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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관객 제작자-175화 (175/272)

175화

원작의 힘 딩동,딩동.

벨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던 김미주 가 미간을 찌푸린 채 쏘아붙였다.

“왜 또 오셨어요?”

“심심해서 커피 한잔하려고.”

램프 엔터테인먼트 박태혁 대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그가 팔 짱을 낀 채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짓

는 김미주에게 물었다.

“안 반가워?”

“오늘만 벌써 세 번째거든요.”

“아,문 열어 주기가 귀찮은 거구 나. 그러니까 그냥 비밀번호 알려 달라니까.”

“그건 안 된다니까요.”

“그럼 계속 열어 주던가.”

“진짜

“진짜 뭐?”

“진심 관두고 싶다.”

김미주가 깊은 한숨과 함께 말한 순간,이규한이 대표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만두면 안 돼.”

“참고 버티기엔 근무 환경이 너무 안 좋잖아요.”

“이 정도면 괜찮은 근무 환경 아닌

가?”

“얼마 전까지는 괜찮았죠. 그런데 갑자기 근무 환경이 악화됐어요.”

“언제부터?”

“램프 엔터테인먼트가 사무실을 이 전한 후부터.”

김미주가 박태혁을 노려보며 대답 했다.

“그럼 어쩐다?”

잠시 고민하던 이규한이 입을 뗐 “다시 가라 그럴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미주와 박태혁이 앞다투어 말했다.

“그럼 애사심이 더 생기겠네요.”

“그런 법이 어딨어? 일수불퇴란 말,몰라?”

김미주와 박태혁이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잠시 후,김미주가 선언했다.

“저와 박 대표님, 두 사람 중 택일 하세요.”

“그 방법밖에 없어?”

“네,없어요.” 김미주가 단호하게 대답한 순간, 이규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택해야 한 다면 당연히… 미주 씨지.”

김미주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반면 박태혁의 표정은 다급하게 변 했다.

“이 대표,그럼 나는?”

“버려야죠.”

“야!”

“그런데 내 마음이 약해서 차마 그 럴 순 없으니 합의를 하시죠.”

“무슨 합의?” 박태혁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규한이 김미주에게 물었다.

“오늘 박 대표님이 몇 번 사무실에 찾아왔지?”

“세 번이요.”

“어제는?”

“여덟 번이요.”

“그럼 잊그제는?”

“일곱 번이요.”

김미주의 대답을 들은 이규한이 박 태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뭘 어떻게 생각해?” “너무 자주 찾아온다는 생각,안 드세요?”

“좀 많긴 하네.”

박태혁이 수긍하는 것을 들은 이규 한이 제안했다.

“하루에 한 번만 찾아오는 걸로 합 의하죠.”

“하루에 한 번,그건 너무 적잖 아?”

“그 정도면 참아 볼게요.”

엇갈린 반응이 돌아오자 이규한이 웃으며 해결책을 꺼냈다.

“그럼 하루 두 번까지로 하죠.”

“그것도 너무 적어.” “너무 많은데.”

“아직 제 얘기 안 끝났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인데?”

“빈손으로 오면 안 된다는 조건이 요.”

이규한이 내건 조건을 들은 박태혁 이 와락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한 번만 올게.”

“그때도 빈손으로 오시면 안 됩니 다.”

“알았어.”

박태혁에게 약속을 받아 낸 이규한 이 한쪽 눈을 찜긋하며 김미주에게 말했다.

“택배 기사님이라고 생각해.” 커피 전문점 블루문.

후루룹.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박태혁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여기 커피가 참 맛있단 말이야.”

“최고급 원두를 쓰기 때문일 겁니 다.” 이규한이 대답하자,박태혁이 두 눈을 반짝였다.

“어디 원두를 쓰는데?”

