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억 관객 제작자-177화 (177/272)

177화

우문현답(愚問賢答)

“그보다… 흥행할 수 있겠지?”

이규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가 물은 것은 최호인의 감독 입봉작인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흥행 여부였다.

“그야 모르지. 어떤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지는 신만 알 수 있으니까.”

“그래도 오빠가 제작했던 작품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었잖아?”

“운이 따랐던 거야.”

“운도 실력이잖아?”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규한이 픽 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원하는 대답이 뭐야?”

“응?”

“지금까지 내가 제작했던 영화는 대부분 성공했어. 그러니까 최 감독 이 연출을 맡은 ‘나를 사랑한 아저 씨’도 분명히 흥행에 성공할 거야. 이런 대답을 원하는 거 아냐?”

“답정 너 였나?”

이규한이 고개를 돌려 멋쩍게 웃는

이규리를 살폈다.

이규리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당연하다 는 듯이 송아현이 떠올랐다.

지금의 송아현을 말하는 것이 아니 었다.

예전 이규한의 아내였던 송아현을 말하는 것이었다.

당시 송아현의 얼굴에는 항상 불안 감이 깃들어 있었는데.

지금 이규리와 송아현의 모습이 겹 쳐지는 느낌이었다.

“자신 있어?”

“무슨 자신?”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야. 영화감 독의 아내로 살다 보면 똑같은 상황 이 계속 반복될 거야. 최 감독이 연 출한 영화의 홍행 여부에 촉각을 세 우면서 항상 불안해하고 마음을 졸 일 수밖에 없어. 그런데도 자신 있 냐는 뜻이야?”

“많이 힘들 거란 것,나도 알아.”

잠시 침묵하던 이규리가 불족 물었 다.

“오빠는 왜 영화 일을 하는 거야?”

“좋아서. 힘든 길이라는 걸 아는데 도 포기가 안 되네.” “호인 씨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내 가 좋아하는 건 호인 씨야.”

<……?"

“영화감독 최호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최호인이란 사람을 좋아하 는데 그 사람이 마침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가진 거야. 그래서 힘든 순 간이 닥치더라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우문현답(愚問賢答)’

이규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규 한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사자성 어 였다.

잠시 후, 이규한이 이규리에게 새

삼스런 시선을 던졌다.

“왜 그렇게 봐?”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서 봤어.” “예전에 다 컸거든요.”

이규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불안감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 이규리를 위해서 이규한이 말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이야.”

“그게 무슨 뜻이야?”

“최 감독이 이번 작품만 하고 감독 생활을 그만두는 건 아니잖아? 너무 욕심내지 말고 길게 보자는 거야.” 이규한이 부연 설명을 하자,이규 리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 표정 변화를 통해서 자신의 실 수를 깨달은 이규한이 서둘러 입을 뗐다.

“아까도 말했지만 어떤 영화가 개 봉해서 흥행에 성공하는가 여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해. 그래서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어. 내가 보기에 ‘나를 사랑한 아저씨’는 손익 분기 점은 넘길 수 있을 거야.”

이규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일 까.

비로소 이규리의 표정이 밝아졌다.

“기왕이면 손익 분기점 넘기고 나 서 좀 더 흥행했으면 좋겠다. 그러 니까 오빠가 능력 좀 발휘해 줘.”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운전대를 잡은 채 전방을 응시하던 이규한이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바라고 있는 바야.’ 촬영이 막바지로 치달아 가는 현 장.

주연 배우들인 이성균과 남지유가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이규한이 두 사람이 펼치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무서웠어요. 사람들이 날 싫어할 까 봐.”

“나는 널 싫어하지 않아.”

“고마워요. 아저씨 덕분에… 아저 씨 덕분에 숨을 돌릴 수 있었어요. 세상에서 도망치느라 항상 숨이 가 빴는데 아저씨 덕분에 이제 숨이 쉬 어져요.”

