 수 있을까?〉
〈‘수상한 여자’부터 ‘변호사’,‘암 살,보이지 않는 총구’까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나를 사랑 한 아저씨’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 유.〉
‘나를 사랑한 아저씨’와 관련된 기 사들이 잇따라 쏟아져 나왔다.
“연락이 와야 하는데.”
그 기사 제목들을 훑어보던 이규한 이 혼잣말을 꺼냈을 때였다.
“요새 연애하세요?”
김미주가 불쑥 물었다.
“갑자기 웬 연애 타령이야?”
“대표님이 평소와 많이 다르잖아 요.”
“내가? 어떤 부분이 다른데?”
“휴대전화를 손에서 떼지 못하면서 누군가의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모 습. 꼭 연애 초기 증상이거든요.”
‘듣고 보니 비슷하네.’
이규한이 픽 하고 실소를 홀렸을 때였다.
“그냥 대표님답게 하세요.” “나답게 하라니?”
“대표님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에 요. 그러니까 여자 쪽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말고,먼저 연락 해 보세요.”
김미주의 조언을 듣던 이규한의 입 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가 내린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 이라는 평가.
극찬이란 사실을 이규한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김미주는 지금 단단히 착각 하고 있었다.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었으 니까.
그렇지만 김미주의 조언은 분명히 도움이 됐다.
“미주 씨,충고 고마워.”
해서 이규한이 말하자 김미주가 두 눈을 빛냈다.
“진짜 연애를 하긴 하나 보네요.”
“아닌데. 그렇지만 먼저 연락이 오 길 기다리긴 했어.”
“누구한테서요?”
“권지영 팀장.”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에서 근무하는 권지영 팀장이요?” “왜요?”
“‘나를 사랑한 아저씨’가 좋은 작 품이라는 걸 알려 줘야 하거든.”
이규한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전후사정을 알지 못하는 김미주는 제대로 이해한 기색이 아 니었다.
“‘나를 사랑한 아저씨’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 았잖아요? 그런데 왜 로터스 엔터테 인먼트의 권지영 팀장에게 ‘나를 사 랑한 아저씨’가 좋은 작품이라는 걸 어필하려는 건데요?” “미주 씨를 위해서야.”
“날 위해서라고요?”
“그래. 인센티브 받게 해 주려고 노력 중이거든.”
조금 전까지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미주는 이규한이 꺼낸 ‘인센 티브’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표정 이 일변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갑자기 대화에 의욕을 드러내고 있 는 김미주에게 이규한이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그 설명을 모두 들은 후, 김미주가 두 눈을 빛냈다.
“일종의 밀당 개념이네요.” “밀당? 그런가?”
이규한이 고개를 갸웃했을 때,그 녀가 다시 말했다.
“빨리 서두르세요.”
“왜 서두르라는 거야?”
김미주가 대답했다.
“서로 긴가 민가 할 때는 먼저 확 실하게 괘기를 박는 편이 낫거든 요.” 로터스 엔터테인먼트 투자팀 사무
이규한이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자 마자 권지영이 벌떡 일어났다.
“오셨어요?”
이규한을 향해 다가오는 권지영의 표정은 무척 복잡했다.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가 갑자기 적의를 품었고,이내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권 팀장,왜 그래?”
“제가 뭘요?”
“왜 사람을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푹푹 내쉬어?”
말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됐는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던 한 팀에 서 적으로 만나게 됐잖아요.”
“적으로 만났다는 표현은 좀 과하 지 않아?”
“‘공범들’과 ‘나를 사랑한 아저씨’ 의 개봉 시기가 겹치니까 적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지 않잖아요?”
권지영은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 않 았다.
그런 그녀에게 이규한이 제안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조용한 곳에
서 얘기하자.”
“그렇지 않아도 회의실 비워 뒀습 니다.”
권지영이 앞장서서 회의실로 들어 갔다.
이규한이 권지영의 맞은편에 앉으 며 물었다.
“오늘은 왜 케이크가 없어?”
아이스커피 두 잔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 이규한이 질문하 자,권지영이 대답했다.
“바라는 게 너무 많으신 것 아니에
요?”
“부부 싸움 하고 나서 아침밥 차려 주는 와이프 본 적 있으세요?”
“내가 욕심이 과했네.”
이규한이 순순히 인정한 순간,권 지영이 화제를 전환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가요?”
“무슨 뜻이야?”