“아라비카 원두를 쓰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라비카 원두? 내가 커피에 대해 서는 좀 알지. 커피의 3대 원두는 아라비카,로브스터,리베리카가 있 지. 그런데 리베리카 원두는 가뭄에 약해서 현재는 거의 생산되지 않아. 참 애석한 일이지. 그리고 로브스터 종은 생명력이 강해서 잘 자라기는 하지만,맛과 풍미가 떨어지는 편이 라 주로 인스턴트커피용으로 쓰이 지. 그래서 아라비카 원두가 가장 고급으로 인정받고 있긴 한데,기후 나 토양 등에 민감해서 재배하기가 까다로운 편이야.”

박태혁이 커피 원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내는 것을 듣던 이규한이 실소를 머금었다.

‘전형적인 실속 없는 영화 제작자 의 모습.’

퍼뜩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일부 잘나가는 영화 제작자를 제외 한 대부분의 영화 제작자들은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영화 제작자들은 바쁘다.

일단 사람을 자꾸 만나야 영화 제 작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만, 주로 나누는 이야기 중 대부분이 잡 담이다.

그러다 보니 잡학 지식이 자연스레 쌓이는 것이었고.

“이런 이유 때문에 아라비카 원두 는 다른 원두보다 비싼 편이지 만……

박태혁이 커피 원두에 대한 이야기 를 이어 나가려는 순간,이규한이 끼어들었다.

“궁금하시죠?”

가만히 내버려 두면 커피 원두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거 같은

불안감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뭐가?”

“제작 진행 상황이요.”

“좀 궁금하긴 하지.”

“좀이 아니라 많이 궁금하시잖아 요. 그래서 자꾸 찾아오시는 거고. 맞죠?”

“맞아.”

박태혁이 인정하는 것을 들은 이규 한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은 딱히 진행된 게 없어서 말씀을 못 드렸어요.”

“그래?”

마음이 급하기 때문일까.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던 박태혁이 이내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단 거야?”

“네,지난번에 박동선 작가에게 시 나리오 작업을 의뢰했다는 건 말씀 드렸죠?”

“응,벌써 시나리오 작업이 끝났 어?”

“벌써 끝날 리가 없죠.”

박동선 작가에게 ‘은밀하면서도 위 대하게’의 시나리오 작업을 맡긴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벌써 시나리오 작업이 끝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박태혁이 물었다.

“그럼 어떤 진행이 있었다는 거 야?”

“투자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박태혁의 입 가로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작품의 투자 유치를 받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자 제안을 한 곳이 어디야?”

“빅 박스입니다.”

“어디?”

“빅 박스요.”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작품 에 투자 제안을 한 곳이 빅박스라는 대답을 들은 박태혁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규한도 놀랐던 것은 마찬 가지였다.

빅박스에서 먼저 투자 제안을 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었기 때문이 다.

“빅박스랑 사이 안 좋다면서?”

잠시 후,박태혁이 물었다.

“사이가 원만하지 않은 것은 사실 입니다.” ‘베테랑들’ 투자 철회 건에 이어서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판권 문 제까지.

이규한과 빅박스 투자팀장 백기원 은 서로 각을 세웠었다.

“그런데 왜 빅박스에서 투자 제안 을 한 걸까?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아냐?”

박태혁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불안한 표정을 지은 채 이규 한에게 물었다.

“저도 정확한 이유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 봐야 무 슨 생각으로 투자 제안을 했는지 알 수 있겠죠. 그렇지만 짐작이 가는 것은 있습니다.”

“짐작이 가는 게 있다고? 뭔데?”

“아마 아까워서일 겁니다.”

“뭐가 아까워?”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작품 을 놓치는 것이 아까울 겁니다.”

“작품이 흥행할 거란 확신이 있다? 그래서 영상화 판권 구입에는 실패 했지만,투자와 배급이라도 맡아서 수익을 올리겠다?” “어디까지나 제 짐작입니다.”

잠시 후,박태혁이 고개를 갸웃하 며 입을 뗐다.

“확실히 이상해.”

“또 뭐가요?”