“마지막으로… 악수나 한번 할까?” “한 번만 안아 주세요.”

이성균이 양팔을 벌렸다.

남지유가 그의 품에 안겨서 크게

숨을 들이쉰 순간,최호인이 디렉션 을 내렸다.

“컷,수고하셨습니다.”

촬영 현장을 지켜보던 이규한이 희 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좋네.”

모니터링에 열중하다가 디렉션을 내리는 최호인에게서 영화감독 특유 의 냄새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여러 촬영 현장에서 조감독 경험을 쌓은 것이 도움이 됐으리라.

이성균은 이규한이 기대했던 것 이 상의 연기를 펼쳤다.

가 연기에도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가장 큰 불안 요소라 할 수 있었 던 남지유의 연기도 좋았다.

‘악역이라서 어울리지 않았던 거 야.’

이규한의 생각이 맞았다.

불우한 소녀 가장인 한나 배역과 반항적인 이미지가 슬쩍 풍기는 남 지유의 이미지는 정확히 맞아떨어지 고 있었다.

“좋긴 뭐가 좋아? 아쉽구만.”

곁에 서 있던 이규리는 불만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아쉬워?”

“포옹은 너무 심심하잖아.”

“심심하다?”

“마지막 작별인데 키스 정도는 해 줘야지.”

이규리가 불평을 터트린 순간,이 규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여기서 두 배우가 키스를 한 다면?

가슴 아픈 이별의 감정이 희석될 터였다.

이렇게 심심한 작별이 관객들에게 더 깊은 여운을 남길 게 확실했다.

“내가 충고 하나 할까?”

“무슨 충고?” “최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 절대 충고나 간섭하지 마.”

“왜?”

“감각이 영 없는 것 같거든.”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이규리가 양 볼을 부풀렸을 때였다.

“대표님.”

최호인이 이규한을 발견하고 다가 왔다.

“연락도 없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명색이 제작자인데 촬영 현장에 한 번은 와 봐야지.”

“잘 오셨습니다.”

“규리도 왔어.”

“알고 있습니다.”

“난 빠져 줄 테니까 둘이서 얘기 해.”

서둘러 걸음을 옮긴 이규한이 우선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원래 영화 현장은 스태프들이 자주 바뀌기로 유명했다. 그렇지만 블루 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는 영화 현장은 예외였다.

다른 영화 촬영 현장보다 스태프들 의 처우가 좋기 때문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스태프들도 이규한 과 대부분 안면이 있었다.

“대표님,오셨습니까?”

“촬영 현장에 너무 뜸하게 찾아오 시는 것 아닙니까?”

“설마 빈손으로 오신 건 아니죠?”

“야,네가 자꾸 부담을 주니까 대 표님이 촬영 현장에 안 오시는 거 아냐?”

“그런가? 그래도 빈손으로 오시는 건 안 됩니다.”

이제는 격의 없이 농담까지 주고받 을 정도로 가까워진 스태프들을 웃 으며 바라보던 이규한이 자동차 키 를 내밀었다.

“이럴까 봐 빈손으로 안 왔습니 “역시, 제가 이래서 대표님을 좋아 합니다.”

이규한에게서 자동차 키를 건네받 으며 스태프들이 환호했다.

잠시 후, 이규한이 남지유의 앞에 도착했다.

“대표님.”

남지유가 반가운 표정을 지은 순 간,이규한이 웃으며 말했다.

“약속 지키러 왔습니다.”

이규한이 인근 마트에서 구입해 온 삼겹살과 목살을 구우며 즉석에서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꼭 캠핑 온 것 같은데요.”

고기가 구워지고 몇 순배의 술이 돌고 난 후,남지유가 말했다.

“캠핑장 분위기가 나긴 하네요.”

이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성균 에게 물었다.

“촬영 어땠습니까?”

“무척 힘들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힘들었다고 하소연 하던 이성균이 잠시 후 덧붙였다.

“그런데 좋았습니다. 다시 영화 촬 영 현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 이 났습니다.”