“‘나를 사랑한 아저씨’와 관련된 기사들 말이에요. 어디까지가 진실 이고,어디까지가 과장인지 알고 싶 어요.”
권지영의 이야기를 들은 이규한이 대답했다.
“대부분 진실이야.”
“그럼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김대환 대표가 정말 ‘나를 사랑한 아저씨’ 의 제작 시사회에 참석했단 말인가 요?”
“응. 나도 예상치 못했는데 참석했 어.”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권지영이 다 시 질문했다.
“왜요?”
권지영 역시 제작 시사회에 메이저 투자 배급사 대표이사가 참석하는 게 일반적인 케이스가 아님을 잘 알 고 있었다.
이규한이 대답했다.
“마음이 급해서겠지.”
“조급해서 참석했다?”
“‘광안리’와 ‘민란’ 그리고 ‘해적의 시대’까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대작들이 모 두 흥행에 실패한 상황이야. 그래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위상이 흔들 리고 있고,김대환 대표 역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권 팀장도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죠.”
“그로 인해 궁지에 몰린 김대환 대 표는 어떤 돌파구가 필요했을 거 야.” “그 돌파구가… ‘나를 사랑한 아저 씨’라는 말씀이세요?”
“맞아.”
이규한이 대답한 순간 권지영이 고 개를 갸웃했다.
“‘나를 사랑한 아저씨’가 김대환 대표의 돌파구가 되기에는 너무 약 하지 않나요?”
“왜 약하다고 생각해?”
권지영이 대답했다.
“대작과는 한참 거리가 머니까요.” ‘공범들.’
로터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공범들’과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개봉 시기가 겹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권지영이 가만히 손을 놓고 있었을 리 없었다.
그녀 역시 ‘나를 사랑한 아저씨’라 는 작품에 대해서 나름대로 조사를 했고,그 조사를 마친 후에 권지영 이 내린 결론이었다.
신인 감독 최호인,티켓 파워와는 거리가 먼 남자 주인공 이성균 그리 고 연기 초보나 다름없는 여자 주인
공 남지유까지.
일단 ‘나를 사랑한 아저씨’는 세팅 이 별로였다.
게다가 이규한이 손익분기점을 낮 추기 위해서 노력한 만큼, 제작비 규모도 무척 작은 편에 속했다.
이것이 권지영이 이런 결론을 내린 근거였다.
‘정확해.’
그녀가 내린 결론은 정확했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솔직하게 대답 할 생각이 없었다.
이규한이 로터스 엔터테인먼트를 찾아와서 권지영을 만나는 데는 ‘공 범들’의 개봉 시기를 뒤로 늦추게 만들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 목적을 달성키 위해서는 허풍이 필요했다.
포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마치 좋은 패를 손에 들고 있는 것처럼 블러핑을 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 었다.
그래서 이규한이 여유 있는 표정으 로 입을 뗐다.
“김대환 대표가 관심을 드러낸 데 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
뭐죠?”
“우선 작가진이야. 쌍천만 작가들 인 안유천과 김단비가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각색 작업에 참여했거든.” 안유천과 김단비.
두 작가에 대해서는 권지영도 잘 알고 있었다.
또,두 작가의 실력이 무척 뛰어나 다는 사실도.
“두 명의 작가가 ‘나를 사랑한 아 저씨’의 각색 작업에 참여했어요?”
“내가 부탁했어.”
“조금 긴장이 되네요.”
빈말이 아니었다.
한 채 물었다.
“나머지 하나의 이유는 뭔가요?”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 9”
“제작비 규모가 크지 않다,세팅을 포함한 다른 부분도 불안하다,세간 의 이런 평가에 대해서 김대환 대표 가 이런 말을 했어. 블루문 엔터테 인먼트에서 제작하는 작품이니까 무 조건 신뢰한다고.”
‘과속 삼대 스캔들’부터 ‘수상한 여 자’,‘변호사’ 그리고 ‘암살자,보이 지 않는 총구’까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거 나 이규한이 제작에 관여했던 작품 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 필모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 니,블루문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작 업하려는 감독과 배우들,투자자들 이 늘어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는 작품들은 신뢰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 다.
블루문 엔터테인먼트가 일종의 브 랜드로 자리를 잡은 셈이랄까.
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 보였 다.
잠시 후,권지영이 물었다.
“자신 있으세요?”
1억 관객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