“아직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시나리오 초고조차도 안 나온 상태 잖아. 그런데 뭘 보고 투자를 하려 는 거지?”

박태혁이 이런 의구심을 품는 것.

충분히 납득이 됐다.

시나리오 완고에다가 감독과 배우 캐스팅까지 마친 후에 투자 배급사 에 투자 심사를 넣어도 물먹기 일쑤

그런데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의 경우 감독이나 배우 캐스팅은커녕 시나리오 초고조차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박스 백기원 팀장이 작품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먼저 밝힌 것이 박태혁은 이해가 가 지 않는 것이었다.

이규한 역시 의구심을 품었었다. 그렇지만 머잖아 답을 찾아낼 수 있 었다.

“원작의 힘 때문이죠.”

“원작의 힘?”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웹툰 원작이 시나리오 역할을 대신한 겁 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박태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직 결정 못 했습니다.”

“조금 불안한 구석이 있는 게 사실 이지만,그래도 빅박스의 투자 제안 을 못 이긴 척 받는 게 좋지 않겠 어? 요새 투자 받는 게 점점 더 어 려워지고 있는 거,이 대표도 알잖 아.”

최근 들어 작품의 투자를 받는 것 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추세였다.

여러 이유가 있긴 했지만,가장 큰 이유는 투자 배급사에서 암암리에 직접 제작까지 뛰어들고 있었기 때 문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그렇지만 이규한은 서두르지 않기 위해 마음을 진정시켰다.

‘좋은 작품은 분명히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반반입니다. 일단 백

기원 팀장을 만나보고 난 후에 양단 간에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이규한의 대답을 들은 박태혁이 마 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가 한참 망설이다가 부탁했 다.

“백기원 팀장을 만날 때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안 됩니다.”

이규한이 딱 잘라 거절하자,박태 혁이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왜 안 돼?”

이규한이 대답했다.

“박 대표님은 표정 관리가 안 되시 거든요.

사당역 11번 출구에서 약 오 분 거리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인 블레 스

이규한이 빅박스 투자팀장 백기원 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왜 하필 사당역에서 만나?”

이규한이 약속 장소를 알려 주었을 때,황진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던졌 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진 데 는 이유가 있었다.

빅박스와 블루문 엔터테인먼트.

사당역이 두 회사와 전혀 상관없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약속 장소를 사당역 인근 커피 전문점으로 결정한 데는 나름 의 치열한 기 싸움이 있었다.

백기원 팀장은 빅박스 투자팀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은밀하면서도 위대하게’라는 작품 에 투자 제안을 한 본인이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 기 위함이었다.

그 사실을 간파한 이규한은 역으로 블루문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나자고 제안했고,줄다리기 끝에 딱 중간 지점인 사당역에서 만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이규한이 커피 전문점 블레스 안으로 들어갔 다. 그렇지만 백기원 팀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에서 아이스커피 두 잔을 주 문한 후,이규한이 창가 쪽 탁자에 앉았다.

약 오 분의 시간이 흐른 후,백기 원 팀장이 느긋하게 걸어오는 모습 이 보였다.

“일부러 늦었군.” 백기원 팀장이 약속 시간에 오 분 가량 늦은 이유는 짐작이 갔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것은 자존 심이 허락지 않았을 것이다.

“차가 막혀서 좀 늦었네.”

탁자 앞으로 다가오며 백기원 팀장 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방금 도착했습 니다.”

“커피를 벌써 시켜 뒀군. 그리고 이번에는 아이스커피를 시켰군.”

이규한이 아이스커피를 주문해 둔 것을 확인한 백기원 팀장이 만족스 런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가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뗐다.

“판권을 팔았다는 이야기는 들었 네. 얼마에 팔았나?”

“금액까지 밝혀야 합니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닐세. 그런 데 궁금해서 말이지.”

“오천만 원에 영상화 판권을 넘겼 습니다.”

“방금… 얼마라고 했나?”

“오천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1억 관객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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