어느덧 촬영은 막바지에 다다라 있는 상황.

배우들에게 이번 작품 촬영에 대한 소회를 물어도 괜찮다고 판단한 이규한이 남지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지유 씨는 어땠어요?"

"저도 힘들었습니다. 도망치고 싶을 만큼."

"그런데 왜 도망치지 않았어요?"

"대표님 때문에요."

"저 때문이라고요?"

"연기 경험이 일천한 저를 믿고 이번 작품의 주연 제의를 해 주셨던게 대표님이잖아요? 그래서 대표님에게 미안해서 도망치지 못했어 요.”

이규한이 소주가 든 종이컵을 입으 로 가져가며 말했다.

“잘 참았네요. 그렇게 진짜 배우가 되는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이규한이 종이컵을 비웠을 때, 이성균이 물었다.

“대표님,개봉은 언제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규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성균 의 표정은 무척 진지하고, 또 초조 했다.

그 표정을 확인한 순간,이규한은

이성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신인 감독인 최호인.

그리고 신인급 여주인공인 남지유.

이들과 함께 ‘나를 사랑한 아저씨’

에 출연하면서 이성균은 마음의 부

담이 무척 컸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 달 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이규한이 대답하자,이성 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빨리요?”

“네.”

“개봉을 서두르시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이성균의 질문을 받은 이규한이 대 답했다.

“한 달 뒤에 개봉할 때,경쟁작들 이 가장 약합니다.”

“그래서 한 달 후로 개봉일을 잡으 셨군요. 후반 작업까지 하고 나면 일정이 무척 빡빡할 것 같습니다.”

이성균이 촬영을 마치자마자 쉴 시 간도 없이 후반 작업을 서둘러야 할 최호인에게 안쓰러운 시선을 던질 때였다.

“대표님,그래서였습니까?”

최호인이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시나리오 윤색 작업을 한 번 더 거치자는 의견을 무시하고 촬영을 서두르라고 지시했던 이유 말입니 다. 혹시 그때 이미 개봉일을 점찍 어 두셨던 겁니까?”

“맞아,그때부터 이미 개봉일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어. 다행히 촬영 이 순조롭게 끝나서 한 달 후에 개 봉할 수 있게 된 거고. 만약 촬영이 좀 더 늦어졌다면,일 년 이상 개봉 을 미룰 뻔했어.”

“그렇게나 오래요?”

최호인이 놀란 표정을 지을 때,이 성균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공범들’이란 작품에 대해 아십니까?”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공범들’이라는 작품에 제 친구인 조천응이 출연했습니다. 그리고 조 천응에게 듣기로 ‘공범들’의 개봉이 대략 한 달 후라고 하더군요. 만약 우리 작품이 한 달 뒤에 개봉하면 ‘공범들’과 개봉 시기가 겹치지 않 습니까?”

이성균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질문을 던진 이유.

‘공범들’이란 작품에 대한 충무로 의 기대가 큰 편이기 때문이었다.

“시나리오 잘 빠졌고,연기파 배우 들이 뭉쳤다.” 이규한도 ‘공범들’이란 작품에 대 해 알고 있었다.

또,‘공범들’이라는 작품에 대한 소 문도 익히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규한이 ‘나를 사랑한 아저씨’의 개봉일을 한 달 후로 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작품과 ‘공범들’의 개봉 시 기는 겹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하신 대로라 면 ?”

“‘공범들’의 개봉 일자가 바뀔 겁 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무슨 수로요?”

이규한이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 다.

“혹시 삼국지란 소설을 읽어 보셨 습니까?”

“삼국지요?”

갑자기 삼국지라는 소설을 입에 올 리는 연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이성균이 의아한 시선을 던지며 대 답했다.

“읽어 봤습니다.”

“삼국지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전략 을 따라서 사용해 볼 생각입니다.”

…?" “북소리를 요란하게 울릴 겁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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